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스크랩]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

낙엽군자 2014. 5. 28. 15:40

창덕궁 존덕정을 답사했다.

여기 국역본을 실어봅니다.

오늘 답사중 일부만 낭독을 했는데 전문을 올립니다.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 무오년

만천명월주인옹은 말한다. 태극(太極)이 있고 나서 음양(陰陽)이 있으므로 복희씨(伏羲氏)는 음양을 점괘로 풀이하여 이치를 밝혔고, 음양이 있고 나서 오행(五行)이 있으므로 우(禹)는 오행을 기준으로 하여 세상 다스리는 이치를 밝혀 놓았으니, 물과 달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에 대해 그 이치를 깨우친 바 있었던 것이다. 즉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종류는 일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뒤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일만 개면 달 역시 일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뿐인 것이다.
 
하늘과 땅이 오직 올바른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해와 달이 오직 밝음을 보여 주며, 모든 물건들이 서로 보는 것은 남방의 괘(卦)이다. 밝은 남쪽을 향하고 앉아 정사를 들었을 때 세상을 이끌어 갈 가장 좋은 방법을 나는 터득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무(武)를 숭상하던 분위기를 문화적인 것으로 바꾸고 관부(官府)를 뜰이나 거리처럼 환하게 하였으며, 현자(賢者)는 높이고 척신(戚臣)은 낮추며, 환관(宦官)과 궁첩(宮妾)은 멀리하고 어진 사대부를 가까이하고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대부라는 이들이 반드시 다 어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금세 검었다 금세 희었다 하면서 남인지 북인지 모르는 편폐(便嬖)ㆍ복어(僕御)와는 비교가 안 될 것 아닌가.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 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고, 무리 지어 쫓아다니며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었다. 모양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틀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 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바보 같은 자,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은 자, 얕은 자, 용감한 자, 겁이 많은 자, 현명한 자, 교활한 자,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자, 모난 자, 원만한 자, 활달한 자,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 말을 아끼는 자, 말재주를 부리는 자, 엄하고 드센 자,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속에만 주력하는 자 등등 그 유형을 나누자면 천 가지 백 가지일 것이다. 내가 처음에는 그들 모두를 내 마음으로 미루어도 보고, 일부러 믿어도 보고, 또 그의 재능을 시험해 보기도 하고, 일을 맡겨 단련도 시켜 보고, 혹은 흥기시키고, 혹은 진작시키고, 규제하여 바르게도 하고, 굽은 자는 교정하여 바로잡고 곧게 하기를 마치 맹주(盟主)가 규장(珪璋)으로 제후(諸侯)들을 통솔하듯이 하면서 그 숱한 과정에 피곤함을 느껴온 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다.
 
근래 와서 다행히도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이용만 하는 것이다. 다만 그중에서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며,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 주고,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단(兩端)을 잡고 거기에서 중(中)을 택했다. 그리하여 마치 하늘에 구천(九天)의 문이 열리듯 앞이 탁 트이고 훤하여 누구라도 머리만 들면 시원스레 볼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트인 자를 대할 때는 규모가 크면서도 주밀한 방법을 이용하고, 막힌 자는 여유를 두고 너그럽게 대하며, 강한 자는 유하게, 유한 자는 강하게 대하고, 바보 같은 자는 밝게, 어리석은 자는 조리 있게 대하며, 소견이 좁은 자는 넓게, 얕은 자는 깊게 대한다. 용감한 자에게는 방패와 도끼를 쓰고, 겁이 많은 자에게는 창과 갑옷을 쓰며, 총명한 자는 차분하게, 교활한 자는 강직하게 대하는 것이다.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은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고, 순주(醇酒)를 마시게 하는 것은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며, 모난 자는 둥글게, 원만한 자는 모나게 대하고, 활달한 자에게는 나의 깊이 있는 면을 보여 주고,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에게는 나의 온화한 면을 보여 준다. 말을 아끼는 자는 실천에 더욱 노력하도록 하고, 말재주를 부리는 자는 되도록 종적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며, 엄하고 드센 자는 산과 못처럼 포용성 있게 제어하고,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는 포근하게 감싸 주며,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내실을 기하도록 권하고, 실속만 차리는 자는 달관하도록 면려하는 것이다.
 
