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비가 있었는데 성품이 좀 음탕한 편이었다. 그 선비의 사랑방에는 묘하게 구멍이 뚫린 호박이 감춰져 있었다. 호박에 난 구멍은 어찌 보면 여성의 아름다운 옥문과 비슷했다. 호박의 표면은 좀 누런 빛을 띠고 있지만, 구멍 안으로 들어가면 분홍빛이 점점 짙어지다 끝내는 붉은빛마저 띠었다.
선비는 남몰래 음경을 그 안에 집어넣고 즐기는 취미가 있었다. 만일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호박을 의자 밑에 감추어 두었으므로 아무도 그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도 비밀은 없는 법. 마침 선비에게는 어린 조카 하나가 있었는데 워낙 선비의 사랑방을 자주 들락거리는 터여서 구멍의 비밀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하루는 조카가 선비를 찾아왔다. 선비는 조카더러 의자에 걸터앉으라고 권했다. 어린 조카는 계속 사양했다. 이상히 여긴 선비가 물었다.
“너와 서로 마주보고 의자에 앉아 이야기나 좀 할까 하는데 어찌 어린 조카님이 이리도 겸손하신가?”
조카가 대답했다.
“비록 채소의 한 종류이기는 하지만 아주머니께서 의자 밑에 계신데 제가 어찌 감히 그 위에 올라앉겠습니까?”
그 선비는 그저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이야기 속의 선비는 호박 구멍을 이용해 무료함을 달래다 어린 조카에게 들키는 바람에 단단히 혼이 났던 것이다.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라는 뜻에서 신독(愼獨)을 자신의 호로 삼은 단정한 선비도 있지만, 게으름·공상 또는 성적 욕망에 시달리는 선비들도 적지 않았을 것은 물론이다.
‘호박 아주머니’가 계신데 어떻게 위로…
<동의보감>을 비롯한 동양의 의학서적에서는 남성의 자위 행위를 금지한다. 쓸데없이 사정하면 남성의 정기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 결국 양기부족으로 심신이 허약해진다고 봤다. <소녀경>과 같은 도교 계열의 방중술 책에서는 동침 중에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정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심지어 조선 후기 양반가에서는 신혼부부가 동침하는 횟수조차 한 달에 한두 번으로 제한하는 풍습까지 있었다. 남성의 정액은 곧 남성의 생명으로 인식됐기 때문에 함부로 쏟아내서는 절대 안 될 귀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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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720년, 네덜란드의 베커는 성서에 나오는 ‘오난’의 이야기에 주목해 오나니즘(자위행위)이라는 용어를 창안한다. 오난은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인데, 홀로 된 형수에게 아이를 낳게 해줄 사회적 의무를 방기한 채 정액을 땅에 배설했다 신의 노여움을 사 죽는다. 근대교회는 이 대목에 근거해 자위행위를 범죄시했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자위행위의 필요를 인정하기도 한다. 성인 남성이 오랫동안 성관계를 갖지 못할 경우 정액이 체내에 너무 많이 누적돼 양기의 흐름을 막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때는 자위행위를 통해서라도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봤다.
한의학에서는 자위행위 이상으로 몽정을 문제시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몽정은 생명을 빼앗으려는 악귀의 소행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저 정기를 약화시키는 자위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한방에서는 몽정(夢精)의 치료법으로 부추 씨를 볶아 하루 3번씩 복용하라는 처방까지 마련해 놓았다.
어쨌거나 조선시대에는 남성의 자위행위를 몸에 해로운 것으로 인식했다. 그렇다 보니 이야기 속의 선비는 자연히 ‘음탕한’ 사람으로 간주됐다. 조선시대에는 남성의 자위행위 자체가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남성의 자위 기구 같은 것은 전혀 발달하지 못했다. 기껏 호박에 뚫린 구멍이 이야깃거리가 될 정도였다.
이른바 의학상의 이유로 남성의 자위행위가 금지됐다면 여성의 경우는 어땠을까? 이것은 정말 상상도 못해본 일인데, 한방에서는 여성의 음기는 절대 고갈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중국 고대에 나온 <규방교본>과 같은 일종의 여성 백과사전에는 여성들의 쾌락을 위한 음경 모양의 기구가 다수 실려 있다.
