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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탄허스님의 예지, 그 배경과 의의 ?/ 김성철(金星喆)

낙엽군자 2015. 4. 2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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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스님의 예지, 그 배경과 의의

 

김성철(金星喆)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한글요약


선과 교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사서삼경과 노장사상, 역사와 민족종교, 음양오행과 풍수지리 모두를 꿰뚫는 혜안을 갖춘 분이 있었다. 간산 탄허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활동기가 1972년 10월 유신 이후 1976년 박정희 피살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정치적 암흑기였기에 세인들은 스님의 가르침 가운데 특히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도참적 발언에서 희망을 찾으려 하였다.

 

탄허 스님은 증산교의 일파인 보천교의 강한 영향 아래서 성장하였고, 면암 최익현 계통에서 유학을 공부하였는데, 스님의 예지에서 보이는 ‘진한 민족주의적 정서’는 이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반도와 지구의 변화에 대한 스님의 도참적 발언들은 주로 김일부의 『정역』에 근거한 것으로 많은 내용들이 그대로 실현되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들도 많이 있었다. 스님의 도참사상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기보다, 세계의 변방에서 정치적 암흑기에 신음하던 우리 사회의 구성원을 향해 던진 희망의 메시지였다고 생각된다. 탄허 스님의 예지는 요컨대 ‘선의 가득한 당위의 미래학’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탄허, 도참, 미래학, 보천교, 최익현, 정역

 

 

1. 한국의 정치적 암흑기에 풍미했던 탄허의 도참설

 

老子는 말한다. “학문을 하면 나날이 늘어나고, 도를 닦으면 나날이 덜어낸다.”1] 이런 통찰은 불교수행에도 적용 가능하다. 불교를 禪과 교敎로 나눌 때 선이 ‘나날이 번뇌를 씻는 수행’이라면 교는 ‘나날이 지식을 쌓는 공부’다. 교는 선을 위한 地圖이며 나침판이다. 禪敎兼修. 선과 교학을 함께 닦는다는 뜻이다. 가장 이상적인 불교 수행이지만 至難한 길이다. 평생을 참선 수행에 매진했던 철두철미한 선사이면서, 불교교학은 물론이고 사서삼경과 노장사상, 역사와 민족종교, 음양오행과 풍수지리를 모두 하나로 꿰뚫는 慧眼을 갖춘 분이 계셨다. 바로 艮山 呑虛(1913~1983) 스님이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불교사상사 2천년을 통틀어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정신적 偉人’이었다.

스물을 갓 넘어 출가하여 3년간 묵언정진하면서 참선을 시작한 이래 평생 선 수행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불전의 번역과 강설, 교육과 교화의 이타행을 시현하셨다. 스님의 수행에 대해서 제자들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2]

 

"자정에 일어나면 아침에 식사하실 때까지 꼭 참선을 하셨습니다. 일생을 했습니다. 그 선지의 경지라는 것은 헤아릴 수가 없어요. 선에 관한 모든 서적은 다 뒤졌고 당신이 실제로 그 경험을 했고, ?화엄경? 원고를 쓰시다가도 마치면 원고를 덮어놓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정진하시다가 다시 쓰셨습니다"

(서우담 선생).

 

"스님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냐 하면, 일상삼매에 들어 계셨다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어요. 예를 든다면 손님을 접대하시면서도 순간순간 놓치질 않고 자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보통 사람들은 경계에 빠져서 생활하는데 스님의 경우 그런 일이 없었죠. 항상 자기 일에 동요가 없으셨죠"

(혜거 스님).

 

1] 도덕경, 제48장, “學者日益 爲道者日損.”

2] BTN 홈페이지(2012.03.11.). 필자가 문어체로 윤문함.

 

 

자정에서 동이 틀 때까지 매일 새벽은 물론이고 일상생활 역시 참선과 삼매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傳言이다. 그야말로 一行三昧의 삶이었다. 이와 아울러 스님은 불교인재를 양성하고 한문불전을 번역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화엄경과 관련해서는 李通玄(635~730)의 新華嚴經論 40권을 비롯하여 총 287여권에 이르는 문헌들을 취합하여 현토, 번역, 주석하였다.

27세가 되던 해에 스승인 漢巖(1876~1951) 스님으로부터 신화엄경합론의 현토 간행을 부촉받은 후(1939), 44세에 번역에 착수하여(1956) 11년이 지난 55세가 되던 해에 완성하고(1967) 다시 8년이 지난 63세에 세상에 선을 보인(1973) 참으로 지난한 작업이었다.

이 이외에 육조단경(1960), 보조법어(1963) 그리고 서장, 도서, 절요, 선요의 四集과 능엄경, 금강경, 기신론, 원각경의 四敎(1980), 치문과 초발심자경문(1981), 주역선해(1982) 등의 역주본을 속속 출간하였다.

노자의 도덕경(1983), 선종영가집(2001)과 발심삼론(2001), 그리고 장자의 남화경(2004)의 역주본은 스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간행되었다.3]

역주의 양과 깊이의 모든 면에서 가히 초인적인 작업이었다. 후학 양성을 위한 ‘願力의 이타행’이었다.

 

탄허 스님은 세속의 변화에 대해 깊이 통찰하면서 우리나라와 인류의 미래와 관련하여 많은 예언을 남겼다. 스님은 주역과 음양오행설에 근거하여 金一夫(1826~1898)의 正易을 해석함으로써 정치와 사회는 물론이고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까지 예측하였다. 신라 말의 道詵(827~898)국사나 여말선초의 無學(1327~1405)대사의 예에서 보듯이 고승들에게 예언이나 도참은 餘技와 같았다. 탄허 스님의 경우도 그랬다. 그러나 세속의 길흉화복에 조바심치며 희로애락의 삶을 사는 일반대중들은 스님의 학문이나 禪旨보다 예언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스님 역시 당신의 예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그런데 요즈음 공부하는 사람들 말인데, 6.25사변 같은 것이 언제 날까 이런 것들을 아는 것을 道인 줄 알어. 그건 術家의 사상이야. 術客이 하는 짓이지. 道자리는 아는 것이 끊어진 것이 道지, 아는 것은 道가 아니에요."4]

 

탄허 스님 스스로 6.25사변을 예언한 일화가 있고,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를 예측하기도 했지만 이는 단지 術일 뿐이고 공부의 본질이 아니라는 말씀이었다.5] 이어서 天眼, 天耳, 宿命, 他心, 神足, 漏盡의 六神通 가운데 漏盡通만이 도이고 나머지는 술에 불과하다는 설명이 계속되었다. 마술과 같은 신통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번뇌(漏)를 제거(盡)하는 것이 불교수행의 본질, 종교생활의 본질이라는 가르침이었다.

 

스님의 가르침을 기리고자 할 때 예언이나 도참설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하는 일은 스님의 그림자를 밟으려는 허황한 짓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명리를 추구하면서 세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깨달음이나 도에 대한 스님의 가르침보다는 예언과 도참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스님이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교유하면서 吐露한 미래에 대한 예언들은 불교계는 물론이고 정치와 문화, 종교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스님의 사상과 시대적, 사회적 역할을 정리하고자 할 때 스님이 發說하신 갖가지 예언과 도참설을 종합하여 그 근거를 밝히고 의의를 찾는 작업이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圖讖을 체계화한 인물은 도선국사라고 한다.6] 통일 신라 말 후삼국이 난립하던 혼란기에 활동했던 도선은 고려의 건국과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였고7] 그의 裨補風水 이론은 태조 왕건의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8] 고려시대 내내 국사나 왕사로 불리면서 존숭되었다.9] 또 고려 시대 말에 李씨 성을 갖는 사람이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十八子得國’의 도참설이 퍼져 있었고10],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참서인 ?정감록?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의 혼란기에 성립한 데서 보듯이,11]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거나 사회가 혼란할 때 예언, 秘記, 도참이 유행하였다. 오대산 월정사와 삼척의 영은사 그리고 부산의 삼덕사 등에서 불전번역에 매진하다가 60세가 되던 1972년 서울 안암동의 대원암에 기거하면서12] 본격적인 교화활동에 나섰던 탄허 스님의 도참설이 한국의 지식인 사회를 풍미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역시 그런 정치적 격변기, 혼란기였다.

 

3]탄허스님 홈페이지(2012.03.11.)

4]김탄허(1980), p.88 ; 김탄허(2003), p.129.

5]김탄허(1980), pp.88~90.

6]양은용(1993), p.82.

7]최병헌(1975), p.122.

8]왕건은 훈요십조의 제2조에서 도선의 비보풍수 이론에 근거하여 사찰의 난립을 금한다. ‘이진삼 외(2010), pp.496~497’ 참조.

9]최병헌(1975), p.125.

10]양은용(1993), p.81.

11]양은용(1993), p.86.

12]장화수(1996), p.255.

 

 

8.15해방 이후 ‘서구식 민주주의’ 이념을 표방하면서 이승만(1875~1965) 정권이 들어섰지만, 1954년 속칭 ‘4사5입 개헌’을 통해 초대대통령에 한하여 무제한 출마가 가능하게 하는 종신대통령제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급기야 1960년에 3.15부정선거를 저지르자 젊은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4.19혁명이 일어났고 ‘이승만 정권’은 종식을 고한다. 내각중심제의 개헌이 이루어지고 ‘장면 정권’이 탄생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박정희(1917~1979)와 김종필(1926~)이 주축이 되어 1961년 5월16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킨다. 軍政 기간인 1962년 말 대통령중심제로 환원하는 개헌이 이루어졌고 1963년 10월에 선거가 치러졌는데 소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수반이었던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같은 해 12월에 대통령에 취임한다. 1967년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임기 중반인 1969년에 ‘삼선개헌’을 단행하였고 1971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가, 이듬해인 1972년 10월17일 영구집권이 가능하도록 ‘유신헌법’을 선포한 후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한다.

 

탄허 스님이 월정사에서 서울의 대원암으로 주 근거지를 옮긴 시기는 바로 이때였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종식을 고한 정치적 암흑기였다. 스님은 1972년 낙원동에 화엄학연구소를 설립하였고 한국의 학계와 관계, 언론계의 주요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미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을 토해내었다. 탄허의 도참설이었다.

