고대사관련

[스크랩] <6>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낙엽군자 2009. 1. 8. 21:57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고고학적 발굴과 중국 사료로 추적한 고조선의 비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시민단체.

환국 조선 한국은 하나

환인의 환(桓)자 뜻은 ‘푯말’이다. 역과 역 사이의 거리를 가리키는 이정표로 쓰이는 푯말을 桓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환이 나라를 상징하는 이름이 될 수 없다.

중국은 이민족에 대해서는 좋은 뜻의 한자를 붙이지 않았다. 그들이 자칭하는 이름에 가까운 한자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桓은 ‘韓’과 마찬가지로 순 우리말 ‘한’을 이두식 한자로 적은 것일 수 있다.

환인국, 또는 환국은 한민족이 이끄는 나라, 한국이다. 이 한국에서 3000여 명을 이끌고 나온 환웅이 곰족 여성과 혼인해 단군을 낳았다. 단군의 檀자는 ‘박달나무 단’자인데, 박달은 ‘밝다’에서 파생되었다. 따라서 단군은 ‘밝은 나라의 군왕’, 즉 ‘한국의 임금’이 된다.

‘밝은 나라’를 한자로 옮기면 ‘朝鮮’으로 표기할 수 있다. 환인국(또는 환국)과 환웅, 단군과 조선, 그리고 한국은 맥을 같이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옛날 큰 나무는 하늘과 통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하늘과 통하는 나무는 신목(神木)이다. 신목은 밝은 곳인 하늘을 지향하니 ‘밝은 나무’, 즉 박달나무가 된다. 신령스러운 박달나무를 한자로 옮겨 적으면 ‘신단수(神檀樹)’가 된다.

고고학적 발굴과 문화사적 추론을 토대로 삼국유사 등에 있는 고조선을 다시 풀어본다면 이런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멀리 노노아호산이 있는 영금하 부근의 평지에서는 오래전부터 농업과 어업, 상업, 그리고 운수업(江上 물류)이 이뤄지는 신석기 후기 문명의 나라 한국(환국)이 있었다. 이러한 곳에 청동기 문명을 가진 환웅이 3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일어나 곰족과 결혼동맹을 맺고 이 지역을 장악했다. 노노아호산에 올라간 그는 신령스러운 나무 밑에서 신시(神市)가 열렸음을 선언했다. 그는 왕위를 아들인 단군에게 넘김으로써 왕위 세습제를 만들었는데 단군은 나라 이름을 조선, 즉 한국이라고 했다.’

단군이 세운 조선을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으로 표기한다. 황하를 비롯한 네 곳에서만 문명이 발생했다는 세계 4대 문명발상지론은 허구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고고학은 4대 문명권 외에도 독자적으로 청동기 문화를 꽃피운 60여 개의 문명권이 있었음을 밝혔다. 고조선을 우리 문명의 시원으로 삼는 나라가 교과서에 4대 문명발상지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고조선 문명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다.

하나라의 출범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초기의 중국인을 ‘화하족(華夏族)’으로 부른다. 화하족은 황화 문명의 주역이다. 화하족은 기원전 2000년쯤에 청동기시대에 들어갔다. 반면 영금하 부근에 있던 환인족과 곰족을 중심으로 한 고조선족은 기원전 2400년경 청동기 문명을 열었다.

그러나 자연변화로 인해 영금하(하가점) 일대에 있던 고조선족이 남하했다. 고조선족의 이동은 단군이 아사달-백악산아사달-평양-장당경으로 옮겨갔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대의 종족은 자주 옮겨 다녔다. 중국의 상족도 상나라를 세우기 전 주거지를 8번 옮겼고 상나라를 세운 후에도 도읍을 5번이나 옮겼다. 그러나 고조선족의 이동은 결과론적으로 고조선을 화하족에 뒤처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가점에서 발원한 청동기 문화는 기원전 2000년이 되자 남쪽으로 내려와 난하와 소릉하 대릉하 지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가점 청동기의 특징을 가진 청동기가 난하~대릉하 일대로 확산된 것이다. 그리고 하가점의 청동기 문화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왜 하가점 하층문화는 쇠퇴한 것일까.

그 이유로는 기후변화가 거론된다. 하가점 하층문화 위에 쌓인 하가점 상층문화에서는 마구(馬具)가 많이 출토되었다. 하가점 유적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한 학자는 “기원전 1000년 무렵 지구적인 기후 변화가 일어나 하가점 일대가 추워졌다. 이곳은 농업에 부적당한 초원지역으로 변했다. 그로 인해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고 남은 사람들은 유목생활에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계속)

출처 : 사슴농장
글쓴이 : 가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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