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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플라시보 효과의 존재

낙엽군자 2014. 10. 1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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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의 존재 가짜 약이 명약?

환자가 위약을 진짜 약으로 알고 복용했을 때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출처: Getty images>

길동이는 반복적인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진통제를 먹어봤지만 잠깐 좋아질 뿐 한 번도 시원하게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두통에 대한 임상연구를 알리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시판되지 않은 새로운 메커니즘의 약이었다. 길동은 기대에 차서 의사를 찾아갔고, 의사는 임상시험이기 때문에 1/3의 확률로 위약(실제 약성분이 들어있지 않은 내용물)군에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길동은 큰 기대를 갖고 실험에 참가하여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는 처음으로 두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신약의 효과라고 여겼지만 길동은 사실 가짜약을 복용했던 위약군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를 그렇게 오랫동안 괴롭힌 두통이 어떻게 말끔히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일까?

1950년대 협심증 수술법 중에 ‘내유동맥 묶음술(internal mammary artery ligation)’이라는 것이 있었다. 흉골 부위를 절개해서 가슴 안의 내유동맥을 묶어버리면 심근으로 흘러가는 혈액이 증가하면서 협심증이 좋아지는 수술이다. 이는 1930년대부터 이십여 년간 유행했다. 1955년 시애틀의 심장외과의인 레너드 콥(Leonard Cobb)은 이 수술법이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그는 환자의 절반에게만 실제 시술을 하고, 나머지 반에게는 피부만 살짝 절개해서 수술 상처만 냈다. 그런데 두 집단 모두 가슴통증이 사라지는 결과가 나타났고, 석 달이 지나자 환자 모두 다시 가슴통증을 호소했다. 즉, 내유동맥 묶음술이나 플라시보적 시술이나 모두 실질적 치료 효과가 없었고, 수술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통증을 완화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플라시보(placebo) 효과 또는 위약(僞藥) 효과라고 한다.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 그리고 왜 좋아질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한 논리가 버무려져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지 않아도 실제로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짜거나 속임수는 아니다. 최근 뇌영상학이 발전하면서 위약을 복용한 후 뇌를 관찰해 보니, 진짜 약을 먹었을 때와 같은 변화가 관찰되었다. 우리의 정신이 믿는 대로 몸이 반응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플라시보의 역사

플라시보 효과는 가장 좁게는 ‘약리작용이 없는 비활성 물질을 약으로 믿게 하고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기대하는 유익한 반응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꼭 약물반응만이 아니라 위의 사례처럼 시술이나 수술도 실제로 했다고 믿게 했을 때 기대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아마도 인간의 정신은 약을 복용하거나 시술을 받은 것을 일종의 치료 신호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기대한 만큼 적절히 반응한 것이라 여겨진다.

‘플라시보(placebo)’라는 단어는 원래 ‘좋아지게 하다, 만족스럽게 하다’는 의미의 라틴어로 14세기에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저녁 기도’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 단어가 의학적인 관련을 갖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1785년 발간된 『신의학사전(New Medical Dictionary)』의 기타 의료행위 항목에 수록되어 있다. 1794년 게르비(Gerbi)라는 이탈리아 의사는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치통환자 이의 통증이 벌레의 분비물을 발랐더니 환자의 68퍼센트가 1년 동안 치통이 나타나지 않았다. 특별히 그 벌레의 분비물이 치통에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었지만, 게르비나 환자 모두 효과가 있을 것이라 믿었고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플라시보’란 단어는 180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오늘날의 의미와 매우 흡사한 뜻을 갖게 되었다.

1794년 의사 게르비에 따르면, 치통환자에게 벌레의 분비물을 바르자 환자의 68%가 1년동안 치통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벌레 분비물이 의사와 환자 모두 효과가 있을 것이라 믿었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출처: Getty images>

사실 근대의학 이전에 많이 사용되던 주술적 약이나 은밀한 약들은 사실 플라시보 효과를 기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링컨 대통령이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졌을 때 주치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는 ‘미라의 연고’를 발랐던 것이라 한다. 당시 사람들은 이집트 미라의 가루가 간질, 종기, 발진, 골절, 마비, 편두통, 궤양 등에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구하기 어려운 귀한 것이기에 그만큼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위중할 때 주치의는 주저 없이 마술적 기적을 바라면서 미라 연고를 상처에 바른 것이었다. 만일 평소 그 연고를 사용했던 사람이 어떤 효과도 보지 못했다면 의학의 권위자인 대통령 주치의는 차마 그 연고를 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효과를 본 사람이 많았고, 또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만큼 플라시보 효과는 실제로 존재하는 효과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면이 플라시보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

치료를 위해 약을 먹거나 시술을 받은 경우, 희망을 갖는 것은 중요한 변화의 동력이 된다. 인간의 정신은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면 그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하고, 또 그것을 가능하면 실현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1957년에 브루노 클로퍼(Bruno Klopfer)가 보고한 사례가 있다. 그는 임파암으로 진단받은 W씨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신체 곳곳에 암이 퍼져 있었다. 당시 크레비오젠(krebiozen)이라는 새로운 약이 개발 중이었는데, 언론에서는 암을 정복할 수 있다고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W씨의 경우 암이 지나치게 진행된 상태라 이 약을 줘도 크게 기대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W씨는 그 약을 처방받은 후 암이 줄어들면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격히 호전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신문에서 “크레비오젠이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없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러자 W씨는 낙담을 하게 되었고, 이후 신기하게 똑같은 약을 처방받았지만 몸무게도 줄고 암도 다시 자라나게 되었다.

