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대첩비·안중근수기 발견, 최서면 교수는 누구
50년간 한-일 외교에 막대한 영향력 박정희 전 대통령에 막후 ‘외교 조언’ 장면 박사에 DJ소개 정계입문 열어줘
최서면 명지대 석좌교수의 80평생 살아온 길은 파란만장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해방공간에서 연희전문대 시절 김구 선생 밑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한민당의 외교·정치부장을 지낸 우익인사 장덕수 암살사건에 연루돼 1948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은 그의 다채로운 삶의 서막에 불과했다. 한국전쟁의 혼란을 틈타 석방된 그는 노기남 주교와 장면 박사 등 천주교 인사의 보살핌 속에 천주교 조직 일을 하다 57년 이승만 정부의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했다. 88년 귀국한 뒤에도 한-일 근대사 자료 발굴과 연구를 위해 자주 일본을 왕래하는 등 50년 넘게 현장을 누비고 있으며, 풍부한 인맥을 바탕으로 한-일 외교의 막후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애초 이탈리아로 건너가 한국을 소개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일본 국회도서관 아시아자료관에서 한국 자료를 섭렵하던 그는 “한국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 부끄러움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길로 5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국회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자 사서들이 “다른 손님이 이책을 찾는데 본 일이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90년대에는 외교사 사료관에 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가장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며 자료 발굴에 매달렸다. 이 때 자료가 국사찬위원회를 통해 500장이 넘는 두툼한 <한일 관계 사료 목록>으로 편찬됐다. 그는“세상에서 나 혼자밖에 모르다는 흥분의 연속이었으며, 행복감이 7년간 이어졌다”고 말했다. 북관대첩비와 안중근 수기 발견뿐아니라 이준 열사 사망의 진실, 을사보호조약에 고종 황제 도장이 찍히지 않은 사실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공개됐다.
이런 풍부한 한-일 근대사 자료 섭취는 한국과 한-일 근대사를 알고 싶어하는 일본인과 외국학자들을 위한 강연으로 이어졌고, 강연은 다시 기시 노부스케, 후쿠다 다케오 총리 등 일본의 유력 정관계 인사와의 인맥쌓기를 낳았다. “강연하다보니 재일 한국인 논객 중 일본에 참고가 되는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일본의 정계인사들이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으러 오기도 했다.”
그는 이런 인맥을 바탕으로 한-일 외교사의 이면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여러 조언을 하는 등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50년대 후반 알고 지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장면 박사에게 소개해 정계입문의 길을 열어주고 70년대 일본 방문 때 후쿠다 다케오 당시 대장상을 소개해준 것도 최 교수였다. “ 정치동물인 최서면하고 학자 최서면을 따로 떼어내 둘로 나누면 최서면은 죽어버린다”
온종일 도서관에 파묻혀 살다가도 저녁 때면 후학들과 어울려 역사를 이야기하며 말술을 마다 않고 줄담배를 피우는 그를 보면 `괴물’이라는 그의 별명이 실감난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