중니(仲尼)의 제자가 3천 명이었지만 각자의 물음에 따라 대답을 달리했고, 봄이 만물을 화생(化生)하여 제각기 모양을 이루게 하듯이, 좋은 말 한마디와 착한 행실 한 가지를 보고 들으면 터진 강하(江河)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대순(大舜)을 생각하고, 현명한 덕이 있으면 서토(西土)를 굽어 보살피던 문왕(文王)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한 치의 선이라도 남이 아니라 내가 하고 이 세상 모든 선이 다 나의 것이 되도록 한다. 물건마다 다 가지고 있는 태극의 성품을 거스르지 말고 그 모든 존재들이 다 나의 소유가 되게 하는 것이다.
 
태극으로부터 미루어 가 보면 그것이 각기 나뉘어 만물(萬物)이 되지만, 그 만물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찾아보면 도로 일리(一理)로 귀결되고 만다. 따라서 태극이란 상수(象數)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상수의 이치가 갖추어져 있음을 이름이며, 동시에 형기(形器)가 이미 나타나 있는 상태에서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이치를 말하기도 한다.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았으나 태극 그 자체는 그대로 태극이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으면 양의가 태극이 되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으면 사상이 태극이 된다. 사상 위에 각각 획(?)이 하나씩 생겨 다섯 획까지 이르게 되고, 그 획에는 기우(奇偶)가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24로 제곱하고 또 제곱하면 획의 수가 1677만여 개에 달하는데, 그것은 또 모두 36분(分) 64승(乘)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그 수는 우리 백성 수만큼이나 많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한계를 지을 것도, 멀고 가까울 것도 없이 그 모두를 자기의 아량과 자기의 본분 내에 거두어들이고, 거기에다 일정한 표준을 세워 그 표준을 기준으로 왕도(王道)를 행하며, 그것을 정당한 길 또는 정당한 교훈으로 삼아 모든 백성들에게 골고루 적용하면 여러 방면의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되고 오복(五福)이 고루 갖추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 온화한 빛을 내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깊이 있고 원대한 제도이겠는가.
 
공 부자가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을 쓰면서 맨 첫머리에 태극을 내세워 후인들을 가르치고, 또 《춘추(春秋)》를 지어 대일통(大一統)의 뜻을 밝혀 놓았다. 구주(九州) 만국(萬國)이 한 왕(王)의 통솔하에 있고, 천 갈래 만 갈래 물길이 한 바다로 흐르듯이 천자만홍(千紫萬紅)이 하나의 태극으로 합치되는 것이다. 땅은 하늘 가운데 있어 한계가 있으나, 하늘은 땅 거죽을 싸고 있으면서 한도 끝도 없다. 공중에 나는 놈, 물속에서 노는 놈, 굼틀거리는 벌레, 아무 지각없는 초목들 그 모두가 제각기 영췌(榮悴)를 거듭하면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큰 쪽을 말하면 천하 어디에도 둘 곳이 없고, 그 작은 쪽을 말하면 두 쪽으로 깰 것이 없을 정도이다. 이것이 바로 참찬위육(參贊位育)의 일인 동시에 성인이 하는 일인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다. 그 달이 아래로 비치면서 물 위에 그 빛을 발산할 때 용문(龍門)의 물은 넓고도 빠르고, 안탕(雁宕)의 물은 맑고 여울지며, 염계(濂溪)의 물은 검푸르고, 무이(武夷)의 물은 소리 내어 흐르고, 양자강의 물은 차갑고, 탕천(湯泉)의 물은 따뜻하고, 강물은 담담하고 바닷물은 짜고, 경수(涇水)는 흐리고 위수(渭水)는 맑지만,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 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그러나 그 물의 원뿌리는 달의 정기(精氣)이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만천(萬川)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그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나는, 저 달이 틈만 있으면 반드시 비춰 준다고 해서 그것으로 태극의 테두리를 어림잡아 보려고 하는 자가 혹시 있다면, 그는 물속에 들어가서 달을 잡아 보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아무 소용없는 짓임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의 연거(燕居)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써서 자호(自號)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년(1798, 정조22) 12월 3일이다.
 




          

                        창덕궁 존덕정 이곳에 정조가 1798년에 지은  '만천명월주인옹자서' 편액이 걸려있다.

 

 

존덕정은 평면이 육각형이어서 처음엔 육면정이라 했는데, 지금도 육우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못가에 있는 정자는 거의 빠짐없이 두 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있다. 존덕정도 예외는 아니다. 처마에도

지붕을 만들어 지붕이 마치 이중으로 겹쳐 보이게 하여 단조로움을 피했고, 본체 밖에도 퇴칸을 두었고,

퇴칸 각 모서리마다 세 개의 가는 기둥을 세워 공을 들였다. 또한 천장에는 용을 그려 넣어 한껏 격을 높였다.

