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보니 수원나그네 , 알고보니 수원나그네
원래 있던 수원나그네 전설부터 알아봅시다.
수원 나그네 전설의 주인공은?
조선 정조 때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지극한 효심을 지녔던 정조는 수시로 사도세자가 묻힌 화산의 융능으로 행차를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미복차림으로 아무도 모르게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안녕리(지금의 수원이 조성되기 전까지 여기가 실제 수원이었다. 지금의 수원은 정조17년 1793년에 화성으로 이름 붙여지면서 시작되었다. 화성이 수원으로 바뀐 것은 고종 23년 1895년이었다.)로 암행을 하게 되었다.
그 때 마침 밭에서 일을 하던 농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에 대해 그 농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농부에게 능을 가리키며 저곳이 어떤 곳인가를 물은즉, 농부는 저곳은 뒤주대왕의 애기능이라고 대답하였다. 정치적 희생양으로 뒤주 속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지만 않았어도 왕이 되었을 사도세자라 뒤주대왕이라 했고, 애기능이라 한 건 임금님들의 산소를 능이라 하지만 왕이 못되셨으니 그렇게 부른 것이라고 하였다.
정조는 내심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대신들의 반대로 사도세자를 추존하지 못하고 있던 차, 한 농부의 입에서 뒤주대왕 애기능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조는 그 농부에 대하여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서 농부에게 글을 얼마나 읽었는지 물어보았다. 그 농부는 책도 많이 읽고 과거도 여러 번 본 실력 있는 선비였으나, 번번이 낙방한 불운한 선비였다. 다시 한번 과거를 봐 보라는 정조의 말에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또 떨어질 것이 뻔하다 하면서 관심이 없었다.
정조는 그 농부의 마음을 겨우 돌려 다시 한번 과거를 보게 하였다. 그리하여 정조는 급히 화성행궁으로 환궁하여 과거시험을 보게 하는 영을 내렸다.
과거시험을 보러간 선비가 과거시제를 받아보니 융능 근처에서 있었던 자신과 어느 선비의 대화를 적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만 붙게 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급제하고 왕을 배알하던 중 알고 보니 그 어느 선비가 바로 임금님이었던 것이다.
[늘푸른수 원 50호에서 발췌]
뒤주대왕이라 불리던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때의 수원행차 일화에서 생겨난 수원나그네
비슷한 이야기는 여럿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왕이 만조백관들 모르게 궁을 잠시 비우고 다녀오기로는 수원은 불가능하다.
수원에 수시로 왔던 왕은 오직 정조 뿐이었다.
정조는 수원 팔달산 아래 화성행궁을 짓고 수시로 수원에 왔다. 그리고 수원인근의 인재들을 위해 수시로 과거를 보았다고 한다.
과연 수원나그네 전설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어쨌든 수원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은 누가 뭐래도 정조이다.
수원에는 정조의 꿈이 서려있다.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자하는 꿈이 배여 있다.
융능 근처에서 있었던 일화 속에서 농부의 한마디는 정조의 寃을 끌러주는 한마디였다. 대신들은 사도세자를 추존하는데 반대를 하고 있었지만, 농부는 사도세자의 능을 뒤주대왕 애기능으로 부르면서 追尊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부는 불운한 선비였다. 소위말해 돈없고 빽없는 촌구석의 가난한 선비였다.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펼쳐 보이고 싶었지만, 처해있는 환경여건으로 그 뜻을 펼 수 없었다. 이것이 寃이 된 선비였다. 이것을 정조가 풀어준 것이다.
정조의 일화 속을 들여다보면 농부가 사도세자를 추존함으로써 그리고 그 보답으로 불운한 선비가 과거에 등용되게 함으로써 解寃과 相生과 報恩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숙종때 담배밭 이야기에서는 이것이 없다.
정조의 일화는 선천 뭇생명의 한을 끌러 새로운 지상선경 세계로 인도하는 수원나그네의 의미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정조는 1797년(정조21)에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를 짓고 중앙의 신료와 지방관들에게 각자의 필체로 이를 써 올리게 하였다.
그는 이글을 통해 군사부(君師父)가 하나로 된 이상적인 군주 15진주가 실현하는 이상 정치를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이 글을 계기로 자신의 호를 '만천명월주인옹'으로 짓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군사(君師)가 되었지만 그의 혈통이 너무도 죄를 많이 짓고 있어 15진주가 이루는 그러한 이상 정치를 추구할 자격이 되질 못하였다.
안타깝지만 수원나그네 전설의 주인공이 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 다른 수원나그네 전설은 아래와 같다
수원나그네의 전설
수원(水原)은 본래 한양 과거길의 길목이었다. 어느 날 한 주막에서 남루하게 차려입은 나그네가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선비에게 농을 걸었다. “자네는 어디로 가는공?” “한양으로 간당.” “무엇하러 가는공?” “과거보러 간당.” 이렇게 공당 문답을 하던 두 사람은 이튿날 헤어졌다.
과거를 치른 선비는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어주(御酒)를 받고 있는 데, 잔을 따르던 임금이 “이름이 무엇인공?” 하지 않는가. 선비가 깜짝 놀라 슬쩍 용안을 훔쳐보니 임금이 바로 어제 저녁 수원 주막에서 농을 주고 받던 남루한 나그네가 아닌가!
유시에 해가 지고 술시에 달이 비쳐
열석 자 굳은 맹세 우리 상제 아닌신가
고대춘풍 바라보니 하지하지 우하지라
언제보던 그 손님인가 수원나그네 낯이 익네
- 춘산채지가 달노래 중에서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수원나그네
“ 상말에 ‘이제 보니 수원(水原) 나그네’라 하나니 누구인지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니 낯이 익고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니 나의 낯을 잘 익혀 두라. 내가 장차 열석 자로 다시 오리라.” 하시고, “수운가사에 ‘발동(發動) 말고 수도(修道)하소. 때 있으면 다시 오리.’라 하였나니 알아 두라.” 하시니라. ( 道典 10:24 )
물이 태어나는 바탕, 천지 조화옹의 가슴, 조화의 창조 구멍이 술오공이다.
물의 근원자리라 해서 수원水原이라고 한다. 상제님의 ‘수원 나그네’란 말씀도 거기서 나온 것이다.
“속말에 수원 나그네라 하나니 익히 보니 바로 그 사람이라.”
아, 앞으로 이 우주가 개벽을 하고 전 인류 인간종자 추리는 성자가 오신다고 하는데, “그분은 바로 너희들 일꾼 속에 있다. 익히 본 사람인데, 진리가 안 깨지고 신앙을 게을리 해서 그걸 제대로 못 보고 있다”는 말씀이다.
이 수원 나그네 전설은 조선왕조 때부터 내려온 것인데, 상제님 말씀은 우주관을 바탕으로 하신 것이다.
즉 열석자로 다시 오는 수원나그네는 '딱 정해진 그분'이라는 말이다.
출처 : 증산도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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