 

1972년의 10월 유신 이후 대학생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 긴급조치, 위수령, 휴교령 등을 남발하였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1974년 민청학련사건 이철, 유인태 사형선고. 1974년 4월 김지하 체포, 사형선고. 1975년, ?思想界?를 창간하고 운영하던 張俊河(1918~1975)의 의문의 추락사 …. 1979년 10월20일 부마항쟁.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피살. 1979년 12월12일 전두환 쿠데타.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1981년 5월27일 서울대생 김태훈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치며 도서관 6층에서 투신자살13]. 어둠이 깊을수록 지식인과 대학생들의 저항은 더욱더 거세졌으며, 희생 또한 컸다.

 

탄허 스님께서 서울에서의 교화를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은 1974년 1월에 초법적인 긴급초지 제1호가 선포되었고 불과 1년 후인 1975년 5월에 발표된 제9호까지 이어졌다. 긴급조치 1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4]

 

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②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③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④ 전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⑥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⑦ 이 조치는 1974년 1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

 

이 가운데 제①항에서 말하는 ‘대한민국 헌법’이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신헌법’을 의미한다. 누가 봐도 ‘소가 웃을 조항’이었지만, 당시의 정권은 이를 비판하던 많은 志士들의 싹을 잘랐다. 가히 초법적인, 초헌법적인 조치들이었다. 이런 조치들에 근거하여 박정희 정권은 한국의 지식인, 대학생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계속하였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권에 의해서 ‘인민혁명당사건’이라고 날조되었던 ‘민청학련사건’의 경우 총 1,024명이 수사를 받았고 그 가운데 200여 명이 검거되었으며, 180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 박형규 목사, 김동길 교수, 김찬국 교수 등이 기소되었고 이철, 김지하, 유인태 등 14명이 사형선고를 언도받았고 21명이 무기징역형에 처해졌으며 그 외에 140명의 형량은 도합 1,650년에 달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 가운데 여정남, 도예종,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우홍선, 송상진의 여덟 명은 1975년 4월9일 대법원 상소가 기각된 지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법살인이었다.15] 근대적 법치가 아니라 전근대적 人治, ‘동물적인 힘’이 지배하던 세월이었다. 냉전의 최전선인 한반도에서 매카시즘(McCarthyism)의 기치를 올리고 자행되었던 독재의 시대였다.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대학생들과 양심적이고 용감한 몇몇 지식인 이외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정치적 암흑기였다.

 

13]이호령 외 편(2006).

14]고시면(2011), p.5.

15]2005년 12월27일 재판부는 인혁당사건에 대한 재심을 받아들여 2007년 1월23일 무죄판결을 내렸다. 한겨레뉴스(2007.01.23).

 

 

탄허 스님이 1972년 서울의 낙원동에 ‘화엄학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하화중생의 행보를 내디딘 후 1983년 열반하시기까지 10여 년은 군부독재의 정치적 폭력과 그에 대한 목숨 건 저항이 되풀이되는 군부통치의 암흑기였다. 탄허 스님은 10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말들을 쏟아내었다. “한반도의 국운이 융성해지며 위대한 인물들이 나타나 조국을 통일하고 국내외의 문제를 해결하며 국위를 선양할 것이다.” “과거에 남의 나를 많이 침략한 일본의 대부분은 바다에 잠기고 핵무기를 갖는 강대국들이 곤경에 빠진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만주 땅이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죽을 겁니다.” “맨주먹이 수소탄을 이긴다.” “우리나라에 金風이 불면, 즉 서방의 바람이 불면 미국의 도움으로 인류사의 열매를 맺고, 우리가 새로운 세계사를 시작한다.” 통일의 조짐이 보이기는커녕 남북대립이 극을 달리던 시대였는데, 한반도는 머지않아 통일된다는 희망의 싹을 심어 주었고, 초법적 정치권력의 동물적 힘이 지배하던 우리 사회였는데 도덕적 인물이 통치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확언하였다. 월남전의 운명이나 일본의 미래에 대한 스님의 발언에서 보듯이 국제관계에서는 마치 드라마와 같은 권선징악의 결말을 예측하였다.

 

예언자, 도참가는 어느 시대에나 있게 마련이다.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람들. 기독교의 휴거 …. 사회가 온전할 때 지식인, 주류들은 이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가 암울해질 때 이들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1972년 서울에 근거지를 마련하여 본격적으로 교화활동을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사회의 언론매체, 지식인, 정치인들은 탄허스님의 가르침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74년 국방대학원 장화수 교수와의 대담16], 1975년 부처님 오신 날 동국대 김항배 교수와의 대담17], 1977년 월간중앙 신년호 부록에 실린 “현대의 고뇌를 종교에 묻는다.”는 제목의 좌담, 1978년 김지견 박사와의 대담19], 1977년 1월18, 19, 20일의 조선일보 선우휘 주필과의 3일 연속 대담20] 1980년 김지견 박사와 한국일보 대담21] 등을 통해 탄허 스님은 확신에 찬 어조로 우리 사회, 우리나라의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점을 力說하였다. 남한과 북한의 정치인들이 냉전의 대리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으르렁거리고 있을 때, “곧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想像莫及의 발언으로 남북통일의 희망을 심어주었고, 5.16쿠데타 이후 12.12쿠데타를 거치며 20년 이상 이어져 온 독재정권의 酷政 아래서 젊은 청년들은 죽어가고 지식인들이 신음하고 있을 때 “도덕을 갖춘 지도자가 세상을 통치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善意 가득한 희망의 예언으로 한국정치의 지향점을 제시했으며, 소련과 중국이 북에서 잡아끌고 미국과 일본이 남에서 잡아끄는 車裂刑의 아픔으로 신음하는 ‘분단의 한반도’에서 ‘눈치 외교’에 급급할 때, 앞으로 한국이 세계를 이끄는 지도국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발언으로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심어 주었다.

탄허 스님의 예지가 빚어낸 도참적 발언들은, 구한말의 민족종교의 도참설이 그랬듯이 출구를 모르던 정치적 암흑기에 우리 사회의 한 편을 밝히던 희망의 등불이었고, 마치 신라 말의 도선과 고려 말의 무학이 그랬듯이 혼란에 빠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판이었다. 탄허 스님의 예언들은 그 시대적 역할에서 가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16]장화수(1996), p.21.

17]김탄허(1980), p.131.

18]김탄허(1980), p.221 ; 장화수(1996), p.250.

19]김탄허(1980), p.122.

20]김탄허(2000, 초판 1997), pp.85~129 ; 장화수(1996), p.250.

21]김탄허(2000, 초판 1997), p.209.

 

 

2. 탄허의 출가 전 학문적 履歷과 도참설의 근거

 

양은용은 도참을 “왕조 장래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미래의 길흉화복을 징험하는 예언비기류를 총칭하는 말”이라고 정의하면서22] 그 어느 시대든 도참사상은 “군주나 지배층이 아닌, 풀뿌리처럼 짓밟혀 살면서도 내일을 내다보는 하찮은 사람들을 어여삐 여기는 인간애가 짙게 깔려 있는” ‘민중구제의 한 철학’이라고 평한다.23] 한민족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남북통일의 확신과 도덕정치의 비전이 담긴 탄허의 도참설에는 ‘하찮은 사람들’에 대한 ‘인간애’가 깊이 스며있었다. ‘하찮은 사람들’이란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사의 변방에서 고난을 겪어온 우리 민족이기도 했고,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군부독재에 신음하던 민초들이기도 했다.

 

탄허 스님의 도참사상은 민족주의적이며, 낙관적이었는데, 스님의 가계와 출가하기 전 학문적, 종교적 이력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스님의 부친 栗齋 金洪奎 선생은 17세째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고 증산교의 일파인 普天敎의 교도였으며24] 항상 정치문제를 가지고 소년 시절의 스님을 가르쳤다고 한다.25]

 

보천교는 그 창시자인 車京錫(1880~1936)의 별칭을 써서 ‘車天子敎’라고도 불린다. 음양오행설에 근거하여 土의 자리인 중앙에 차천자가 황색 옷을 입었고, 사방에 이를 호위하는 네 사람을 두었는데 탄허 스님의 부친 김홍규 옹은 당시 보천교의 2인자로 동방인 木의 지위에 있었기에 청색 옷을 입었다고 한다.26]

탄허 스님은 이렇게 증산교의 일파인 보천교의 강한 영향 아래서 유소년기를 보냈다. 6세 때부터 사서삼경 등 유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장소 역시 보천교에 소속한 서당이었다.27] 그리고 17세가 되었을 때 기호학파인 면암 최익현(1833~1906)28] 계통의 학문을 전수받은 이극종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21세까지 시경 등의 삼경과 예기, 춘추좌전 등의 경서를 학습한다.29]

주지하듯이 면암 최익현은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자 “내 머리를 잘라도 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吾頭可斷 此髮不可斷).”며 저항한 인물이다. 또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를 외치며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한 ‘晴討五賊疏(또는 請討五賊訴)’를 올렸으며, 74세의 노구로 1906년 의병을 일으켰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된 후 대마도로 압송되었는데 감옥에 갇혀서 적국의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단식하다가 순국한 애국, 애족의 지사였다. 탄허 스님의 도참설 가운데 많은 내용들에 민족주의적 색체가 짙게 깔려 있는 것은, 출가하기 전 스님의 이러한 종교적, 학문적 이력과 유관할 것이다.

 

22]양은용(1993), pp.80~81.

23]양은용(1993), p.93.

24] 장화수(1996), p.254.

25]김탄허(2000, 초판 1997), p.101.

26]장화수(1996), p.254.

27]장화수(1996), p.140.

28] 탄허 스님은 최익현의 고손자인 최창규(1937~) 교수(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를 찾았고 필자는 두 분이 만나는 장소에 있었는데, 이 때 최창규 교수는 역학에서 말하는 “一徑爲三 一方爲四”(또는 “陽三陰四”)의 의미에 대해 여쭈었고, 탄허 스님은 즉각 “3은 하늘을 의미하고 4는 땅을 의미한다.”고 답하면서, 그 이유로는 ‘天圓地方’의 이치에서 동그라미(圓)의 경우 직경의 3배가 둘레가 되고, 네모(方)의 경우 직경의 4배가 둘레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신 바 있다. 이는 ?京房易傳?의 다음과 같은 설명에 근거한 것으로 짐작된다. “孔子曰 陽三陰四 位之正也 三者 東方之數 東方日之所出 又圓者 徑一而開三也 四者 西方之數 西方日之所 又方者 徑一而取四也.”

29]장화수(1996), p.254.

