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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1년전신문기사를 기억하는사람이 있을가요?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충분히 억만장자가될수있었던 황우석박사

낙엽군자 2006. 1. 19. 13:46

11년전신문기사를 기억하는사람이 있을가요?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충분히 억만장자가될수있었던 황우석박사

 

11년전 신문기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가요? 저는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충분히 억만장자가 될수

있었던 그는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농민들에게 자신이 개발한 핵심기술의 공을 돌렸다.

11년전 자신의 모든이익을 버리면서 고능력소(슈퍼송아지)개발에 첫단추와 핵심원천기술을 국가와 국

민에게 바쳤다.이로서 슈퍼소의인공수정시 400만원이 넘어가던... 수정란의 비용이 단돈 몇만원으로 줄

이게 되었다.. 자신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부를 축적할수 있었지만 농민의 한사람이라는 심정

으로 어려운 대한민국의 농가들의 현실을 그누구보다 잘알기에 국민의 이름으로 모든것을 자신의 이권

을 버린분이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분에대해 인격모독성 발언을 하는 현실을 지켜만 보아야 하는가.

분노하지 않을수 없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38&article_id=0000284097&section_id=101&menu_id=101

성장속도 2배 슈퍼송아지 탄생

[한국일보 2005-05-24 22:38]    

성장 속도를 일반 송아지보다 빠르게 한 ‘맞춤형 슈퍼 한우 송아지’가 국내 독자기술로 탄생했다.

농촌진흥청은 혈통이 뛰어난 암컷 한우로부터 수정란을 채취, 좋은 품질의 암송아지를 맞춤 생산하는데 성공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팀이 사용한 방법은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팀이 난자에서 핵을 제거할 때 쓴 ‘유리관 펀치’ 기술과 같은 것이다. 1일 탄생한 맞춤 송아지는 ‘바란이’와 ‘보란이’로 명명됐다.

이 두 송아지는 하루에 900g씩 자라 보통 500g씩 성장하는 일반 송아지에 비해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다. 3~4개월 된 암송아지 값이 320만~340만원 정도로 수송아지(220만~230만원)보다 100만원 가량 비싼 것을 감안하면 농가의 소득증대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우량 암컷 한우의 배란을 촉진 시켜 수정시킨 다음 유리관으로 수정란에 조심스럽게 구멍을 내는 방법을 사용해 성을 감별한 후 대리모 소에 이식했다. 일본에서는 수정란을 훼손하는 ‘절단식’을 사용, 수태율이 30%에 불과하다.

농진청 손동수 연구관은 “이번에 사용한 기술은 수태율이 40~60%에 달해 효율성이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라며 “같은 방법으로 20여 마리의 암소가 ‘슈퍼 암송아지’를 임신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http://k4790283.com.ne.kr/35240.cut.wmv?LW6RfsD5u9_iJiaXiq3yNw00&o9CNLNLY6a5a_qsoZdkhUA00&o9CNLNLY6a5g5vkwW__UNA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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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올것 같습니다. 황우석 박사님 목소리 들어보세요 너무슬퍼서 가슴이 미어집니다.정신차리고 지켜드립시다.

황우석박사님의 말씀입니다. 눈물이 나옵니다 우리 박사님이 무얼 잘못하셨나요. 이런분을 우리가  지켜드려야 하는게 아닌가요. 조용히 눈물 흘렸습니다.거리로 나가려 합니다. 광화문으로 걸

얼 나갈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우리의 주권을 상실하였습니다 국민은 대한민국의 힘입니다 그런 국민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짋밟는 작금의 현실에 우리는 우리의 권리인 국민의 주권을 지켜야 할때입니다.

거리로 나갈 것입니다.. 우리국민의 힘으로 우리국민의 한사람인 황우석박사님 연구원분들을

지켜 드릴것입니다. 앉아만 있지말고 일어나야할때입니다. 그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우리민족을 사랑하신분입니다. 그런분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스스로가 우리의 주권을

포기하는 행동입니다.

 

시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일찍 우리겨레를 예찬하셨습니다. 그런우리가 무엇이 두려울것이 있겠습니까.

각성하고 일어나서 우리의 주권을 지킵시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림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펴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한국인, 오늘의 초상>

복제송아지 특허 내지 않고 농민들에게 무료 전수하겠습 니다 ;

서울대 소박사 황우석교수 ### [복제송아지] 특허내지 않고 농민들에게 무료전수하겠어요 ###.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황우석교수(55).2006년 현재 연세입니다. 1995년 연세가44세입니다.

