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개암사 개벽공사.해설! 개암사 개벽시범은 단주의 원한을 풀기 위하여 웅패의 우두머리 일루미나티와 하수인들을 벌하는 공사 -金剛 大仙師

낙엽군자 2021. 12. 22. 15:20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초중말복 5진주 세명. 5+5+5(6)=15(16).마지막 5진주는 판모리 6서시.

 

 

<통합경전>다음 밴드에 들어가면 전체 파일 다운됩니다. 비회원 입장 가능.엄밀히 말하면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밝혀지는 '천지공사 진법을 설명해주는 안내서'로 <통합경전 서문>입니다.<통합경전> 전체는 본문 포함 기독교 신구약 두배가 넘는 분량입니다. http://band.us/#!/band/61758246

Digest:

에센스 축약다이제스트통합경전.pdf
6.59MB

 

 

 

 

♤ 개암사 개벽공사.해설!

 

 

2020. 9. 26. 15:38

 

개암사 전경.

 

개암사 능가산 울금바위! 음양 짝으로 마이산과 비슷하다.

울금은 금기운이 울창하다는 뜻.

금화교역 정음정양.

진안 마이산 숫마이산 암마이산.

 

마이산은 속금산 산태극 수태극.

정음정양.

☆☆ 개암사 개벽 시범공사.

☆세상 운수가 급하게 밖에서 부터 안으로 욱여드는 것이 온 몸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기해 병자 정축 황중월 코로나 19 사태이후 도우님들의 공부에 때를 알리고자 진짜 열심히 날밤 세워가며 글을 썼네요.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도 도판 여기 저기서 올라오는 인터넷 자료들을 보면 좌측 우측 할 것 없이 천지공사를 호도하여, 악마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그림자 정부의 좀비들을 비호하는 주장이 떠돌고 있습니다.

 

남조선 배질공사가 세월호의 진상 규명 을 외치며 궐기한 정권교체다. 라는 것이나, 개암사 개벽공사가 토착왜구와 본토왜놈을 척결하는 공사다. 하는 망언들 말입니다.

어디 토착 왜구만 있나요? 본토 중국 되놈 도적. 본토 북조선 도적도 천지 삐까리 이지요.

본토 양키 도적도 있구요

진보와 보수의 정통 정신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입니다.

세운과 도운 모두 역신 원신 해원잔치 놀음판입니다.

 

최근엔 문왕이 문통이고 자신이 무왕 이라는 자도 있더군요.

저 금강이 정치놀음 하고자함이 아니니 오해마십시요.

☆ 개암사 개벽시범 공사의 내용만 보더라도 천지공사의 목적은 사람을 하나라도 더 살리려는 것이지,

ㅡ겉과 속이 다른 두 마음을 품고 왕후장상을 도모하다가 허무하게 죽은 동학신명의 해원이나 세상 원신들의 해원잔치가 주목적이 아닙니다. 동학신명의 해원은 차경석 종도의 보천교를 통해서 이미 실현된 부분도 있지만 인류 겁액의 해원잔치는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개암사 개벽시범은 선천의 모든 원한의 뿌리가 되었던 단주의 원한을 풀기 위하여 웅패의 우두머리인 묵은 하늘 묵은 땅. 일루미나티와 하수인들을 벌하는 공사입니다.

삼신상제님 신교의 나라인 배달조선을 무너뜨린 인류의 천지비괘 부계사회의 나라를 일소하고, 다시 모성애 지천태괘

모계사회를 바탕으로 다스리는 정음 정양의 세계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한 공사입니다.

그림자 정부 일루미나티의 모든 신세계질서 인구감축 병겁 세계 단일정부.단일종교는 천지공사의 일부입니다.

송산현 절사도수ㅡ죽을테냐? 너의 종교와 믿음을 포기할테냐 ?