 

 

증산교를 포함한 한국 신종교의 개벽사상의 공통점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든다.

 

“첫째 우주론적 변화로서의 개벽의 도래를 강조한다. 둘째 서구의 천년왕국 신앙과 마찬가지로 종말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서구의 그것과 달리 순환론 내지는 원환론적 성격을 갖는다. 셋째 기존의 낡은 사회질서들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사회질서가 확립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넷째 강한 민족주체의식이 내재되어 있어서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세계에서는 한민족이 세계 역사를 주도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한국은 종주국이 될 것이며, 후천선경이라는 이상 세계도 한국에서부터 실현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30]

 

이 네 가지 특징은 탄허 스님의 도참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선친의 종교였던 증산교 계통의 보천교31]와 정감록32] 그리고 김일부의 정역 등 구한말 한반도에서 발생했던 신종교나 전통적 도참사상 등이 그 원천이었다.

 

증산교에는 종파도 많지만33] 각 종파에서 의지하는 성전도 다양한데 1974년에 安雲山(1922~1912)이 설립하고 安耕田이 종정으로 있는 ‘甑山道’는 탄허 스님의 부친이 소속되었던 보천교, 즉 차천자교를 계승한 종단이라고 자처한다. ‘증산도’에서 의지하는 성전은 道典이다. 증산도 측의 설명에 의하면 20여 년에 걸친 자료 수집 끝에 1992년에 도전의 초판이 발간되었고 11년이 지난 2003년 완결본이 간행되었다고 한다.34] 탄허 스님의 예언 가운데 핵심적인 것 몇 가지와 유사한 내용을 도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의 동남해안 쪽 100리의 땅이 피해를 입을 것인데 그러나 우리의 영토는 서부해안 쪽으로 약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해서 늘어날 것입니다.”35] “한반도의 동해안도 해일과 지진으로 일부가 바다 밑에 침몰하게 되지만, 반면 서해안의 경우 황해 바다의 거의 대부분이 육지로 솟아나게 됩니다. 지구의 가장 근접한 축에서 이러할 때 세계 각처에서는 동쪽이 가라앉고, 서쪽은 크게 올라오는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36] 이는 일반적인 ‘미래학’에게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지질학적 예언’인데 도전에서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세상이 땅은 좁고 사람은 많아서 살 수가 없사오니 속히 개벽을 하시어 수효를 덜게 하옵소서.”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南通萬里라 하였나니, 장차 우리가 살 땅이 새로 나오리니 안심하라. 符命 하나로 산을 옮길 것이니, 이 뒤에는 산을 옮겨서 西海를 개척할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중국과 우리나라가 하나로 붙어 버린다.” 하시고 “장차 동양삼국이 육지가 되리라.” 하시니라."37]

 

앞에 인용했던 탄허 스님의 예언과 같이 후천세계가 되면 서해안이 융기하여 땅이 넓어지면서 한반도가 중국과 이어진다는 것이다. 탄허 스님 역시 만주와 요동의 일부가 우리 영토로 귀속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38]

 

30]노길명(2008), pp.198~199.

31]장화수(1996), p.227.

32]?정감록?을 다 믿느냐는 조갑제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스님은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지요. ?정감록?의 필자는 국가나 민족의 앞날을 근심하여 경고하고 예언한 게 아닙니다. …”라고 답한 바 있다. ‘김탄허(2000, 초판 1997), p.175’ 참조.

33]보천교, 태을교, 증산교 문공신파, 보화교, 도리원파, 중산대도회, 미륵불교, 증산선불교, 증산법종교, 용화교, 태극도, 증산도, 대순진리회 ….

34]증산도 홈페이지(2012.02.25)

35]김탄허(1980), p.169.

36]장화수(1996), p.71.

37]증산도 道典 웹문서(2012.02.26), 7편 18장 1절.

38]장화수(1996), p.89.

 

 

또, 탄허 스님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보자. “한반도의 장래는 매우 밝다고 하겠습니다. 과거에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국의 침략과 압제 속에서 살아 왔으며 역사적으로 빈곤, 역경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말하거니와 우리가 이 正易 시대에 태어났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는 위대한 인물들이 나와서 조국을 통일하고 평화적인 국가를 건설할 것이며 모든 국내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국위를 선양할 것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문화는 다른 모든 국가들의 귀감이 될 것입니다.”(1975년)39] 증산도의 ?도전?에서도 우리는 이와 같은 취지의 글을 발견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 안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곳 해동조선에 지상천국을 만들리니 지상천국은 천상천하가 따로 없느니라.” 하시며 “장차 조선이 천하의 道主國이 되리라.” 하시니라.40]

 

 

앞으로 한국이 지상천국이 되어 ‘도덕을 주도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증산 강일순의 발언은 위에 인용한 스님의 말과 다르지 않다. 증산도의 성전인 ?도전?의 초판이 발간된 시기가 탄허 스님이 타계하고 10년이 지난 1992년이기에 거꾸로 탄허 스님의 도참적 발언들이 외형을 달리하여 ?도전?에 삽입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상기한 인용문들은 같은 증산교의 종파이면서 계통을 달리하는 大巡眞理會에서 편찬한 경전인 ?典經?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내용들이다.41] 또 스님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유불선이 하나로 통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천지의 허무한 기운을 받아 선도로 포태하고, 천지의 적멸한 기운을 받아 불도로 양생하고, 천지의 以詔42] 기운을 받아서 유도로 목욕하고 띠를 두르리라.”는 강증산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는데43] 이 문장 역시 증산도의 ?도전?에 그대로 실려 있다.44] 장화수 교수에 의하면 탄허 스님은 평소에 보천교를 창시한 차경석을 높게 평가하면서 “조금만 서양의 근대적인 지식이나 당시의 국제정세에 눈을 떴더라면, 한국의 자주독립과 근대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대종교가와 민중의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영웅이었”고 “日帝가 말살한 보천교는 사교집단이 아니라 利財를 할 줄 몰라서 몰락한 것”이라고 술회하셨다고 한다.45] 탄허 스님은 강증산의 가르침 역시 수용하여 도참설의 자료로 활용하였다.

 

탄허 스님의 도참설의 결정적 근거이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헌이 ?正易?일 것이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고 하던가. 19세기말 서세동점의 혼란기에 한반도에서는 위대한 종교인, 사상가들이 속출하였다. 동학의 최제우(1824~1864), 증산교의 강일순(1871~1909), 원불교의 소태산 박중빈(1891~1943) …. ?정역?을 저술한 김일부 역시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1826년 충남 논산군 양촌면에서 태어난 一夫 金恒은 36세가 되었을 때, 낙향한 관리인 李雲圭(1809~?)를 찾아가 역학을 연구한다. 최제우 역시 김일부와 同學이었다.46] 그 후 54세가 되던 1879년에 갑자기 눈앞에 낯선 卦圖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3년이 지나면서 온 천지에 가득 찰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正易팔괘’였다. 처음에는 심신이 쇠약하여 보이는 헛것이라고 생각하고서 건강에 신경을 썼으나 소용이 없었는데 ?주역?을 읽다가 「說卦傳」의 “神이라고 하는 것은, 만물을 묘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라.”47]라는 구절과 그에 이어지는 “물(水)과 불(火)은 서로 영향을 주고, 우뢰(雷)와 바람(風)은 서로 거스르지 않으며, 산(山)과 연못(澤)이 기운을 통한 다음에야 능히 변화하여 이미 만물을 이루느니라.”48]라는 구절을 보고서 눈앞에 떠돌던 괘도의 의미를 확연히 알게 되어서 괘도를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다시 3년에 걸쳐서 ?정역?을 저술하였다고 한다.49] 역학에서는 河圖를 정리한 ‘伏羲팔괘’와 洛書를 정리한 ‘文王팔괘’에 의해서 세상을 해석한다. ‘복희팔괘’가 하늘(乾)과 땅(坤)이 벌어지고, 해(離)와 달(坎)이 운행하는 천문현상을 나타낸다면, ‘문왕팔괘’는 봄(震), 여름(離), 가을(兌), 겨울(坎)로 순환하는 계절의 변화를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복희팔괘를 先天易, 문왕팔괘를 後天易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후천개벽이 일어난 다음의 세계를 예고하는 정역팔괘가 나타나면서 정역팔괘가 후천역이 되고, 문왕팔괘는 선천역으로 되었다. 복희팔괘와 문왕팔괘, 그리고 한반도에서 새롭게 나타난 김일부의 정역팔괘는 다음과 같다.

 

 

 

그림 1- 복희팔괘 (선천)

 

 

 

그림2 - 문왕팔괘 (후천)

 

 

 

그림 3- 정역팔괘

 

 

복희팔괘는 天道를 주로 밝히고, 문왕팔괘는 人道를 밝혔으며, 정역팔괘는 地道를 밝힌 것이라고 한다.50] 천도란 日月星辰의 변화를 의미하기에 복희팔괘는 일종의 天文圖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늘(乾, 天)과 땅(坤, 地)이 벌어지고 해(離, 火)와 달(坎, 水)이 움직이는 천문기상을 축약한 도안이다. 이와 달리 문왕팔괘는 갈등과 투쟁 속에 살아가는 인人間事를 밝힌 것이다.

 

 

39]김탄허(1980), p.169.

40] 증산도 ?도전?, 7편 83장 7,8.

41] 강증산은 김일부가 세상을 떠나던 해에 김일부를 만나기 위해서 連山을 찾아가 3일간을 머무는데 이 때 두세 시간 정도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김일부는 73세 강증산은 28세 때의 일이다. 따라서 상기한 강증산의 발언은 김일부의 ?정역?에 근거한 것일 수 있다. ‘윤종빈(2009), p.34’ 참조.

42]원문은 ‘이적’이나 이는 오타이다.

43]김탄허(2000, 초판 1997), p.167.

44] “受天地虛無하여 仙之胞胎하고 受天地寂滅하여 佛之養生하고 受天地以詔하여 儒之浴帶라.” 증산도 道典, 2편 150장 3절 ; 10편 106장 4절.

45]장화수(1996), pp.227~228.

46] 이정호(1988), p.108.

47] “神也者, 妙萬物而爲言者也.”

48] “故水火相逮, 雷風不相悖, 山澤通氣, 然後能變化旣成萬物也.”

49]이정호(1988), pp.106~110.

50]김탄허(1982), p.428.