안압지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궁궐 유물 중에도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목제 음경이 보인다. 남성의 자위행위를 규제하던 전근대 시기 인도에서도 여성의 자위행위는 규제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여성은 생명의 ‘씨앗’을 생산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조선 선비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자.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성품이 음탕해 못된 행실을 계속하더니 마침내 성병에 걸리고 말았다. 옥문이
무척 가려운 병이었다. 여인은 의원을 찾아가 가만히 물어보았다. 의원은 신통한 처방이 있다면서 울퉁불퉁한 오이를 골라 옥문에 집어넣었다 뺐다
되풀이하면 절로 나을 병이라고 속였다. 그 여인은 의원의 말대로 오이를 구해 그 짓을 한번 해 보았다. 너무 황홀해 정신이 혼미해지고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점차 더 큰 오이를 따다 틈나는 대로 열심히 그 일을 되풀이했다. 날마다 그런 식으로 좀더 큰 물건을 가지고 놀다 보니 어느새 아무리 큰 오이로도 도저히 만족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망설이던 끝에 여인은 다시 그 의원을 찾아갔다. “의원님, 애호박도 효험이 있을까요?” 미망인의 이 말을 듣고 장난꾸러기 의원은 소리 내어 웃을 뿐이었다. |
일본 여성들은 ‘벤와’라는 기구를 즐겨 이용했다. 이것은 두 개의 작은 공인데, 한 개는 완전히 비어 있고, 다른 한 개에는 소량의 수은이 들어 있다. 자위를 하는 여성은 먼저 속이 빈 공을 옥문에 조심스레 집어넣은 다음 수은이 든 나머지 공까지 밀어 넣는다. 그런 다음 눕거나 의자에 앉아 엉덩이를 파도 치듯 전후좌우로 흔든다.
마르지 않는 여성의 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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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처방의 기원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에게로 소급된다. 갈레노스는 여성의 자궁에는 남성의 정액과 흡사한 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면 피가 썩어 몸이 냉해지고 신경에 이상이 생겨 히스테리 증세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러나 교회가 자위행위를 엄금하면서 자위행위의 해악에 관한 ‘학설’이 쏟아져 나왔다. 19세기에는 자위행위가 심하면 정신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이 의학계를 지배했다.
아침식사로 시리얼을 개발한 존 켈로그는 부모들에게 자위행위를 하는 어린이는 무력증·폐결핵·변덕·불면증·정신장애·거짓말·수줍음 등 수많은 장애 현상을 갖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848년 존 무디는 남녀 아동들을 자위행위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아동용 정조대를 개발해 일부 극단적으로 도덕적인 서구 시민들로부터 환영받았다.
아동용 정조대의 발명 같은 것은 과연 기계를 중시하는 서양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엄한 교육이 기계보다 강제력이 있다고 간주했을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든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 보면 조선 선비들은 ‘음탕한’ 여성의 자위행위를 비난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실은 여성이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즐긴 관음증의 흔적이 역력하다. 여인이 ‘울퉁불퉁한’ 오이를 넣었다 뺐다 하는 모습 하며, 날마다 좀더 큰 물건을 찾는 여성의 적극성을 상상하는 것이 선비들에게는 꽤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신기가 붙은 송이버섯 ‘덕거동’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왕성한 성욕을 만족시켜 줄 만한 큰 오이를 찾지 못하고 선비의 팔뚝보다 굵은 ‘애호박’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과장된 이야기를 들으며, 선비들은 그녀의 음탕함을 비난했다기보다 그녀와의 즐거운 만남을 꿈꾸었던 것 아닐까?
그 여인의 자위행위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오직 꾀 많은 의원만 그런 사정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의원은 사실상 선비들의 분신이었던 셈인데, 그렇다면 선비들이야말로 여인에게 자위행위라는 기묘한 ‘처방’을 준 악동들이다. 이야기 속의 여인이 기혼자인지는 불분명求? 그런데 조선 선비들이 여성의 자위행위에 대해 상상할 때면 대체로 성체험이 풍부한 미망인을 관념적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다.
