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관련

[스크랩] 경주 석굴암에 대한 새로운 이해

낙엽군자 2006. 2. 25. 21:52

태양숭배의 상징 석굴암과 효자설화의 형성

 

석굴암에 대한 기초적 이해

 

경주의 토함산 동쪽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석굴암은 불국사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의 보고이다. 불교건축과 조형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석굴암은 불교와 관련된 사상, 예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훨씬 더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석굴암의 조성은 단순히 불교적인 측면에서만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없고, 한 개인이 효성이나 발원에 의하여 이루진 것으로 보기도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석굴암이 종교적인 측면이나 개인적인 측면 보다 더 광범위한 폭과 넓이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라면 여기에는 조성 당시 우리 민족이 갖고 있었던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상황 등과 기타의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녹아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비단 석굴암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문화유산에도 이런 해석이 적용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석굴암을 이해하는 데 특히 이런 점들을 강조하고자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문화관광부 공개자료


 석굴암에 대한 지금까지의 일반적 견해는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석굴암의 조성자와 조성동기 등에 대해서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상세한 것으로 보이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그대로 적용하여 김대성이 효성에 의해서 발원하여 조성한 것으로 보았고, 사회적 측면에서는 동쪽을 방어하며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의 차원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리고 정치.문화적 측면에서는 석굴암 조성 시대가 사회.문화적 상황으로 볼 때 신라문화의 전성기였던 경덕왕 대였기 때문에 석굴암이나 불국사 같은 최고 수준의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어서 이해하고 있다. 또한 종교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불교조형예술과 불교미술 등의 입장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하며, 불국토 건설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석굴암을 이해하는 지금까지의 견해들을 종합해보면 한결같이 작게는 김대성이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발원과 효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크게는 국가적 차원의 호국과 불교라는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인 발원과 효도는 효자설화의 증거물로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국가적 차원이라는 사회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석굴암은 호국이라는 거대한 상징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석굴암은 2대에 걸쳐서 부모를 봉양한 김대성이란 인물의 개인적인 효심과 나라를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호국정신을 담고 있는 문화예술로서 창조한 셈이 된다. 그러므로 석굴암은 효심과 호국이 하나로 되어 많은 사람들의 예술적 감동을 자아내었던 문화유적으로 보아 틀림이 없다.


석굴암이 담고 있는 의미가 김대성이란 불신자와 불교적인 측면, 그리고 호국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민족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개인과 민족의식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그것은 새롭게 평가를 받아야할 것으로 사료된다.

 

태양숭배와 재생설화

 

태양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에 이것이 없으면 생명체는 탄생에서 성장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도 올바르게 할 수 없게 된다. 생명체의 근원인 우주의 에너지가 모두 태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태양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태양과 연결시킨다든지, 한 나라의 제왕을 태양의 아들이라고 하는 등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태양은 인류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태양숭배 의식이 없는 민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민족 역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석굴암은 우리 민족이 가졌던 태양 숭배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석굴암의 본존불은 춘분.추분 때 해가 떠오르는 정동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동쪽으로 일직선을 그으면 일본 본토를 가로지르게 되는데, 서쪽의 이즈모(出雲)에서 시작해서 내륙을 관통하여 동쪽의 찌바(千葉)에서 끝나게 된다. 일본말로 고마라고 불리는 日高市의 고구려마을 역시 이 선상에 있다.

 

 

 필자가 찍은 고려천 역

 