 

 

 

 

 

 

 

 

 

그림 4- 하도와 낙서

 

 

‘그림4’에서 보듯이 복희팔괘가 本으로 삼았던 河圖는 ‘相生의 원리’로 순환하는 반면, 문왕팔괘의 底本인 洛書는 ‘相剋의 원리’로 순환한다. 이와 달리 정역팔괘에서는 地道, 즉 앞으로 다가올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에 근거하여 세상을 해석한다.

 

탄허 스님은 “우리가 사는 지구가 지금 선천역인 ‘문왕팔괘’의 모습에서 후천역인 ‘정역팔괘’의 상태로 변화하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국제관계를 통찰하고 지질학적 변화를 예측하였다. 지구상의 대륙과 각 나라의 현재 위치는 ‘문왕팔괘도’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후천개벽이 일어나면서 앞으로 그 위치는 ‘정역팔괘도’와 같은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문왕팔괘도’에서 북측의 네 괘인 ‘震, 坎, 艮, 乾’은 변화작용 없이 고요한 ‘본체’에 해당하며, 남측의 네 괘인 ‘巽, 坤, 離, 兌’는 변화하는 곳에 위치한다.51] 현재 23.7도 기울은 지축이 후천개벽 이후에 바로 서면 문왕팔괘의 ‘乾, 坎, 艮, 震’이 시계방향으로 한 자리씩 이동할 것이다.

이 때 北東쪽의 艮이 正東으로 이동하면 艮에 치인 동쪽의 震은 巽을 밀게 되는데, 巽은 ‘변화하는 곳’이기에 震이 머물 수 없는 곳이어서 震은 ‘본체’의 자리인 북서쪽으로 밀려난다. 이 때 震의 일부가 찢어지면서 정동으로 이동한 艮과 합쳐진다.52] 중국의 만주와 요동이 우리 땅에 편입될 것이라는 탄허 스님의 예측은 이상과 같은 분석에서 얻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탄허 스님은 明나라 智旭(1599~1655)의 ?周易禪解?를 역주하면서 부록으로 ?正易八卦解說?이라는 글을 덧붙였는데 그 가운데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와 관련된 설명이 있다.

그 내용을 쉽게 풀면 다음과 같다.

‘그림3’의 ‘정역팔괘’에서 ‘남쪽의 坤’과 ‘북쪽의 乾’ 이면에 적힌 ‘二天七地’라는 글이 앞으로 올 변화의 조짐(象)을 암시한다. 음양오행설에서는 수자를 다음과 같이 음양과 오행에 대응시킨다.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

1

2

3

4

5

6

7

8

9

10

 

 

예를 들어 ‘그림4’의 하도에서 보듯이 水인 북쪽의 ‘1, 6’이 木인 동쪽의 ‘3. 8’을 생한다. 水生木의 원리다.

낙서에서는 水인 북과 북서쪽의 ‘1, 6’이 火인 동과 동남쪽의 ‘2, 7’을 克한다. 水克火의 원리다.

또 陰陽을 수자에 대응시킬 경우 ‘1, 3, 5, 7, 9’의 홀수는 양의 수이고 2, 4, 6, 8, 10의 짝수는 음의 수다.

이런 예비지식을 갖고 탄허 스님의 다음과 같은 글을 보자.

 

 

"二七火의 二는 陰數를 의미한 것이요 七은 陽數를 의미한 것이며 地는 水를 의미한 것이요 天은 火를 의미한 것이니 二天이라면 陰火, 즉 잠재한 불이다.

이 잠재한 火가 120년 전부터 지구의 밑으로 들어가서 천중만첩의 빙해빙산을 녹이게 된 것이다. 이 빙해가 풀려서 아무리 빨리 달려도 매일 400여 리밖에 못 오는 것인데 빙해가 하류하여 극동(일본)에까지 접한 것이 해방되던 해, 즉 乙酉年 후로 본다면 지금은 점점 漲溢하여 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이 북빙하가 완전히 풀려 무너질 때에 지구의 변화가 오는 것이다.

현금 지구가 조금 측면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반하여 그때는 지구가 정면으로 서면서 세계적인 지진과 해일로 변화가 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불란서 예언가의 세계 멸망기가 아닌가 한다. 또는 성경의 말세에 불로 심판한다는 시기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과 예언가의 말은 심판이니 멸망이니 하였지만 역학적인 원리로 볼 때엔 심판이 아니라 성숙이며 멸망이 아니라 결실인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엔 세계적인 지진, 해일로 인하여 현존 인류가 6할 내지 8할이 없어지리라고 고비 때문에 심판도 되고 멸망도 되는 것이다." 53]

 

51] 한동석(2005), p.261.

52] 이는 ‘한동석(2005), p.260~263’에 실린 ‘문왕팔괘와 정역팔괘’의 관계에 근거한 필자의 풀이다.

53]김탄허(1982), pp.429~430

 

 

‘정역팔괘도’의 안쪽에 적힌 ‘二天七地’에서 地는 水를 의미하고 天은 火를 의미하는데, 乾인 북쪽의 이면에 불기운인 二天이 잠재하면서 북극의 빙하를 녹인다는 것이다.54]

후천세계의 조짐이 보이면서 북극의 빙하가 녹기 시작한 것이 하루에 400리씩 이동하면서 1945년 8.15해방되던 해에 극동의 일본에 도달했고 결국에는 북극의 빙하가 완전히 녹게 되고 그 때 지축이 바로 선다는 것이다.

정역에서는 이를 “물이 남쪽의 하늘로 밀려들고 물이 북쪽의 땅에서 빠져나간다(水潮南天 水汐北地).”고 쓰고 있다. 그리고 이런 조짐은 탄허 스님이 이 글을 쓸 시점보다55] 120년 전부터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56] 역산하면 그 시기는 1861년으로 이 때 김일부는 스승인 연담 이운규의 咐囑을 받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였고 연담 문하의 同學이었던 東學을 창시한 최제우가 포교를 시작였다.57] 탄허의 도참설은 증산교와 ?정역?은 물론이고 동학 등 민족종교 모두를 아우른다.

 

54]?정역? 연구자 가운데 박상화(朴相火)는 이런 일반적 해석과 달리 2천은 태괘에 7지는 간괘에 배치한다. ‘2, 7’은 ‘火’를 의미하고 인체에 비유하면 심장과 같은 것인데, ‘정역팔괘’에서 실권은 ‘간, 태’에 있기 때문에 ‘간, 태’에 2천7지를 배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정역? 연구의 권위자인 이정호(1913~2004) 역시 인정한 바 있다고 덧붙인다. ‘박상화(1987), pp.89~92’ 참조.

55] ?주역선해? 말미의 識語에서 ‘辛酉寒際[신유년 추울 때]’라고 적고 있다. 1981년 겨울에 쓴 글이다.

56] “이 도서는 幸亥年에 시작된 것이니 지금부터 약 120년 전이었다.”고 쓰고 있는데, 여기서 ‘幸亥’가 ‘辛亥’의 오사라면 1851년이나 1911년이 되어야 하므로 ‘120년 전’이라는 말과 어긋난다. 그런데 말미의 識語에서 ‘辛酉年(1981년)’이라고 쓰기에 ‘幸亥’는 ‘辛酉’의 오사로 생각되며, 두 번의 ‘60갑자’ 이전의 신유년은 1861년이다.

57] 이정호(1988), pp.108~109.

 

 

후천개벽이 완성되면 지구 전체에서 바다가 3/4, 육지가 1/4인 지금과 반대로 바다가 1/4로 축소되고 육지가 3/4으로 늘어난다. 이어서 탄허 스님은 “육지는 이렇게 늘어나고 인류는 이렇게 감축된다면 ‘물이 불에서 나오는 고로 천하에 상극의 리가 없다(水生於火故天下無相克地理)’는 고인의 말씀도 여기에 적응되는 말이 아닌가 한다.”고 쓰고 있다.58] 여기서 탄허 스님이 인용한 고인은 강증산이고 그 말씀은 증산이 1909년 저술한 ?玄武經?에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물이 불에서 나온다.”는 의미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속으로 불기운(火)이 들어가 빙하가 녹아서 해일(水)이 일어나는 것을 오행으로 표현하면 ‘火生水’가 될 것이다. ‘水克火’의 원리에서 보듯이 ‘문왕팔괘’가 그리고 있는 선천세계에서는 물과 불은 상극이었는데 후천세계에서는 상생을 한다. 물과 불이 그렇듯이 인간사회에서도 대립과 다툼, 투쟁과 갈등이 사라진다. 그리고 이는 지금 23.7도 기울어져 있는 지축이 ‘정역팔괘도’에서 보듯이 바로 서기 때문이다.59] 탄허는 ‘지축의 기울기’를 인간의 심성과 연관시켜서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윤달이 생기는 이치는 지구의 축이 23도7분가량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법인데 후천시대에는 지구의 축이 바로 세워져 윤달과 윤날이 없어지며 위도와 경도가 없어집니다. 윤달 윤일이 없어지면 인간이 지닌 속성으로서의 윤도수가 없어지고 인간사회의 부정부패가 없어집니다. 윤달과 윤일이 생기는 이치를 윤도수라고 하는데 이는 중간매체 즉 과도기를 말하며 이 중간매체야말로 부정부패의 원인이며 부조리의 근본인 것입니다. 지금은 생존경쟁이라든가 생활수단 때문에 세계도처에 전쟁이나 분쟁들이 일어나고 군자를 가장한 비인격적인 선비들이 활개를 치지만 이 후천시대에는 인재 때문에 다툼이 있을 것입니다."60]

 

58] 김탄허(1982), p.30~431.

59]김탄허(1980), p.170.

60] 김탄허(1980), pp.171~172.