미망인이 된 어느 여인이 역시 홀몸이 된 여종을 거느리고 살았다. 어느 날 우연히 두 여인이 크고
굵은 송이버섯 하나를 얻었다. 송이버섯의 모양이 남자의 음경과 너무 비슷해 욕정을 이길 수 없어 두 미망인은 송이를 가지고 마음껏 즐겼다. 두
여인은 이 송이버섯을 ‘덕거동’이라고 이름지어 놓고 틈날 때마다 서로 번갈아 문지르거나 밀어 넣으며 재미를 보았다. 늘 송이버섯과 이렇게 가까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두 여인의 정기와 신기가 붙었는지 ‘덕거동’은 이름만 불러도 알아서 움직일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 체 장수가 집 앞을 지나가자 여인들은 그를 불러들여 집 안에 있던 망가진 체를 모두 꺼내 수선을 맡겼다. 그리고는 방 안에 들어가 ‘덕거동’을 불러놓고 또 그 재미를 한껏 맛보았다. 수리를 마친 체 장수는 방 안에서 ‘덕거동’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이 집 아이 이름인 줄 지레 짐작하고 “덕거동아!” 하고 불렀다. 그러자 송이버섯이 불쑥 나타나 체 장수의 항문을 찔러대는 것이었다. 체 장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멀리 도망하기에 바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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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 이야기를 주고받은 조선의 선비들은 두 여인의 자위행위를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들이 미망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비들은 미망인들의 성적 고충을 십분 이해했기 때문에 간통도 아닌 자위행위를 감히 비난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
앞서 살핀 ‘울퉁불퉁한 오이’ 이야기에서는 오이를 가지고 자위행위를 즐긴 여성을 ‘음탕’하다고 규정했다. 이것은 아마도 그녀가 남편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유부녀라서 그랬던 것 같다. 하여간 미망인의 자위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관용하는 분위기였다.
부부 모두 빠진 자위의 함정
성과학자 베티 닷슨은 자위행위를 성적 표현의 원초적 형태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자위행위는 청소년이나 성적 파트너를 얻지 못한 성인 또는 배우자를 여읜 노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위행위는 인간이 평생 자기 자신과 나누는 현재진행형의 연애라는 것이다.
자위행위가 과연 닷슨의 말처럼 현재진행형의 자기연애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조선 선비들의 성담론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혹시 그 주장이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시 빠져든다.
전라도 고부에 사는 오씨라는 선비가 양갓집 규수에게 장가들었다. 선비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몹시
깊었다. 어느 늦봄 아내는 냇가로 빨래하러 나갔는데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사방이 고요해 갑자기 음기가 일어나 아무래도 견딜 수 없었다. 마침
사방을 둘러보았더니 인적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빨래터에는 두 주먹을 합친 길이의 매끄럽게 생긴 돌이 하나 있었다. 아내는 그 돌멩이를 자신의 옥문에 대고 조금씩 집어넣었다. 꽤 오랫동안 그 짓을 하였더니 흥이 나서 마침내 그 돌멩이를 아주 깊이 밀어 넣고 말았다. 당황한 아내는 손가락을 집어넣어 돌멩이를 빼내려고 하였지만 너무 매끄러워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옥문 언저리를 눌러 돌멩이를 토하게 하려고 했지만 아프기만 할 뿐 아무 효과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와 수심에 잠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선비가 그 까닭을 물었다. 아내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사정을 그대로 설명했다. 마침 돌멩이 하나가 당신의 음경과 비슷해 보여 잠깐 비교해 보려고 살짝 집어넣었는데 잘못돼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고 변명했다. 선비는 아내의 말을 듣고 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참 이상도 하오. 나도 홀로 빈 방에 앉아 창문을 열어젖힌 채 이리저리 뒹굴고 있노라니 담장의 복숭아꽃은 만발하고 숲 속의 온갖 새들이 제각기 재롱을 떨어 마음이 뒤숭숭하였다오. 당신의 경대를 어루만지며 당신을 빨래터로 보낸 것을 후회했소. 마침 평상 밑에 입이 좁고 깨끗한 항아리 하나가 눈에 띄어 바라보았더니 당신의 옥문과 비슷하지 않겠소? 그래서 나도 비교할 뜻에서 항아리에 음경을 넣었더니 그 입이 좁아 나오지 못하는구려. 항아리를 깨뜨릴까도 생각했으나 그러면 내 물건에 생채기가 날까봐 이렇게 하릴없이 쭈그리고 앉아 있다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얼싸안고 통곡하다 소경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쳤다. 점쟁이는 평소 골계에 능한 사람이어서 크게 놀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 큰일났습니다. 제가 경을 외우지 않으면 해결할 방도가 없습니다. 또한 긴급한 사태라서 조금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제 집에서 우선 경을 외고 직접 선비님 댁으로 가서 해결해야 하므로 말먹이 석 섬과 콩 닷 말을 바로 보내십시오.” |
