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관련

[스크랩] <8>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낙엽군자 2009. 1. 8. 21:55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고고학적 발굴과 중국 사료로 추적한 고조선의 비밀
 

고조선의 거수국 가운데 낙랑 임둔 진번 현도와 기자조선이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고조선을 멸한 한나라가 고조선 땅에 설치했다는 한4군과 같은 이름을 가진 나라가 고조선의 거수국으로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기자조선을 단군조선을 대체한 정권으로 알고 있는데 왜 기자조선을 고조선의 거수국으로 분류하는가.

이 의문을 풀려면 먼저 중국 사서에 나온 기자(箕子)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기자는 상나라 마지막 왕인 걸왕의 작은아버지이다. 걸왕은 학정을 한 폭군으로 유명한데, 기자는 걸왕을 향해 바른말을 했다가 투옥된 저항가였다. 상나라가 주나라 무왕에 의해 망하기 직전 무왕은 기자를 감옥에서 풀어줬다.

풀려난 기자는 주 무왕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들려주었으므로 주 무왕은 그를 우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자가 자신은 상나라 사람으로 주나라의 녹을 먹을 수 없다며 조선 땅으로 망명했다. 이를 섭섭하게 여긴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봉했다는 것이 기자조선의 근거이다. 이러한 기록은 사마천이 쓴 ‘사기’ 등 여러 곳에 나온다.

중국은 기록을 근거로 ‘단군이 이끈 고조선은 실체가 없고, 기자가 이끈 조선만 있었다. 그런데 기자가 이끈 조선은 주나라가 임명한 제후국이고 기자도 중국인이니, 고조선은 중국의 일부이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학운동과 동북공정
“반도사관 벗어나려면 국학 부흥시켜야”


한민족 분포지역에 많이 발견되는 비파형 동검.
금남(錦南)이라는 호를 사용한 최부(崔溥·1415~1504)는 제주도에서 추쇄경차관으로 근무하던 1488년 1월, 부친상을 당해 육지로 돌아오는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29일 동안 표류해 중국 절강성 영파(寧波)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그는 중국 관리로부터 필담 조사를 받았는데, ‘조선의 관리라고 하는 자가 표류해왔다’는 보고를 받은 명나라 조정은 그를 데리고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에 따라 관리는 최부를 데리고 북경으로 올라가면서 많은 필담을 주고받게 되었다. 중국 관리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최부는 성리학을 공부했기에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중국 관리가 “당신 나라에도 천자가 있느냐”라고 묻자 최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 있듯이, 천하에도 천자는 한 분뿐이다. 당신이 모시는 천자가 바로 조선의 천자이시다.…”
그해 7월 최부가 조선으로 돌아오자 성종은 그에게 명나라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게 했다. 그에 따라 최부는 1월30일부터 6월4일까지 겪은 일을 일기체 형식으로 적었는데 이것이 ‘금남선생 표해록(漂海錄)’이란 책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지금의 한국인들도 최부처럼 중국 중심의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인은 대륙에 있고 한민족은 반도에 있었다는 인식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문헌을 통해 확인한 것이 아니면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국 역사학계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중국의 역사 공세에 대항하려면 국학(國學)을 진작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학은 합리적인 상상력으로 우리 민족의 정신사를 세워 나가는 것이므로 문헌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다.
국학은 대개 민족 수난기에 주목을 끌었다. 한글은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 자산이지만 언문으로 불리며 조선시대 내내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 주시경 선생이 ‘배달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1913년 ‘한글’로 명칭을 바꿔주자, 창제된 때로부터 400여 년 만에 부활하게 되었다.
단군을 주목하게 된 것도 일제 강점과 관련이 있다.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기에 기자조선을 강조했지 단군조선을 내세우지 않았다. 조선 조정은 단군을 거론하는 책을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서적으로 보고 몇 차례 ‘수서령(收書令)’을 발동해 거둬들였다. 이렇게 대접받지 못하던 단군이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절 대종교로 부활하고 역사로 부활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10월3일이 개천절로 지정되고 홍익인간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이 지나자 단군은 다시 잊힌 존재가 되었다. 단군은 일부 기독교 세력들로부터 우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기독교와 불교 유교는 다른 나라에도 있는 사상이고 철학이고 종교이지만, 단군사상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사상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부정되고 있다.
남북한은 이념이 달라도 단군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따라서 단군사상을 매개로 이념적인 통일을 해갈 수도 있다. 국학연구소의 김동환 연구원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도발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단군사상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국학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 공세에 맞서는 에너지를 내기 위해서 국학의 진작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속)

출처 : 사슴농장
글쓴이 : 가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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