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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실토한다-조계종 승려 (펌글)

낙엽군자 2006. 1. 24. 22:47
운영진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자유 게시판에 올린 글인데, 2시간 만에 폭주하는 다른 글들에 묻힌 것을 운영진
의 배려로 추천 글 모음으로 옮겨졌고, 공지란에 배려해 주셨습니다. 긴 글인데도 많은 분들이 읽고,답글과 스크랩을 하셔서 배려해 주신 것 같습니다.
글 올린이.



재미는 있지만, 길고 생각을 요구하는 글이다. 30분 이상의 시간이 있는 분들만 읽기 바란
다. 처음만 읽거나, 중간만 끊어 읽는 것은 삼갔으면 한다.


주요 내용

-추기경의 눈물. / 매니저가 필요하다. / 종교 이야기. / 박근혜 의원에게. / 기독인들에게 제안한다. / 슈바이처 박사. / 한국판 부시(이명박 씨)와 한국판 네오콘(몰지각한 연예인과 방송인들.). / 신을 모독하지 말라. /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 / 최고의 발명품과 발명자의 운명. / 논문 조작의 역사. / 탄력적 사고. / 불교계는 황교수에게 3000배를 명령하라. / 실토한다.




본문.


나는 조계종 승려다.


토굴에서 조용히 수행한답시고 지내고 있으나, 한 번씩 뉴스를 볼 때가 있다. 수행이 무르

익었다 생각되면 세상에 나가야 하는데, 그 때를 대비해서 최소한의 흐름을 익혀두는 것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게 하도 답답해서 붓을 들었다.

추기경의 눈물을 보았다. 종교는 다르지만, 그 분을 존경해 왔다.

추기경의 눈물이 왜 전파를 타야만 하는가.

가톨릭 교리에 충실하신 그 분은 줄기차게 성체 줄기세포를 장려했고, 배아줄기세포를 우

려했다. 추기경은 하느님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영리하게 만들어 주셨는데, 그 좋은 머리를

왜 전 세계인들의 부끄러움을 사는 쪽으로 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것이 추기경이 눈물

을 보인 배경이다. 나는 인간적으로 안타깝고, 착잡했으며, 한 가닥 연민마저 일었다.

가톨릭이 어떤 종교인가.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촘촘한 조직의 치밀

함은 불교가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다. 정보 수집력 역시 그렇다. 그렇다면 추기경은 눈물을

보이지 말았어야 했다. 설사 눈물을 보였더라도 전파를 타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 분 말씀

처럼 하느님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영리하게 만들어 주셨다 치자. 좋은 머리로 전 세계인의

부끄러움을 샀다고 치자(?-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으나, 여기서는 차치하기

로 한다.). 하면 그게 다인가? 그렇지 않다.

황교수 팀의 논문이 조작이었음이 드러났고, 일각에서는 과학의 국치일이라는 성급한 소리

까지 나온 게 사실이지만, 우리의 소장파 과학도들은 사이언스 과학 잡지의 편집자들마저 감

쪽같이 속아 넘어간 논문의 오류를 지적해 냈으며, 시정을 촉구했으며, 목하 검증의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것은 매스컴이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아서 그렇지, 논문 조작의 부끄러움을 상

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과학적 저력을 확인시켜 준 쾌거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논문 조작

의 상처를 치유하고(딛고), 연구 현장의 고질적 관행을 타파하고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

를 만들어 주었다. 추기경은 한국 과학의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 한 그루에 눈물을 보인 것

인데, 이것은 최신의 고급 정보를 보유하고 있을 보좌 팀의 직무유기라고 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황우석 교수가 최고 과학자라고 밀착경호를 한 모양인데, 그에게 정작 필요한 건, 경호원

보다는 전문 매니저였으며, 논문을 작성해 주는 독립된 지원 인력기구였다. 그런 조건들이

마련되고, 황교수는 연구에만 전념케 했더라면, 이런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매니저의 철저

한 관리가 있었더라면, 대권 주자들의 무차별적인 선물공세와 러브콜들을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성과를 올려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경호의 질도

문제였다. 고도의 전문경호라면, 매니저의 역할도 겸할 수 있고, 압박감과 같은 심적 고통

과 위험스런 행보까지도 막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추기경에게도 매니저가 있었더라면, 눈물 흘리는 모습이 전파를 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는 가톨릭에 할 말이 생겼다. 교황청에서 추기경 한 분을 더 선임한다니까, 온통 그 쪽에만

줄을 서느라(?) 열심이고, 연로한 추기경은 뒷방노인 취급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불교에서도 그런 일들이 끊임없이 재연되고 있다. 일예를 들자면, 석가모니

의 시대는 갔으니, 이제 미륵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석가모니

를 모신 대웅전보다는 미륵전을 찾는다. 나는 그 사람들을 몇 번 타이르다 그만 두었다. 말

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들이란...... 어깨가 무겁다.

