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관련

[스크랩] 강화도와 황우석 박사님 (퍼온글)

낙엽군자 2006. 7. 6. 14:44

 강화도와 황우석 그리고 구국의 항쟁

 

 -7월 2일  강화도 연미정에 다녀와서,황우석 박사님의 부활을 꿈꾸며-

 

황우석 박사님을 지지하는 애국민 여러분 반갑습니다.황씨 종친회 서울지부 총무를 하고 있는 황필주입니다.4월 8일 부여집회를 개최하고 황우석 박사님 구명운동을 위해 발 벗고 나선지 어언 5개월이 접어들고 있습니다.황우석 박사님의 구명운동이 법정공방으로 진행되면서 장기전으로 바뀌는 양상입니다.새로운 마음으로 하반기 구상을 하기 위해 황씨 종친의 역사와 한민족 항쟁의 상징인 강화도를 순회하였습니다.이 때 받은 감흥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이렇게 다시 몇자 적어 봅니다.

 

저는 배운 것이 일천하지만 황씨 집안과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처음 이 일에 뛰어든 것은 단순한 이유에서 출발합니다.황씨 집안은 충열의 집안이지 절대 매국노 집안이 아니라는 단 하나의 사실에서 출발하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종친회에서 아무도 나서기를 꺼려하는 현실에서 용감하게 뛰어들었습니다.활동을 하면서 많은 순수한 애국자를 만났습니다.그리고 그들과 하나되어 마음을 터 놓고 애기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는 사실도 새삼느끼게 되었으며 과연 내가 황씨라는 사실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아직은 구명운동이 실현되지 않았지만 황우석 박사님 구명운동을 하면서 알고 지낸 지인과 함께 조상의 얼이 살아 숨쉬는 강화도를 찾아 휴일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황박사님 2차 공판에 참여하고 이 글을 씁니다. 

 

강화도는 민족생존의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강화도의 역사는 민족의 시원인 단군시대부터 시작됩니다.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은 단군이 직접 하늘에 천제를 봉행하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그리고 그 역사는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동이족 우리 민족이 위험에 처할 시기마다 최후의 보루 역활을 하였습니다.고려말 대몽항쟁의 구심점 역활을 하였으며 애국성전의 중심지였습니다.불심의 힘으로 세계 최강 몽고를 물리치려고 팔만대장경을 만든 땅이 강화도이며 삼별초 항쟁의 땅도 강화도 였습니다.어디 그 뿐입니까! 임진왜란 때에도 왜란 방어의 전초기지였으며 근세 병인양요,신미양요 때에도 강화도는 외세 방어의 마지막 보루였습니다.강화도 항쟁의 중심에 황씨 조상들이 활동하였다는 것입니다.

 

 

강화도 연미정에 흐르는 애국의 숨결을 느끼다.

 

강화도에 도착하여 제일 처음 찾은 곳이 황석기 직계로 부터 삼세(三世) 대흥공(大興公)의 묘입니다.김포시 월곶면 문수산성 진좌(辰坐)에 배치되었습니다.산성을 지으려고 기존에 존재한 무덤을 왕명으로 철거하였지만 오직 이 곳 묘소는 왕명으로도 철거하지 못한 곳으로 유명할 정도로 대흥공의 충절은 대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연미정에 도착하였습니다.연미정은 오세(五世) 장무공(莊武公) 황형(黃衡)장군이 태어난 곳입니다.강화도 조약(1876- 일본과 조선) 체결 장소로도 유명합니다.지금은 민간통제선이 되어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입니다.조만간 민간인에게 개방하기 위하여 10억을 들여서 강화도 군청에서 공사를 하지만 중단된 상황에서 진척이 없는 상황이지만 이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강화 팔경 중에 하나로 손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황형(黃衡 1459-1520)장군에 대한 일화를 간단히 소개하는 글을 인용하여 올립니다.<"북쪽으로부터 여진족의 침입이 있었을 때는 두만강을 건너 여진족의 마을을 소탕하였고 남쪽에서 대마도의 왜구들이 침입하여 난동을 부린 삼포왜란 때는 중종 임금의 특명을 받고 왜구를 물리치기도 했다.">고 합니다.그리고 그 때에 전승 기념으로 대마도에서 가지고 온 대나무를 이 곳에 심었는데 아직도 그 곳에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황형장군의 놀라운 선견지명과 충절을 느끼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가 나이 60이 넘어 이곳 강화도의 연미정 근처에 집을 짓고 살았을 때였다. 비록 몸은 서울을 떠나 시골에 와 있었지만 항상 나라의 앞날에 대하여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틈만 있으면 연미정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곤 했다. "

 “태조께서 이 나라를 세우신 지 어언 2백 년, 그 동안 크고 작은 외적의 침략은 있었지만 나라가 위태로울 지경은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바다 건너 왜구들의 잦은 노략질을 보니 언젠가는 큰 난리가 날 것만 같구나.”  하며 한숨을 쉬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황 장군은 결심했다.

 

“여태까지 나라의 은혜를 많이 받아 온 이 몸 이제는 마지막으로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될 때이다.”

