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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련불성 초중말복 도안都安 추수도수 세 살림' 서막을 알리는 안 운산 성도사님 숙구지 문왕도수-5

낙엽군자 2024. 12. 15. 23:15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초중말복 5진주 세명(5진주를 율곡은 <참 5>인 <달고나 참외>로 표현 ). 5+5+5(6)=15(16).마지막 5진주는 판모리 6서시. 따라서 15진주 수는 참5 달고나 참외 5진주 3명이 합해 이루어지며(1,3,5,7,9 양수의 황극수5를 취한 것) 마지막 5진주는 음수 2,4,6,8,10의 후천 황극수 6도 가능하므로 한 끗수가 튄 16수도 된다. 말하자면 마지막 말복 5황극수 진주는 11귀체에 의해 11성도에 대한 5의 보수 6도 되므로 15진주, 16진주수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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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이라 목차가 없음
동지한식백오제 천지공사 105년간의 종통인사 비밀을 모두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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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련불성 초중말복 도안都安 추수도수 세 살림' 서막을 알리는 안 운산 성도사님 숙구지 문왕도수-5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어제 말대로 내가 8.15 해방 전에 장가 들었는디, 도저히 그날은 너무도 억압적이고 돈 주고 밥 사먹을 수도 없고 인천서 여관하면서 나 모르는 사람 없어. 강냉이밥 한두 숟갈 뜨면 아무것도 없어. 도저히 배길 수도 없고 해서 안 사람 올라오라고 해서 김포를 가서 방 한 칸을 얻어가지고 한 1, 18개월 지내다가 그리고 8.15를 맞이했는디. 8.15와 더불어 집에 돌아와서 어제 말대로 음력으로는 칠월 칠석 해방됐거든. 했는디, 칠월칠석하고, 음력 8.15하고는 한 달도 더 됐잖어. 한 달 며칠 됐쟎어. 그러는 동안에 집에는 왔어, 완전히 집으로 왔어. 집으로 돌아온 이유가 뭐냐면, 그때는 왜놈들 쫓겨 들어가서 인천 서울에 적산가옥敵産家屋이라고 해서 아무나 가서 살면 제 집 되는겨... 내가 상제님 사업한다고 집으로 들어왔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처남이 내 집에서 한 2 - 5 키로 쯤 떨어져 있어. 공출해 간 거 미안하다고 와서, 내가 그런 거 개의치도 않고. 술 마시면서 상제님 얘기를 했어. 그때는 상제님을 얘기할 사람이 차 월곡이나 있었을까만은 상제님을 얘기하고 들고 나올 사람이 없었어. 강 증산을 믿은 파도 없었고, 보천교普天敎야 갑진년甲辰年에 증산천사님을 밀어내버리고 거의 상제님 신앙을 하는디가 없었어~~ 그때는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정계政界로 나가는 때였어. 그런데 왜 내가 값도 안 나가는 상제님 사업에 몸을 담을려고 하느냐? 그때에 내가 천지대세를 볼 줄 알았어. 집 나갈 때부터 14살에 수련을 통해서 세상 매듭짓는 것을 다 봤어.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상제님 사업을 할 때가 가장 상제님 사업이야기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보천교普天敎 신도들이여.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부지不知여 부지不知. 젊은 사람들이 혼과 넋이 빠져서 있는데, 무슨 얘기가 통하것냐 말여. 그때 우리나라 수준이 어땠냐하면 나이 먹은 사람들은 한문자나 알까, 그리고 전부가 초등학교 나왔어. 동장, 면장 또는 중학교 두 사람만 나와도 부자 면富者面이여. 