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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제님께서 어천하시기 전 마무리 천명공사-金剛 大仙師

낙엽군자 2022. 2. 20. 11:38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초중말복 5진주 세명. 5+5+5(6)=15(16).마지막 5진주는 판모리 6서시.

 

 

<통합경전>다음 밴드에 들어가면 전체 파일 다운됩니다. 비회원 입장 가능.엄밀히 말하면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밝혀지는 '천지공사 진법을 설명해주는 안내서'로 <통합경전 서문>입니다.<통합경전> 전체는 본문 포함 기독교 신구약 두배가 넘는 분량입니다. http://band.us/#!/band/61758246

Digest:

에센스 축약다이제스트통합경전.pdf
6.59MB

 

 

 

♤♤ 상제님께서 어천하시기 전 마무리 천명공사.


●기유년1909 음력 6월 20일에 천지공사를 마치셨음을 선언하시는 <포교 50년 공부 종필> 도수를 보시고,
●기유년 신미월 정유일 (1909.양력8월.음력6.20일)부터 3일간 ((무술,기해,경자일))까지 핵심을 다시 한번더 확인 하시고 점검하시는 뒷마무리를 하셨읍니다.

그리고
● 6월 24일 ●신축일에 그 무더운 양력 8월 9일 말복일을 몇일 앞에 두고 천상에서의 공사를 위하여, 빨리 선경세상을 여시기 위하여 어천하셨읍니다.

●포교50년 공부 종필 공사후의 3일간의 일간을 보면,
오늘날 근자의 해의 년인
☆ ((2018년 무술, 19년 기해,20년 경자,21년 신축년))과 동일한 간지임을 알수가 있읍니다.
☆해로 달로 날로 시로 분으로 60갑자의 천하사의 도수가 돌아닿아 새 기틀이 열리는 상제님의 천지공사 이치을 공부하는 우리는 반드시 잊지 말아야합니다.


○1.(음력6.23일 )이 날 오후에 상제님께서 몹시 고통스러워하시거늘 약방 마루에 누우셨다가 다시 뜰에 누우시고
2 마당에 나가 뒹굴며 신음하시고 < 사립문 밖>에까지 나가 누워 괴로워하시더니
3 한참 뒤에 형렬을 불러 이르시기를 “나를 떠메고 너의 집으로 가자.” 하시어 형렬의 집에 가서 누우셨다가 <다시 약방>으로 돌아오시니라.
4 이렇게 네댓 번 왕복하시니 <형렬>이 심히 지치거늘 <경석이 대신>하여 두어 번을 더 왕복하니라.
5 잠시 후 상제님께서 <일곱 사람에게> 양쪽 팔다리와 허리와 머리를 떠받치게 하시고
6 “이리 가자.” 하시어 가리키신 곳으로 가면 잠시 뒤에 다시 “저리 가자.” 하시는데
7 이러기를 여러 차례 하시더니 다시 약방으로 가 누우시니라.
8 이 때 갑자기 상제님께서 누우신 채 천장으로 일곱 번을 튀어 오르시니라.

○생사의 도는 몸의 정기(精氣)에

9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고 살기는 쉬우니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느니라.” 하시고

10 <경석>으로 하여금 양지에
●全羅北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 姜一淳 西神司命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일순 서신사명이라 써서 불사르게 하시니라.

○종통을 바로잡으라
11 또 <공신>에게 말씀하시기를
● “맥 떨어지면 죽으리니 <연원(淵源)>을 바로잡으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0:45)

[[3절 김형렬 성도의 며느리 이정숙이 아들 김현식에게 전한 내용.
8절 류찬명과 그의 아들 재옥(1893~1956)이 직접 보고 전한 내용.]]

○ 독조사진주 도수의 주인공인 문공신 성도 에게 붙이신 도체(道體) 바로잡는 공사.
<< 맥 떨어지면 죽으리니 연원을 바로 잡아라>>

☆☆*1.문공신(글월문 공공 믿을신~글월 문자는 아비 부자로 봅니다.
아비로서 공적인 일심~독조사 문왕사명자의 상징
2.호인 남용(남녘남 바다룡 )~진주 무왕사명자의 상징.
(해룡 해왕도수)

♤♤ 김자현을 공사장으로 보신 일꾼들에게 내리신 마지막 천명공사.
((내 그늘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1 밤이 되어 상제님께서 ●<송환>으로 하여금 급히
● <자현> 을 불러오게 하시거늘
2 자현이 대령하니 방 가운데에 <짚자리>를 펴고 <청수 한 동이를 올리게 >하신 다음
●“네가 나를 믿느냐?” 하고 물으시니라.

