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관련

세계 피라미드 문명의 주역은 동방족

낙엽군자 2008. 2. 4. 09:43
세계 피라미드 문명의 주역은 동방족
쥐나 정부는 서안. 만주지역의 피라미드 무덤 출입 왜 막나?
 
윤복현 기자
 
 
[역사논단]우주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늘 열려 있듯이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문명의 전파로로 늘 개방되어 있는 공간이였습니다. 큰 강물의 샘줄기가 존재하듯이 인류문명의 샘줄기 또한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어둠을 환하게 비추는 태양이 서쪽이 아니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듯이 문명의 빛은 동방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증거를 피라미드와 동방족과의 관계성을 통해서 밝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서구적 역사관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집트 피라미드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다면 우리가 크게  잘못 배워 왔고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잘못 배워 왔다면 정당하게 아니오! 라고 주장하고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문명의 종주국으로서 우리 동방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싸워서 승리하고 진실을 되찾아야 하는 거짓과 허상을 주입시키고 가르쳐 온 보이지 않는 교활한 세력들과 의식들과의 전쟁이기도 합니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쥐나대륙의 거대 피라미드들 보다 그 연대가 짧습니다. 피라미드는 유라시아 대륙의 이집트.쥐나대륙의 서안.티벳에 산재되어 있고, 아메리카 마야문명의 아즈텍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피라미드 문명의 주역들이 모두 몽골리언들이라는 사실이며,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대 한반도에서 발원한 동방족들입니다. 왜냐하면 고고학적으로 피라미드 양식의 근원은 한반도 남부지역의 남방식 고인돌 무덤양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 남방식 고인돌 무덤양식(왼쪽)이 피라미드 형태로 발전한 만주 홍산문명의 무덤양식(오른쪽)
즉, 땅 위에 시체를 놓도 돌을 덮는 북방식 고인돌 양식이 아니라, 시체를 땅 속에 묻고 돌을 덮는 남방식 무덤양식이 바로 피라미드 무덤양식의 원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남방식 무덤양식은 만주의 홍산문명의 무덤양식으로 변하게 되고 점점 피라미드 양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피라미드 크기도 초기에는 규모가 작았다가 점점 커지게 됩니다. 현재 만주지역 집안에 산재된 1만5천기의 피라미드 무덤군들은 그 크기가 쥐나대륙의 서안지역의 피라미드의 크기보다 작습니다. 그것은 바로 피라미드 초기의 무덤양식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만주 집안지역의 피라미드 무덤군의 연대가 서안. 티벳. 이집트. 마야문명의 아즈텍 피라미드 연대보가 훨씬 빠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만주 집안의 1만 5천기의 피라미드 무덤들 -  고구려 유적지로 오인되고 있다 - 고구려가 이 곳에 수도를 정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쥐나는 만주 집안지역의 피라미드 무덤들을 고구려 유적지로 왜곡하며, 철저히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서안지역의 피라미드들에 대한 출입도 철저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러한 연대와 관련하여 우리 동방족의 위대한 역사를 감추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많은 식민사학자들과 일부 민족사학자들도 만주 집안 지역의 피라미드 무덤군들이 고구려 유적지로 잘못 알고 있는데, 이것은 유적유물에 대한 고찰보다는 문헌에만 의지하는 역사인식의 오류에서 오는 것이며, 쥐나의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역사인식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 고구려 유적지가 아니냐 하면 고구려 무덤양식의 특징은 화려한 벽화나 그림들로 치장되어 있는 반면에 피라미드 무덤양식의 특징은 그림이나 벽화가 전혀 없다는 것이 그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집트 피라미드 문명의 주역들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집트의 조각상들과 두상들 가운데 서구학자들의 무관심으로 넘어가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관심을 갖기 싫은 것이겠죠. 자신들에게는 혼란 스럽기만 하니 말입니다. 

위 이집트 왕조인들은 BC2,000~BC1,800년경의 인물들입니다. 종족원으로 따지자면 그 어디에도 정확히 들어오지 않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혼혈계입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들은 당시 이집트의 평민들의 얼굴모양입니다. 