붓을 든 김에 종교 이야기를 해야겠다.

인류 역사에서 벌어진 전쟁의 거의가 종교전쟁이었다. 그럴 일이 아닌데 말이다. 하나님

(또는 하느님. 내가 아는 어떤 가톨릭 신자는 하나님과 하느님이 다른 분이라고 했다.)과 알

라신과 부처님(비로자나불을 말함. 석가모니를 말하는 게 아님.)은 이름만 서로 다를 뿐이

지,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인간들이 어느 순간부터 하늘에 떠도는 불덩어리에 대해 경외심을 갖기 시작했다. 해라고

부르는 무리는, 해가 인간의 행, 불행을 좌우하는 두려운 존재로 여기고 섬겼다. 써니라고

부르는 무리는, 써니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창조했으며, 일용할 양식을 주는 고맙고도 두

려운 존재로 여겼으며, 써니에 경배하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태양이

라고 부르는 무리는, 태양이 만물을 길러주고, 때로 재앙을 안겨주는 두려운 존재인 것은 분

명하지만, 알고 보면 수소가 타면서 핵융합식 에너지를 만들어 지구라는 별까지 보내준다.

그러나 수소는 타 없어지면서 헬륨으로 변하고, 헬륨은 다시 이런저런 광물질로 변하며, 태

양은 영원하지도 않고, 우주에는 수많은 태양이 있으며, 지금도 사그러드는 태양이 있는가

하면, 새로이 형성되는 태양도 있다고 본다. 경배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지옥설 때문

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좋은 혜택을 많이 주는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라고 부

르는 무리와 써니라고 부르는 무리는 서로가 자기네 생각이 옳다며 싸움이 그칠 날이 없다.

그러나 태양이라고 부르는 무리는 싸움을 벌이지 않는다. 불덩어리의 실체를 정확히 알기 때

문에 달관자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에서는 종교전쟁이 그칠 새가 없다. 정점에 서있는 부시는 이라크

전을 십자군전에 비유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나는 부시가 재임하는 걸 정말로 원치 않

았다. 그래서 캐리 후보 진영에 작지만 후원금을 보낼 생각도 했으나, 미국 시민이 아니라

서 그만 두어야 했다. 그런데 미국의 대선을 관전하면서 ‘캐리는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

을 가졌다. 부시와 캐리가 TV에 나와서 격론을 벌였다. 캐리가 이라크전의 잘못을 지적하며

종식을 주장했다. 부시는 캐리 너도 이라크전에 찬성하지 않았느냐며 받아쳤다. 캐리는 꼬리

를 내리고 말았다. 그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이라크전을 찬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은 너와 정부가 제공한 정보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모든 게 거짓이라는 걸 알았다면

찬성할 이유가 없었다.’ 하면서 정보 조작과 그에 따른 윤리 문제를 강하게 물고 늘어졌어

야 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도 똑같은 일이 재연된 것이다. 나는

크게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후보의 토론이 수세에 몰렸다면, 캐리의 선거 캠프에

서는 녹화 테이프를 되돌려 보면서 물고 늘어지기와 되받아치기를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캐

리도 러닝메이트도 캠프 요원들도 그걸 못했다. 그런 머리로 미국을 통치하겠다니, 꿈도 야

무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우리네 속담을 떠올

리며 쓴웃음만 지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도 이라크전 소식을 접할 때마다 캐리가 되었더라

면, 차라리 힐러리가 대통령을 한다면...... 하며 아쉬움을 토하곤 한다. 종교적, 사상적 이

념...... 매우 위험하다. 그런 만큼 정말로 조심해야 한다. 조금 전에도 워드 작업을 하다

가 잠시 휴식을 취하며 TV를 켰다. YTN 하단에 사학법을 개정하라며 한나라당이 장외 투쟁

을 쉬지 않겠다는 기사의 자막이 스쳤다.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코드가 맞지 않는 ‘전교조

와 이념’이라는 빈대를 잡기 위해서 초가집을 모두 태워버리겠다는 이야기다.

