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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경대전 서문> 출간 축하!♤♤●건곤불로 월장재.적막강산 근(금)백년.-金剛 大仙師

낙엽군자 2022. 12. 12. 18:45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초중말복 5진주 세명(5진주를 율곡은 <참 5>인 <달고나 참외>로 표현 ). 5+5+5(6)=15(16).마지막 5진주는 판모리 6서시. 따라서 15진주 수는 참5 달고나 참외 5진주 3명이 합해 이루어지며(1,3,5,7,9 양수의 황극수5를 취한 것) 마지막 5진주는 음수 2,4,6,8,10의 후천 황극수 6도 가능하므로 한 끗수가 튄 16수도 된다. 말하자면 마지막 말복 5황극수 진주는 11귀체에 의해 11성도에 대한 5의 보수 6도 되므로 15진주, 16진주수도 되는 것이다.

 

청음남주관련:

청음남주 본질과 정체.pdf

통합경전 에센스 다이제스트PDF:  파일 다운!

뉴- 에센스 축약다이제스트통합경전.pdf

 

<통합경전>다음 밴드에 들어가면 전체 파일 다운됩니다. 비회원 입장 가능.엄밀히 말하면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밝혀지는 '천지공사 진법을 설명해주는 안내서'로 <통합경전 서문>입니다.<통합경전> 전체는 본문 포함 기독교 신구약 두배가 넘는 분량입니다.
http://band.us/#!/band/61758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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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이라 목차가 없음
동지한식백오제 천지공사 105년간의 종통인사 비밀을 모두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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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공사와 도사에 있어 청음 남주의 본질과 정체 모아보기-청음 이상호, 남주 이정립(성영)은 🇯🇵조선총독부 경성 경무국 🇰🇷조선인 탄압 책임담당 동광회 회장 김태석-태식& 경기도 경무국 후지모토 국장에게 이중으로 포섭, 매수된, ~600만 민족종교 보천교 해체의 행동책~🎭으로 직접 이들 양 쪽 일제 순사 8 명을 거느리고 당시 일제에게 정체불명였던 차교주가 은거해 있던 함양 황석산 우전리로 찿아가 차교주를 반강제적으로 협박 일제 첩보대에 비밀조직을 공개하는 소위 '보천교 양해사건'을 일으켜 일제 수사관들과 차경석 교주를 직접 대면케 해 비밀교주의 정체를 폭로 공개하고 비밀 결사조직인 보천교 조직의 실체를 처음 공개케 한다.

청음남주에 의한 '보천교 양해사건'으로 인해 6백 만 민족종교 보천교는 발가벗겨진 채 조선총독부의 '보천교 신법제정'과 함께 해체되는 운명에 처한다. 청음 남주는 이 사건 이후 조선 총독부를 등에 업고 그들의 목적에 부응해 '독립운동자금의 산실' 보천교 해체를 위한 행동책으로 보천교 혁신운동을 본격적으로 일으키고 보천교 출교 이후 조선총독부 조선인 거물 친일파 종교 전문 밀정인 *조선총독부 촉탁* 김환金丸의 기획에 의해 동화교를 창교하고 해방 이후 반민특위에 의해 친일파로 처단되어 체포 구금대기 중 이승만의 야만적인 반민특위 해체명령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다.

또한 이 상호(본명:明鐸)·이 성영(본명:誠鐸) 형제 두 사람은 목포에 수감되었을 적에 모든 책임을 얼굴도 모르는 태모님에게 덮어씌워 태모님으로 하여금 감옥생활 하게 만든 적도 있고 보천교 교주로 차경석을 옹립한 뒤 실권을 쥔 뒤 다시 축출하고 교권을 차지할 욕심으로 곤존 고수부님을 공개적으로 축출운동을 벌여 결국 조종골로 내쫓은 파렴치한이었습니다. 뒤에는 자신들이 주인공 추수사명자인 해도진인(海島眞人)으로 자처하여 욕속부달(欲速不達)의 허황된 욕심으로 자신들에게 진리를 전해준 스승이자 이종물 사명자인 차 경석 교주를 조속히 옹립시킨 뒤 조선총독부를 등에 업고 차 교주를 축출하여 교권을 차지하고자 공개적으로 보천교 혁신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청음과 남주가 무진년 동지 대각다리 인암 박공우 성도 조우사건과 의통해인 전수에 대해 스스로를 해도진인으로 착각하며 진사성인출의 비결에 의거 무진기사년의 연도에 맞추어 마침내 1928(무진)년 일제의 협력을 얻어(조선총독부 종교계 고등밀정인 "촉탁" 신분 김환과 정무총감 조선인 비서 채기두의 협조로  ‘동화교’를 창교하고 차경석 교주와 김형렬 미륵불교를 배신하는 배사율을 범하면서 자료를 취합한 그들 형제는 <서전 서문>의 기사(1929) 삼월기망(3.16)에 맞추어 ‘대순전경’을 발행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국적으로 무진년은 곤존 태모 고수부님의 무진년 구월도 공사로 임술생 문왕 추수사명자를 영적으로 깨우는 공사로 상제님과 태모님은 무진년 공사로 술부戌符 문왕사명자와 자부子符 사명자 병립하게 하여 문왕추수사명자를  청음으로 하여금  은폐시키시고서불徐市의 서徐씨 해원공사를 서鼠=子 띠 생 청음 이상호에게 부쳐 이악충자以惡充者로 해원하게 하셨습니다.