3 이에 자현이 대답하기를
● “지성으로 믿나이다.
제가 만일 믿음이 부족하였다면 고부화란 끝에 배반하였을 것입니다.” 하니

4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내가 이제 일이 있어서 내일 어디로 떠나려 하니 돌아오도록
●“음(陰) 자라도 받들고”
●“약방을 자주” 다니며
●잘 믿고 있으라.>

5 만일
●내 그늘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하시니라.
6 자현이 간청하여 아뢰기를
“제가 모시고 따라가려 하오니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니
7 말씀하시기를
“자현아, 네가 갈 곳이 못 되느니라. 나 혼자 갔다가 “다시” 오리니 <안심>하고 있으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0:46)
○1절 46:1 밤. 『대순전경』에는 21일 밤의 일로 기록하였으나 김자현 성도의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에 따라 23일 밤으로 바로잡는다.
3절 46:3 고부화란. 후천선경 건설의 진주천자(백의군왕 백의장상)도수를 말한다.

●●●
천지공사상
1. 김 송환(소나무 송 불꽃 환.)
소나무는 갑3목이고 불꽃은 오7화입니다.
만사불성 김송환은 후천을 여는 과도기 갑오생 지도자와 중복신도의 상징입니다.

2.김 자현(스스로 자. 재상 현. 현명할 현.나타날 현)
후천을 열기 위해 스스로 나타나고 찾아오는 현명한 장상지재 범 증산 도가 말복신앙인의 상징입니다.

●말복 범증산도가의 상징인 김자현도수.

1.세 집이 망하고 천하가 흥하는 도수의 주인공.
2.관장의 공사 셋도수.
3.상촌다리 계명축시공사
때를 아는 자는 실수가 없느니...
4. 진법도운 10만명 포교도수
5. 송죽같이 속이 통통빈 자라야 60갑자의 12지지와10간으로 천하사의 때를 안다.
6.화룡천년에 진룡이 강림함을 모른다.
7 새울 집 안 새가 봉황.
8. 익산 배산 남조선배공사.
9. 구미산 장터 오시 대가리 놀음.
● 10. 민영환 만장공사.
● 11. 의원도수.


♤♤ 태운장의 신선 도수와 <김자현의 의원 도수>

상제님께서 <형렬>에게는 신선(神仙) 도수를 붙이시고,
<자현>에게는 의원(醫員) 도수를 붙이시니라.

1.형렬에게 당부하여 말씀하시기를 ●“<애기부처>를 조성하고 금산사를 잘 지켜라.
금산사를 지키다 곧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원한 없이 지킬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네가 금산사를 굳게 지켜라.” 하시니라.(사무여한부도수)

2. 또 자현에게 의원 도수를 붙이실 때 말씀하시기를
●○ “너는 천하명의(天下名醫) 말을 듣겠느냐, 조선명의(朝鮮名醫) 말을 듣겠느냐?
응당
■천하명의 말을 들을 테지.
부디 살리는 것으로 뜻을 세워 돈은 받지 말고 좋은 일만 하면서 포교하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후에
☆형렬은 금산사를 지키면서 포교를 하고
☆또 자현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무료로 치병을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살리니라.

3.세상의 모든 약 기운을 태을주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태을주는 구축병마주(驅逐病魔呪)니라.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약 기운을 태을주에 붙여 놓았나니 만병통치 태을주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313)

○ 어천 후 김자현 성도는 김형렬 성도와 미륵불교에 종사하였읍니다.. 일경의 감시 때문에 이름을 김자연(金自然)으로 바꾸고 상제님의 명을 좇아 병자에게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주로
●태을주와
●강령주(至氣今至願爲大降)를 읽혀 병을 고쳐 주었고.
포교를 위해 사방으로 주유하다가, 독립운동 하러 다닌다는 오해를 받아 형을 살기도 했읍니다.
몹시 가난하여 지붕에 풀이 무성하였다 합니다.