내가 아끼는 박근혜 의원에게 한마디 하겠다. 더는 악수를 두지 말라고. 초가집을 다 태우

면 재만 남는다. 지난번에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14척의 전함이 남았다’며 선전했고 놀라

운 결과를 창출했다. 허나 지금은 그때와는 사안과 상황이 다르다. 추기경의 말씀을 상기하

기 바란다. ‘하느님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리를 좋게 만들어 주셨다.’ 채널을 돌렸다. 박

영선 의원과 나경원 의원의 모습이 보였다. 원희룡 의원이 나경원 의원의 프로필을 소개하

는 그림이 떴다. 대학 시절에 난다하는 남학생들이 줄줄 따라다녔던 퀸카였는데, 장애를 가

진 자녀를 둔 것이 정말 안타깝다. 낮은 곳을 살피고, 어려운 사람들을 잘 헤아리라는 하나

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멘트였다.

나는 원희룡 의원의 개혁성을 높이 사온 터였다. 그러나 공인이라는 점을 항상 잊지 말기

바란다. 그래서 주의를 주겠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하늘의 뜻’으로, 그리고 ‘하나님

이 보내신’보다는 ‘님께서 보내신’ 혹은 ‘하늘이 보낸’으로 표현했더라면 좋았을 것이

다. 나경원 의원도 눈여겨 보아온 터였는데, 그런 속사정이 있는 줄을 몰랐다. 깊은 위로와

힘내라는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나경원 의원은 여전히 퀸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겉모

습뿐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기독인들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주제 넘는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나도 한 때 교회에 다녔고, 지금도 착한 기독인 친구들이 있기에 하는 말이니까. 나는 기독

교의 상징물을 십자가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자면, 원수까지도 사

랑하라 하신 말씀을 떠올릴 수 있는 ‘하트 모형’이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떠올리는 ‘큰 별’이면 좋지 않을까.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꾸준히 세뇌되고, 학습되는 존

재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하여 상징물이 된 것 같은데, 십자가가 무

엇인가. 형틀 아닌가. 나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피흘리며 죽어간 예수님을 떠올리곤 한다.

기독인들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인가. 기독인들은 피흘리는 전쟁을 참 많이도 벌였다. 원수

를 사랑하라고 말하면서도, 생명존중을 외치면서도 문제를 피로 해결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기독인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밤을 밝히던 휘황한 네온들이 꺼지고, 모두가 잠든 도시의 모습은 지난 영화(월하의 공동

묘지)의 제목을 떠올리게 한다. 온통 붉은 십자가뿐이기에 그렇다. 기독교가 상징물을 바꾸

면서 또 한 가지 해결할 게 있다. 인간의 생명만을 소중히 여기는 풍토를 버려야 한다. 제

이름조차 모르고 사는 잡초들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것이다. 그 모든 피조물들

을 잘 관리하라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드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곡해한 기독인들은 앞장서서 자연을 파괴했다. 어느 철학자는 자연을 강간하라고까지 하며

개발을 독려했다. 그 결과가 작금의 환경 위기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연의 희생을 요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가이드라인이 있다.

슈바이처 박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이해한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농부

가 소를 먹이기 위해 풀을 베는 것은 용납할 수 있는 죄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재미 삼

아 풀을 쥐어뜯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죄다.’ 인간의 생명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

의 뜻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다종교 사회다. 늘 위태위태하다. 불자들 중에는 기독인들이 무섭다는 사람들

이 많다. 이명박 씨가 서울봉헌 발언을 하고, 2007년에는 대한민국을 통째로 봉헌하겠노라

했을 때, 나는 저 사람이 한국판 부시려니 했다. TV를 켜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십자가를 목에 건 신동엽, 김용만 같은 개그맨과 가수 탈렌트들. 나는 저 사람들이 한

국판 네오콘이려니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강부자나 김민종이가, 만자 목걸이를 하고

나왔을 때, 저 사람들 참 용감하네! 했었다. 차인표나 최진실이가 목에 십자가를 걸고 나왔

을 때, 저 사람들 참 귀엽네! 했었다.