 

 

천문지리와 길흉화복과 인간의 심성을 연관시켜 풀어내는 역학적 통찰이다. 지축이 23.7도 기울었기 때문에 지구가 공전궤도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따라서 태양광의 입사각이 달라져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가 있는 법인데, 인간의 심성이 바르지 못한 것 역시 근본 원인은 지축의 경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후천세계가 되면 ‘정역팔괘도’에서 그리고 있듯이 건괘와 곤괘가 수직으로 바로 서고, 간괘와 태괘가 수평으로 마주 보아 계절의 변화도 없어지고 인간의 심성도 올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천문지질학적 변화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그림 5- 선천세계

 

 

 

 

그림6 - 후천세계

 

 

팔괘 가운데 艮의 방향인 한반도의 경우 ‘문왕팔괘’에서는 동북쪽에 위치했는데, ‘정역의 시대’가 되면 正東쪽으로 이동하여 ‘艮-兌’가 일직선의 축을 이루기에, 지축이 바로 서면서 후천개벽이 일어나도 가장 적은 피해를 입는 곳이다.62] 그리고 한반도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계룡산이다.63]

 

‘복희팔괘도’나 ‘문왕팔괘도’에서는 팔괘 각각의 ‘머리’ 또는 ‘근본’이 팔괘도의 안쪽을 향하고 ‘꼬리’ 또는 ‘말단’이 바깥쪽을 향하는 모습이기에 하나의 군주 밑에서 모든 백성이 복종하는 형상인데, ‘정역팔괘도’의 경우 이와 반대로 꼬리가 안에 있고 머리가 밖에 있어서 군주가 객체가 된 모습이다.64]

‘정역팔괘’에서 정동에 위치한 艮괘를 예로 들면 ‘☶’가 아니라 ‘☳’와 같이 거꾸로 그려진 것에 대한 스님의 풀이다. 따라서 일인독재의 통치시대는 선천시대의 일이고, 후천시대에는 백성이 세상의 주인이 된다.65] 또 지구가 성숙하면서 결실의 시대가 열리는데 이를 맡은 방위가 艮方이며 이는 바로 우리 한국이다.66] 식물에 적용하면 간은 열매에 해당한다. 열매는 가을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봄의 씨앗이기도 하다. 열매는 ‘끝’과 ‘시작’의 의미를 모두 갖는다.67] 따라서 간방인 한반도는 세계사의 종착점이면서 출발점도 하다.68]

 

1960년의 4.19혁명은 결실의 시대(艮方이 중심이 되는 시대)에 결실의 방위(艮方, 즉 東北方)에서 결실의 인종(少男, 즉 젊은이)에 의해 일어났으며69] 세계사에서 청년학생의 힘으로 정권이 붕괴된 일은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다. 4.19혁명 이후 학생봉기가 유행병처럼 번져서 선진제국의 스튜던트 파워를 형성하게 된다.70] 60년대와 70년대 초에 들불처럼 일어났던 서구 대학생들의 저항문화운동(Counterculture Movement)의 발화점이 한국의 4.19혁명이었다는 통찰이다.71] 이 이외에도 일본은 巽方인데 ?주역?에 의하면 손은 “들어간다.”는 ‘入’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후천세계가 열리면서 일본 영토의 2/3 가량이 바다 속으로 침몰할 것이다.72]

 

61]김탄허(1980), p.172.

62] 김탄허(1980), p.169 ; 장화수(1996), p.88.

63]김탄허(1980), p.169.

64]김탄허(1982), p.431.

65]김탄허(1982), pp.431~432.

66] 김탄허(1982), p.432.

67]김탄허(1982), pp.432~433.

68]“만물이 끝나고 만물이 시작되는 것 가운데 간(艮)보다 더한 것은 없다(終萬物始萬物者莫盛乎艮).”는 ?周易?, 「說卦傳6」의 문구에 근거한 통찰로, 김일부가 ‘정역’의 이치에 대한 힌트를 얻은 문장 중 일부분이다

69]김탄허(1982), p.433 ; 김탄허(1980), p.156.

70]김탄허(1980), p.157.

71]미국 저항문화운동의 핵심 인물인 잭 뉴필드(Jack Newfield: 1938~2004) 역시 60년대에 미국에서 학생운동이 일어났던 요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 가장 직접적인 인스피레이션(동인)을 하나만 지적한다면 그것은 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한 한국의 4.19혁명이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한겨레신문(2009.07.16입력)’의 ‘정경모, 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칼럼에서 재인용.

72]김탄허(1980), p.163.

 

 

탄허 스님의 이러한 예언들이 ?정역?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이와 아울러 스님은 역사적 사건과 時流에 대해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일간신문의 경우 심지어 ‘광고’에 이르기까지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샅샅이 읽었다고 한다. 역학으로 미래를 예측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 ‘象의 변화’를 수집하고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스님은 6.25사변을 예견한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개미떼가 자기들끼리 싸움질을 해서 수백 마리씩 죽어 있는 것을 보곤 했습니다. 법당에서도 그렇고 이 [상원사의] 中台 뜰에서도 그렇고 그런 게 보이는 것 아닙니까? 하늘은 하늘의 상을 보이고 땅은 땅의 상을 보이고 사람은 사람의 상을 보이고, 꼭 사람의 상만 보는 것이 관상이 아니거든요. 짐승들도 지진을 예지한다는데, 하물며 그런 큰 난리의 조짐은 다 보이게 되는 겁니다.74]

 

 

개미떼가 동족상잔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동족상잔의 6.25사변을 예감했다는 답이었다. 또 지구의 지질학적 미래를 예견하면서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인간의 육체는 지구의 표상이며 마찬가지로 우주의 표상이기도 한데 이는 마치 오장 육부가 천과 지를 나타낸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하여 여자의 성숙기는 곧 지구의 성숙기와 같다는 원리가 됩니다. 최근 세계적인 풍조를 보면 여자들이 몸을 드러내는 의상을 부끄러움 없이 하고 다니는데 이는 곧 지구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조짐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象이라 할 것입니다.75]

 

72] 김탄허(1980), p.163.

73] ‘김탄허(2000, 초판 1997), p.218’에서 자신이 예지가 ?정역?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힌다

74] 김탄허(2000), p.163.

75] 김탄허(1980), p.173.

 

 

?주역?에 의하면 天은 陽이고 男子이며, 地는 陰이고 女子다. 인간은 지구의 표상이라서 인간의 몸에 지구의 변화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데 최근 들어 여자들이 속살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은 곧이어 지구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을 예고하는 象이라는 것이다. 즉, 지구 이면에서 일어나는 ‘정역팔괘’의 ‘속살’이 곧 현실화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스님은 자연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변화를 ?주역?이나 ?정역? 등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象(相)’으로 ‘觀’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노티라스’ 잠수함이 북극의 얼음 밑을 통과하여 아이슬랜드에서 소련의 백해로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정역?에서 보듯이 북극에 ‘불기운’이 들어간 증거로 삼았으며, 76]종말과 관련한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1503~1566)의 예언이나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발생한 지진들을 대변혁의 조짐으로 간주하였고,77] 계룡산이 지구의 축이라고 말한 일본 학자 유키사와(行澤)의 발언에 주목하였다78]. ?주역?에 근거한 역학적 지식의 토대 위에서 세속에서 일어나는 정치, 사회, 문화 형상을 낱낱이 파악하고 천문기상의 변화를 관찰한 후 이 가운데 유의미한 것들을 추려내어 ?정역?이나 강증산의 가르침, 또는 ?정감록? 등과 연관시켜서 미래를 예고하는 象으로 삼았던 것이다.79]

 

76]김탄허(1980), p.167

77]김탄허(1980), p.168.

78]김탄허(1980), p.169.

79]?정감록?에 대해서는 “?정감록? 같은 것을 다 믿어선 안됩니다.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지요. ?정감록?의 필자는 국가나 민족의 앞날을 근심하여 경고하고 예언한 게 아닙니다. 자기 자손들의 보전을 위해서, 난이 일어나면 이런 저런 데로 피하라, 이런 식이지요.”라고 비판한다. 김탄허(2000), p.175.

 

 

3. 탄허의 도참설, 그 虛와 實에 대한 종합적 분석

 

탄허 스님은 국가와 국가 간의 정치적 관계 역시 ?주역?의 괘상으로 풀기도 하였다. 1960년에 미국이 월남전(1960~1975)에 적극 관여하기 시작할 때 “미국은 월남에서 망신만 당하고 물러나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는데80], 월남전은 탄허스님의 예언과 같이 미군의 철수로 끝이 났다. 스님은 그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풀었다. 월남은 주역의 離( ☲)방에 있는 나라이고 미국은 兌(☱)방이다. 離는 陰爻가 가운데 위치하기에 中女를 뜻하기도 하고 방위로는 남방, 五行에서는 火에 해당한다. 兌는 음효가 말단에 위치한 少女를 뜻하기도 하고 방위로는 서방, 오행으로는 金에 해당한다. 따라서 ‘어린 소녀’와 ‘장성한 중녀’가 싸우면 중녀가 이기게 되어 있고, 쇠붙이[金]가 불[火]에 들어가면 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81]

 

또 그 당시 소련과 중공은 같은 공산권이었지만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소련은 中男인 坎(☵)방이고 중공은 長男인 震(☳)방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도 남자끼리 서로 대립하듯이 중공과 소련은 사이가 나쁘지 않을 수 없다는 풀이다. 월남은 중공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반면에 소련과는 친밀했는데, 이는 월남이 중녀이고 소련이 중남이라서 음양이 잘 조화되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는 艮(☶)방으로 少男을 의미하는데, 少女를 의미하며 兌(☱)방에 있는 미국의 기운이 들어와야 국운이 번성한다. 艮은 열매이기도 한데 오행 가운데 ‘金의 계절’인 가을82]이 되어야 열매가 익는 것과 같은 이치다.83]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이렇게 각 나라를 팔괘 각각과 연관시킨 근거는 ‘문왕팔괘도’일 것으로 짐작된다. 자연환경으로 볼 때 艮은 山, 兌는 호수(澤), 巽은 바람(風)을 의미하는데, 사실 간방인 한반도에는 산이 많고, 태방인 북미대륙에는 호수가 많으며, 손방인 일본에서는 태풍이 잦다. 위치로 보더라도 중국대륙은 동방, 한반도는 동북방, 일본은 동남방, 월남은 남방, 소련은 북방, 미국은 서방에 있기에 이들 나라들의 방위를 차례대로 ‘문왕팔괘도’의 震, 艮, 巽, 離, 坎, 兌의 방위라고 규정하는 것이 그럴 듯하다.84]

 

80]김탄허(1980), p.161.

81]김탄허(1980), pp.161~162 ; 김탄허(2000), p.165.

82]봄(木), 여름(火), 가을(金), 겨울(水). 계절의 변화를 체험하는 인간(土)으로 중앙에 위치한다.

83]김탄허(1980), p.162.