선비는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 점쟁이는 그 이튿날 선비 집을 찾아가 선비의 음경에 걸친 항아리에다 아내의 그 부분을 대고 둘 다 눈을 감고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런 다음 아이들을 시켜 종이 침을 비벼 콧속을 쑤시게 하였다. 콧속이 간지러운 선비의 아내는 두세 차례 잇달아 재채기를 했다. 그 바람에 그녀의 옥문 속에 들어 있던 돌멩이가 튀어나와 항아리를 때려 항아리를 깼다. 일은 원만히 해결되었는데, 그들 부부는 점쟁이의 꾀를 알아보지 못했다. |
문제는 오선비와 아내가 자위행위에 몰두하다 뜻밖의 실수를 범했다는 점이다. 자위 기구가 말썽을 일으켜 어쩌면 그들은 더 이상 성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중대한 위기에 빠지고 만다. 아내가 처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돌멩이를 빼내지 못하면 생명에 위협이 올 수도 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너무 당황한 오 선비 내외는 점쟁이에게 거액의 복채를 주고 문제를 해결한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고, 희화화한 이야기로 봐야 옳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선비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오 선비 부부처럼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라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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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 자위행위가 실은 그처럼 해로운 것도 아니고, 다양한 성생활 양식의 한 가지라는 점이 차츰 명확해졌다. 앨프리드 킨지 그룹은 <남성의 성행동>(1948)과 <여성의 성행동> (1953)에서 남성의 92%, 여성의 62%가 자위행위를 경험했고, 대체로 자위행위를 통해 오르가슴에 도달한 사실이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사춘기에 시작해 나이가 들수록 그 빈도가 차츰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데 비해 여성들은 비교적 늦게 시작해 오랫동안 지속한다고 했다. 사춘기 소녀보다 중년여성들이 즐기는 경우가 좀더 많다고 한다. 킨지의 연구 결과는 조선의 선비들이 미망인을 비롯해 비교적 나이 든 여성들의 자위행위를 문제 삼은 것과 맞아떨어진다. 물론 조선 선비들이 통계조사를 통해 사태를 파악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때로 그들의 짐작은 정확했다.
따져보면 인간이 성욕을 분출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고, 자위행위란 그 가운데 하나다. 선비들의 성담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자위행위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가 모호한 경우도 있다. 구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처럼 모호한 이야기라면 한 번쯤 함께 읽어 보고 그 이야기의 의미를 탐구해볼 필요가 있겠다.
집은 불타 없어지더라도 이 재미만은…
천성적으로 음사(淫事)를 즐기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아내와 즐기는 데 온갖 기교를 다 실험했다.
그러다 보니 아내 역시 점차 음란한 여자가 되고 말았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또 그 일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여자를 밧줄로 묶어 놓은 다음 일을
치르기로 했다. 한참 음사가 진행 중인데 바로 옆집에 불이 났다. 당황한 사내는 아내를 풀어줄 겨를이 없어 그대로 커다란 괴목(槐木) 가지에
걸어 놓고 불을 끄러 갔다. 때마침 길을 가다 불을 끄러 달려온 한 스님이 부채를 어디에 둘지 몰라 두리번거리다 위쪽을 보았더니 구멍이 하나 있어 거기에 부채를 꽂아 두었다. 그 구멍은 여자의 옥문이었다. 마침 살바람이 불어 부채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부채 자루는 옥문을 점점 자극했다. 들뜬 여자는 낮은 소리로 기도했다. “고마우신 바람님! 내 집 따위는 불에 다 타 없어져도 좋으니 좀더 바람을 세차게 불어주세요.” |
그렇지만 이런 억지를 통해 아내는 자위 아닌 자위행위를 하게 된다. 스님이 동기를 제공해준 그녀의 자위행위는 바람이라는 자연적 매개물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녀가 처한 상황은 옆집에서 치솟은 불길이 자기 집으로 옮겨 붙을지도 모를 그야말로 긴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성적 쾌락을 충족시키려는 일념에서 기도를 드릴 뿐이다. 이쯤 되면 ‘성욕지상주의’라는 비난이 터져 나올 법도 하다.
이 이야기를 꾸민 조선의 선비들은 그 여성에게 그런 비난의 화살을 쏘지는 않는다. 그저 웃어젖힐 뿐이다. 본래 얌전했던 여성이었는데 ‘음사를 즐기는’ 남편에 의해 그녀의 성욕이 무한정 확대된 것이라고 봐서 그랬을까?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선비들 스스로를 향한 경계가 될 수 있겠다. “남성이여, 여성이 그 맛에 빠지지 말게 하라”는 교훈 말이다.
자칫하면 바람이 날 수 있겠고, 그 상대는 속세와 인연이 없다고 믿어지는 스님도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기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듯, 선비들에게 여성이란 보호와 감시의 대상이었다. 여성은 아동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