그런데 한동안 그러지 않더니, 이명박 씨의 서울봉헌 발언을 전후해서 십자가를 걸고 나오

는 연예인들이 부쩍 늘어나더니, 이제는 당연한 듯이 걸고 나온다. 목걸이로 모자라서 귀걸

이, 브로치까지 한다. 연예인으로 모자라서 기자, 아나운서들까지, 심지어 KBS 아나운서들까

지 따라 한다. 그 사람들이 공인의식이며 스타의식이며 프로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

인가. 기가 막히게도 김남주는 CF에까지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나왔다. 어제는 절에 다닌다

던 연예인이 오늘은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나온다. 먹이사슬에 얽힌 검은 그림자가 보이는

대목이다. 잠시 그러다 말려니, 양식 있는 기독인들이 나서서 잠재우려니 했는데, 순진한 발

상이었다.

그들에게 정중히 말한다.

더는 신을 바보로 만들지 말라고. 더는 신을 모독하지 말라고.

신은 옷 속에 십자가를 감추어도 다 알아보신다. 김미숙처럼 수상식장에서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계신다. 오히려 걱정하신다. 다른 종교인들도 보고 있는

데...... 하시면서. 누구나 TV 카메라 앞에 서면 공인이 된다. 공무원만이 공인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모두 공인이다.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시답잖은 신변

잡기나 늘어놓으면서, 웃기기는커녕 오히려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자기네끼리 웃어주고, 밀어

주고, 끌어주는 반칙과 뻔뻔한 작태를 보며 신께서 기꺼워하실까.

PD들은 무엇하는가! 연예인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는가. 유교인들, 불교인들, 민족종교인

들, 무교인들. 언제까지 침묵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표현의 자유? 궁색한 변명이 통하기에

는 도가 지나쳤다. 공공의 재산인 전파를 특정 종교나 이념을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행

위가 더는 용납되어선 안 된다. 방송사들은 지난 테이프들을 돌려서 십자가나 염주를 걸고

나온 연예인들과 시간을 계산하여 전파 도용료를 받아내야 할 것이다.

경고한다.

아무리 좋아도 사람은 사람이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이 나라에서 종교 갈등

이 생긴다면, 그건 순전히 한국판 네오콘과 묵인한 언론 종사자들 때문일 것이다. 언론사에

할 말이 많지만, 이 정도로 해두겠다.

연예인 입문 시에 종교적 중립을 지키겠노라는 서약을 하고, 기성 연예인들은 그 조항을

추가하는 서약을 해야 할 것이다. 연예 기획사나 연예 프로그램제작자들은 특정 종교를 밀어

주거나, 밀어내는 따위의 행위. 눈치껏 편중, 편파하는 따위의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

을 하고, 위반 시에는 퇴출까지도 감행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모

든 공인도 마찬가지다.

내가 종교 이야기, 특히 기독교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나 역시 한때 교회에 다녔고,

하나님과 알라신과 부처님이 서로 다른 분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고, 기독인들이 신을 제대

로 받들어 모시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기독교의 역사에는 마녀사냥으로 얼룩진 자국이 많다. 과학자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작금

의 황우석 파문도 기독인들의 의도된 마녀사냥이라는 시각이 있고, 그런 정황이 포착되고 있

다. 물론 강대국의 자존심과 이권과 질투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정황들도 포착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제보를 접수한 PD나 방송사가 면밀한 준비를 마친 다음, 황교수 팀과 정부 측에 미리 알리

고, 스스로 조작과 여러 잘못들을 시인하고 바로잡도록 강력하게 유도했더라면(이 때에 꿇어

앉히겠다고,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면, 훗날 국민에게 칭송받았을 것이다.), 국익을 위해서

나, 인류를 위해서나, 다 좋지 않았을까. 그런 다음 훗날, 사실은 그때 그랬었노라고 방송

을 한다면 국민적 사랑을 받게 될 텐데.

성과 올리기에 급급하기는 황교수 팀이나 언론사나 똑같았다. 사실을 까발리는 것이 반드

시 진실의 규명인 것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서, 국민의 정서를 감안해서, 국익을 위해서, 어

려움에 처한 인류를 위해서, 상황윤리를 적용해서 발표의 시기를 늦추거나, 때로는 무덤까지

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 진실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PD수첩은 아직까지도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되뇌며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게 안쓰럽다. 황교수의 몰락을 반기는 사

람들이 지구촌에 가득 널려있다. 그들을 돕는 것도 그렇고, 공공의 전파를 자사의 변명에 지

나치게 남용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자제하기 바란다.