▲ 존덕정, 정조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2006 김정봉
ⓒ2006 김정봉

 

눈여겨볼 만한 다른 한가지는 북쪽 창방의 현판이다. 정조가 집권 말기인 정조 22년(1798년)에

쓴 것으로 자신을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즉 만 갈래 시내와 강을 비추는 달과 같은 존재'라

칭하며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려는 생각을 드러내 보인 현판이다. 개혁을 하려 했으나 그에 반대하는

세력에 의하여 번번이 좌절되자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관철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는 반대로 왕권에 도전하는 양반 관료세력이 그 만큼 컸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를

내보이기보다는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지 못하는 마음을 한탄 한 것으로 봄이 좋을 듯하다. 이 때문에

집권 초기에 규장각을 지어 정조의 정치 의지를 내보인 부용지 영역이 정조의 꿈이 담겨 있는 곳이라면,

존덕지 영역은 정조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만천명월주인옹 :

정조는 ‘만천명월주인옹’이란 호를 짓고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이 글을 썼다.

글의 의미는 공중에 뜬 밝은 달이 지상의 모든 시내를 비추듯, 태극이라는 정점에 선 자신의 정치가

모든 백성들에게 고루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

‘달은 하나이며 물은 수만(數萬)이다. 물이 달을 받으므로 앞 시내(川)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다.

달의 수는 시내의 수와 같은데 시내가 만 개에 이르더라도 그렇다. 그 이유는 하늘에 있는 달이 본디

하나이기 때문이다. 달은 본래 천연으로 밝은 빛을 발하며, 아래로 내려와서는 물을 만나 빛을 낸다.

물은 세상 사람이며, 비추어 드러나는 것은 사람들의 상(象)이다. 달은 태극(太極)이며, 태극은 바로 나다.’

정조가 만년에 지은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의 일부분이다. 정조는 ‘만천명월주인

옹’이란 호를 짓고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이 글을 썼다. 글의 의미는 공중에 뜬 밝은 달이 지상의 모든

시내를 비추듯, 태극이라는 정점에 선 자신의 정치가 모든 백성들에게 고루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정조는 국왕이라는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학계와 정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백성들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대동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정조가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가 지닌 학문적 능력 때문이었다.

정조는 천성적으로 학문을 좋아했던 사람이다. 어린 시절 책을 너무 열심히 읽어 모친 혜경궁이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부친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학문

에 몰두했다. 조그만 잘못이라도 찾아내려는 정적들의 감시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보양청,

강학청, 서연으로 이어지는 국왕교육 과정을 정상적으로 거쳤고, 손자를 성군(聖君)으로 키우려는

할아버지 영조의 특별 교육도 받았다. 그 결과 25세의 나이로 국왕이 되었을 때, 그는 조정 고관들과

학문 논쟁을 벌일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정조는 집권 초부터 개혁을 추진할 수는 없었다. 자신을 뒷받침해 줄 친위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규장각을 설립하고 문과 합격자를 재교육시키는 초계문신제(抄啓文臣制)를 운영하면서 개혁정치

를 주도할 문신을 양성했다. 또 선전관(宣傳官)의 선발을 통해 자신의 경호와 국방을 담당할 무신을 키웠다.

친위세력의 양성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자 본격적인 개혁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권력이 비대해진

척신(戚臣)을 제거하고, 가문이나 지역의 차별이 없이 능력을 가진 인재를 선발했으며, 백성들의 고통

을 듣고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중국 및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우수한 해외

문물을 적극 도입했다.

 

 

정조의 학문은 곳곳에서 힘을 발휘했다. 그는 인재를 양성하고 선발하는 과정에 직접 개입했고,

그가 양성한 친위세력은 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 정조는 규장각의 학자들을 활용하여 서적을 편찬

하고 정책을 마련했으며, 새 정책을 시행할 때는 해박한 지식과 정연한 논리로 반대파를 설득했다.

‘만천명월주인옹자서’는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수록되어 있다. ‘홍재전서’는 정조가 지은 글을 종류별

로 분류, 편집한 개인문집으로 총 분량이 184권이다. 그렇지만 정조의 저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직접 편찬한 어정서(御定書)가 2,000권을 넘고, 편찬에 관여한 책은 4,000권에 이르기 때문이다.
정조는 중국 고대의 이상적 군주상인 군사(君師)를 실현했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주장이 가능할 정도로

뛰어난 정치가이자 훌륭한 학자였다.