84]보다 구체적으로 지목하면, 낙양(洛陽) 부근의 ‘낙수(洛水)’를 중심으로 삼는 문왕팔괘도에서 태(兌: ☱)방은 워싱턴, 뉴욕이 있는 미국의 북부와 캐나다를 포함한 북아메리카의 북부에 해당할 것이다(호수[澤]가 많은 곳), 곤(坤: ☷)방은 북미대륙의 남부와 남아메리카 대륙, 이(離: ☲)방은 월남, 인도, 아프리카 등 열대지방, 건(乾: ☰)방은 북서부에 위치한 유럽대륙에 해당할 것으로 짐작된다[‘예불문’의 서건동진(西乾東震) 풀이에서 보듯이, 전통적으로 인도(印度)를 건방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일 것이다].

 

 

이러한 ‘문왕팔괘’의 질서가 ‘정역팔괘’로 바뀌고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의 이 시대라는 것이다. 탄허스님의 예지가 일반적인 예언과 다른 점은 노스트라다무스나 에드가 케이시(Edgar Cayce: 1877~1945)와 같이 ‘영감’을 통해서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주역?과 ?정역? 등의 ‘易學 원리’에 근거하여 예지를 토로한다는 점이었다. 현대의 자연과학이 그렇듯이 객관화 하여 남에게 전수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스님은 예지의 근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경이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체계적인 것이 없습니다. 이론의 뒷받침이 없습니다. 어째서 인류가 멸망하느냐, 어떻게 멸망하느냐, 멸망한 뒤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데 대해서 합리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김일부 선생의 ?정역?은 이런 문제를 밝혀주고 있으며, 누구도 부인 못할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85]

 

"성경에는 멸망의 날이 어쩌니까 온다, 온 뒤에는 어떻다라는 체계가 없어. 이에 비해 易學의 원리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야.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실증이 역학에는 있어요. …… 특히 80년 전에 미래역으로 밝혀진 ?정역?의 이치는 후천으로 자연계와 인간의 앞날을 소상하게 예견해주고 있어."86]

 

"역학의 원리는 복희, 문왕, 주공, 공자 등 4성인이 저수한 열네 권의 책에서 두루 알 수 있지만, 우리 나라의 김일부 선생이 저술한 ?正易?이 압권이지요. 정역에 따르면 앞으로 유, 불, 선이 한 덩어리가 되고, 한국이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갖가지 진통이 따르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예수는 불의 심판, 노스트라다무스는 지구멸망으로 예언하고 있지만, 우리의 역학만큼 체계적이지는 못합니다. 역학은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으로 뒷받침되고 있지요".87]

 

85]김탄허(2000), p.168. 조갑제 기자와의 대담

86]김탄허(2000), p.216~217. 김지견 박사와의 대담.

87]김탄허(2000), p.266.

 

 

앞에서 ‘복희팔괘도’는 天道를 주로 밝히고, ‘문왕팔괘도’는 人道를 주로 밝히며, ‘정역팔괘도’는 地道를 주로 밝힌 것이라는 스님의 설명을 소개한 바 있다. 즉 ‘정역팔괘’는 앞으로 다가올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를 밝힌 八卦圖인 것이다.

정역에 근거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스님의 발언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예언들

 

①한반도의 서해와 북해에 연륙이 수천리가 드러나고 만주가 우리 땅이 된다(?피안으로?, p.157)88] ;

서부 해안에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하고 동남해안쪽 100리 이상이 피해를 입는다(?부처님이?, p.169)89] ; 다른 나라만은 물에 잠기면서 반쪽이 되지만 우리나라만은 강토가 늘어난다.

서해가 육지가 되면서 만주의 일부가 우리 땅이 된다(?부처님이?, p.266).

중소 전쟁, 또는 중국의 균열로 요동의 일부가 우리 영토에 포함된다(?부처님이?, p.169)

 

②미국은 전체가 연못으로 변한다(?피안으로?, p.157).

 

③일본은 2/3가 바다 속으로 침몰한다(?피안으로?, p.157) ;

일본은 국가를 유지하기도 너무 작은 영토만 남아서 한국의 영향권 속에 들어온다(?부처님이?, p.169) ; 일본은 巽方인데 巽은 주역에서 入이라고 푼다(?부처님이?, p.163).

 

④기울었던 적도와 환도가 반듯하게 되어 윤달과 윤일이 없어진다(?피안으로?, p.156) ;

지축이 바로 서면 윤달과 윤도수가 없어지고 인간사회의 부정부패가 없어진다(?피안으로?, pp.171~172).

 

⑤세계의 정신적 지도자가 한국에서 나타난다(?피안으로?, p.157).

 

⑥현재 23.7도 기울어져 있는 지축이 바로 설 것이다(?부처님이?, p.170) ;

윤달과 윤날이 없어진다(?피안으로?, p.95).

 

⑦인구의 60~70%가 소멸하고 육지의 면적이 3배로 늘어난다. 물이 3/4 육지가 1/4였던 것이 물이 1/4 땅이 3/4로 바뀐다(?부처님이?, p.170).

 

⑧지진이 오다가도 한반도에서 그친다. 간은 산이며 그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부처님이?, p.170) ; 우리나라는 간방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요동이 적고 해일의 피해도 극히 적을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세계적으로 제일 좋아진다(?피안으로?, p.120).

 

⑨처녀가 초조 후에 인간적으로 성숙하여 극단적 감정이 없어지듯이 지구상에서 극한과 극서가 없어진다(?부처님이?, p.171).

 

 

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예언들

 

①한반도의 서해와 북해에 연륙이 수천리가 드러나고 만주가 우리 땅이 된다(?피안으로?, p.157) ; 서부 해안에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하고 동남해안쪽 100리 이상이 피해를 입는다(?부처님이?, p.169) ; 다른 나라만은 물에 잠기면서 반쪽이 되지만 우리나라만은 강토가 늘어난다. 서해가 육지가 되면서 만주의 일부가 우리 땅이 된다(?부처님이?, p.266). 중소 전쟁, 또는 중국의 균열로 요동의 일부가 우리 영토에 포함된다(?부처님이?, p.169)

②미국은 전체가 연못으로 변한다(?피안으로?, p.157).

③일본은 2/3가 바다 속으로 침몰한다(?피안으로?, p.157) ; 일본은 국가를 유지하기도 너무 작은 영토만 남아서 한국의 영향권 속에 들어온다(?부처님이?, p.169) ; 일본은 巽方인데 巽은 ?주역?에서 入이라고 푼다(?부처님이?, p.163).

④기울었던 적도와 환도가 반듯하게 되어 윤달과 윤일이 없어진다(?피안으로?, p.156) ; 지축이 바로 서면 윤달과 윤도수가 없어지고 인간사회의 부정부패가 없어진다(?피안으로?, pp.171~172).

⑤세계의 정신적 지도자가 한국에서 나타난다(?피안으로?, p.157).

⑥현재 23.7도 기울어져 있는 지축이 바로 설 것이다(?부처님이?, p.170) ; 윤달과 윤날이 없어진다(?피안으로?, p.95).

⑦인구의 60~70%가 소멸하고 육지의 면적이 3배로 늘어난다. 물이 3/4 육지가 1/4였던 것이 물이 1/4 땅이 3/4로 바뀐다(?부처님이?, p.170).

⑧지진이 오다가도 한반도에서 그친다. 간은 산이며 그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부처님이?, p.170) ; 우리나라는 간방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요동이 적고 해일의 피해도 극히 적을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세계적으로 제일 좋아진다(?피안으로?, p.120).

⑨처녀가 초조 후에 인간적으로 성숙하여 극단적 감정이 없어지듯이 지구상에서 극한과 극서가 없어진다(?부처님이?, p.171).

 

 

⑵ 일부 실현된 것으로 보이는 예언들

 

①소규모의 전쟁이 계속 일어난다(?피안으로?, p.217).

②지진으로 인해서 핵폭발이 일어나서 핵보유국, 핵발전소를 가진 나라들은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피안으로?, p.217)

③지축 속의 불기운이 북극에 들어가서 빙산이 녹는다(?피안으로?, p.217) ; (?부처님이?, p.170).

④대양의 물이 불어서 하루 440리 속도로 흘러내려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을 휩쓴다(?피안으로?, p.217).

⑤유불선이 하나가 되고 종교 간의 벽이 무너진다(?피안으로?, p.82 ; p.182).

⑥우리나라에 간도수가 와 있기에 세계사의 모든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시작하고 종결합니다(?부처님이?, p.157).

⑦세계적인 지진과 해일이 일어날 것이다(?피안으로?, p.120).

 

 

⑶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발언들

 

①간방인 우리나라에 간도수가 와서 4.19가 일어났고 그 이후 전세기적인 유산들이 서서히 청산되어 가고 있다(?부처님이?, p.158) ; 120년 전부터 艮度數가 들어왔다(?피안으로?, p.150).90]

②월남전에서 미국이 패배할 것이다.

③21세기를 전후하여 북한이든 남한이든 정치인 가운데 서해 사람들이 절반을 차지한다. 서해 사람이란 즉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평안도 사람이다(西海人半朝)(?피안으로?, p.189).

④카터 행정부에서 미군철수를 주장했을 때 절대 미군은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함.91]

 

 

⑷ 빗나간 예언들

 

①곧 남북이 통일될 것이다.

②1980년 전후하여 60대 이전의 사람들은 만주 땅이 우리 것이 되는 것을 볼 것이다.

③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1999년 이전에 지축이 바로 서는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이다.

 

 

?정역?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예언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⑸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 예언들

 

①6.25사변 발발을 예감하고 통도사로 이주

②울진, 삼척 공비 사태를 예감하고 번역 원고를 옮김.

③마오쩌뚱(毛澤東)의 사망(1976년 사망)

④박정희가 1978년 金氣로 인해서 사망할 것이라 예언(그러나 1979년 사망)

⑤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전에 얼마 후 많은 희생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

⑥10.26이후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이른 바 ‘3김’이 대권을 향하여 각축을 벌일 때, 셋 모두 안 되고 제3의 인물이 집권할 것이라고 예측함

 

 

⑹ 빗나간 예언

 

①북한의 김일성이 1977년 4월4일 사망할 것이다.

②우리나라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상으로 많은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으며 이를 개발하여 부유한 나라가 될 것이다.

 

88]이하 예언들의 경우 출전이 ‘김탄허(2000), ?피안으로 가는 사자후?’인 경우 위와 같이 ‘?피안으로?, p.~’로 줄여서 밝힌다.

89]이하 예언들의 경우 출전이 ‘김탄허(1980), ?부처님이 계신다면?’인 경우 위와 같이 ‘?부처님이?, p.~’로 줄여서 밝힌다.