● 의원도수 김자현 성도는 의통이 열리신 성도님입니다.
그렇다면 범증산도가 말복운을 타시는 도우들도 때가 되면 의통도수를 받습니다.
운수대로 닦은대로 공과대로 열릴 것입니다.

♤♤ 김자현성도에게 붙이신 세집이 망하는 도수.
한집이 성공하는 공부.

● 자현이 다시 여쭈기를 “무슨 약이라도 가르쳐만 주시면 쓰겠습니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뒷산에 가서 창출(蒼朮) 한 되 캐서 그 달인 물로 상처난 곳을 씻고, 원평장에 가서
○엿 다섯 가래를 사다가 찧어서 붙이라.” 하시거늘
자현이 당장 가서 창출을 캐고 엿 다섯 가래를 사다 놓으니 한 가래를 그 아들 태준(泰俊)이 먹은지라
할 수 없이 네 가래를 찧어 붙이니 3년이나 고생하던 다리가 불과 보름 만에 씻은 듯이 나으니라.
자현이 기뻐하며 이바지를 준비하여 상제님을 배알하고 그 은공에 사례하거늘
상제님께서 반기시며 환부를 보시니 대님 매는 자리에 엿 한 가래만치 흉터가 나 있는지라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엿을 네 가래만 찧어 붙였으니 엿 한 가래가 다리에 붙었구나.” 하시니라.
이에 자현이 더욱 탄복하여
*그 날로 상제님을 따르겠다고 나서니
*상제님께서 “죽어도 따르겠느냐.” 하시매 자현이 “죽어도 따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이와 같이
■세 번을 다짐 받으신 뒤에
●((형렬))을 불러 다시
● “세 집이 망하고 천하가 흥하는 공부를 해 보자.”
하시고
● ((자현))이 천지사업에 동참하는 것을 허락하시니라


●●개척판 문왕 사명자로 부터 ●●3집이 망하고
●●천하가 부흥하는 추수판 무왕사명자 김자현 성도의 도수는 모두 말복운수에 붙여진 상제님의 천명입니다.
●우리일은 망하고 들어오는 공부니라.

○서자는 원천지지약입니다.
믿었다고 꼽은 손가락이 펴지는 날에는 살지못하리라.


♤♤ 김자현을 공사장으로 보신 민영환 순절 명부공사

[[도전]] 을사년 늦가을에 김자현의 집에 계시면서 자현에게 이르시기를2 “이 방은 이후에 반드시 약방이 되리라.” 하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3 大人輔國正知身이요 磨洗塵天運氣新이라
대인보국정지신 마세진천운기신
遺恨警深終聖意요 一刀分在萬方心이라
유한경심종성의 일도분재만방심
대인이 나라 위해 일함에 정히 자신을 알고
티끌세상 갈고 씻어내니 운수가 새롭구나.
남긴 원한을 깊이 경계하여 성상(聖上)의 뜻을 다하고
한 칼로 몸을 가름에 천하 사람의 마음이 있노라.4 이 글을 자현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민영환(閔泳煥)의 만장(輓章)이니라. 이 글을 암송하면 후일에 반드시 쓰일 곳이 있으리라.” 하시고5 또 말씀하시기를 “시세(時勢)를 짐작해 보건대, 일도분재만방심(一刀分在萬方心)으로 세상일을 알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114)

○○​ 말복일꾼에 대한 경계의 말씀.

大人輔國正知身이요 磨洗塵天運氣新이라
대인보국정지신  마세진천운기신
ㅡ큰 사람(대인)이라면 마땅히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 자신의 몸을 정확히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자신을 갈고 딱고 씼어야 운과 기가 새로워진다.