 

 다음 날부터 황 장군은 날마다 콩을 맛있게 볶아 마을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그 콩을 나누어 먹인 후 대가로 어린 소나무를 바닷가에 옮겨 심게 했다. 그리고 가끔 아이들이 싫증을 낼 때쯤이면 황 장군은 늙은 몸으로 아이들과 편을 갈라 전쟁놀이를 해가며 소나무 심는 일을 계속해 갔다. 백발의 노인이 아이들과 함께 계속 나무를 심는 모습을 본 마을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황 장군님, 연세도 많으신데 지금 어린 나무를 심어 어디다가 쓰려고 하십니까?”

 “내가 이 나이에 나라를 위해 할 일이란 이렇게 아이들과 놀면서 나무 심는 일밖에는 무엇이 있겠소. 두고 보시오. 아마 훗날 나라가 이 소나무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얻을 것입니다.”

 

 그 후에도 황 장군의 소나무 심는 일은 계속되어 그가 세상을 떠날 때쯤 솔밭이 수십 리에 이르게 되었다. 그로부터 70여 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선조 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가는 등 온 백성은 왜군의 침략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의병장 김천일이 서울을 다시 찾기 위한 준비로 강화도에 들어왔다. 마침 병력을 이동시키기 위해 배를 새로 만들고 정비하는데 많은 나무가 필요했다. 그러나 난리중이어서 나무를 찾지 못하고 애만 태우고 있었다. 고을의 한 노인이 김장군을 찾아왔다.

 

“장군님, 지금 장군님이 찾고 계시는 나무가 있는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고는 황 장군이 심어 놓은 이제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된 숲으로 안내했다. 김 장군은 소나무 숲의 유래를 듣고는 크게 기뻐하며,

 

“아! 이는 ‘황공선견(黃公先見)’이로다.”  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와 같은 황 장군의 선견지명은 조선의 큰 학자 율곡 이이(1536-1584)가 왜구의 침입을 미리 내다보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것보다 이미 수십 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강화도와 황우석!!! 연미정의 역사는 계속된다.

 

황우석 박사님은 절실한 불교신자입니다.황우석 박사님이 천하의 사기군으로 낙인 찍히는 지난 겨울에... 마지막으로 의지한 곳이  강화도 전등사였습니다.왜 황우석 박사님은 전등사에 갔을까요! 전등사의 유래도 외세 배격과 구국의 사찰입니다.전등사를 중심으로 해안을 따라 많은 군사시설이 들어선 곳입니다.12진보, 54돈대, 5포대가 잇달아 늘어서 있습니다. 전등사는 조선말 외세 침입을 막고자 호국사찰로서 수도방위와 왕실의 원찰 기능을 함께 담당하였던 것입니다.

 

황형장군의 선견지명으로 임진왜란을 도운 것처럼 황우석 박사님은 선견지명으로 현 국난을 예견하신 것입니다.21세기 경제전쟁시대를 예고하고 한국을 세계적 반열을 올려 놓을 수 있는 마지막 비책을 제시한 것입니다.

 

2005년 12월 23일 마지막 기자회견의 말은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대한민국 기술입니다."였습니다.이 말 속에 무엇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요!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주권을 강탈하기 위해 제2의 강화도 조약을 체결당하는 심정을 바라보는 지하에서 바라보는 황형장군의 심정일 것입니다.조상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으며 동기감응이 되어 황형장군의 음성으로 외친 것입니다.

 

서울대 조사위 발표가 끝나고 신문기사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서울대가 나를 버려도 대한민국 정부가 날 버려도 난 백의종군 하겠다"이 말 속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요! 매국노에 의해 장악당한 기득권이 대한민국 기술을 미국에 팔아 넘기려 하지만 "나를 믿는 단 한사람만 있어도 난 국민과 함께 영원히 함께 하겠다"라는 말이다.이 말은 황우석 연극<S C 101>에서 황우석 박사님을 대역한 배우의 마지막 멘트와 일맥 상통한 것입니다.

 

지금 되돌아 보면 "조상이 시켜서 나도 모르게 활동하고 있다"고 술자리에서 매양 애기하곤 합니다.그 말이 무심결에 나왔지만 연미정에 다녀오고 다시 세삼스럽게 느껴진다.연미정을 지키는 병사도 황우석 박사님의 직계 조상이 이 연미정을 지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황우석 그 이름 석자를 기억합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나서는 전국의  애국민 여러분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기술은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선비가 마땅히 재기(才技)로써 공업(功業)을 취할지니.

우리의 의로운 행동은 역사가 알고 후세에 길이 전해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선견지명을 가지신 황지지 회원여러분   

황우석 박사님은 여러분을 믿습니다.

 

황우석 박사님은 법정에서 이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죄인의 심정으로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법정에 찾아와 주시는 여러분이 있어서

황우석 박사님은 백만대군을 얻은 마음입니다.

 

황우석 박사님이 구명되고

특허수호와 연구재개가 되던 날

 

국민여러분에게 감히 황씨 종친회를 대신하여

큰 절을 올릴 날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연미정 그  역사적 현장에서 감흥을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출처 : 아이러브 황우석!
글쓴이 : 진취적기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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