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관련

[스크랩] <5>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낙엽군자 2009. 1. 8. 21:57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고고학적 발굴과 중국 사료로 추적한 고조선의 비밀
 

다음으로 남는 것은 환웅이 결혼동맹을 맺은, 곰을 숭상하는 곰족의 실존 여부이다. 일본 사이타마(埼玉)현에는 고구려가 패망한 후 일본으로 건너온 고구려인이 세웠다는 ‘고려신사(高麗神祠)’가 있다. 고구려는 종종 고려로 표기됐는데, 일본인은 이 신사를 오래전부터 ‘코마진쟈’로 읽어왔다. 일본식 한자 읽기에 따르면 고려(高麗)는 ‘고우라이’가 돼야 한다.

‘곰족은 고구려족, 환인족은 한민족’

그런데 이곳에서는 ‘코마’로 읽고 있는데, ‘코마’는 고구려인을 따라 들어간 고대 한국어일 가능성이 높다. 코마진쟈가 있는 곳엔 ‘코마무라(高麗村)’ ‘코마가와(高麗川)’ 등 고려를 코마로 발음하는 지명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이곳에 상당히 많은 고구려인이 들어갔기에 이곳에서는 유독 고려를 코마로 읽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코마는 일본어로 곰(熊)을 가리키는 ‘쿠마’와 발음이 아주 비슷하다. 그렇다면 高麗는 곰을 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구려인은 곰을 숭배하는 곰족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고구려가 곰족이라면 고구려족은 기원전 2400년쯤 하가점 부근에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삼국사기’는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시기를 기원전 37년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때 주몽은 고구려라는 국호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한4군의 하나인 현도군에는 ‘구려현(고구려현)’이 있었다고 하니 기원전 37년 무렵에 고구려라는 이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고구려는 고구려현을 흡수하고 난 다음인 6대 태조왕 때부터 고구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주몽은 고구려족의 후예였기에 그의 후손은 고구려라는 국명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고구려족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을 수 있다.

황하 중류에 세워진 중국 하나라의 17대 왕인 걸왕(桀王)은 대단한 폭군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상족의 대표인 성탕(成湯)이 걸왕을 몰아내고 기원전 1600년경 상(商)나라를 세웠다. 상나라의 31대왕인 주왕(紂王)도 유명한 폭군이었으므로 기원전 1046년쯤 주족의 대표인 무왕이 그를 쫓아내고 주(周)나라를 세웠다.

주나라는 호경(鎬京)을 첫 도읍지로 삼았는데 호경은 지금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西安)이다. 주나라를 개국한 직후 주왕조는 주변에 있는 종족 대표를 초청해 잔치를 열었던 모양이다. 주나라의 역사서인 ‘일주서(逸周書)’는 기원전 12~11세기(BC 1100~1000년)쯤 호경에서 주나라를 세운 것을 축하하는 ‘성주모임(成周之會)’을 열었는데, 여기에 고구려인인 고이(高夷)가 참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록 고구려를 주나라에 복종한 종족인 것처럼 묘사하긴 했지만 일주서는 기원전 1100~1000년에 고구려족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주나라의 수도인 호경에서 가까우려면 고구려족은 요하의 동쪽, 즉 하가점이 있는 요서지역에 포진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환웅 세력과 동맹을 맺으려다 곰족에 밀려난 호랑이족은 어떤 종족이었을까. 한민족을 이룬 고대 종족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예(濊)족이다.

예족은 맥(貊)족과 인접해서 난하와 대릉하 사이에서 살았는데 ‘일주서’는 이들의 대표도 성주모임에 참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족은 고구려족만큼이나 오랜 종족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후한서 동이열전’과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예족은 호랑이를 섬긴다’는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렇다면 호랑이족은 예족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예족은 환웅족과 결혼동맹을 맺지 못했기 때문인지 곰족과 다른 길을 걸었다. 고조선이 힘을 잃은 후 예족은 만주 지역으로 이동해갔으나 그곳에서 일어난 부여족에 밀려 상당수가 사라지고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한다. 이들은 함경도 지역에 옥저와 동예를 세웠으나 곧 고구려의 지배를 받다 사라져버렸다.

‘나라 국(國)’자는 고서에서 ‘’ 또는 ‘’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 오래전부터 국사학계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발견된 ‘삼국유사’ 고조선조에는 ‘환국(桓)’으로 적혀 있었는데 일본인 학자가 덧칠해 ‘환인(桓因)’으로 바꿔놓았다는 주장이 있었다(성삼제, ‘고조선 사라진 역사’, 동아일보, 2005년, 제7장 참조). 만일 삼국유사에 환국이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면 홍산문화를 이끈 것은 환국이라고 더욱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 민족을 ‘한민족’이라고 자칭한다. 한민족이라고 할 때 ‘한’을 ‘韓’으로 적기 때문에, 국호도 ‘大韓民國’이 되었다. 우리말 ‘한’과 한자 ‘韓’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순 우리말 한은 ‘밝다’ ‘크다’ ‘하늘’ ‘하나’를 뜻하는 단어로 두루 쓰인다. 밝은 것은 아침이고 동쪽과 관련이 있으니, 한은 아침과 해가 뜨는 동쪽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밝은 것은 하늘이고 하늘은 하나이다. 이러한 ‘한’을 이두처럼 발음을 따라 한자로 표기한다면 ‘韓’으로 적을 수 있다.

   (계속)

출처 : 사슴농장
글쓴이 : 가우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