 
 
이들에는 현재 이집트와 이디오피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아프리칸계와 아랍계 혼혈인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의 얼굴들처럼 아주 다른 왕조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바로 '티우'(Tiu)라는 먼 옛날 미스테리한 선조에 대한 전설을 갖고 있는 이집트 정복자들입니다. Tiu(티우)는 이집트 창건의 전설적 인물입니다. 

▲   티우왕조인들 - 얼굴모양이 이집트 원주민들이나 서양인들은 아니고 동양인들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티우 왕조인들에 대한 연구는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태양신을 유일신으로 종교개혁하려다 축출된 아케나톤의 친척정도로만 여기고 있는 실정이지요.  피라미드와 태양과의 관계성이 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삼족오'도 태양속에 존재하는 불사조입니다. 단군이 목에 건 청동거울은 태양빛을 반사시켜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성을 알리는 상징이였습니다. 이 처럼 태양은 우리 한민족의 신앙사상의 상징이였던 것입니다. '천부경'에도 "자기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본태양을 우러러 꿰뚫어지게 본다"는 뜻으로써 "본심본 태양앙명(本心本 太陽昻明 )"이란 내용이 있을 정도로 '태양'은 우리 한민족이 추구하던 세계관이였습니다. 즉, 태양처럼 환하고 밝게 넓게 세상을 비추고 태양과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되자는 우주본성으로서의 광명의 빛을 추구하는 신앙의 상징이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동방족의 신앙 세계관의 본질은 태양은 그러한 우주본성으로서의 광명의 상징이지, 결코 인간을 지배하는 절대우상은 아니였다는 사실입니다.

▲   이집트 티우왕조의 제기용 그릇문양(왼쪽). 한국의 일목삼신어 부적문양(가운데) 서로 동일한 문양구조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 하단 사진은 티벳지역의 피라미드 모습
 
'티우'를 조상신으로 여기고 태양신을 유일하게 섬기던 이 왕조는 다음과 같은 제기용 그릇을 남겼습니다. 

이 물고기 문양은 Triqueta (트리케타)라고 불리는 물고기 상징으로 후대에 유럽 켈트의 성스러운 상징이고 나중에 크리스트교의 징표가 됩니다.

이 트리케타는 우리에게는 이를 일목삼신어라 부르는 전통부적입니다. 이집트를 창건한 티우의 후예. 태양의 아들들. 그리고 우리 전통부적을 똑같이 갖고 있던 사람들. 이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요? 감이 잡히십니까?

아래 사진은 이집트의 창조여신 하토르(Hathor)의 부조상입니다. 얼굴모양이 넓적하고 쌍꺼풀이 없는 전형적인 동북 아시아적인 얼굴입니다.  

위에는 만주 아무르인이 인용되었지만 한국인들 중에도 저러한 얼굴들은 흔합니다. 아래 사진은 그 유명한 피라미드 석상입니다. 전쟁때 포격맞아 코가 떨어져 있는 형태입니다.

▲  동북 아시아 몽골리안 얼굴의 스핑크스상 - 대부분 서양인들의 얼굴로 착각했을 석상

'스핑크스'는 코가 떨어져 나갔는데 얼굴모양이 사람(여성)입니다. 그런데 광대뼈가 튀어 나온 동북아 여성의 얼굴입니다. 몽골리안 (사실은 바이칼리안=밝할인)의 요소가 많은 얼굴입니다. 

▲   이집트의 무궁화 여신상(히비아쿠스=하토르). 얼굴모양은 전형적인 동북 아시아인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무궁화]를  달의 여신 [히비스쿠스]에게 바쳤다. 그래서 무궁화를 린네는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라고 불렀다. 달의 여신 히비스쿠스는 바로 [하토르]였습니다.

