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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경대전 서문> 출간 축하!♤♤정영규선생 천지개벽경 개벽도세.-金剛 大仙師

낙엽군자 2022. 12. 12. 18:16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초중말복 5진주 세명(5진주를 율곡은 <참 5>인 <달고나 참외>로 표현 ). 5+5+5(6)=15(16).마지막 5진주는 판모리 6서시. 따라서 15진주 수는 참5 달고나 참외 5진주 3명이 합해 이루어지며(1,3,5,7,9 양수의 황극수5를 취한 것) 마지막 5진주는 음수 2,4,6,8,10의 후천 황극수 6도 가능하므로 한 끗수가 튄 16수도 된다. 말하자면 마지막 말복 5황극수 진주는 11귀체에 의해 11성도에 대한 5의 보수 6도 되므로 15진주, 16진주수도 되는 것이다.

 

청음남주관련:

청음남주 본질과 정체.pdf

통합경전 에센스 다이제스트PDF:  파일 다운!

뉴- 에센스 축약다이제스트통합경전.pdf

 

<통합경전>다음 밴드에 들어가면 전체 파일 다운됩니다. 비회원 입장 가능.엄밀히 말하면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밝혀지는 '천지공사 진법을 설명해주는 안내서'로 <통합경전 서문>입니다.<통합경전> 전체는 본문 포함 기독교 신구약 두배가 넘는 분량입니다.
http://band.us/#!/band/61758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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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이라 목차가 없음
동지한식백오제 천지공사 105년간의 종통인사 비밀을 모두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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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공사와 도사에 있어 청음 남주의 본질과 정체 모아보기-청음 이상호, 남주 이정립(성영)은 🇯🇵조선총독부 경성 경무국 🇰🇷조선인 탄압 책임담당 동광회 회장 김태석-태식& 경기도 경무국 후지모토 국장에게 이중으로 포섭, 매수된, ~600만 민족종교 보천교 해체의 행동책~🎭으로 직접 이들 양 쪽 일제 순사 8 명을 거느리고 당시 일제에게 정체불명였던 차교주가 은거해 있던 함양 황석산 우전리로 찿아가 차교주를 반강제적으로 협박 일제 첩보대에 비밀조직을 공개하는 소위 '보천교 양해사건'을 일으켜 일제 수사관들과 차경석 교주를 직접 대면케 해 비밀교주의 정체를 폭로 공개하고 비밀 결사조직인 보천교 조직의 실체를 처음 공개케 한다.

청음남주에 의한 '보천교 양해사건'으로 인해 6백 만 민족종교 보천교는 발가벗겨진 채 조선총독부의 '보천교 신법제정'과 함께 해체되는 운명에 처한다. 청음 남주는 이 사건 이후 조선 총독부를 등에 업고 그들의 목적에 부응해 '독립운동자금의 산실' 보천교 해체를 위한 행동책으로 보천교 혁신운동을 본격적으로 일으키고 보천교 출교 이후 조선총독부 조선인 거물 친일파 종교 전문 밀정인 *조선총독부 촉탁* 김환金丸의 기획에 의해 동화교를 창교하고 해방 이후 반민특위에 의해 친일파로 처단되어 체포 구금대기 중 이승만의 야만적인 반민특위 해체명령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다.

또한 이 상호(본명:明鐸)·이 성영(본명:誠鐸) 형제 두 사람은 목포에 수감되었을 적에 모든 책임을 얼굴도 모르는 태모님에게 덮어씌워 태모님으로 하여금 감옥생활 하게 만든 적도 있고 보천교 교주로 차경석을 옹립한 뒤 실권을 쥔 뒤 다시 축출하고 교권을 차지할 욕심으로 곤존 고수부님을 공개적으로 축출운동을 벌여 결국 조종골로 내쫓은 파렴치한이었습니다. 뒤에는 자신들이 주인공 추수사명자인 해도진인(海島眞人)으로 자처하여 욕속부달(欲速不達)의 허황된 욕심으로 자신들에게 진리를 전해준 스승이자 이종물 사명자인 차 경석 교주를 조속히 옹립시킨 뒤 조선총독부를 등에 업고 차 교주를 축출하여 교권을 차지하고자 공개적으로 보천교 혁신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청음과 남주가 무진년 동지 대각다리 인암 박공우 성도 조우사건과 의통해인 전수에 대해 스스로를 해도진인으로 착각하며 진사성인출의 비결에 의거 무진기사년의 연도에 맞추어 마침내 1928(무진)년 일제의 협력을 얻어(조선총독부 종교계 고등밀정인 "촉탁" 신분 김환과 정무총감 조선인 비서 채기두의 협조로  ‘동화교’를 창교하고 차경석 교주와 김형렬 미륵불교를 배신하는 배사율을 범하면서 자료를 취합한 그들 형제는 <서전 서문>의 기사(1929) 삼월기망(3.16)에 맞추어 ‘대순전경’을 발행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국적으로 무진년은 곤존 태모 고수부님의 무진년 구월도 공사로 임술생 문왕 추수사명자를 영적으로 깨우는 공사로 상제님과 태모님은 무진년 공사로 술부戌符 문왕사명자와 자부子符 사명자 병립하게 하여 문왕추수사명자를  청음으로 하여금  은폐시키시고서불徐市의 서徐씨 해원공사를 서鼠=子 띠 생 청음 이상호에게 부쳐 이악충자以惡充者로 해원하게 하셨습니다.