이 일직선상의 지역들은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원시시대의 유적들이 즐비하게 발굴되는 곳이기도 한데 일본인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원인을 알지 못했던 사실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이즈모에서 찌바에 이르는 선상에 남아있는 고대문화들이 한결같이 한반도의 문화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한반도를 침략한 일본인들이 경주의 석굴암을 발굴하여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밝혀내면서 비로소 이 일직선상에 남아 있는 문화의 대부분이 왜 한반도 문화인지 그 근원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석굴암의 발굴로 말미암아 우리 선조들에 의해 형성된 일본 고대문화의 기원과 정체를 알게 된 일인들은 석굴암을 해체한 후 다시 복원하면서 본존불의 방향을 남쪽으로 약간 틀어놓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일본 고대 문화의 한반도 도래설을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 동안 우리가 석굴암을 개인적인 효성이나 외적의 침략을 막기 위한 호국의 차원 정도로 해석했던 것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던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석굴암의 의미가 이렇게 파악되면 토함산에서 동해 바닷가에 이르는 사찰과 유적들의 의미 또한 확대될 수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면 감은사(感恩寺), 원원사(遠願寺), 무장사( 藏寺) 등과 문무왕의 수중왕릉까지 그 의미가 호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생명의 근원인 태양에 대한 숭배와 재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동해바다로 들어와서 토함산을 넘어 경주로 내려온 신라 시조인 석탈해이야기 역시 태양의 아들이란 의미가 강조된 것으로 보는 올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포항의 일월지(日月池에) 전해지는 연오랑.세오녀설화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월지(한국관광공사 공개자료)

 

 

일본문화의 기원이 한반도에 있으며, 그 원형의 상징이 석굴암에 있다는 사실은 생명의 원천인 태양의 근원을 알고 싶어하는 우리 민족의 염원과 태양에 대한 숭배사상이 석굴암이라는 예술적 조형물로 승화된 결정체라는 사실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위의 사실을 근거로 하여 이제는 앞에서 서술한 석굴암의 보편적 전형이 지금까지 해석한 것보다 훨씬 확대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민족적 태양숭배의 상징물인 석굴암은 고대부터 우리 민족 개개인이 가졌던 사상으로 민족의 구성원이면 누구든지 포괄할 수 있으며, 그것이 집약된 예술적 조형물로 형상화함으로써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얻어진 석굴암의 가치는 인류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었던 태양에 대한 숭배의식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킨 존재가 되어 세계인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문화유산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토함산의 해돋이(한국관광공사 제공)

 

 석굴암의 의미를 이렇게 파악하더라도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석굴암의 조성과 김대성의 재생설화가 어떻게 해서 연결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김대성설화를 살펴보자.    

 

 

재생의식과 김대성설화

 

"모량리(牟梁里)에 사는 가난한 여인인 경조(慶祖)에게는 아이가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이마가 평평하여 성(城)과 같으므로 대성(大城)이라고 불렀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아이를 기르기가 어려웠으므로 복안(福安)이라는 부잣집에 가서 품팔이를 하였는데, 그 집에서 밭을 조금 주어서 그것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였다.

 

그 때 점개(漸開)라는 승려가 육륜회(六輪會)를 흥륜사(興輪寺)에서 베풀고자 하여 복안의 집에 와서 시주하기를 권하니 복안이 베 50필을 시주하였다. 스님이 축원하기를 '신도께서 보시하기를 좋아하시니 천신이 보호하고 지켜서 하나를 보시하면 만배를 얻게 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수명장수 하게 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대성이 일을 하다가 이 말을 듣고 집으로 뛰어 들어와 그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밖에 서서 스님의 축원하는 말을 들으니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고 합니다. 생각건대 우리가 전생에 닦은 선도 없어 이와 같이 가난하니 지금 보시하지 않으면 내세에는 더욱 가난할 것입니다.

 

우리 주인에게서 얻은 밭을 법회에 시주하여 훗날 보답을 받도록 함이 어떠하오리까?' 하니, 어미가 좋다하여 그 밭을 점개에게 보시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성이 갑자기 죽었다.

 

이날 밤 김문량(金文亮)이라는 재상의 집에 하늘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말하기를 '모량리의 대성 아기가 이제 너의 집에 환생할 것이다'고 하였다.

 

집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모량리에 가서 찾아보니 과연 대성이란 아이가 죽었다고 하였다. 그 날 그 부르짖음이 있은 뒤로 부인이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왼쪽 손을 꼭 쥐고 펴지 않다가 7일만에 펴는 것이었다. 펴진 손을 보니 손안에 대성(大城)이라 새겨진 금간자(金簡子)가 있어서 이로 인하여 이름을 대성으로 짓고 그 어미를 모셔다 함께 살도록 하였다.