황교수는 국민에게 두 번 사과했다. 첫 번째 사과에서는 모든 공직을 내 놓았으며, 두 번

째 사과에서는 직장까지 내 놓았다. 그런데 문화방송은 국민에게 사과를 해놓고, 당사자들

을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으로 은근슬쩍 넘어가고 있다. 형평과 윤리의 실종이다.

난치병 환자들은 희망을 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1월 초인 현재 황교수 팀이 핵 치환기술

을 보유하고 있음이 확인되었고, 더 많이 밝혀질 것이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척추 손상

으로 꼼짝 못하던 개를 뛰어다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의 근접했다는 말이다. 난자 문제

는 황교수의 독자적 지혜로 해결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 아무튼 황교수

는 지금 최대의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황교수는 모든 어려움을 딛고 다시

크게 일어설 것이다. 죽을 사람은 접시 물에도 숨통이 끊기고, 안 죽을 사람은 머리에 총알

이 박혀도 살아난다. 굳은살이 박이지 않고서는 거목으로 자랄 수 없다. 황교수는 지금 굳은

살 하나를 훈장처럼 새기고 있는 중이다.

배아줄기와 성체줄기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성체만이 옳다고, 배아는 그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충실한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지만, 자기와 생각이 다

르다고 해서 폄하하거나 죄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다종교 사회의 금기사항 1호다.

2005년도. 지구촌 과학계에서는 최고의 발명품으로 스너피를 꼽았다. 그런데 개의 해인

2006년 벽두부터 스너피를 발명한 황교수에게는 여전히 굶주린 하이에나들이 으르렁댄다.

최고 과학자의 지위를 박탈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지구촌 과학계 최고의 걸작인 스너피를

발명한 장본인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허물을 묻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

다. 정보를 조작해서 수만 명을 죽이는 전쟁을 일으키고, 자국의 젊은 군인 2000명 이상을

죽이고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은 부시는 최고 강대국의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 사람 하나 죽이지 않은 황교수는 모두 시인하고 사죄하고, 모든 화려한 직위와 직장마

저 내놓고도 더욱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

윤리 문제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

은 서양적 사고와 종교와 문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황교수 자신도 헬싱키 선언이라

는 게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했다. 현재의 상황과 우리네 정서에 맞지 않는 윤리적 잣대는 손

질이 필요하다. 황교수가 더 내놓을 것은 없다. 목숨 밖에는.

논문 조작이라는 것도 그렇다. 황교수가 모든 잘못을 내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그게 어디 그

런가. 과학의 발전사에는 데이터의 조작이 숱하게 많다. 명예와 지적 소유권을 가로챈 경우

들도 있다. 전화기를 자신이 발명했다며 소유권과 명예를 가로챈 벨이 대표적인 예다. 논문

을 조작해서 노벨상을 탄 사람도 있다고 한다. 황교수의 논문 조작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몰아간 측면도 없지 않으며, 노성일 이사장과 섀튼 교수도 조작의 정황을 알고 있었다. 황교

수 몰락을 염두에 둔 의도된 꼬임과 부추김에 흔들린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노 이사장의 지

난 행보와 섀튼 교수의 자기와 자국의 이익을 꾀하는 어처구니없는 비상식적 요구들이 그것

이다. 황교수는 노 이사장과 섀튼 교수의 괘씸죄에 걸려든 것이다.

노 이사장은 황교수에게 많은 걸 베풀었다. 거금을 들여 난자를 제공했으며, 핵심기술을

전수했다. 그런데 지분 50%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섭섭했으나 국가의 재산이라 하니

참았다. 그런데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황교수에게 집중되었으며, 1년여 전부터는 황교수가 예

전 같지 않았다. 안부 전화 한 통 없는 것이다. 자신이 필요할 때에만 전화하고, 오라 가라

했다. 황교수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이 대목은 황교수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기자회견에

서 자신이 교만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노 이사장에게 안부의 짤막

한 문자 메시지라도 한 번씩 날릴 일이었다.

황교수가 아무리 조작을 하려 했더라도 노 이사장이 말렸어야 했다. 섀튼교수는 글로벌 스

탠더드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논문의 문제를 제기해서 막았어야 했다. 사이언스 편집인들은

모르고 속았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노 이사장과 섀튼교수는 논문 조작의 정황을 알고

있었다. 전 세계의 언론 앞에서 의형제라고 했던 사람이 이익 앞에서 의리를 저버렸다.