90]원문은 ‘20년’이나 오타이기에 ‘120년’으로 수정한다.

91]미국의 카터(1977~1981) 대통령이 1977년 3월9일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발표한 후 1979년 7월1일에 방한함.

 

 

예언이나 도참을 대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일이 발생한 다음에 해석을 통해 “그것이 그런 뜻이었다.”라는 식으로 견강부회하는 해석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탄허 스님도 말했듯이 김일부의 ‘정역팔괘’를 신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8.15해방 전부터 “6.6 7.7에 해방되고 3.3 4.4에 통일된다.”는 말이 떠돌았는데, 이 중에 이미 일어난 ‘6.6 7.7’의 경우 ‘6.6’은 ‘6×6=36’이기에 ‘일제강점 36년’을 의미하고 ‘7.7’은 양력 8월15일이 음력으로 7월7일이기에 해방의 날짜를 의미하여 이미 정확하게 실현되었다고 주장한다.92] 그런데 ‘통일의 날’인 ‘3.3. 4.4.’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異論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2010년 말에 이것이 단기 4343년인 2011년을 의미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곧 통일이 임박했다고 보았으나 2011년은 그냥 지나갔다93]. 다른 사람은 ‘3×3=9’이기에 ‘3.3’은 9번째 정권인 노무현 정권을 가리키고, ‘4.4’는 한국이 중심국이 되면서 주변의 4대 강국이 남북통일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었지만 이 역시 이미 지나간 일이다.94]

 

92] http://blog.daum.net/revelation2/161

93] http://www.hanajang.com/BBS/read.html?article=743&key=&keyfield=&number=10815&page=21

94]http://blog.naver.com/cys2007?Redirect=Log&logNo=140007067699

 

 

一卽一切, 一中一切의 이치가 세상을 지배하기에 ‘하나의(一) 사태’에 대해서도 ‘무한(一切)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었을 때, 바로 다음 날 이름 풀이가 항간에 떠돈 적이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朴: 十八년간의 정치를 점(卜)쳐 보니 [十+八+卜= 朴]

正: 一인 독재가 끝나고(止) [一+止= 正]

熙: 자기(己) 신하(臣)에게 빵빵빵빵(灬) 총(火, 灬)을 맞아 죽었다. [臣+己+灬 = 熙]

 

박대통령을 시해하고 당시 차지철 비서실장을 살해한 金載圭의 이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풀이가 있다.

 

⑴崔圭夏의 圭를 실어올(載) 사람

⑵창(戈)으로 車씨를 흙(土)으로 보내지만, 흙(土)으로 보낸 일도 다시 흙(土)으로 가는 자.

 

박정희와 김재규의 이름에 그 운명이 예고되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무엇이든 그럴 듯하게 해석할 수 있는 법이다. 화엄에서 가르치듯이 하나의 의미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해방 전에 남북통일을 예언한 도참설인 ‘3.3 4.4’의 경우도 얼마든지 그럴 듯하게 해석할 수 있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간 날이 1998년 6월16일이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기 소르망(Guy Sorman: 1944~)’은 ‘남북 간에 육로를 개척한 소떼 사건’에 대해서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은 정주영 회장은 감히 누구도 생각 못했던 작품을 창작한 전위예술가와 같다. 그것은 정치·경제적 이벤트가 아니라 예술적 행위였다”95]고 평가하면서 ‘20세기 마지막 전위 예술’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96]

그런데 ‘3.3’은 ‘3+3= 6’을 의미하며, ‘4.4’는 ‘4×4= 16’이기에 ‘3.3 4.4’는 6월16일을 의미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해인 1945년을 일제가 한반도를 침탈한 1910년 이후 36년째 되는 해로 계산하듯이 1998년은 해방 후 44년째 되는 해이기에 ‘4.4’는 이를 의미하고, 98년에서 9는 ‘3×3= 9’이기에 ‘3.3’, 8은 ‘4+4= 8’이기에 ‘4.4’에 해당하여 1998년 6월16일이 통일의 첫 걸음이었으며 이는 “3.3 4.4에 통일된다.”는 도참설에 예견되어 있었다고 풀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얼토당토않다.

위에서 예로 든 박정희와 김재규의 이름풀이에서 보듯이 이미 지난 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뭇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풀이들은 모두 나중에 가져다 붙인 것일 뿐이다.

一卽一切, 一中一切의 이치가 세상을 지배하기에 그 어떤 사건이나 사태에 대해서도 무한한 ‘일체’의 의미 가운데 ‘하나’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제시할 수 있는 법이다. 우리가 예언이나 도참을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점이다.

 

95]김용원(2002), p.35.

96]중앙일보(1998.06.29).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정감록?의 도참설 등이 오랜 생명력을 갖는 것은 그 ‘모호한 표현’ 때문일 것이다. 예언이나 도참이 모호할수록 나중에 그럴 듯한 의미를 부여하기가 더 쉬워진다. 그런데 탄허 스님의 도참설은 대부분 ‘단정적’이었으며, 빗나간 것도 있지만 많은 내용이 그대로 실현되었다.

이를 불교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 탄허 스님의 도참설을 포함하여 더 넓게는 사주팔자를 보고서 개인의 인생을 예측하는 推命學에 대해서 불교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唯識學의 業種子 이론에 근거하여 이를 풀어 보자.

 

우리는 완전히 자유로운가 아니면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기계적인가? 다시 말해 우리의 미래는 완전히 열려 있는가 아니면 미래의 모든 일들은 결정되어 있는가? ‘자유의지론’과 ‘결정론’의 대립이다. 철학의 난제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불교의 인과응보설에 비추어 보면 우리의 미래는 완전히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우리의 미래, 모든 이들의 미래는 과거나 현재의 행위에 의해서 결정된다. 과거에 짓거나 현재에 짓는 업에 따라서 미래에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

지금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각각의 마음 속 깊은 곳, 즉 ‘阿賴耶識들’에는 과거, 또는 전생에 지었던 업의 씨앗, 즉 업종자가 간직되어 있다. 선업의 종자도 있고 악업의 종자도 있다. 이런 업의 종자들이 언젠가는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이다. 이런 업종자가 미래에 언젠가 길흉화복의 과보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나 개인의 미래는 물론이고, 개인들의 총합인 전 인류의 미래도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다. 그러나 열매가 익을 때 일조량과 강우량, 비료 등의 조건에 따라서 결실의 시기와 상태가 달라지듯이, 아뢰야식의 ‘마음 밭’에 파종된 업종자는 그 후 이어지는 ‘선악업의 熏習’이나 ‘참회를 통한 淨化’ 여부에 의해 발아 여부와 시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推命學으로 개인의 운명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는 각 개인의 업종자를 읽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미래에 대한 예언, 또 개인들의 총합인 국가나 인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면, 이는 미래에 發芽할 업종자가 각 개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직관으로 운명을 점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마음에 간직된 업종자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리라. 만일 그런 학문이 가능하고 그런 직관력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 업종자는 불변의 것이 아니다. 그 이후에 짓는 새로운 업과, 번뇌, 참회기도 등에 의해서 성장이 달라지며 그에 따라 미래에 받을 길흉화복의 과보가 변화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악업이 계속 축적되면 더 빨리 더 큰 불행을 겪을 수도 있고, 참회를 통해서 과거의 악업을 정화하면 악업의 씨앗이 말라버려서 앞으로 받을 불행이 감소하거나 없어질 수도 있다. ‘악업을 참회하는 종교생활’이 유의미한 이유이고, 예언과 예측이 적중하는 경우도 있고 빗나갈 수도 있는 이유다.

 

탄허 스님의 예언은 ?정감록?이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달리 단정적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모호한 예언’의 경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耳懸鈴鼻懸鈴)’식으로 얼마든지 견강부회하여 풀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풀이는 대부분 事後에 일어나기에 ‘박정희’의 이름을 풀듯이 너무나 그럴 듯하게 ‘解夢’할 수가 있다. 수많은 예언서나 도참서가 ‘엉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비결이다. 그러나 ‘단정적 예언’의 경우 위험부담이 크다. 나중에 그 실현여부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탄허 스님은 당신의 학문에 대해서 정직하셨다.

 

 

4. 탄허의 도참사상 - ‘善意 가득한 當爲의 미래학’

 

탄허 스님의 학문을 대하면, 티벳불교의 초석을 다진 대학장 쫑카빠(Tsong Kha Pa: 1357~1419)의 방식이 생각난다. 쫑카빠는 마치 마이더스(Midas)와 손과 같이 그 어떤 가르침이라고 하더라도 배격하지 않고 불교의 정법으로 재해석하여 ‘道次第’의 시스템으로 활용하였다. 예를 들어 顯敎의 典範인 ?菩提道次第論?의 三士道 수행체계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신앙이나, 요가 명상이나 자이나교의 수행 모두를 포용하여 ‘하사도’ 체계에 편입시킬 수 있다. 또 쫑카빠는 티벳고원의 전통적 장례풍습인 鳥葬에 대해서도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여 성스러운 불교적 장례의식으로 탈바꿈시켰다. 조장은 ‘육신에 대한 집착에 벗어나게 해 주는 不淨觀의 수행’이면서 ‘배고픈 중생에게 먹이를 보시하는 자비행’으로 승화되었다. 티벳의 전통적 샤마니즘인 ‘뵌(Bön)敎의 내림굿’은 ‘밀교의 구루요가(Guru Yoga)’로 改過遷善하였다. 탄허 스님의 방식도 이와 같았다. 스님은 ?논어?, ?맹자?, ?주역? 등의 유가경전은 물론이고 ?노자?, ?장자? 등의 도가경전, 僞書인 ?도장경?까지 불교 밖의 외전들을 모두 포용하여 불교를 알리기 위한 보조문헌으로 삼았다. ?정역?과 증산 강일순의 가르침 그리고 ?정감록? 심지어 서양의 노스트라다무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포용하여 세속 정치의 향로를 가리키는 指南으로 再해석함으로써, 개인과 민족과 인류가 모두 공유할 수 있는 미래의 방향과 희망을 제시하였다.