☆☆[대전 2- 42]

매양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모든 종도들에게 마음을 잘 닦아 앞에 오는 좋은 세상을 맞으라 하시므로 종도들이 하루바삐 그 세상이 이르기를 바라더니 하루는 신원일이 청하여 가로대 선생이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새 세상을 건설한다 하신지가 이미 오래이며 공사를 행하시기도 여러번이로되 시대의 현상은 조금도 변함이 없으니 제자의 의혹이 자심(滋甚)하나이다 선생이시여

((하루바삐 이 세상을 뒤집어서 선경을 건설하사 남의 조소(嘲笑)를 받지않게 하시고 애타게 기다리던 우리에게 영화를 주옵소서)) 하거늘

 

천사 일러 가라사대 인사(人事)는 기회(機會)가 있고 천리(天理)는 도수(度數)가 있나니 그 기회를 지으며 도수를 짜 내는 것이 공사의 규범(規範)이라 이제 그 규범을 버리고 억지로 일을 꾸미면 이는 천하에 재앙을 끼침이요 억조(億兆)의 생명을 빼앗음이라 차마 할 일이 아니니라 원일이 굳이 청하여 가로대 지금 천하가 혼란무도하여 선악을 가리기 어려우니 마땅히 속히 진멸(盡滅)하고 새 운수를 열음이 옳으니이다 천사 괴로이 여기사 칠월에 원일과 두어 종도를 데리고 변산 개암사에 가사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부안 석교로 향하여 뿌리시니 문득 그 쪽으로 구름이 모여들며 큰 비가 쏟아지고 ((개암사 부근은 청명))하더라.

 

천사 원일을 명하사 속히 집에 갔다1 오라 하시니 원일이 명을 받고 집에 돌아간 즉 그 아우의 집이 비에 무너져서 그 권속이 자기의 집에 모여 있거늘 원일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천사께 그 사유를 아뢰니 천사 일러 가라사대

 

((개벽이란 것은 이렇게 쉬운 것이라 천하를 물로 덮어 모든 것을 멸망케 하고 우리만 살아있으면 무슨 복이 되리오. 대저 제생의세(濟生醫世)는 성인의 도요 재민혁세(災民革世)는 웅패(雄覇)의 술(術)이라 이제 천하가 웅패에게 괴롭힌지 오랜지라 내가 상생의 도로써 만민을 교화하며 세상을 평안케 하려 하노니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요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라 이제부터 마음을 잘 고치라 대인(大人)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남 살리기를 생각하여야 하나니 어찌 억조를 멸망케하고 홀로 잘되기를 도모함이 옳으리오))

하시니 원일이 이로부터 두려워하여 무례한 말로 천사께 괴롭게 한 일을 뉘우치고 원일의 아우는 그 형이 천사께 추종하면서 집을 돌보지 아니함을 미워하여 항상 천사를 욕하더니 형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는 천사께 욕한 죄로 집이 무너짐이나 아닌가하여 이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

☆☆ 이 공사에서 개벽을 실행하라고 청한 사람이 신원일 성도로 나옵니다. **신원일(辛元一) 성도는 2가지 뜻이 있읍니다.

1.진법 ㅡ신미생 천지의 근원으로 증산 상제님.서방정토 미륵존불.

2. 난법ㅡ신(辛)이 서방의 금에 배정되고 새롭다는 뜻이 있으므로, 서양에서 새롭게 등장한 유일한 패자(覇者) 미국과 그 미국과 세계를 막후에서 조종하는 태양신 기독의 난신적자 일루미나티를 상징합니다.

 

 “천하가 혼란 무도하니 새 질서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신원일 성도의 주장은  그대로 미국을 암중에 지배하는 그림자정부로 불리는 일루미나티들의 주장 뉴월더오더 신세계질서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추진하는 인구감축 계획 질병.백신.베리칩 등이 바로 세상을 뒤집어서 선경을 건설하자는 말을 그대로 옮기고 있죠.

 거기다 한번 더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에게 영화를 주옵소서.”라는 간청은 자기들만 신이 지배세력이 되어 영원히 인류를 지배하겠다는 그들의 목표를 보여줍니다.

휴거의 실상이 인신합일하여 지심대도술. 만사지 문화인줄은 꿈에서도 모르고 타율적 들림이 휴거라는 어리석 고 유치한 믿음으로 휴거만 기다리는 기독교인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증산상제님은 후천 음시대를 개창하는 10 무극상제로서 지천태 어머니의 마음을 천지공사에 녹여냅니다.

도의 자식들인 종도들의 간청은 용납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다 들어주셨고, 이번에도 못 이기는 척 종도들을 데리고 의통성업 후천 진주 해왕도수를 붙여 두신 변산으로 가서 개벽공사 시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ㅡ그 결과는 가장 간절히 개벽을 원하던 신원일 성도의 마을이 홍수를 당하고, 그 중에서 ((신원일의 아우네 집))이 무너진 것입니다.