이렇게 탄력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선보고 후조치’ 라는 것도 있다. 논문

도 일종의 보고서다. 황교수는 확고한 의지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가능성을 먼저 보고

한 다음(만인 앞에서 한 약속은 죽을힘을 다해 이루려고 하는 의지를 굳건히 해준다.) 최선

을 다해 결과를 내놓을 작정을 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연구비와 시설과 연구

원들의 처우 개선(박사급이 70만원, 석사급이 20만원의 연구비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한 달

에. 기가 막히지 않는가.)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모든 것들이 작용해서 발표를 서두르

고, 성과를(확고한 가능성을 전제로) 부풀린 게 아니었을까. 그에게는 시간과 매니저가 절실

히 필요했다고 본다. 신변보호보다도.

부득이한 경우, 이런 차선책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0년간 최고 과학자의 자리를

비워 두고, 황교수를 백의종군 시켜서 국민과 전 세계 과학계로부터 신뢰를 회복했을 때 복

권시켜주는 것이다. 10년이 넘도록 실적이 없을 때에는 어쩔 수 없다.

서울대의 교수회의 의장이라는 사람은 이글거리는 눈을 부릅뜨고 황교수의 파면을 주장했

다. 내가 보기에는 교수회의 의장도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물급회원의 관리

를 잘못한 죄가 크다면 크다. 서울대 총장도 그렇고, 병원장도 그렇고, 연구처장도 그렇다.

황교수를 굳이 파면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면, 거명된 사람들도 모두 동반 사퇴해야 할 것이

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아무런 잘못도 없으면서 단지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직

한(정확히는 토사구팽) 쓰디쓴 기억이 있다. 황교수를 파면시키는 것이 서울대의 자존을 살

리는 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교수는 최고의 의료진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강화 전등사를 찾았고, 기도

를 통해 건강을 되찾은 사람이다. 확실한 불자다. 그러니만큼, 불교계에서도 황교수의 건강

상태를 보아서 적절한 시기에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죄를 물어 3000배를 명령해야 할 것이

다. 말로만 사죄해서는 안 된다.

말이 자꾸만 길어진다. 그림 하나만 그리고 끝맺겠다.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 그 안에서 종교 갈등이 생긴다면 2중 3중의 분단국이 되

는 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테러가 속출할 것이다. 살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될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실토한다.

나는 이슬람교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다. 따라서 ‘하나님 또는 하느님과 부처님이 동일

한 존재’로 정정한다. 내가 알라신을 끌어들인 것은, 그렇게 해야, 데이터를 조작하고 부풀

려야 좀더 효과가 클 것 같아서였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못했지만, 후일에 반드

시 이슬람교를 공부할 것이고, 그 결과 알라신도 틀림없이 동일한 존재일 거라는 확신이 있

었기에 ‘선보고 후조치’한 것이다. 하지만 조작하고 부풀린 것은 사실이기에 네티즌 여러

분께 정중히 사죄드린다. 황교수도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실토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황교수, 노 이사장, 섀튼교수도 실토할 것이 남았으면 빨리 하기 바란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의 교주들이 동일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한, 다툴 일이 전혀 없다.

문화적 정서적 개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 풍토의 조성이 절실하다. 나

는 개인적으로 가스펠송 몇 곡을 차용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불자 가수들이 크리스

마스 캐럴을 부르듯이 가스펠 가수들과 기독 연예인들이 석가탄신일에 찬불가를 부르며, 기

독 연인들이 절에 가서 탑돌이를 함께하며 사랑을 재확인하고, 사랑의 깊이를 더하는 계기

를 삼는다면 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실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나에게 선물한 예쁜 기독인 친구가 있다는 것을 자

랑하며 붓을 놓겠다. -끝-




작성일시: 2006. 1. 8. 04.

hkjk 씀.

내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아직은 수행이 설익은 터라서 그렇다. 이해를 부탁드린다.

나에게는 마음 속 매니저로 충분하나,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 이 글을 각 언론사, 방송위원회, 국회, 연예인협회, 검찰청, 등에 마구


퍼날랐으면 좋겠다. 글 퍼울린 사람 -SPW007-






출처 : 아이러브 황우석
글쓴이 : spw007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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