바로 이 무궁화를 이스라엘의 솔로몬왕은 "샤론의 장미"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무궁화의 원산지는 어디일까요? 영어사전에는 '시리아쿠스'라고 나오니 중동의 '시리아'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무궁화의 원산지는 '한반도'입니다. 쥐나세력이 강해서 [쥐나대륙의 동남부] 어쩌고 하지만  사실은 무궁화의 원산지는 한국입니다. 한국에는 여러 종류의 야생 무궁화가 널려있을 뿐만 아니라, 쥐나인들도 [무궁화는 한국인의 꽃]이라는 것을 고대부터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4천년 전부터 쓰여진 책이라는   고대 산해경(山海經)의 해외동경(海外東經)을 보면  한반도 중남부에 [군자국]이 있는데 그 나라의 특징 중의 하나가 무궁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君子國 在其北 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虎 其人好讓不爭 有薰華草 朝生夕死 " 해석하면, " 군자(君子: 위대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있는데  '격식을 갖춘 옷'을 입고  '격식을 갖춘 모자'를 쓰고 '격식을 갖춘 허리띠'를 두르고, 칼을 차고 다니고,  짐승을 기르고, 큰 호랑이 두마리를 부리는데, 그 사람들은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싸우지 않는다. (好讓不爭)  무궁화(薰華草: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라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무궁화의 원산지는 한반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집트 티우왕조의 제기그릇에 그려져 있는 '물고기'문양과 동일한 한국의 부적문양인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와 삼신(三神)에 관한 짧은 고찰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이집트 티우왕조의 물고기 문양과 한국의 '일목삼신어'부적문양이 동일하다는 역사적 배경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시원(始原)이 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습니다.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라는 아주 특이한 물고기에 대한 생각을 짤막하게 적어 봅니다.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는 몸은 3개인데 눈이 하나인 물고기로서 무엇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문양이란 생각이 듭니다.

일본의 무라야마 치준(村山智順)이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조선의 귀신", "조선의 풍수", "조선의 무격" 등 여러가지의 우리의 문화와 풍속에 관한 저서들을 남겼는데 여기에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에 대한 기록이 보입니다.

「汝自三身一目魚/一目有難況又針/ 汝今拔去吾目針/吾亦拔去汝目針」
"눈병을 앓았을 때 삼신일목(三身一目)의 그림을 그리고 눈에 바늘을 찌르면 낫는다."

위의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에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가  오랫동안 존재하였으며, 눈병을 치료하는 주술적인 형태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토대로 '한국문화 콘텐츠 진흥원'에 '코리아 비주얼스'라는 회사가 "한 눈박이 세 몸 물고기 부적(일명 일목삼신어부 一目三身魚符)"라는 콘텐츠로 등록을 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는 삼태극(三太極)이라 불리는 우리의 전통 문양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까요? 우리의 대문에 지붕에도 있고, 부채에도 있고, 북에도 있는 삼태극(三太極)의 문양은 그 원리나 그 것을 이용하는 우리의 바람이 똑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그러면 이러한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나 삼태극의 문양은 과연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요? [한단고기] '소도경전본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三一神誥本出於神市開天之世而其爲書也 盖以執一含三會三歸一之義"해석하면,

"삼일신고(三一神誥)는 본래 신시개천(神市開天)의 시대에서 비롯되어 나온 것으로 그 것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무릇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뜻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은 무엇을 일컫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一)를 잡으면 셋(三)이 포함되어 있고, 셋(三)이 모이면 하나(一)로 돌아간다"는 뜻이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뜻입니다.

위의 물고기나 삼태극의 문양을 보고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의미를 생각하면 쉽게 와닿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의 글귀는 이암 선생이 지으신 '단군세기' 의 33세 감물 단군에 보이며, '삼신오제본기', '한국본기', '삼한관경본기' 에도 보입니다.