*<甑山道 道典 들어가는 말>*김자현 성도의 손자 김택식에 의하면 “조부님은 이상호에게 증언을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자현 성도는 김형렬 성도, 김갑칠 성도에게도 당시 보천교에서 출교된 뒤 태운장의 미륵불교 신도로 들어온 이상호에 대해 “한 판 차려 보려는 다른 뜻을 품고 있으니 전해 주지 마시오.” 하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다. 이상호에 대한 이런 비판적인 의식은 당시 주요 성도들에게 널리 파급되어 있었다.(참고: 임술 생 김형렬 성도의 손자 김현식씨의 증언도 김자현 성도의 손자 김택식의 증언과 동일하게 청음 이상호가 수차에 걸쳐 상제님 성적을 들려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들려주지 않았다고 증언함)
<甑山道 道典 들어가는 말>*백운동의 안내성 성도는 몇 차례 찾아와 증언을 구하는 이상호에게 단 한 마디도 응대해 주지 않고, 멀리 구성산만 바라보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고, 소년 시절에 곁에서 이를 지켜본 아들 안정남이 증언한다. 또 안필성은 이상호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도인이 일찍 봉사가 되었다.’고 그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그래서 주요 성도들 못지않게 상제님과 삶을 함께 하고 상제님에게서 큰 도
수를 부여받았음에도, 그 내용을 깊이 있게 증언해 주지 않았다.
<甑山道 道典>(도문(道門)과 성도(聖徒) 3편 192장<측각주>)* 안내성 성도의 입문 과정이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까닭을 그의 아들 정남은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 아버님 생전에 이상호 씨가 와서 뭔가를 알려고, 뿌리를 캘려고 했는데 안 가르쳐 줬어. 그 이유가 있어. 이상호가 가고 나면 아버님이 ‘저놈이 역천을 해도 보통 역천을 하는 놈이 아니다. 책을 쓴다고, 우리 대선생님을 빙자해서 종교 장사를 한다. 그런 놈한테 내가 뭣 하러 알려 주냐.’ 그러고 ‘저놈이 얼마 안 가서 천벌을 맞는다.’ 했거든. 결국 이상호는 눈도 못 보고 살다가 운명을 했다고 하더만.”

<태모님께서 아들 삼으신 이용기 성도 휘하 이교승 신도 증언>* ‘이상호 형제가 세상 떠나기 전에 태모님이 살아계신데도 “우리가 종통 계승자다. 일이 여기서 된다.”고 하며 감 놔라, 대추 놔라 했다.’ <안내성 성도 아들 증언 내용>* ‘이상호 형제는 녹용을 한 가마씩 쌓아 놓고 금 궤짝을 갖다 놓았다. 이상호가 죽었을 때, 큰 형님이 가서 보니까, 그 집안에서 그런 물건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걸 자기 눈으로 직접 봤다고 한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당국자 중에서 이 상호(李祥昊)와 친밀한 사람이 있어 이 상호를 권고해 가로대 군(君)이 조선 내에서난 피신할 곳이 없으니 만주 방면에 건너가 개척 사업에 종사하면 우리도 될 수 있는데 까지 원조하고 선도 하겠다 하고 김 응두(金應斗)를 수행케 하야 만주에 들어가라 하였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이 상호(李祥昊)는 당국자의 지도 후원 아래에 상등(上等) 양복(洋服)을 착용(着用)하고 금은보석(金銀寶石)의 장신품(裝身品)을 갖추며(俱) 그 첩(妾)인 여학생도 극(極)히 사치적(奢侈的)으로 장식하야 동반(同伴)으로 만주에 들어가 이름(名字)을 바꾸어(改) 전라남도 이(李) 모(某)라 가칭하고 백만장자로서 만주 토지를 매수하려 왔다고 선전하였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그런대 금전이라 하면 친자식 사이(親子)도 모른 체 하는 만주 각 사회단체 등은 이 상호(李祥昊)의 내력을 철저히 탐사한 후에 그 사람(彼)은 보천교의 금전을 절취하야 왔으니 그 재물을 우리들이 나누어 먹음(分食)이 가하다 하야 주야로 협박 공갈하여 일방으로난 지나 관헌에게 불량분자로 고발하야 이 상호를 포박(捕縛) 수금(囚禁)하였다.