본래기사원문 나이가 44세 입니다 11년전 기사라는 이갸기 입니다.  현재 황우석 박사님의 연

세가 55세입니다. 1995년 수정란복제송아지 기사였던것이입니다.이내용 정정하여 올립니다.너

무 중요한 사실을 제가 기사를 끝까지 제대로 안읽은듯해서 올립니다 10년전 황우석 박사님이

어떠한 여건에서 연구를 하셨는지 알수 있을것입니다. 이기사를 쓰신 이효재기자님의 원문기사

는 찾을수 없지만 너무나 황우석 박사님에 대하여 잘알려준 기사인듯 합니다. 이기사는 최근에

쓰여진 기사가아닌 1995년도에 쓰여진 기사입니다. 많은분들이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정정하여

올립니다.

8년반 동안의 끈질긴 집념으로 그는 지난 10일 경기도 이천군의 한 작은 농장에서 복제(핵이식)

송아지를 탄생시켰다. 육질과 유질이 뛰어나고 유량도 풍부한 고능력소(수퍼소)에서 채취한 수

정란을 복제해 이를 대리모(수란우)에 이식, 수펴송아지 [1호]를 받아낸 것.

세계 기록으론 이미 성공한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번째. 앞으로실험을 보완, 실용화 단계에 오르면 1개에 1백만∼4백만원이나 되는 수입수정란을 1만∼2만원에 자체 생산할 수 있어 연간 8천억원의 수입 대체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현재의 젖소는 하루평균 젖 18㎏을 생산하나 복제 젖소는 35㎏을생산하고, 우유생산량을 적정수준에 묶어두면 사육두수를 2배정도 줄일수 있어 생산성은 3∼4배 정도 높아지게 된다. 우유도 지방의 함유량이현재 3.4%에서 4%이상으로 높아져 고품질화된다. 한우도 현재 1마리에서 4백50㎏의 고기가 생산되나 복제 한우는6백㎏으로 늘어나고, 송아지 생산단가를 현재 두당 1백60만원에서 70만원으로 낮출 수 있다.

그는 이번 실험으로 {축산농가들에게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곧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소 항문검사만 30만번 이상 그에게 소라는 동물은 연구대상을넘어 오늘의 그가 있게 한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거칠게하면 성격이 한없이 포악해지고, 애정으로 대하면 한없이 유순해지는 소는 마치 우리나라 순수한 농민들과 같아요.}

그에게 소는 곧 농민과 같은존재다. 그가 평생을 소 연구에 바치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어린시절부터 시작된다.

52년 충남 부여군 은산면의 벽촌에서 6남매중 다섯번째로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6살 때 돌아가신 뒤 홀어머니(조용련·현재 77세)밑에서 어렵게 자라났다. 어머니는 1천여평의 논밭과 한우 3마리로 자식들을 키웠으나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다. 때문에 다른 형제들이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가 대학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대전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친척 한분이{누군가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그를 대전으로 데리고가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대전서중을 거쳐 대전고를 졸업했다. 고교 선생님들은 그에게 서울대 의대진학을 권유했지 만 그는 아무 주저없이 서울대 수의과에 지원, 72년 합격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우리 식구를 먹여살린 소에 대해 언젠가는 보답을 해야 한다고 쭉 생각해왔어요. 방학 때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논두렁에서 꼴을 만들어 지게에 가득싣고 소에 먹이던 모습을 평생잊을 수 없어요. 지금도 힘들 때마다 그 모습을 생각합니다.} 또 소의눈에서 한없이 어질고 평안한 모습을 보라보면 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전공과정이 시작된 2학년부터 그는 그 흔하던 미팅 한번 해보지 않고 도축장이나 가축병원에 드나들면서 소의 항문에 손을 집어넣어 장기를만져 소의 상태를 진단하는 [직장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해외출장 때를 제외하고는 최소 1주에 2∼3번씩은 [직장검사]를 한다. 지금까지 30만번 이상했다. 전국에서는그보다 많이 소의 항문에 손을 집어 넣어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는 {손끝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게 하기 위해 직장검사를 계속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가 소의 자궁에 수정란을 집어넣어 수태에 성공시키는확률은 평균 63%로 세계적인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평균 30% 수준이고, 미국과 일본에서도 평균 50∼60%를넘지 않는다.

