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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쾌도 홍길동> 돈세상을 뒤엎어라!

낙엽군자 2008. 5. 24. 20:45
채널/시간
KBS2 수,목 저녁 9시 55분
출연
강지환, 성유리, 장근석, 박상욱, 김리나
줄거리
기존의 바른 사나이가 아닌 인간적인 캐릭터로 홍길동의 모습을 재창조한 퓨전사극
나의 평가
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
주요 등장인물
강지환
성유리
장근석
박상욱
시청 소감 한마디

 

  국무위원 인사청문회가 날이 갈수록 가관이다. 총리 후보자의 아들은 병역의무를 이행하다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현역이 아니었고 병역특례업체에서 근무했다. 4년 6개월 근무 중 244일간을 해외에서 보냈고 출장을 가면서도 골프채를 가져갔다고 한다. 총리 후보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휴가 중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되물었다. 우리, 다시 묻자. 대한민국에서 병역을 이행하는 남성 중 휴가 기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골프'를 '해외'에 나가서 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총리 후보자는 경력 부풀리기, 부동산 투기, 탈세 등의 의혹으로 거센 질타를 받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부자내각'의 출범이 도래하고 있다. 국무위원 평균 재산이 40억에 달한다는 보도다. 여성부장관 후보자는 전국에 49억대 40건의 부동산을 보유했다. 문화부장관 후보자는 강남에 50억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부인도 55억대를 가지고 있다. 환경부장관 후보자 역시 49억대의 자산가다. 산자부장관 후보자는 예금 23억에 부동산 33억이란다. 바야흐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성공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열어갈 장관들은 이미 성공했다. 그들이 그렇게도 지우고 싶어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그들은 부자가 되었다. 임야와 아파트와 오피스텔과 분양권을 총망라하고 있는 그들의 재산가치는 계속 상승중이다.

 

  <쾌도 홍길동>은 엄밀히 말해 사극이 아니다. '기름기를 뺀 퓨전사극'을 표방했지만, 이것은 겉껍데기에 불과하다. <쾌도 홍길동>은 오히려 2008년의 대한민국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본격풍자극이다. <이산>이 개혁군주 정조의 시대를 '대장금2'로 만드는 동안, <쾌도 홍길동>은 시대불명의 가상인물을 동원해 부패와 비리가 판치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고발하고 있다. 정승판서들이 '격구장'에 모여 '청나라제 격구채'로 운동을 하고, 이조판서의 아내가 좌의정을 향해 '호타(好打)'를 외친다. 고관대작들의 자제들이 과거에 합격할 실력이 없어 너나할 것 없이 입시부정을 저지른다. 좌의정은 청나라제 비단에 청나라제 갓을 쓰고 청나라말을 못배운 것을 속상해한다. 고위층들은 자식에게 '조랑말'보다는 '외제말'을 사줘야 체면이 서고, 자신들이 타고 다니는 가마 역시 최신형을 선호한다.

 

  <쾌도 홍길동>의 미덕은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매우 유쾌하고 명랑하게 비튼다는 데 있다. 고리대금업자 최철주가 고용한 '인기 남사당패'가 "이자가 너무 싸네~를 외치고 동네 아이들이 이를 따라한다. 재미있는 대목이다. '권력의 핵심'을 자처하는 좌의정의 '청나라 타령'은 밉다기보다는 우습다. <쾌도 홍길동>은 부당한 현실의 리얼리티를 우리가 즐길 수 있게 한다. 그 현실이 일차적으로 우리와 멀리 떨어진 조선시대의 모습이기 때문이고, 또한 이 드라마의 형식이 매우 포스트모던하기 때문이다. '홍길동'이라는 인물 자체가 기존 텍스트를 배반한다. 그는 본질적으로 '정의의 사도'라기보다는 '한심한 동네 건달'이다. 그가 '의적'이 된 것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다. "알게 뭐람!"을 외치며 되는대로 살았다.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의적'이다.

 

  계몽을 거부하는 시대. 누군가 자신을 가르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시대. 제작진은 매우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10회 이전까지 드라마의 모든 인물이 시시껄렁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제작진은 허균의 <홍길동전>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해소하는 데 커다란 공을 들였다. 조선시대의 인물이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고, 조선시대의 인물이 '알라뷰'를 외치고, 조선시대의 인물이 '테크노' 댄스를 추고, 조선시대의 인물이 골프를 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던 시청자들이 차츰 그 재미에 익숙해진다. '홍길동'이라는 인물만 있을 뿐 도대체 실체가 모호한 이 시대에 제작진은 점점 계급적인 메시지를 삽입하기 시작한다. 폭군의 별궁을 짓던 인부들이 반역죄를 쓰고 처참하게 죽어가고, 사람들은 고리대금업자의 폭리에 시달리고, 탐관오리의 학정에 시들어간다.