개벽 시범 공사가 실현될 때에 신원일의 의미인 첫번째 진법이 아니고 두번째 난법 일루미나티 세력이 무너져 없어질 것을 미리 보여주신 공사입니다. 일본((태평양 환태평양 지진대))는 불로 치고 서양은 물로 치리라.  

☆☆ 개암사는 후천 세상의 중심인 전주 모악산의 서쪽에 있습니다.

내장산에서 ~~방장산으로~~1.지맥은 두승산.2지맥은 줄포로.3지맥은 변산(능가산)으로....

*** 변산 개암사에서 부안 석교 방향으로 물을 뿌리신 공사는,

개암은 울금바위를 연다는 공사 즉 서양 금세력을 여는 공사입니다.

부안 석교가 개암사의 동북쪽에 해당하므로, 서양 금세력 미국 (일루미나티)과 미국에서 볼 때 동북쪽인 소련이 됩니다.

ㅡ결국 조만간 수기가 돌면 서양을 물로 치는 도수가 실현되고, 그 때 공산러시아(중공)와 북학주 세력은 붕괴하는 도수입니다..

  

♤♤변산에는 능가산을 사이에 두고 내소사와 개암사가 있습니다.

개암사는 내소사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고즈넉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고찰입니다.

개암사 자리는 원래 변한의 왕궁 터 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해 이곳에 성을 쌓으면서 우(禹)와 진(陳) 두 장수를 보내 감독하게 하고 좌우 계곡에 왕궁과 전각을 지은 뒤 동쪽 것은 묘암, 서쪽 것은 개암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 후 백제 무왕 35년 묘련 왕사가 변한의 궁전을 절로 고쳐 각각 개암사와 묘암사라고 불렀고, 통일신라 시대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와서 절을 중창했고, 고려 충숙왕 때 원감국가가 다시 개암사를 크게 중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원감국사가 이 절에서 능가경을 강의하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했는데 이 때문에 절 뒤편의 산을 능가산이라 부르게 됐습니다. 물론 원감국가 이전의 이야기를 고증할 방법은 없습니다.

 

 개암사는 죽염의 전래지로도 유명합니다. 통일신라시대 미륵신앙을 널리 전파했던 진표율사가 이곳 능가산의 부사의방에서 수도하던 도중 계시를 받아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묘암과 개암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한겨레의 풍류는 제정일치를 지향하는 나라였고, 사찰에 용을 그려 넣은 것만 보더라도 왕궁이 곧 신전이었습니다. 동쪽 것은 묘암, 서쪽 것은 개암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동쪽이 묘(卯)암이 되면 서쪽은 술(戌)암이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서쪽 것을 굳이 열 개(開)자를 써서 개를 나타낸 이유는 깨어진 바위에 중점이 두어지기 때문에 술암이라는 이름 대신 개암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은 절이나 왕궁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울금바위입니다.

 

ㅡ능가산 정상은 크고 위용있는 바위 봉우리가 둘로 나뉘어 열려있는 형상 으로 울금바위, 우금(禹金) 바위, 우진암(禹陣巖), 위금암(位金巖)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 개암이라는 이름은? 개암사 개벽공사의 속 의미는?

 

1. 서유기의 손오공이 딱딱한 돌바위에서 나오듯이, 단단한 미망과 번뇌의 속박을 풀고 깨침이 열리는 곳이라 하여 개암이라 합니다.

2.울금바위를 열다는 뜻입니다.

 

원래 하나 였는데 천명으로 연다 열었다는 뜻!

좌우 정음 정양 남녀 동권시대를 연다는 뜻입니다.

울금바위의 울은 음동으로 울창하다.

울금은 오행의 금기운이 중첩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능가산 내부의 대단한 지기를 금기운으로 눌러서 저장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연다는 뜻입니다.

속금산인 진안 마이산과 모양도 비슷하고 의미도 비슷합니다.

개암사 개벽공사는 때가 되면 변산 해왕도수의 주인공이 그 기운을 쓰게끔 공사보신 것입니다.

 

개벽타령 일꾼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해왕도수의 주인공과 일꾼들에게 개벽기운을 주시는 공사입니다.