그 때는 호세戶稅를 받았어. 재산세財産稅. 재산세를 지금으로 말하면 한 5억 재산 가진 사람이라야 중학교를 갈 수가 있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냐면 도시를 가야된다 말여. 그 중학교 납부금을 내고 하숙을 하고 살림을 하는 디에 자식을 가지고서 말여, 영향력을 받지 않을 사람, 그런 재산 실력가가 아니면 중학교 고등학교 허용을 안 해. 그걸 식민지 정책으로 세워진 백성을 문맹을 만들라고, 식민지도 지식이 많아서 역사적 주체성이 있으면 자꾸 독립을 할려고 해서 안 되거든. 식민지 백성들이 맨발벗고 다니게 만들어야 돼. 무식해 가지고 왜놈들 다룰 수 있나? 그러니께 교육을 못 시키게 했단 말여. 그러니께 일개 면에 중학교 두 명만 있어도 부자동네였다.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중학교 나오면 식민지 정책에 부역으로 월급쟁이 되고 8.15 맞이하고 초등학교 나온 놈들은 얘기도 안 되여. 초등학교 국어책에 소를 그려놓고 소라고 써놨어, 버드나무 그려놓고 버드나무라고 써놨어. 나 같은 머리로 말여, 그 까짓 꺼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 6학년 책을 보니께 하루저녁에 6학년을 졸업하게 생겼어. 그래서 그만뒀어, 초등학교 수준이라는 게 그런 거였단 말여. 상제님 얘기를 해도 지식이 있어야 알아들어. 정치를 알어? 문화를 알어! 무슨 개념이 있어! 한문 쪼가리라도 아는 사람들이 좀 아니께 4-50 된 사람들 신앙을 좀 해보고 보천교 신앙해 본 사람들한테 이걸 해보자고 하니께 그건 잘 들어. 그래서 충청도 그 사람들 쭉 걷어 들였어. 아들 사둔, 딸 사둔 얼키고 설켜서 같은 동지끼리는 통정이 되어서 그렇게 잘 지낼 수가 없어. 포교를 하다 보니 의식이 안 박혀서 뚫어도 안 되것어. 한 댓 달을 만났나 봐.

 

<2변 도운 121(1991).3.4 강론>*한 날은 김 창원이라는 사람이 보천교 재산을 죄다 바치고 우리 집을 자기 집처럼 노냥 와서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 집에 와서는 나하고 밤 세워 태을주를 읽거든, 밑천이 태을주여. 밤새 태을주를 읽고서 홍성군 운암면 금곡리 우리 아버지 친구하고 한 번 전라도를 다녀와라. 그런 제안을 해서 좋다고 말여, 그 뒤에 한 번 가자고 한단 말여. 좋다 해서 가자! 그때는 내가 돈이 많았쟎어, 그래서 돈에 구애를 안 받았쟎어. 홍성군 운암면 금곡리에 가서 보천교 고급간부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거든. 그 중에서도 윤 설 씨는 아주 웅변가여, 나하고 전라도를 한번 가자고 해서 내친걸음에 당장 가자고 해서 여러 군데를 들렀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박 공우 씨의 수제자 송 종수라는 분이 있어. 봉남면에 살았어. 금남면에서 황산고개 넘어가면 봉남면이여, 그 옆이 원평 금산면이고. 거기를 뜩 가니 그 의통 인패를 준비하는데 의통인패를 제작하는데 한 반가마를 새겼어, 많이 새겼어. 그래서 송 종수씨한테 의통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더니 송 종수씨야 나를 끌려고 난리가 났었지. 내가 아주 잘생기고 귀골이고 하니까 말여. 호신의통, 호부의통이니 그리고 내가 양 비누를 좋아서가 아니라 녹수비누가 있다. 녹수비누로 세수하면 절반은 하루 종일 냄새가 가. 냄새가 좋으니께 PX에서 나온다고...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러고 나서 세상에 호사하던 사람이니께 너무 잘 빠졌다고... 대전 와서 가난해서 기가 막히게 고생을 많이 하고 있지만....내가 어디가면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여들어서 장사꾼들이 가게 문을 닫고서도 쫓아다니는 사람이었어. 장사 잘된다고 그렇게 쫓아 다녔어. 