*<甑山道 道典 들어가는 말>*김자현 성도의 손자 김택식에 의하면 “조부님은 이상호에게 증언을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자현 성도는 김형렬 성도, 김갑칠 성도에게도 당시 보천교에서 출교된 뒤 태운장의 미륵불교 신도로 들어온 이상호에 대해 “한 판 차려 보려는 다른 뜻을 품고 있으니 전해 주지 마시오.” 하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다. 이상호에 대한 이런 비판적인 의식은 당시 주요 성도들에게 널리 파급되어 있었다.(참고: 임술 생 김형렬 성도의 손자 김현식씨의 증언도 김자현 성도의 손자 김택식의 증언과 동일하게 청음 이상호가 수차에 걸쳐 상제님 성적을 들려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들려주지 않았다고 증언함)
<甑山道 道典 들어가는 말>*백운동의 안내성 성도는 몇 차례 찾아와 증언을 구하는 이상호에게 단 한 마디도 응대해 주지 않고, 멀리 구성산만 바라보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고, 소년 시절에 곁에서 이를 지켜본 아들 안정남이 증언한다. 또 안필성은 이상호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도인이 일찍 봉사가 되었다.’고 그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그래서 주요 성도들 못지않게 상제님과 삶을 함께 하고 상제님에게서 큰 도
수를 부여받았음에도, 그 내용을 깊이 있게 증언해 주지 않았다.
<甑山道 道典>(도문(道門)과 성도(聖徒) 3편 192장<측각주>)* 안내성 성도의 입문 과정이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까닭을 그의 아들 정남은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 아버님 생전에 이상호 씨가 와서 뭔가를 알려고, 뿌리를 캘려고 했는데 안 가르쳐 줬어. 그 이유가 있어. 이상호가 가고 나면 아버님이 ‘저놈이 역천을 해도 보통 역천을 하는 놈이 아니다. 책을 쓴다고, 우리 대선생님을 빙자해서 종교 장사를 한다. 그런 놈한테 내가 뭣 하러 알려 주냐.’ 그러고 ‘저놈이 얼마 안 가서 천벌을 맞는다.’ 했거든. 결국 이상호는 눈도 못 보고 살다가 운명을 했다고 하더만.”

<태모님께서 아들 삼으신 이용기 성도 휘하 이교승 신도 증언>* ‘이상호 형제가 세상 떠나기 전에 태모님이 살아계신데도 “우리가 종통 계승자다. 일이 여기서 된다.”고 하며 감 놔라, 대추 놔라 했다.’ <안내성 성도 아들 증언 내용>* ‘이상호 형제는 녹용을 한 가마씩 쌓아 놓고 금 궤짝을 갖다 놓았다. 이상호가 죽었을 때, 큰 형님이 가서 보니까, 그 집안에서 그런 물건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걸 자기 눈으로 직접 봤다고 한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당국자 중에서 이 상호(李祥昊)와 친밀한 사람이 있어 이 상호를 권고해 가로대 군(君)이 조선 내에서난 피신할 곳이 없으니 만주 방면에 건너가 개척 사업에 종사하면 우리도 될 수 있는데 까지 원조하고 선도 하겠다 하고 김 응두(金應斗)를 수행케 하야 만주에 들어가라 하였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이 상호(李祥昊)는 당국자의 지도 후원 아래에 상등(上等) 양복(洋服)을 착용(着用)하고 금은보석(金銀寶石)의 장신품(裝身品)을 갖추며(俱) 그 첩(妾)인 여학생도 극(極)히 사치적(奢侈的)으로 장식하야 동반(同伴)으로 만주에 들어가 이름(名字)을 바꾸어(改) 전라남도 이(李) 모(某)라 가칭하고 백만장자로서 만주 토지를 매수하려 왔다고 선전하였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그런대 금전이라 하면 친자식 사이(親子)도 모른 체 하는 만주 각 사회단체 등은 이 상호(李祥昊)의 내력을 철저히 탐사한 후에 그 사람(彼)은 보천교의 금전을 절취하야 왔으니 그 재물을 우리들이 나누어 먹음(分食)이 가하다 하야 주야로 협박 공갈하여 일방으로난 지나 관헌에게 불량분자로 고발하야 이 상호를 포박(捕縛) 수금(囚禁)하였다.