'삼신오제본기'에서 표훈천사(表訓天詞)를 인용하여 삼신(三神)을 설명하기를,  "
태시(태초)에 위 아래 사방은 일찌기 아직 암흑으로 덮여 보이지 않더니 옛것은 가고 지금은 오니 오직 한 빛이 있어 밝더라. 상계로부터 또 삼신(三神)이 계셨으니 곧 한 분의 상제이시니라. 주체는 곧 일신이니 각각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며, 쓰임은 곧 삼신이시니라. 삼신은 만물을 끌어내시고 전 세계를 통치하실 가늠할 수 없는 크나큰 지능을 가지셨더라. "

즉 삼신(三神)은 세 분의 신(神)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일신(一神)이며, 그 작용이 셋으로 하기 때문에 삼신이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나 삼태극의 문양은 우리의 전통 삼신(三神)사상을 문양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삼신사상은 신시개천 시대(즉 배달국 또는 구리국 시대)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집트에 티우의 이름이 나오고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가 나오는 것은 14대 치우천왕의 형제가 81인이었고 이 형제(각각의 나라를 통치하던 제후로 볼 수 있음)들이 중근동으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또는 아메리카로 순행을 떠나 문명을 전파한 것이 단초가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인류 중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과 정신 사상을 지녔던 우리가 우리의 것을 모르고 도외시한 채 남의 것 타령만 하는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나 '삼태극'은 분명코 우리의 사상이며 문화입니다. 이러한 '삼신사상'은 한국의 분국이였던 슈메르에서 기원한 이스라엘의 기독교의 3위 1체 교리가 되었고, 불교와 유교와 도교의 3위1체 교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토대로 하여 세계 인류 문명의 시원을 밝히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몫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목삼신어(一目三身魚)관련 문양

















'일목 삼신어' 문양과 관련하여 보충설명을 더 드리면... .

부적 사이트 
http://amulet.culturecontent.com/sub6/sub06_symbol.asp?m_code=6&id=1&page=1 내용을 보면 눈에 티가 들어 갔을 때 들어간 눈을 가리고 위 부적의 눈에 가시나 못을 박고, 다음과 같이 주문을 외운다.  "물고기야 물고기야 나의 눈에 티를 빼주면 너의 눈에 못도 빼줄께"  이렇게 거듭해서 읊조리면 어느 사이에 눈물이 나와 티를 씻어내 아픔이 사라진다. ( "한국의 부적" 1987년 보림사 간행 P167~168참고)] 라고 나와 있습니다.

북방민족을 비롯해서 고대 중동 신화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를 일컬어서 신어사상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현 가야 유적에 남아있는 쌍어문양의 기원이 가야 김수로왕의 왕비 허씨일족 일 수는 있지만, 유일한 경로는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작정 허씨일쪽이 배 타고 표류하다가 한반도에 정착해서 왕족으로 대접받았을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마 인도와 근접한 쥐나대륙에 위치한 가야인들의 전설이 한반도에 정착한 가야인들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보아야 맞을 것입니다. 즉, 본래 가야는 한반도가 아니라, 인도와 근접한 쥐나대륙에 위치해야 김수로왕과 인도인 허씨의 이야기가 들어 맞는다 할 것입니다. 단 1회로 쌍어문이 한반도에 정착되었을리 없는 것입니다.


▲  남미에서 발굴된 인디언들의 편두유골

또한, 아시아 바깥의 물고기 신앙을 추적하면  다곤, Fish-God으로 상징되는 고대 중동 일대의 물고기신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이 다곤의 존재는 BC25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슈메르 아모리족의 (Amorite) 유적에서 발견됩니다. 
 

아모리는 슈메르 초기 유적지의 지명입니다. 이 슈메르인들이 바로 아모리족입니다. 이동이 자유로왔던 고대에는 자신들이 살았던 지명을 기억하고 있다가 정착한 지역이름을 그대로 정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아모리 유적지에서는 초기 슈메르인들의 편두형의 유골이 발굴되어 슈메르인들이 동북 아시아 몽골리안들임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런데, 편두풍습의 기원은 바로 우리 동방족에서 기원합니다.

  

그것도 북만주 송화강(소머리강) 유역에서 발굴된 편두유골이 가장 오래 되었습니다. 송화강을 아무르(아모리)강이라고도 부릅니다. 슈메르인들은 바로 북만주에서 이주해온 한국인들이였던 것입니다.  또한 '슈메르'는 '수밀이','소머리'로 발음할 수 있어 슈메르인들의 고향이 '소머리강(우수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북만주 송화강(우수하) 지역임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후 Dagan Dakon Dgdn따위로 변형되거나 비슷한 신과 중첩되면서 존재합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고대중동에서 이 다곤신 및 그 변형 중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구약의 에피소드, 다른 하나는 바빌론 신화의 Oannes입니다. 