그 때도 어디를 가면 금새 사람들이 모여들고, 송 종수씨 댁에서 이틀인가 잠깐 묵었는디, 그 근방 사람들이 다 모이고 신도라고 모이고,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고 말여, 송 종수씨가 그러기도 했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상제님 사업을 해야겠는데 동지를 규합할려고 그런다 하니께 송 종수씨가 얼마나 좋아하겠어. 그러고서 누구를 가서 만났냐면, 정읍장터 있는 데 시기리가 있어. 시기리에 이 한우, 윤 순탁이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들이 보천교 신도여. 그 사람들은 윤 설 씨하고 그렇게 잘 알어. 그 분들을 만났는데 역시 그 분들도 의통을 준비하고 앉았더라. 이 한우씨 집하고 윤 순탁 씨 집하고 한 30미터거리나 되나? 그 의통을 어떻게 제작을 하냐면 송 종수씨에게 있으면서 배워가서 만들고 앉았던겨, 윤 순탁 씨 집에서. 신기리 산다고.. 이 한우는 약종상이여. 또 보천교 때 차 경석 씨의 안전질서 전담하던 사람 가서 만나보니, 우리 선생님이라고 월곡 선생님이라고 꼭 그러면서 하늘처럼 떠받들고 숨결마다 월곡 선생이여.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내가 의통 제작한 이야기를 윤 설 씨에게 들어보니께 이 상호씨, 윤 순탁 씨, 이 한우, 함 우열, 김 태성, 김 규찬 이렇게 여섯 사람이 상제님이 육임을 말했으니까 육임을 짜서 육임도장을 만들어야 된다고 혀. 호신의통을 네모진 도장으로 말여. 어떤 놈은 호신 의통에다가 도장 찍는 사람도 있고, 호신의통을 겉껍데기로 싸서 이 상호 도장 찍은 사람, 윤 순탁, 이 한우 도장 찍는 사람도 있어. 한 이틀 머물면서 윤 설 씨하고 시기리 정읍 장사구경도 하고 오늘 길에 이 상호 씨 댁이라고 들어간단 말여. 들어가서 보니께 사람 들어가도 목소리만 듣지 몰러. 보니께 장님이여, 장님. 그런대로 잘 생겼는데 하관이 빠져서 속을 썩이게 생겼어. 뒤끝을 못 맺을 사람이구나, 거기서 얘기가 되었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내가 큰 홍어 하나를 사가지고 술을 사서 푸짐하게 먹으면서 이 한우, 윤 순탁씨가 소개를 혀. 윤 설 씨랑 나랑. 자기에게 의통을 박 공우 선생이 전수를 했다. 이 상호가 그런 일을 해여, 자기도 때를 모른다. 그런데 해방도 됐고 공개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우리끼리 이렇게 하는데, 함 우열하고 김 태성이라는 사람은 그 후로 나오덜 않는다. 육임이 부족하니 혹시 상제님 사업에 열의가 있으면 의통제작 하는데 한번 악수를 해보자고 말여. 그래서 거기서 결합을 하게 된 동기가 그렇게 되었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 집은 하루저녁 잘 수도 없어. 집 구조가 안방, 건너방, 뒷마루. 정읍에 명주베라는 것이 왜 거기서 발전이 됐냐면, 보천교 때 보천교 신도들이 거기 들어와서 다 떨어먹고 굶어죽게 생겼단 말여, 농사터전이 있나. 저 경상도 함경도 평안도 전국적으로 수많은 신도들이 들어와서 가지고 온 재산 다 떨어먹고 굶어죽게 생겼거든. 그래서 강화의 한 인희 아버지 한 호석 씨가 강화에 직조하는 것을 모방해서 명주베라도 짜서 밥 먹구 살아야겠다구 구황방을 내 놓았어. 구황방을 해서 생식을 하고 사니 그게 살 수가 있어? 생식도 한 달에 쌀 한 되는 있어야 할 거 아녀. 그래서 직조를 하게 된 거여, 보천교 신도들이 다 망하면서 베 짜서 먹고 살았어. 이 상호씨도 직조기를 한 대 갖다 놨는디 아마 서너 필이 감겼는지 다 헝클어져서 말여. 내 던진 베틀 하나 있어(폐기물로 던져두고 이사 간 빈 집.장님이라 직조불가). 그러고 가만히 보니께 쌀도 없어. 그래서 쌀 한 가마 값이나 주고, 그런 인간적인 정으로...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리고 박 모 모씨 집에서 며칠 묵다 올라왔는데, 구황방 얘기를 보충하면 내가 11살 땐가 생식을 8개월을 해 봤어. 각시바위 구멍에서 며칠 있은 후로 생식을 시작했는디,  8개월 나중에는 전혀 화식이란 걸 먹지 않고 쌀가루, 콩가루 먹었어.  8개월하고 났는디, 내 어머니께서 따라서 굶으시더란 말여, 어머니 때문에 할 수 없이 밥을 먹었어. 