그는 학교를 다닐 때나 박사과정을 마치고 4년동안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동안 전국의 3백여개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소를 만지고 실험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에 있는 그의 집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농민들로부터 {우리 소가 아프다}는 구호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때마다 그는 싫은 소리 한마디 않고 달려가 소를 진단하고 병을 고쳐준다. 그래서 그는 소를 기르는 축산농가들 사이에 {소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불리고 있다. {황우석을 모르면 간첩}이라고도 한다.



이같은 평가에 대해 그의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단호하다. {우리는응용과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연구실 연구만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수 없어요. 농민들의 농장은 그자체로 훌륭한 살아있는 연구실이지요.소똥도 소중한 자료입니다.}

그가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그와 그의 식구들을 먹여살렸던 사람들도 다름아닌 이 농민들이었다.

그는 85년 7월 서울대 수의대학 학장이던 정창국교수로부터 {세계적 학문조류인 수정란 이식을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고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가나가와 히로시교수가있는 일본 북해도대학으로 갔다. 그는 이 대학에 서 10개월동안 머물렀는데 이 기간동안 평소 그를 알고 있던 농민 10여명이 부인과 어머니, 두아들이 살고 있는 서울 집으로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일본에 있는 그에게도 생활비의 일부를 보내주었다. 이들은 아무말도 없이, 아무 대가도 없이, 그냥 그가 좋아서 매달 5만∼10만원씩을통장에 넣어 주었다.

그는 {이렇게 무조건으로 나를 도와준 농민들에게보답하기 위해 나도 무조건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그는 어떤 때는 하루에 2∼3시간만 자며 연구를 했다. 당시같은 연구실에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에서 온 유학생이 12∼13명정도 있었는데 다들 그를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가나가와교수도 그의 성실성과 집념에 반해 유학생중 유독 그만을일본의 목장이나 연구소에 직접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실습할 수 있게 도와 주었다. 가나가와교수는 지금도 그가 일본에 출장가면 부부가 공항까지 나와 맞이하고 일본 유명 학자 등을 자기 집에 불러 잔치를 벌여줄정도로 그를 아끼고 있다. 일본의 축산 현장에서 그는 {결국 기계화로생산성을 높이고 첨단기술을 접목시키지 않으면 우리 농촌은 살아남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기중이던 86년 5월 그의 사람 됨됨이와 실력을 아껴오던 정창국학장은 당시 박봉식총장에게 탄원, 그 어려운 교수 자리를 하나 따내 일본에 있던 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를 서울대 수의과 교수로 발령을 냈다.

연구중 중병얻어 [시한부 인생] 되기도 복제송아지를 만들어야겠다는 꿈은 그의 귀국 비행기안에서 잉태됐다. 당시는 세계의 축산학계에서 달성되지 않은 연구과제에 불과했고, 성공가능성도 미지수였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비행기 안에서 [내가 복제 송아지 연구를 시작해 놓으면 내 뒤를 이어 누군가 성공하겠지]라는 막연한꿈을 꾸었습니다. 성공하려면 20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어요. 당시 세계적으로 막 논의가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를 생각해보니 복제송아지만이 우리 축산농가들이 살아갈 길이라 생각했어요.}

귀국 후 9월부터시설도 형편없고 변변한 시료도 없는 수의과연구실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일단 복제송아지의 기초단계인 쌍둥이송아지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 대리모에 수정란 2개씩을 넣어 수태시키는 비교적 가벼운 연구로일년만에 성공했다. 다음 단계로 시험관송아지 연구가 시작됐다. 이 시험은 죽은 고능력소에서 떼어낸 난소에서 미성숙난자를 뽑아내 24시간동안 시험관에서배양, 성숙 난자를 만들어 정액을 넣어 수정시킨 뒤 체외에서 5일동안 배양시켜 정상 수정란을 만든 다음 대리모에 이식시키는 것. 죽은 소 1마리에서 수정란 60개정도를 얻어낼 수 있다. 고능력소(수퍼소)에서 채취한 수정란 1개로 실험실에서 수정란을 무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복제송아지와는 이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는 6년간의 연구끝에 93년 11월 시험관송아지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시험관송아지연구는 그대로 복제송아지 연구의 밑받침이 돼 1년4개월 뒤 복제송아지연구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연구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88년 6월에는소화기 계통에 중병을 앓아(그는 병명을 밝히기를 꺼려했다) 서울대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았다. 연구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그러나 8시간에 걸친 대수술과 {실험을 게속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그의투혼으로 기적같 이 살아났다.