 

서양과학의 위력에 눌려 지금은 학문의 주류에서 밀려나 있지만, 조선시대에 설치되었던 행정기구인 ‘觀象監’에서 보듯이 과거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개인은 물론이고 나라의 정책을 결정할 때 易學이나 음양오행설, 풍수지리학 등에 크게 의존하였다. 이들 학문은 동아시아의 자연과학이었다. 韓東錫(1911~1968)은 음양오행설의 특징에 대해서 “희랍의 자연철학과 같이 물질단위만을 가지고 삼라만상의 유동하는 변화를 측정하려는 것이 아니고 정신이나 생명을 가진 살아 있는 물질의 동정하는 모습을 측정할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법칙으로 사물을 측정하는 것”97]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서양과학이 ‘존재의 과학’이라면 동양의 과학은 ‘의미의 과학’이었다. 서양의 과학이 그 근거를 ‘객관적 존재’에 둔다면, 동양의 과학에서는 ‘주관적 의미’를 중시하였다.98]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97] 한동석(2001, 초판 1966), p.59.

98] ‘마지막 남은 동양의 과학’인 한의학 역시 ‘의미의 의학’이다. 최근 현대과학의 영향으로 한의학조차 ‘존재의 과학’으로 변질되고 있는데, 한의학이 발달하려면 ‘의미의 의학’이라는 본분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탄허 스님은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나무라셨다99]. 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전통적 이론이 옳다고 말씀하면서 동그라미는 직경의 세 배로 둘레가 되기에100] 하늘은 ‘陽’이고 네모는 한 변의 네 배로 둘레가 되기에 ‘陰’이라는 설명을 덧붙이셨다. 하늘의 수는 홀수인 ‘3’이고 땅의 수는 짝수인 ‘4’인데 주지하듯이 홀수는 양을 의미하고 짝수는 음을 의미한다. 탄허 스님이 지구의 외형이 둥글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스님의 모든 통찰은 ‘주관적 의미’를 중시하는 ‘동양과학의 원칙’에 충실하였다.

 

서양의 과학이 귀납적이라면 동양의 전통과학은 연역적이다. 서양과학에서는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원칙을 발견한 후 그에 근거하여 세상일을 해석하고 앞일을 예측하는 반면 동양과학에서는 역학과 음양오행설, 풍수지리의 원리를 먼저 익힌 후 그 틀에 맞추어 정책을 결정하고 미래를 점친다. 전 국회의원 공성진(1953~)은 ‘탄허 대종사 기념 박물관 기공식’에서 탄허 스님에 대해서 ‘동양의 미래학자’라고 평한 바 있다.101] 사실 ‘탄허 스님의 도참’은 일종의 미래학(Futurology)이었다. 신문, 잡지 등에 실렸던 많은 사람들과의 대담에서도 확인될 뿐만 아니라, 일간신문의 ‘광고면’까지 샅샅이 읽었다는 일화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스님 역시 여느 미래학자와 다름없이 자료를 분석하고 트렌드(Trend)를 조사하였다. 그러나 ?주역?이나 음양오행설에서 기술하는 ‘역학의 원리’에 근거하여, 김일부의 ?정역?에 제시된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를 풀어가면서, 민족과 국가,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예견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미래학과 차별된다. 스님이 취합한 자료와 트렌드는 ‘의미의 과학’인 ‘易學’의 진리성을 입증하는 사례들이면서 ‘?정역?에서 확언하는 천지개벽’의 조짐을 나타내는 ‘象’들이었다.

 

혹자는 스님의 도참적 발언들이 불교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고 서두에서 인용했듯이 이는 ‘術’일 뿐이라는 점을 스님 역시 잘 알고 계셨다.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관세음보살의 32應身을 말한다. 濟度의 대상이 있을 때 그 근기에 應하여 부처의 몸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居士나 宰相, 어린이나 금강살타(Vajrasattva) 등 상대의 근기와 상황에 따라서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그를 제도한다는 것이다.102] 관세음보살의 ‘善巧方便’에서 보듯이 불교적 사회참여방식에 어떤 定形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스님들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지계청정하고 준엄한 율사, 화두를 들고 長坐不臥 하는 선승, 교학 연구에 매진하는 학승,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자비보살, 글로써 가르침을 전하는 문필가, 우리사회의 잘못을 감시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NGO, 마음의 아픔을 치료하는 상담사 …. 탄허 스님의 시대적 역할 역시 그와 같았다. 千手觀音의 한 손이었다.

 

지금도 많은 종교인들이 도참적 발언들을 쏟아낸다. “곧 지구의 종말이 온다.” “내 종교를 믿는 사람만 구원받을 것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공포를 퍼트려서 자기 종교의 勢를 불린다. 그러나 탄허 스님의 예언은 이와 달랐다. ?정역?에 근거하여 지질학적 격변을 예고했지만, 절망의 예언이 아니라 희망의 미래가 담겨 있었다.

 

 

“앞으로 도덕을 갖춘 인재가 통치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통치자가 종이 되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로 이어지는 한국의 정치적 암흑기에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판과 같았다.

 

“남북은 곧 통일될 것이다.”

“서해의 대륙붕이 솟아올라 우리 국토가 넓어질 것이다.”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중심국이 될 것이다.”

거열형의 형국으로 4대강국의 틈에 끼어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암울한 민족의 앞날을 비추는 서광과 같은 말이었다.

 

 

“儒佛仙이 하나가 되고 종교 간의 벽이 무너질 것이다.”

확신에 찬 발언으로 우리 사회의 종교인들이 나아갈 방향을 가리켰다.

 

미래를 낙관하면서 남북의 대립이 아니라 통일을, 사회의 분열이 아니라 화합을 예측하는 스님의 말씀들은, 예언 이전에 우리 사회 행복한 미래를 위해 구성원들에게 던져진 ‘명령’과 같았다.

스님의 도참사상은 단순한 예언을 넘어서 개인과 나라와 인류의 앞길을 제시하는 ‘善意 가득한 當爲의 미래학’이었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인 1970년대, 세계 어느 곳의 그 누구도 ‘Korea’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절, 스님은 우리 사회를 향해 다음과 같이 獅子吼를 내리셨다.

 

 

“나는 분명히 말해서 5천년 동안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의 불행한 역사는 멀지 않아 종결될 것이고 희망과 서광에 찬 새로운 민족사가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103]

 

 

스님의 도참설은 이를 들었고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행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스님이 열반하시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는 동물적 힘의 통치인 ‘人治의 시대’가 종식을 고하고, 百姓이 주인이 되는 ‘법치의 시대’를 훈련하고 있다. ‘소떼 이벤트’로 남북 간의 육로가 개척된 이후, 잠시 꽃샘추위를 겪고 있지만 통일의 조짐이 점점 짙어진다.

스님께서 ‘지구의 중심’이라고 갈파하신 계룡산 주변으로 행정수도가 옮겨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韓流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퍼진다. 서양의 金風이 艮方에 불어서 익은 ‘문화의 열매’다.

‘艮方인 한국’의 기업 ‘삼성’이 ‘兌方인 미국’의 기업 ‘애플’과 ‘因陀羅網 통신기’인 스마트폰을 놓고서 한 판 싸움을 벌인다. ‘一微塵中含十方’하는 ‘화장장엄세계’의 주도권을 놓고서 ‘艮’과 ‘兌’가 맞상대하며 벌이는 角逐戰이다. 마치 ‘정역팔괘도’에서 그리듯이 ….

FTA(한미자유무역협정)로 간방과 태방을 가르던 ‘돈의 장벽’이 사라졌다. 내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이 내 돈이다. 간방의 少男과 태방의 少女가 혼례를 치르고 부부가 되었다.

‘이념’으로 분별할 때는 참으로 불편한 현실도 있지만, 국내정치와 국제사회의 대세는 스님의 예언처럼 흘러가고 있다. 30여 년 전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그러나 스님의 도참설은 ?법화경?의 ‘삼거화택의 비유’에 등장하는 ‘세 가지 수레(三車)’였다. 불난 집에서 아이들을 나오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제시한 ‘양이 끄는 수레(羊車)’와 ‘사슴이 끄는 수레(鹿車)’와 ‘소가 끄는 수레(牛車)’였다. 깨달음이나 도덕을 추구하기보다는, 길흉화복에 웃고 울며, 세속에 恨을 품고 愛憎 속에서 살아가는 愚衆을 이끌기 위한 善巧方便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스님이 제시한 세 가지 수레에서 내려서, ‘흰 소가 끄는 수레(白牛車)’에 오르는 일이다. 禪과 敎를 겸수하셨던 스님 가르침의 精髓를 따르는 일이다. 요컨대 우리 사회와 인류를 善導할 도덕적 인재를 키우고, 누구나 주인공이고 어느 곳이나 불국토인 화장장엄세계로 우리 사회를 가꾸는 일이다.

 

99]상기한 ‘각주29’에 소개한 최창규 교수와의 만남에서 있었던 스님의 대답이었다.

100] ‘원주의 길이 = 직경 × π(3.14159…)’에서 원주율(圓周律)인 ‘파이(π)’를 의미함.

101]BTN 홈페이지(2012.03.09).

102] 묘법연화경(T9), pp.57a~b.

103]김탄허(1980),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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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Abstract

 

Venerabl Tan Heo's Foretelling

- It's Philosophical Bases and Significance -

 

Kim, Sung Chul

Dongguk University in Gyeongju

 

There was a brilliant Buddhist monk who was expert in East Asian philosophy, history, Ethnic religions, Yin-Yang(陰陽) theory and Fengsui(風水). His Dharma name is Tan Heo(呑虛: 1913~1983). He studied and practiced in Gangwondo. In 1972 he moved to Seoul, the Capital of South Korea. Until the year of his death(1983), he met many professors, students, officials and politicians. He played a role not only as a Buddhist preacher but also as a Great Prophet. He was influenced strongly by Korean Ethnic religion Bo Cheon Ggyo(普天敎) and Confucian scholar Choi Ik Heon(崔益鉉), and many of his prophecies were based on Jeong Yeok(正易) of KIm, Il Bu(金一夫). He talked on the promising future of Korea. Many people were interested in his foretelling. He played a role as a Buddhist preacher in a politically dark age of Korea. People of Korea wanted to find political and economic hope in his prophecy.

Surprisingly many of his prophecies were come true. As he had foretold, President Park died, American army were defeated in Vietnam war and Korean culture is spreading all over the world … etc.. But some of them were not even happened. I can conclude that his prophecy was not a simple foretelling but a kind of Futurology that taught what should have been done by Koreans.

 

Key words: Tan Heo, Prophecy, Futurology, Bo Cheon Ggyo, Choi Ik Heon, Jeong Yeok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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