▲  한반도에서 유라시아로 전파되는 신석기문화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제주도에서 출토되었다
다곤의 뜻은 고대 중동 일대에서는 대체적으로 곡식이라는 뜻으로 통했다고 합니다. (고대 히브리어, 팔레스틴어 등등) 즉, 농경의 신이었다는 것입니다. 농사는 땅이 비옥한 한반도에 가장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충북 청원군에서 출토된 1만 5천년 전의 볍씨가 고고학적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입니다. 빗살무뇌 토기도 한반도에서 시작되어 초원의 길을 따라 유라시아 대륙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고대 농경의 신들은 바로 우리 동방족들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충북 청원군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5천년 전의 볍씨  - 비옥한 땅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농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성서학계에 따르면 이 곡식이라는 의미는 다곤신앙이 토착신과 결합하면서 생긴 변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곤신은 민족마다 약간씩 성격을 달리 했다고 합니다. 농경민들에게는 농경신, 해양민족들에게는 풍요와 (어자원과 상업)을 상징했다고 합니다. 즉, 원래 농경신은 아니었지만, 토착신앙과 (그 유명한 바알신앙) 결합하면서 생긴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후대의 우가릿인들은 한술 더 떠서 (BC1000) 다곤이 바알 아버지였다는 식으로 발전을 시킵니다. 물론 이것은 완벽한 후대의 창작입니다.

다곤신 변형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빌론의 oannes입니다. Dagon의 바빌론 버전인 Oannes 신화에서는 (BC1300) 다곤신앙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Oannes는 바다에서 홀연히 나타났는데 (aquatic deity) 물고기 머리에 사람 몸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각종 문명을 (법, 경작, 문자, 윤리) 가르쳐 주고 다시 홀연히 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것은 달리 해석하면  이 다곤신앙의 기원이 되는 어떤 집단이 있었는데, 분명 그들은 해양세력이었으며 고도의 문명을 누렸던 것 같습니다. 어떤 문명 전달자로서 BC 2500년 보다는 이전에 고대 중동에 문명을 전달했고 이를 기반으로 중동지방은 폭발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됩니다. 뿌리깊은 다곤신앙은 이 문명 전달자들이 얼마나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는지 잘 보여줍니다. 

▲  바다에서 나타난 문명을 전해 주었다는 '오아네스' 신
마치, 에덴동산설화의 원형이 되는 슈메르 갈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엔키'는 외부에서 갑자기 출현한 종족의 왕의 아들로 지혜와 능력이 뛰어난 존재로 인간들에게 그들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많이 가르쳐 주고자 했으나, 그러한 지식을 알게 된 인간들로부터 해를 입을 것이 두려웠던 종족 왕의 첫째 아들은 그러한 '엔키'를 아프리카 지역으로 몰아 내고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이후 '엔키'는 본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의 이미지에서 인간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나쁜 구약성서 창세기의 '뱀'으로 왜곡둔갑되었듯이, 구약성서에서 다곤은 악역을 맡습니다.
팔레스틴 토착민과 (블레셋) 대결을 벌인 이스라엘인 이야기에서 드러나듯 다곤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우상으로 배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물고기 신앙은 유럽문명에서까지 그 흔적을 남길 정도로 생명력이 질깁니다. 이를테면 교황의 어두관은 물고기 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중설입니다.  

이 물고기 신앙은 편두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물고기 머리에 사람 몸..이것은 편두를 한 사람을 표현한 것입니다. 편두신앙은 그 기원이 북만주에서 시작합니다. 자, 이렇게 되면 물고기 신앙, 그리고 편두.....편두는 그 물고기 신앙을 상징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즉, 할례와 같은 것이죠. 