그해 7월부터는 서울 잠원동에 있는 도장에서 {나 자신과 투쟁하고 나자신과 대화를 하자}며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매일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 1시간40분동안 한다. 지금까지 해외출장기간을 빼놓고 단 하루도 빠진 적이 없다. 단전호흡이 끝나면 수원에 있는 대학연구실로 출근, 바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그는 대부분 하루 2끼를 먹는다. {연구실, 강의실, 농장을 돌아다니 다보면 밥먹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귀가시간은대부분 밤12시. 이 때문에 그는 하루에 4시간이상 잠을 자지 않는다. 그는 학부생들에게 {나 만큼만 성실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러나 아무도그를 욕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 있는 연구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연구원들에게는 토요일, 공휴일은 물론 설날이나 추석같은 명절이 없다. 연구의특성상 연구실을 24시간 지켜야 하고 매일 3∼4명은 밤을 새워야 한다.연구원들에게는 별도의 보수도 없었다. 오히려 출장비 연구비 등을 자기돈으로 들여가면서 해왔다. 결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매년 5천만∼2억원의 연구비를 대려면 이들에게 돌아갈 돈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연구원들은 부인들에게 생활을 맡겨야만 했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모두 농민들의 것 황교수는 연구를 시작하면서 어렵게 마련했던 자신의 32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몽땅 연구실기자재를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빈약한 학교에서는 아예 연구비를 탈 엄두도내지 못했고, 연구가시작되고 상당히 진행됐을 때까지도 이 연구에 관심을 가진 기업이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황교수가 정부로부터 유전공학연구비로 연간 5백만원을 받았던 것이 고정적인 수입이었고, 가끔씩 일부 중소 축산기업들이 도와주었다. 봉급을 몽땅 털어넣기 일쑤였다. 비싼 시료가 필요하면 선배들이 있는 회사로 달려가 손을 내밀기도 했다. {연구비가 풍요로왔다면 오히려 연구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돈이 아니라 농민들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연구를 유지해왔습니다. 실험에서 수 없이 실패했지만 연구원들은 그때마다 [연구는 반드시 성공시키되 대가는 바라지 않는다]는 다짐을 되새기며 극복해 나갔습니다.}

이연구실 출신이 50여명에 이르지만 단 한마디의 불평도 들어보지 못했다는것이 황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복제송아지 생산 사실이 보도되자 대그룹을 포함한 10여개의축산회사로부터 자본을 댈테니 특허를 내고 독점생산하자는 제의를 받았으나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며칠전 {그동안 무관심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농림수산부의 한간부에게 {우리는 결코 특허를 내지 않는다. 축산농가들에게 무료로 우리의 기술을 전수해주고 원하는 농가마다 수정란을 이식해주겠다}는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우리가 얻어낸 연구결과는 모두 농민들의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연구실에는 요즘 하루에 5∼10건씩 농민들로부터 복제송아지 이식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일요일이던 지난 19일에도 연구원들과 함께 복제송아지 이식을 위해 하루종일 농장을 돌아다녔다. 그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뒤 한 일간지에서 [음지에서 이룩한 개가에 갈채를 보낸다]는 문구를 읽었을 때 코끝이 찡했다고 했다. {우리 연구원들은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더 이상 요구할 것은없습니다.}

앞으로 그는 복제송아지의 무게를 현재의 60㎏에서 45㎏으로줄여 난산에 따른 사산을 방지하고, 체외배양 능력을 향상시키는 보완연구를 할 예정이다. 3∼4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이는 이 보완연구가 끝나면 곧바로복제송아지의 산업화가 시작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는 인체에 필수적인 인슐린 인터페론 락토페린 등 생리활성물질을 소의 젖에서 대량분비되도록 하는 연구에 들어갈 예정이다.

황교수는 1호복제송아지가 태어난 지난 10일 새벽 충북 보은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내 아들 장하다}고 울먹이는 어머니의 말에 그는 {농민의 아들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효재 경인취재본부기자>

출처 : 아이러브 황우석
글쓴이 : 한힌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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