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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운하? 고속철의 실패를 기억하라.

낙엽군자 2007. 2. 24. 15:31

 

 

 

  1990년대 초반 김영삼 정권이 전격적으로 고속철 사업의 도입을 결정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사업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이를 강행했다. 고속철의 사업성이 도마에 오른 이유는 남한의 좁은 국토 때문이었다. 가장 먼 거리가 500km 정도에 불과한 국토에서 시속 300km 짜리 고속철이 필요할 이유는 사실 상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속철은 미국처럼 너무 광대한 국토나 우리나라처럼 너무 협소한 국토에서는 실효성이 별로 없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항공기를 대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고,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서는 능률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속철을 개발한 나라들도 대부분 독일, 프랑스, 일본과 같은 중대국가들이었다. 횡단 거리가 2000km 정도는 되어야 경제성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처음 가진 느낌은 베트남에서 고속철 사업을 추진한다면 굉장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베트남은 남북 종단거리가 2500km 가 넘는 나라이다. 북쪽의 수도 하노이와 남쪽의 경제수도 호찌민 사이의 시간적 거리를 좁히고 국토의 통합을 이루는 데는 고속철만한 것이 없겠다는 직감을 얻었었다. 어쨌든 대한민국만 놓고 봤을 때 고속철은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김영삼 정부의 주장은 달랐다. 통일 한반도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슬로건을 앞세웠다. 갑작스런 김일성 주석의 사망은 이러한 국민들의 기대를 한층 높여주었고 그러한 슬로건은 주효했다. 거기에 더해 프랑스 TGV (Train de la Grande Vite, 고속철) 를 협력 사업자로 받아들임으로써, 대우전자가 프랑스 대형 가전 회사인 알스톰사를 인수할 수 있고, 우리가 약탈 당한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 받을 수 있다는 사탕발림도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에 이 모든 기대감들은 결국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고속철은 생각보다 이용객이 많지 않아 적자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운임을 올리는 식으로 그러한 적자를 메울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대우전자의 알스톰 사 인수는 처음부터 성사되지도 않았고,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프랑스 박물관 직원의 자살 위협 쇼(show)를 핑계로 아직도 회복이 요원하다. 물론 한반도가 통일이 되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 사업이 활성화 된다면 고속철 사업은 많은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기술력이 현재 선발 국가들처럼 시속 5~600km 를 안전하게 주파할 수 있게 된다면 기술 수출 등을 통해 벌어들일 이익도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통일은 먼 일이고 보면, 또 대한민국 영토만 놓고 본다면 고속철 사업은 분명 실패한 사업이라고 할 것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내놓은 대운하 사업이라는 것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내륙 운하라는 것 역시 협소한 내륙을 둔 국가에서는 전혀 유익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처럼 내륙이 광대하고 큰 강이 발달한 국가에서나 필요한 사업이다. 아니면 네덜란드처럼 물을 다스려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는 국가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삼면을 바닷길로 이용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갖춘 우리나라에서 내륙 운하를 추진해야 할 필요성은 거의 제로(zero)라고 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내륙 운하가 아니라, 북한과의 협의를 통해 한강으로 선박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협력을 추진하고 강화도 입구의 강바닥과 유역을 넓히는 일이다. 그리고 남한의 경우에는 한강과 영산강, 낙동강이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어 운하의 연결이 쉽겠지만, 북한 지역의 경우에는 지리적 특성상 운하의 연결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운하라는 것도 사실 상 '한반도' 운하가 아니라 '남한' 운하가 되는 것이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경부' 운하가 되는 것이다. 만일 경부 운하가 건설된다면, 물류나 관광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기대되지만, 투입된 비용을 회수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운하 사업을 통해 창출되는 일자리라는 것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강수량이 특정 계절에 집중 되고 겨울이 여전히 상존하는 기후적 특성 상, 운하를 이용할 수 있는 기간도 제한이 많을 것이다. 양쪽이 바다로 막힌 거대한 물 줄기와 주변에 산재한 산업 시설로 인해, 운하는 오염 물질이 퇴적된 썪은 물이 될 가능성도 크다. 운하 건설로 인한 인근 지역의 매몰과 환경 파괴는 또 어찌할 것인가? 백두산에서 지리산과 제주도에 걸친 백두대간이 절단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세상을 좁게 보자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토목 사업이 갖는 경제적 의미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열린 가능성에 대해서도 쉽게 부화뇌동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하지만 경부 운하의 효용성은 상당히 의문시 된다. 그래서 운하에 투입할 수십조원을 나는 차라리 고속철의 실패를 만회하는 일에 써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북한의 철도를 연결 보수해서 지금의 고속철을 우선 평양까지 연결하는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그 다음에는 북경까지 연결해서 중국 고속철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유럽 독일의 베를린과 고속철을 연결하는 궁극적인 사업 추진이 미래를 위해서는 더 가치 있고 웅대한 사업이 아니겠는가?  

 

 

 

 

 

 

  자! 이제 조금만 더 깊이 문제를 파고 들어가 보자. 사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대운하' 사업의 타당성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 이명박'의 역량적 타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경제학(경영학)을 공부하고 사업을 해 본 사람이 국가의 경제를 가장 잘 이끌 수 있는가?', '그렇다면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해당 교수는 모두가 사업에서 성공하고 경제를 꿰뚫고 있는가?', '지금의 경제라는 것이 대통령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어찌 되는 그러한 시대인가?', '국가의 미래가 개척되고 국력이 강성해지는 일은 경제 분야만의 일인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는 경제 그 자체가 아니라, 국민들의 스스로의 역량과 지혜와 도덕성이 회복되는 일은 아닌가?' 경제학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아마도 '천재'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철학, 사회철학, 법철학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타고난 '천재(天才)'가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나 살면서 지혜와 덕성, 연륜을 고루 키운 '지재(地才)' 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지도자는 천재가 아니라 지재임을 나는 안다.

 

  많은 국민들이 '경제 대통령'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품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한 기대감이 이명박 지지율 50%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과 소외는 하루 아침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저 국가 경제가 살아나 경기가 회복되고 성장세가 높아진다고 해서 우리 모두의 삶이 윤택해지고 건강해 지는 것은 더더욱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대한민국처럼 고도로 산업화 된 사회에서 대규모 경제적 부흥은 아쉽기는 하지만 이루기 힘든 꿈일 뿐이다. 국민들 스스로 국가사회가 나아갈 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해서 국민들의 대세적인 지향점을 향해 추진력 있고 포용력 있게 나아갈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상당 부분 허상이며 거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에 큰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 이 시기에, 국민들 각자가 영민함과 진중함을 되찾을 필요성이 큰 이유이다.

출처 : 칼럼
글쓴이 : 누구세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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