마지막으로 중동 신 이름도 다곤, 고대 중원에 존재했던 동이족 하나라의 쌍어신화에서 언급된 왕이름도 [곤]입니다. 그것도 큰 물고기 곤....정확한 고대 음가는 저로는 모르겠만,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또, 편두는 수메르 유적에서도 발견됩니다. 물론 남미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고요. 물고기 신을 섬긴 혹은 그 뒤에 존재하는 이들이 고도의 해양문화를 가졌음을 가정하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들은 바로 고대 한국인들인 동방족들이였던 것입니다.
 
▲ [인류문명의 고향 한반도-백두에서 한라까지 흐르던 황해의 아리수 문명] 2만년 전 지금의 황해는 쥐나대륙의 강줄기와 한반도의 강줄기가 만나 형성된 거대한 '아리수'가 흐르는 육지로 말들이 풀을 뜯는 거대한 초원과 함께 '아리수'에는 당연히 많은 물고기들이 있었을 것이며, 서진한 동방족이 청동기문명과 함께 다시 가부장적 문화로 동진해 오기 전까지 모계사회였듯이, 당시 여황이 통치하던 모계사회였던 동방족은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생활했을 것이며, 아리수를 통하여 일찌기 배를 만들어 타고 멀리 해양하여 '아리수 문명'를 세계 곳곳에 전파하고 개척하는 해양족들이였을 것입니다.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 문명을 전해 주었다는 '중동'의 다곤신앙도 그래야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집트 티우왕조의 제기용 그릇에 새겨진 '일목 삼신어'문양과 한국의 '일목 삼신어'부적문양은 고대 '아리수 문명'을 대변하는 동방족들의 삶의 흔적을 그대로 표현한 상징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황해가 바다가 된 후에 동방족들은 쥐나대륙과 한반도로 흩어져 문명을 개척하고 전파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한국문명의 시원지라고 할 수 있는 황해의 아리수 문명은 황해바다속에 뭍혀 있을 것이며, 역사는 지구의 주기적인 지각변동에 따라 순환하듯이 '새만금'개발한다며 서해안 시대를 외치고 있는 시대흐름 또한 그러한 '아리수 문명'이 드러날 징조라고 봅니다. 그리고 쥐나대륙보다는 한반도 지역에서 세계 최고의 유적유물들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가 문명의 중심지역이였다고 보며, '아리수 문명'의 수도(아사달)는 아마도 유전학적으로 세계 개들의 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진돗개의 고향인 진도부근으로 서남해 지역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진도부근을 아리수 문명의 중심지로 잡고 진도에 콤파스 꼭지점을 대고 원을 그리면 당시 '아리수 문명권'이 그려지며, 그것은 단군조선의 최대 광역도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아리수 문명은 이후 '마고(마한)->한국->신시배달국(구리.청구국)->단군조선'문명으로 계승되어 졌다고 봅니다.

▲ 2만년전 지금의 황해가 육지였다고 밝히고 있는 2004년 호주 시드니대학 고고학센터 연구보고서 그림



경남 창녕군에서 발굴된 8천여 년전의 거대 선박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고대 한국인들은 해양족이였다


아울러 이집트 파라미드 등 만주. 서안. 티벳지역의 거대한 피라미드 문명의 주역들은 바로 한반도 남방식 고인돌 무덤양식의 그 기원으로써 고대 한반도 사람들이 만주를 중심으로 아메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하여 전파한 한국문명의 흔적이라고 해야 정확히 맞습니다. 서양의 양심적인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양심적인 서구의 지성인들은 속으로 동방족의 후손들인 한반도 사람들을 두려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깊이 존경할 것입니다. 예컨대, 서양 언어학자들이 세계 언어의 기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인도 산스크리스트어(범어)는 사실 한반도 사투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한반도가 동방족의 터전이였다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는 일입니다.단지, 1천여 년간의 사대주의와 지금도 식민사관에 의해 현재 진행형인 일제 침략주의의 노골적인 역사왜곡을 통하여 우리 동방족의 위대한 문명과 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역사를 상실한 대부분의 한국인들만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민족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조상들과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기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2/01 [19:19] ⓒ plus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