 

♤♤건곤불로 월장재 적막강산 근백년.
출처 : chungkang5.. | 블로그
https://m.blog.naver.com/chungkang5/222686971188

 

♤♤건곤불로 월장재 적막강산 근백년.

♤♤ ●건곤불로 월장재. 적막강산 근(금)백년. ○건곤천지는 유구한데 헛되이 세월만 흐르는구나. 근 100...

blog.naver.com

 

 

2022. 3. 3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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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곤불로 월장재.

적막강산 근(금)백년.

○건곤천지는 유구한데 헛되이 세월만 흐르는구나.

근 100년동안 이 세상은 하릴없는 적막강산이었다.

○상제님어천후 근100년(정확히는 동지 한식105제의 105년)은 진리의 참법이 없는 적막세상ㆍ암흑세상이니 그 105년을 제외하면(지나면) 참법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이 싯구는 상제님께서 천지공사에 두어번 인용하신 조선중기 김삿갓 김립(김병연)의 산소소송문의 일부 구절입니다.

○ [참조]소설 김삿갓 19회

권성해작가

기사입력 2007-10-22

주모 왈

내가 쓸 산소자리에~~

그래 이장移葬을 하라고 했더니 오히려 비용을 물어 줄테니 우리 보고 이장을 하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관가에 송사를 냈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루고 해결을 해주지 않고 있어요”

“말하자면 지관地官이 양쪽 집에다 똑 같이 묘소를 팔아 먹었군요. 묘소를 이족에서 먼저 썼으니 박진사댁에서 마땅히 파가야지요. 박진사는 지금 어떻게 나오고 있습니까?”

“우리가 송사까지 내니까 파가겠다고 하는데 어디 실천에 옮겨야지요. 분명 관가에 있는 놈들이 뇌물을 먹고 어물쩡 미루는 것 같아요”

“음, 그럼 원님에게 직접 송사를 올려야겠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여인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이쪽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내가 송사를 하겠습니다”

“선비께서요? 정말 사람을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쓸 것을 준비해 주십시오”

여인은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더니 종이와 붓을 가지고 들어왔다. 김삿갓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 붓을 들어 막힘없이 휘둘렀다.

○ 掘去掘去被隻之恒言

(굴거굴거피척지항언)

促來促來本守之例題

(촉래촉래본수지예제)

●今日明日 乾坤不老月長在

(금일명일 건곤불노월장재)

●此頃被頃 寂寞江山今百年

(차경피경 적막강산금백년)

 ㅡ파간다 파간다 함은 저쪽이 늘 하는 말이옵고

ㅡ잡아오라 잡아오라 함은 이 고을 군수님이 겉으로 하는 이야기온데

ㅡ이토록 오늘 내일 하고 미루기만 하니

●천지는 늙지 않고 유구히 그대로 있으되 세월만 흐르오며

이 핑계 저 핑계 하는 사이에

●쓸쓸한 강산은 어느덧 백 년이 가득 찼다.

 “제가 처음 생각한 대로 선비께서는 명문장가시군요”

이 말에 김삿갓도 놀랐다. 여인이 문장을 감상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일 사또가 이 글을 보시면 자칫 어물거렸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이제 되었어요”

~~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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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규 천지개벽경]]에는

(건곤불로월장재)가 아니라

(건곤부지월장재)로 기록되어 있읍니다.

●기유(1909)년 어느날 종도들에게 옛글 한 수를 읽어주시니 이러하니라.

"건곤부지월장재(乾坤不知月長在)하니

적막강산근백년(寂寞江山近百年)이라.

ㅡ하늘과 땅이 알지는 못해도

달은 기리(오랫동안) 있을 것이요,

이 강산이 막막하고 쓸쓸하기가 백 년이 가까우리."

 

●이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터넷의, 타 단체의 자료에는 대부분 (건곤부지)로 되어 있는데 이는 전혀 진리에, 천지공사에 부합되지가 않습니다.