이에 놀란 의사들은 다음 단계에서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그들은 W씨에서 더욱 강력한 신약이 개발되었는데, 이는 언론에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식염수를 넣은 주사를 놨는데, 이번에도 W씨의 병세는 호전이 되었다. 암이 줄어들었다가 다시 커지기를 반복하는 일이 일어나듯이 정신이 어떻게 기대하는지에 따라 병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위약과 신약의 대조군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모두 자기가 ‘신약군’에 포함되기를 기대한다. 이 때문에 약 30% 정도는 위약을 복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호전이 되었다고 보고한다. <출처: Getty images>

새로운 약이 개발되면, 이중맹검(약 효과 판정을 위해 피실험자나 연구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하는 검사법)에 의해 위약과 신약의 대조군 실험을 한다. 그런데 피실험자나 연구자 모두 이 시험에 참여할 때에는 자기가 ‘신약군’에 포함되기를 기대한다. 이 때문에 실제로 결과를 보면 약 30퍼센트 정도는 위약을 복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호전이 되었다고 보고한다. 이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과 질환뿐 아니라, 고혈압 약과 같이 객관적 측정이 가능한 약에서도 공통적으로 보고되는 현상이다.

플라시보 효과에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비용이나 희귀성도 영향을 미친다. 벨라돈이라는 가상의 새로운 진통제의 효능을 검사하는 실험에 참여한 성인들을 대상을 한 실험을 보면, 안내책자에 명시한 가격이 한 알에 2달러 50센트라고 한 집단에 비해서 10센트라고 알린 집단에서 통증이 줄어들었다고 보고한 사람들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가격이 약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불치병 환자들이 엄청나게 큰돈을 들여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기대가 크고, 비싸니까 효험이 있다고 믿고 싶을 테니 말이다.

이 방법이 내게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

어렸을 때 ‘엄마 손은 약손’의 효과를 본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고, 그런 경험이 없던 사람에 비해 더 빨리 좋아질 것이다.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어릴 때 이 말을 들으면서 엄마가 배를 쓸어주면 서서히 복통이 가라앉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이가 든 다음에도 배를 쓸어주었을 때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고, 그런 경험이 없던 사람에 비해 더 빨리 좋아질 것이다. 한 번이라도 좋아졌던 경험이 있었다면 이 기억은 오래 지속되어 그와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비슷한 효과가 학습되는 것이다.

이 약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좋아질지, 언제부터 어떤 식으로 좋아질 것인지, 또 이 약이 증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것이라는 설명을 듣는 것, 즉 일종의 맥락과 의미를 이해하면 플라시보 효과는 더 커진다. 그리고 환자가 보살핌과 염려의 대상이 되고 주변의 환경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 더 나아가 이제는 한 개인이 그 질병을 다스릴 수 있고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게 될 때 플라시보 효과는 배가될 수 있다.

이렇게 긍정적인 암시를 주고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 증상이 좋아진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즉, 부정적이고 나쁜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설명을 듣는 경우에는 실제로 통증이 심해지거나 나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를 노시보(nocebo) 효과라고 한다. 이는 꼭 통증이나 심리적 불편감뿐 아니라, 집단히스테리도 설명해 준다. 괴질이 돈다는 소문이 돌 때, 마을 사람들이나 한 학교의 재학생 상당수가 이유 없는 설사나 통증을 호소하며 괴질의 증상이라 알려진 여러 가지 증상들을 보이는 것도 노시보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와 같이 플라시보는 ‘위약(僞藥)’이라고 해서 ‘가짜 약을 줘서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꽤 오랫동안 지속되는 효과다. 미국 미시건·프린스턴 대학 연구팀은 가짜 진통제 연고를 살갗에 바른 뒤 순간적 열자극을 주었을 때, 진짜 진통제라고 믿는 사람들은 통증이 적어지고 실제로 뇌에서 통각을 느끼는 부위의 활동량이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인간의 정신이 꼭 외부에서 주어진 어떤 물질에 의해서만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플라시보 효과는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대하고, 과거의 경험이나 다른 사람을 보면서 학습하고, 또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때 잘 작용한다.

플라시보 효과의 의의는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인정하고 치료에 대한 적절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 의사와 환자의 관계 및 치료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 점이다. <출처: Getty images>

이전까지 미신과 주술일 뿐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믿었던 수많은 것들이 사실은 플라시보 효과의 일환일 수 있고, 뇌와 정신세계에서는 실제로 기능했다는 것을 현대의학이 발달한 현재에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는 그 효과를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면서 극적인 호전을 기대하는 난치병, 만성질환 환자들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플라시보 효과로 믿는 만큼 좋아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좋게만 바라볼 만한 문제는 아니다.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플라시보 효과의 한계를 이해하게 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길로 돌아서게 할 것인지가 현대의학에 종사하는 모든 전문가들의 고민이다.

또한 플라시보로 인해 좋아진 사람이 사실은 ‘병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에게는 자연치유능력이 있다. 환자가 꾀병을 가장한 것이 아니라, 뇌와 정신의 자연적 자가치유능력이 발현된 것이다. 이 능력이 발동하기 위해서는 ‘이 치료가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와 이 치료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임상연구에서 위약만 복용했는데도 비슷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30퍼센트 정도의 환자에서 상당한 증상의 호전을 볼 수 있었다. 플라시보를 통해 정신의 치유능력을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플라시보는 신기루가 아니라, 우리 뇌 속에서 실현되는 정신작용의 일부다. 치료하는 데 있어 고통을 인정하고, 의미를 밝히면서, 치료에 대한 적절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의사-환자 관계와 치료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 점이 플라시보가 밝혀낸 정신의학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출처 : 빛과 그림자
글쓴이 : 하자스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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