생식을 하면 한 9, 10일 만에 똥을 요거만한 새까만 똥을 싸고 말어. 세상에 안 먹고는 살 수 있나... 그래서 어려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어. 구황방도 쌀이 있어야 되는 건데, 보천교 신도들이 구황방 갖고 생활을 한다 해도 돈은 벌어야 될거 아녀. 그래서 대흥리에 직조가 유명해졌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리고서 내가 정읍서 그 얘기를 하고 떠나 집으로 와서 한 바퀴 돌고 다시 정읍을 갔어. 가서 이 한우 씨한테 가서 의통제작을 하는데 쓰라고 돈을 주고 왔어. 뒤에 가서 보니께 6임조에 근거해서 내 도장을 하나 마련해 놨더라고. 책임감도 있고 그래서 집으로 와서 보천교 신도들한테 이제 너희들도 의통준비를 하고 다시 그때는 내가 교주할 욕심도 없고, 다 같은 신도들이고 하니께 누가 뭐가 되고 그러는 걸 따지기 전에 동지적인 입장에서 뭉쳐서 단체도 구성하고, 상제님 사업을 하고 그러는 거지. 보천교 신도들은 차 경석씨도 꼭 신앙하는 것도 아니고.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차 경석 씨를 믿으면 강 증산에게로 끌려 들어가는거고. 그런 정신으로 뭉쳐 있던 사람들이여. 그렇게 해서 그때 뭐 그 수치를 다 얼마라고 지적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젊은 사람들이 모아지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뭉쳤어. 근디 이 한우 씨가 맨날 충청도를 가자고 그려. 그러고 있는디 집회할 곳이 없어서 정읍으로 갔어. 보천교 때 건물 지어놓고 버린 궁궐터, 지금 조계사 된 그거. 이름이 십일전十一殿, 열 십에 일 하면 토자여, 세상 사령탑이다 이 말여.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런데 그걸 왜놈들이 뜯어다가 불교 조계사를 지어 버렸어. 처음에는 각황사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태고사라고 고쳤었어, 그러다가 이제 조계사로 고쳤지. 그러고 전주에도 보천교 건물 헐어다가 전주 역을 지었어, 지금은 새로 지었는디. 그 십일전十一殿에 빈 건물이 있어서 김 규찬 씨라고 말여, 그런 분이 상제님 사업한다고 하니께 그렇기 때문에 그 건물을 손쉽게 얻어 거기서 모아서 치성도 올리고. 지도자도 없을 때여. 여럿이 뭉쳐서 계모임의 의장 하나 제대로 없이 그냥 그렇게 뭉쳤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런데 거기는 이 상호 씨가 집이 없어. 집이 당시 시기리에 있던 집도 그것도 남의 집이여. 그래서 거기 앉어 있을 사람이 없고 하니께, 이 상호 씨가 그 건물에 앉아 있었단 말여. 김 규찬 씨가 보천교普天敎 시대에 차 교주를 모시고서 그 교체를, 종교가 되기 때문에 우주원리로 수화금목토 그렇게 짜거든. 토주土主가 교주여, 교주의 보좌역은 수화금목이 되는거여, 토주는 차월곡 차 경석 씨고. 금주金主는 같이 일을 하자고 했던 김 규찬 씨여. 수화금목이 흙을 떠나서는 안 되는 거거든, 그래서 토가 중앙이 되는겨.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보천교 건물을 지었는데, 치성 때 상제님을 믿든지, 차 교주를 믿든지, 한 뿌리다 이거여. 차 월곡이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치성의전致誠儀典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쟎어. 치성에 내가 한두 번 다니는데 이 한우라고 하는 사람이 충청도를 같이 가자 이거여. 대흥리로 집회장소를 옮기기 전부터 욕심이 많은 사람인디 대흥리로 이전을 하기 전부터 자꾸 충청도를 구경시켜달라고 그려. 상리학상으로 보면 그 사람이 입속이 시퍼렇고 아주 욕심쟁이여, 어딘가 모르게 삐뚤어진 것도 할 수도 있는거구. 그래서 그 사람을 따돌리고 왔는디, 대흥리로 나서는데 기어코 따라와서 같이 가자고 그려. 결국 나중에 우리 아버지까지도 그 사람 편이 되더라고.