○건곤불로는 건곤은 늙지도 쇠하지도 않고 유구하다는 뜻이고

월장재는 글자 그대로는 달은 장구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인데 일월운행이 춘하추동이니 세월이 흐른다는 뜻입니다.

건곤은 천지요 하느님 본원인데 모른 척은 혹 있어도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역학적으로나 하느님위격으로나....

즉 건곤부지는 오류로 보아야?

 

○○ 내가 찾아야 만난다

 응종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을 때에 네가 나를 보지 못하야 애통하며 이곳에 내왕하는 거동이 내 눈에 선연하게 보이노니, 내가 네 등 뒤에 있어도 너는 보지 못할 것이요, 내가 찾아야 서로 만나리라." (대순전경 p407)

ㅡ추수도운은 삼생의 인연줄.

스스로 찾는 자에게 열린다.

 

○○ 참법은? 추수할 자는?

 구월 중순에 대흥리로 돌아오사 경석에게 열아흐랫 날 천사의 탄신기념 치성을 올릴 것을 명하시니, 경석이 제수를 성비하여 열아흐랫 날 새벽에 치성을 올리니라.

스므날 아침에 천후 마당에서 거닐다가 혼도하여 네뎃 시간을 쓸어져 있는데, 현황한 중에 큰 저울과 같은 것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오거늘, 자세히 보시니 오색과일을 고배로 고인 것이라. 가까이 내려와서는 문득 헐어져서 쏟아지거늘 놀래여 깨시니, 집안사람들이 둘러앉어서 애통하다가 천후께서 깨여나심을 보고 모두 기뻐하는지라.

●천후께서 일어나 앉으사 문득 천사의 음성으로

●경석을 대하야 누구임을 물으시니 경석이 이상히 여겨 성명을 고하고, ●또 무슨 생임을 물으심으로 경석이 ((경진생))임을 고하니, 일러 가로대 ●"나도 경진생이라. 속담에 동갑장사 이 남는다 하나니, 우리 두 사람이 동갑장사 하자." 하시고,

또 생일을 물으니 경석이 유월 초하루임을 고한데, 다시 가라사대 "내 생일은 삼월 이십육일이라. 

●나는 낙종물을 맡으리니, 

●그대는 이종물을 맡으라. 

●추수할 자는 다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로부터 천후께서는 성령의 접응을 받으사 한 달동안 신정을 행하시니라.

(천후신정기 pp20-21).

ㅡ동갑장사는 삼룡도수.

경진과 임진.

ㅡ3월(진월) 낙종 3월 26일은 12월 26일 재생신 강일순.

ㅡ6월(미월)이종 6월 1일은 초하루.

6월 15일은 신농씨 제사(신농씨제사를 지낸후 일을 시작하노라. WHY ?)

6월 16일 성도사(문왕사명자 ㆍ사마의 도수)

ㅡ8월(유월)추수 8월 ㅇ임진일은 증산도가 총사수(무왕사명자 ㆍ사마소도수)

○○ 백년의 기다림

●풍류주세백년진(風流酒洗百年塵)

 시절화명삼월우(時節花明三月雨)

  비오인득의지추호(非吾人得意之秋乎)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169) 

 

[[참고]] 도전.

●부디 마음을 잘 닦으라

1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장차 천하사를 하러 떠나리니 돌아올 때에 48장(將) 늘여 세우고 옥추문(玉樞門)을 열면 정신 차리기 어려우리라.

2 부디 마음을 잘 닦으라.” 하시니라.

●열석 자의 성령으로 감응하심

3 또 말씀하시기를

“상말에 ‘이제 보니 수원(水原)  나그네’라 하나니 ‘누구인지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니 낯이 익고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니 낯을 잘 익혀 두라.

4 내가 장차 열석 자로 다시 오리라.” 하시고

5 “수운가사에 ‘발동(發動) 말고 수도(修道)하소. 때 있으면 다시 오리.’라 하였나니 알아 두라.” 하시니라.

6 또 하루는 성도들에게 옛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7 乾坤不老月長在하고 寂寞江山今百年이라

건곤불노월장재 적막강산금백년

천지는 쇠하지 않아 달이 항상 떠 있고

적막한 강산은 이제 백 년이로다.

(증산도 道典 10:24)

●●

수화금목이 대시이성하니

수생어화. 고로 천하무상극지리.

수원이 남원 남원이 수원

수원나그네가 남원무당.

남원무당이 수원나그네.

용봉도수

후천진인 추수사명은

임1수 병7군화인 물과 불.

유4금과 진5토인 봉과 용이 사주 팔자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