 

♤♤정영규선생 천지개벽경 개벽도세.


15 (병오년?) 하루는 구릿골(銅谷) 약방(藥房)에서 오운회(五運回) 공사(公事)를 보실세

●김형렬(金亨烈)에게 명(命)하여 ●너에 딸(女)을 데려오라 하시니 형렬(亨烈)이 딸(女)을 데려오거늘 ●형렬(亨烈)의 딸(女)에게 명(命)하여 가라사대(曰)
●방(房) 한가운데(正中) 청수(淸水)를 모(慕侍)시라.

그리고
●방(房)의
●네(四) 구석(維)에 돌아가며 한번씩(一番式) 앉았다(坐) 일어나(起)
●방가운데(房中) 모신(慕侍) 청수그릇(淸水器)을 한(一) 바퀴 돌아서(回) 나가라(出) 하시니 ●형렬(亨烈)의 딸(女息)이 그와 같이 하고 나간 후(出後)
●종이에 문명(文命)을 쓰시니(書) 이러하니라.


1. 천하음양신전주운회(天下陰陽神全州運回)

2. 천하통정신정읍운회(天下通情神井邑運回)

3. 천하시비신순창운회(天下是非神淳昌運回)

4. 천하상하신태인운회(天下上下神泰仁運回)

5. 천하자기신고부운회(天下自己神古阜運回)라

써서 불사르시며(燒) 계속하여
●천하운(天下運) 운회도수(運回度數)를 정(定)하시였다 하니라.



解: 상제(上帝)께서 구년간(九年間)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보시니 만리만사(萬理萬事)에 상제(上帝)의 필단(筆端)과 언단(言端)이 미치지 않은 바 없으나
그 많은 공사(公事)를 간추려서 묶어보면
오직 오운회 공사(五運回公事)의 범주(範疇) 속에 드나니라.

그렇다면 오운회(五運回)란 도대체(都大体) 무엇인가.

오운회(五運回)란 상제께서 후천(後天)을 지으실세

천하(天下)의 새 운도(運度)를 다섯(五)가지로 분류(分類)하여 돌리심(回)이니
이 다섯(五)가지 운도(運度)가 마치 후천(后天)의 기둥(柱)과 같아서
이 기둥(柱)이 하나씩 섬(立)에 따라
천하(天下)는 새(新)로운 국면(局面)으로 접어들어 새 세상(世上)이 벌어지느니라.

그러니 후천(后天)의 기둥(柱)과 대들보의 재목(材木)을 다섯 가지로 정(定)하신 그 까닭은
ㅡ 이 천지(天地) 내(內)에 만물(萬物)이 벌어져 있으나 오직 다섯(五) 가지 재료(材料) 속에 드나니 그를 이르는 바 수화금목토(水火金木土) 오행(五行)이니라.
이러한 고로 오행(五行)의 이치(理致)에 따라 오운(五運)을 배정(配定)하여 돌리(回)시니

이로써 후천(后天)의 기둥(柱)인 오운(五運)을 오행(五行)에 대(對)하여 설명(說明)하고자 하는 바이니라.


㉮ 천하음양신전주운회(天下陰陽神全州運回)는 수도수(水度數)요

㉯ 천하통정신정읍운회(天下通情神井邑運回)는 화도수(火度數)요

㉰ 천하시비신순창운회(天下是非神淳昌運回)는 금도수(金度數)요

㉱ 천하상하신태인운회(天下上下神泰仁運回)는 목도수(木度數)요

㉲ 천하자기신고부운회(天下自己神古阜運回)는 토도수(土度數)라

♤♤
천하 음양신 전주운회는 전주의 건지산 곤지산의 정음정양기운으로 전주(전세계)을 운수ㆍ기운을 돌림

천하 통정신(마음과 정이 서로 통하는 신명 기운)은 우물고을(정읍) 왕자포정지지의 기운을 쓴다.
정읍은 상제님께서 태모님과 차경석 성도를 만나신 곳.

천하시비신(천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신명 기운)은 오선위기 장군도수
아버지산 순창 회문산 기운을 쓰서 돌린다

천하 상하신(세상 인사 만물의 천지 위격을 주재하는 신명기운)은
태인 군신봉조의 기운을 쓴다.

천하자기신(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깨닿게 하는 신명기운)은 상제님이 탄강하신 엄택곡부 고부(구례)기운을 쓴다.
**곡부는 (지천태괘. 태산 동쪽 산동성의 공자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