대성이 장성하여서는 사냥을 좋아하였는데, 하루는 토함산(吐含山)에 올라가서 곰을 잡은 후 산 아래 마을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었다. 그날 밤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하여 대성에게 덤비면서 말하기를 '네가 어째서 나를 죽였느냐 내가 환생하여 너를 잡아먹으리라'고 하였다.

 

대성이 몹시 두려워하여 용서하기를 청하였다. 귀신이 말하기를 '그러면 네가 능히 나를 위하여 절을 세워 주겠느냐?' 하니 대성이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꿈을 깨고 보니 얼마나 놀랐는지 땀이 흘러 잠자리가 다 젖어있었다.

 

 이후로는 밖에서 하는 사냥을 하지 않고 곰을 잡았던 자리에 곰을 위한 절을 세우니 장수사(長壽寺)라 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대성은 마음에 느낀 바가 있어 불심에 대한 바람이 점점 더하여갔다.

 

이에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는 석불사(石佛寺)를 세운 뒤 신림(神琳)과 표훈(表訓)의 두 성사(聖師)를 청하여 각각 맡게 하였다. 이에 상설(像設)을 성대하게 하여 자신을 키워준 노고를 갚으니 한 몸으로써 두 세대에 걸쳐 부모에 효도하였음은 옛날부터 드문 일이다. 그러니 어찌 선행의 보시가 가져다주는 영험을 믿지 않겠는가.

대성이 석불을 조각하려 하고 한 큰돌을 다듬어 감개(龕盖)를 만들다가 돌이 갑자기 세 토막으로 갈라졌다. 대성이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다가 그 자리에서 어렴풋이 졸았는데,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서 만들어 놓고 돌아갔다.

 

이를 본 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남쪽 고개에 올라가 향나무를 태워 천신에게 공양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곳을 향령(香嶺)이라고 하였다. 불국사의 운제(雲梯)와 석탑(石塔)은 조각한 기술이 동부의 여러 사찰 중에서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삼국유사}에서 밝히고 있는 이 설화의 주제는 효심이다. 김대성은 성인으로 전세와 현세의 두 부모를 섬겼는데, 이것은 매우 드문 일인데다가 양부모를 위하여 불국사와 석굴암까지 지었으니 하늘을 움직인 효심과 불심이야말로 우리가 높이 본보기로 삼아야할 것이라고 편자는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설화는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효자설화라기 보다는 재생설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김대성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서 두 부모를 섬겼고, 부모에 대한 은덕을 갚기 위하여 불국사와 석불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또한 죽은 곰을 위해서는 장수사를 지었다고 했으니 이것 역시 곰의 환생을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대성의 효도는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것은 불력 나타나내는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편찬된 삼국유사의 성격에 맞도록 불교의 환생으로 연결되어 설화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설화의 중심 주제는 재생의식이며, 그것이 불교의 환생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재생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 두 번의 삶을 누리는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죽은 삶을 다시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김대성설화에서는 그것이 불교와 연결되어 묘사되고 있지만 불교가 전래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재생에 대한 인식과 방법들은 있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죽은 이의 영혼을 생명이 왔던 본래의 근원으로 돌려보내면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실에서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재생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 당연히 태양으로 죽음을 돌려보내는 것이어야 한다.

 

 생명의 근원인 태양으로 죽은 이를 돌려보내면 곧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게될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 태양이라고 믿었던 고대사회에서는 이러한 생각은 일반화된 현상이었을 것이고 이런 점에서 석굴암과 김대성설화는 연결될 고리를 찾게 된다. 

 

 

하늘의 민족인 고구려에서 시작하여 신라를 거쳐 일본에 이르는 한민족의 대서사시가 바로 석굴암 속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해서 볼 때, 태양숭배의식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석굴암에서 출발하여 동해를 건너 일본 열도를 횡단하는 우리 선조들의 모험담을 게임이나 애니매이션 등의 문화콘텐츠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본다.

출처 : 문화예술
글쓴이 : 죽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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