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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같은 이야기 영웅출현 예고 2편

낙엽군자 2006. 1. 5. 10:27

영웅출현 예고 2편 범재선생과 대원군

의열단 ,3.1운동의 비밀,파리회담의비밀등 계속 이어지기전에 범재선생은 왜? 무슨이유로
고종황제와 충정공 민영환선생과 가까운사이가 되었을까?


사극 혹은 역사책에 대원군이 파락호 시절 각 고을의 부자집을 상대로
돈을 갈취하곤 하였으며 엉뚱한 트집으로 공갈 협박을 일삼던 시절이 있었으며
바로 범재선생의 조부 정랑공의 집에 와서 가짜로 돌을 씹었다고 공갈치는
장면을 보신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정랑공은 낙마 하여 다리를 다처 관직에서 물러나 치재에 힘쓴결과 상당한 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때 날으는 새도 떨어트리는 권세를 가지게 된 대원군은 자신에게

파락호시절 감히 왕족에게 돈을 주기를 거절하고
따금한 충고를 한 정랑공을 잊지 않고 있었으며 경복궁을 지을때
원납전에서 당백전 노역,호포등 각종 명목으로 칼을 목에 대고 빼앗다 싶이 하였습니다.

대원군은 50여명의 포수를 보내어 조금 과장 되었겠지만 모아놓은 엽전이
집채만 하였고 옥천 김참봉댁 에서 한양까지 돈으로 다리를 놓았다고 할 정도 였다
합니다.꼭 소설 같은 이야기 입니다.

정랑공의 기록중에 稅在庚午 慘酷禍變 尙忍言哉 尙忍言哉
“경오년에 참옥한 화변은 지금인들 말로 다할수 있으리오
차라리 참고 말하지 않으리라 "

범재선생의 조부 정랑공은 화가나서 수염을 손으로 뽑았다고 합니다.
강도에게 돈을 모두 빼앗겼을 때를 생각 하시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쯤되면 참을성이 많고 너그럽고
육도삼략을 통달한 범재선생 이지만 할아버지의 원수
대원군에 대한 감정이
좋을수가 없을 것이며 대원군과 사이가 나쁜 충정공과 고종 황제와
가까운 사이가 되였으리라 생각도 됩니다.

대윈군에 대하여 역사도 틀리고
많은분이 다른 의견이 있을 것 입니다.그러나 제 생각은 대원군의 페쇄정책이
결국 나라를 약소국으로 만들고 싸우지도 못하고 나라를 빼앗겨 죄없는
우리 독립운동자들만 죽이는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경복궁 중수(重修)를 위해 형평에 어긋나게 사감으로 중과세를 하므로 민생(경제)을 도탄에 빠뜨렸으며.

또한 국제정치에 대한 무식과 옹고집으로 쇄국정책을 고수하여 결국 무력에 의한 개방으로 후일 조선의 운명을 재촉하는 결정적 계기를 자초하였다고 생각할수도 있으며 대원군에 대한 사적인 원한 관계가 독립운동에
조금은 작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사의 총 사령관으로
한국의 자존심을 세우며 영원불멸의 업적을 세운 내면에 이런 소설같은 이야기도 참고로 아시기 바라오며
다음으로 이어 집니다.


 
출처 : 블로그 > 위대한 한국인 범재 김규흥 | 글쓴이 : 푸른 하늘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