후원 3.4.5 공간 안내도

 

 

  관람정(觀纜亭)은 부채꼴 모양을 한 정자이다. 마루 둘레에 두른 난간이 참 예쁘다. 이렇게 나무를 휘어가며 만들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동궐도에는 나오지 않으나, 1908년 무렵에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동궐도형(東闕圖形)'에는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종 때 쯤에 만든 듯 하다. 여름에 본 관람정은 마치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연극배우같다.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서 주위가 어두운데, 연못 있는 곳에만 햇빛이 비친다.

 

  반도지는 그 모양이 한반도와 모양이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궐도형에는 이 부근에 네모난 연못 두 개와 동그란 연못 하나가 있는 것으로 나오고, 동궐도형에는 동그라미 세 개로 만든 호리병 같은 모습으로 나온다. 따라서 지금같이 거꾸로 처박힌 한반도 모습으로 변한 것은 일제시기 이후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본인들이 한국을 주술적으로 '저주'하기위해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진짜 뜻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네모난 연못 두 개와 동그란 연못 하나가 있는 조감도.

동그라미 세 개로 만든 호리병 같은 모습의 도형

 

반도지(半島池)의 관람정 1

  불로문 앞을 지나 더한층 후원의 안쪽으로 접어들면 왼쪽 꺾인 곳에 연못 하나와 연못가의 정자를 만나게 되니 이것이 반도지라 부르는 연못이고, 정자가 관람정이다. 

  이 반도지는 그 모양이 한반도와 모양이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사실은 일본인들이 나쁜 의도로 한반도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바꾸어 놓았다. 

  본래의 연못 모양은 '동궐도형'과 '동궐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 것과 현저하게 다르다.

관람정(觀纜亭) 2

  반도지와 관람정의 가을 풍경이다. 붉게 물든 단풍들과 관람정이 분별되지 않을 정도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광경(光景)이다.

관람정(觀纜亭) 3

  구슬 발 비단 기둥에 황곡이 에워싸고 비단 닻줄, 상아 돛대에 백구가 날아가네,

  원앙새 조용히 은당수를 쪼으고 새끼 제비 시원스레 존우의 바람에 날으네,

  무비개 다리 돌아서 비단 전각에 닿았고 그림배 물에 뜨니 봉래산에 가깝네.

 

  - 관람정 주련의 시 -

관람정(觀纜亭) 4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하게 부채꼴 모양을 한 정자가 바로 이 관람정이다. 정자의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우진각 지붕모양으로 용마루와 추녀 마루를 만들고, 용마루 양 끝에는 용두로써 치장하였다.

  정자의 바닥은 우물 마루가 아니라, 널 길게 깐 장마루이고, 땅에 오르는 계단  쪽반을 빼고, 나머지 둘레에는 아름다운 평난간을 둘렀는데, 이 난간은 기둥과 창방에 다은 운곽판과 더불어 운치를 한층 돋구어 준다.

관람정(觀纜亭) 5

  평면이 부채꼴이기 때문에 "궁궐지"에 선자정(선자정)이라 기록되어 있다. 6개의 초석 위에 단면이 둥근 기둥을 세웠는데, 4개의 기둥은 연못 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현재까지는 평면이 부채꼴 모양인 정자는 이 관람정 하나 밖에 없다.

존덕정(尊德亭) 1

  관람정을 지나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 홍예교를 건너면 육모각 정자인 존덕정과 커다란 연못이 있는데, 이 물이 차서 넘치면 개천으로 흘러서 관람정 정자 앞 연못인 반도지로 흘러들게 된다.

  1644년에 지었다는 존덕정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두 겹 지붕은 중후한 품위를 느끼게 하며, 전체 평면은 육각꼴을 이루고 있다.

  내부 치장은 매우 화려한데, 청룡. 황룡 그림과 함께 현란한 꽃무뉘 단청이 그려져 있다.

존덕정(尊德亭) 2

  창방 위 한 쪽에는 나무 현판에 정조가 지었다는 "만천 명월주인 옹자서(만천명월주인옹자서)"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뭇 개울들이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지만, 하늘에 있는 달은 오직 하나 뿐이다. 내가 바로 그 달이요 너희들은 개울이다, 그러니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에 합당한 일"이라는 것이다.

  정조 때의 강력한 왕권이 잘 표현되어 있다.

폄우사( )

  폄우사( )는 존덕정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만 집이다. 맞배지붕이고 2칸 짜리 온돌방 하나와 마루가 달려있다. 이 집은 동궐도(東闕圖)에도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830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존덕정에서 여기로 가려면 薄石을 딛고 가야 하는데, 그 돌들이 점잖은 양반들의 八字 걸음에 맞도록 깔려 있다.

 

 

 

 

출처 : 황세옥의 전통건축이야기
글쓴이 : 황세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