 

  조선시대는 조선시대이지만, 정확한 시대는 알 수가 없다. 왕위계승의 모티프만 광해군과 영창대군에서 따 왔다. 그러나 수탈과 억압의 주체는 선명하다. 돈에 눈이 먼 장사꾼들이 있고, 그들의 장사꾼들의 돈을 받아 권력을 지탱하는 부패한 권력자들이 있다. 오늘 방영된 <쾌도 홍길동> 16회를 그 계급의 문제를 제국주의로까지 확장시킨다. 청나라의 사신이 아편을 조선에 들어와 싼 값에 유포한다. 19세기 말 영국와 청나라의 '아편전쟁'에서 모티프를 따 온 것이 분명한 이 장면에서 <쾌도 홍길동>이 고발하고자 하는 계급의 모든 층위가 밝혀진다. 조선의 억압받는 민중 위에 조선의 지배계층이 있고, 그 위에 '대국' 청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이 청나라는 명백한 미국의 직유다. 청나라 사신이 "대국과 경쟁하는 것이 그리도 겁나냐. 영원한 우방인 우리가 보호해주는 대가로 뭔가 내놓아야 하지 않나. 몇 개 빼고 다 풀자"고 말하는 대사는 노골적으로 한미FTA를 풍자하는 것이다. 좌의정은 '아랍국파병'을 운운하며 이라크파병을 시사하기도 한다.

 

  <쾌도 홍길동>은 퓨전사극을 표방하지만 명백한 풍자극이다. 그것도 아주 좌파적인 풍자극이다. 발랄함과 명랑함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이 드라마가 유일하게 진부하게 변하는 때가 바로 '핍박받는 민중'의 모습을 슬로모션이나 롱테이크로 잡아낼 때다. 저음의 첼로 선율이 구슬프게 흐르고, 삶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투적인 컷으로 제시된다. 홍길동이 이들을 구원한다. 그러나 제작진은 홍길동이 할리우드식 영웅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홍길동은 그들이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 돕는다. 최철주의 쇠지팡이에 맞아 죽은 어린 소녀의 시신을 전시하며(시신전시의 기원은 사실 프랑스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중의 분노를 촉발시켜 나약하고 수동적이었던 그들이 뭉쳐 행동하게끔 하는 것이다. '활빈당'은 단지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그들에게 '재분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직접 행동하게끔 하는 것이다. 행동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혁명이다.

 

  좌파적 메시지를 발랄하게 녹여내는 것 이외에도 <쾌도 홍길동>이 가진 서사적 미덕은 많다. 서자 길동과 적자 인영의 관계는 방계임금 광휘와 적자대군 창휘의 관계와 역대칭을 이룬다. 이 비대칭의 구도에서 길동은 창휘에게 '너는 왜 임금이 되려 하느냐'고 줄기차게 묻는다. '정당한 계승자'라는 사인검의 명분 하나로 여기까지 달려온 창휘는 길동을 만나면서 '진정한 통치자'로서의 자격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백성이 원하는 임금'이란 민본주의, 나아가 민주주의적 정통성을 지닌 지도자의 원형에 다름 아니다. 이조판서에게 정적으로 몰려 살해당한 류대감의 딸 이녹의 정체는 곧 밝혀지겠지만, 이녹이라는 캐릭터 역시 길동의 사람됨에 반해 점차 목적의식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캐릭터다(물론 이녹의 캐릭터는 <궁>의 윤은혜, <궁s>의 허이재, <태왕사신기>의 이지아의 계보를 잇고 있기도 하다). 길동과 그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전적 모티프를 차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외 왕위탈환이라는 목적의식 때문에 대의를 보지 못하고 이녹과 홍길동을 제거하려 하는 노객주의 그릇된 충성심이라든가, 활빈당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 허씨노인과 해명스님의 감칠맛나는 연기를 보는 것도 이 드라마의 큰 즐거움이다.

 

  풍자는 가장 억압적인 시대, 혹은 억압에 대한 비판이 효력을 잃고 있는 시대에 그 빛을 발한다. 형식적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의 현재, 정치권력이 사람들을 박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본권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굴종하기를 강요한다. 자본에게 예속당하는 시대고, 그 억압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다. <쾌도 홍길동>은 이러한 시대에 빛나는 풍자다. 한국의 현재를 조선시대를 빌어 비판하는 것이다. 이 풍자는 슬프지만 소중하다. 기업가 출신 대통령이 위장취업과 위장전입과 위증교사와 탈세의 범죄전력을 딛고 대통령에 당선되고, '초일류기업' 삼성이 검찰을 '떡찰'로 떡실신시키면서 지속적인 증거인멸로 사법권력을 우롱하는 이 시대에, 등록금이 한 해 천만원을 훌쩍 넘겨 가난한 아버지는 목을 매야 하고 사교육비가 수십조원을 넘어 가난한 어머니가 파출부를 해야 하는 이 시대에 <쾌도 홍길동>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우석훈씨가 말했듯,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은 한국의 자본주의를 향해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야 할 때가 아니냐고 말이다.

출처 : Pen sees
글쓴이 : 팡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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