遺恨警深終聖意요 一刀分在萬方心이라
유한경심종성의  일도분재만방심
ㅡ몸과 마음을 깊이 경계하고 성스러운 뜻을 끝까지 지켜라.
한칼로 삿된 마음을 가른다면 그 마음이 만방에 미치리라.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민영환이 나라를 위하여 자결하였는데
벽혈(碧血)이 나오고 그 자리에서 청죽(靑竹)이 생겨났다 하니 이는 어떤 연고입니까?”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민영환이 나라를 위하여 의롭게 죽었으므로 내가 혈죽을 내려 그의 충의(忠義)를 표창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140)

상제님께서는 명부를 정리整理하심 으로부터 세상을 바로잡으셨읍니다. 명부에서 역사적 인물을 지상으로 내려보내고 천상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그 시기와 모양새에 따라 역사의 방향이 크게 바뀌게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민영환의 만장輓章을 직접 지어 명부 공사를 처결하심으로써 역사의 대세를 돌리셨읍니다.
민영환의 의로운 순국巡國 이후 극도로 쇠잔해진 민족정기가 자주독립을 향한 충정으로 혁신되어 삼천리강토가 새로워집니다.


[참고]
충정공 忠正公 민영환閔泳煥은 1861년 8월 7일 서울 견자동에서 태어났다. 친아버지는 민겸호閔謙鎬였으나. 뒤에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인 민태호閔台鎬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다.
​당시 세도를 구가하던 여흥驪興 민씨 척족 세력의 총아寵兒로서 젊은 나이부터 출세 가도를 달렸다.
국내의 여러 고위 관직을 경험했고, 특명전권공사가 되어서는 잦은 외유를 다니며 구미 제국의 발전된 문물제도와 근대화 모습을 직접 체험하였다. 귀국 후 독립협회의 취지에 찬동, 이를 극력 후원하게 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러일전쟁 후 다시 내부대신, 군법교정총재軍法校正總裁​, 학부대신學部大臣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날로 심해지는 일본의 내정 간섭에 항거하여 친일 내각과 대립하였기 때문에 한직인 시종무관侍從武官으로 좌천 당하였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자, 원임의정대신 조병세趙秉世를 소두疏頭로 백관들과 연소聯疏를 올려 조약에 찬동한 5적의 처형과 조약의 파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황제의 비답批答이 있기도 전에 일본 헌병에 의해 조병세는 구금되고 백관들이 해산당하였다 그러자 자신이 소두가 되어 다시 백관들을 거느리고 두 차례나 상소를 올리고 궁중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이에 일제의 혐박에 의한 왕명 거역죄로 구속되어 평리원平理院 (재판소)에 가서 대죄한 뒤 풀려났다. 결국 국운이 크게 기울어졌음을 깨닫고 죽음으로 항거하여 국민을 각성하게 할 것을 결심, 본가에서 단도로 몸을 찔러 자결하였다. 

세 통의 유서가 나왔는데, 한 통은 국민에게 각성을 요망하는 내용이었고, 다른 한 통은 외국사절들에게 일본의 침략을 바로 보고 한국을 구해줄 것을 바라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한 통은 황제에게 올리른 글이었다.

이 같은 선생의 죽음과 유서는 일제히 각 신문에 상세하게 보도되어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민영환이 자결한 이튿날, 함께 상소를 올린 조병세가 극약을 먹고 자결했다. 같은 날 전 참판 홍만식도 자결하고 학부 주사 이상철, 평양진위대 군인 김봉학등 각계각층에서 순국이 이어졌다.

민영환의 집 행랑에 거처하던 인력거꾼은 뒷산에서 소나무에 목을 매 자결했다. 선생의 순국은 이후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 운동과 구국 계몽 운동이 발흥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한편 선생의 부인 박씨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겨 무료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듬해 7월 어느 날, 부인은 선생의 유품을 보관해 두었던 방에 환기라도 시킬까 하고 문을 여는데, 깜짝 놀랄 사건이 벌어진다.

남편이 죽을 때 입었던 피 묻은 옷과 칼을 모셔둔 마루방의 틈새에서 난데없이 '푸른 대나무'가 솟아 있는 게 아닌가. 이 청죽靑竹으로 인해 조선 사회는 술렁이기 시작한다. 소문을 듣고 전국 작지의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천 명씩 선생의 집으로 몰려왔다.


사람들은 "대나무가 선생이 순절할 때 흘린 피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라"하여 '혈죽血竹'이라 부르며 용기를 갖기 시작한다.
4줄기 9가지에서 45장의 잎이 피어난 대나무는 선생이 순국할 당시 나이와 같아 더욱 신기하게 여겨졌다. 이른바 '민영환의 혈죽 사건'은 당시 언론에도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다.(월간개벽참조)

♡♡ 대각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