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우선 이 상호李祥昊 씨가 갑자년(1924)에 보천교 혁신운동을 했어. 지금도 어지간히 판 밖의 사람도 나이 먹은 사람은 보천교의 갑자년의 혁신은 다 알어. 이 상호씨가 서울에서 진정원 원장으로 있었거든? 그렇게 있으면서 보천교普天敎하고 갈등이 나서 보천교를 때려부시자 혁신운동이 일어났는데, 서울의 깡패들을 사가지고 대한민국 보천교에서 그거 시원찮은 거 한 방이면 꼴딱하쟎어! 서울서 몇몇이 힘깨나 쓰고 주먹 쓰는 사람들 써서 어떻게 해서 혁신파가 졌다네. 대흥리가 그래도 더 쎘던가 봐.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어찌되었든 종국적으로 이상호가 졌어. 그러고서 보천교에 있을 수가 없으니께 진정원 원장 명의로 소유권이 되어 있었던지 그걸 3만 원에 팔았어. 그러고 2만원은 어음으로 가지고 그 동생 이 정립하고 고등학교 다니는 여학생을 이상호가 원래 꼬아서 있었던 모양이여. 그를 데리고 만주로 갔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 진부를 확실히 판단을 못했는데 우리 증산도 대원출판사 사장인 부종정이 글을 쓰잖어. 동양학 이렇게 한다. 통곡하는 민족혼. 나중에 쓴 책은 상제님 진리를 바탕으로 쓰는 모양여. 자꾸 홍 성렬이 못되게 구니께 우리도 우리대로 사실을 알아보자 하고 대학생 연합회장 학생들에게 <보천교 연혁사普天敎沿革史>를 얻어 오라고 해서 보니께 전부 중 한귀퉁이것지.

 

🌺🌺🌺일본 近代化 使命 속에서의 先眞主와 後眞主 문왕(사마중달) 출세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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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하나만 정독해도 종통을 확실히 안다)
말복종통 인사-성주가, 안동김씨 솔씨 심어(영사재) 문왕 낙락장송 낸(안씨 추원재 천지수기공사&안씨 일등방문공사) 뜻과 문왕 3살림 연원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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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통宗統의 화룡점정:못 다 이룬 꿈- 3제갈 8한신, 시대를 넘어 이제 때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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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통 진주도수 *1954 갑오생 안경전이 매듭짓는 말복지도자 인물이 아니고 과도기 중복지도자인 천지공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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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통1.천지공사의 최종 결론- 문왕추수 세살림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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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통2. 천지공사의 최종 결론- 문왕추수 세살림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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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통宗統. <선도신정경(정영규)>*-천지대사가 6월 7월 8월, 나는 바닥에 일1 붙은 줄 알고 빼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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