 

♡♡

☆☆ {참조}

☆개암사 개벽공사의 전후 상황

1908[戊申]년 7월의 어느 날 상제님께서 정읍 교동01  손병욱의 집에 이르시니, 상제님을 따라다니던 많은 종도들도 손병욱의 집에 같이 오게 되었다. 손병욱은 즉시 아내에게 점심을 준비하도록 일렀다. 손병욱의 부인은 꼭 1년 전에 남편이 상제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다가 신명에게 벌을 받아 죽을 지경에 처하였으나, 상제님의 은혜를 입어 겨우 목숨을 건지고 그 후유증으로 잉태를 못하게 된 여인이었다.02 

 

그런데 이 부인은 무더운 날씨에 많은 사람들의 점심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에 또 짜증을 내었다. 아직도 마음을 제대로 고치지 못한 탓이었다. 그녀는 부엌에서 불평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와사증이 와서 눈과 입이 돌아가 쓰러져버렸다. 손병욱이 놀라 이 사정을 상제님께 아뢰었더니, 상제님께서는 “이는 그 여인의 불평이 조왕의 노여움을 산 탓이니라.”고 일러주셨다.

조왕이란 부엌의 아궁이를 관장하는 가신(家神)을 말한다. 아궁이는 불을 때는 곳인데 생활이 넉넉하다면 불을 잘 땔 것이요, 궁핍하다면 불을 잘 때지 못할 것이다. 한 집의 식구들 먹을거리가 이렇게 아궁이를 통해서 장만이 되기 때문에 조왕은 그 집안의 재산과 관계되는 신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옛날 우리 선조들은 조왕에게 불경(不敬)이 되지 않도록 아궁이에 함부로 걸터앉지 않았고 아궁이 앞에서는 불경한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조왕은 음력 12월 23일이면 하늘로 올라가 1년 동안 그 집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에 대해 낱낱이 옥황상제님께 고하고 설날 새벽에 다시 아궁이로 돌아온다고 믿었으므로, 1년 동안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고 생각한 사람은 조왕이 옥황상제님께 그 사실을 보고하지 못하도록 조왕이 승천하는 전날 밤에 아궁이에 엿을 발라두는 풍속까지 있었다고 한다.

 

상제님께서는 손병욱의 부인을 딱하게 여기시고는 어떤 글을 쓰신 뒤에 그녀가 직접 부엌에서 그 글이 씌여진 종이를 불사르도록 시키셨다. 손병욱의 부인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부엌에서 상제님의 명을 시행하였더니 와사증은 곧바로 치유되었다.

얼마 후 상제님께서는 백암리(白岩里)로 가셨다. 박공우와 신원일은 이곳에서 상제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하루는 김경학의 소개로 김영학(金永學)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상제님을 뵈었다. 김영학은 상제님 곁에서 7일을 머물렀으나, 상제님께서는 그에게 아무런 말씀을 해주지 않으셨다. 그것은 그가 상제님의 말씀을 받들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영학이 불만을 품자, 이를 지켜보던 박공우와 신원일은 “그대가 상제께 삼가 사사(師事)하기를 청하면 빨리 가르쳐 주시리라.”고 일러주었다. 그제야 그는 상제님께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상제님께서는 이를 응낙하시고는 대뜸 호통을 치며 꾸중부터 하시는 게 아닌가! 김영학은 두렵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그냥 문밖으로 뛰쳐 나가버렸다.

 

상제님께서 그런 김영학을 불러 들이시고는, “너를 꾸짖는 것은 네 몸에 있는 두 척신(慼神)을 물리쳐 내려하는 것이니 과히 불만을 사지 말라.”고 타이르셨다. 놀란 김영학이 “무슨 척(慼)이니까⋅

 

깨닫지 못하겠나이다.”고 아뢰니, 상제님께서는 “너는 열여덟 살 때 살인하고 금년에 또 살인하였나니 잘 생각하여 보라.”고 이르셨다. 김영학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 나이 때에 제가 남원에서 전주 아전과 말다툼을 하다가 그의 무례한 말에 분격하여 화로를 던져 그의 머리에 상처를 입혔는데, 이것으로써 그 아전은 신음하다가 그 이듬해 3월에 죽었나이다. 또 금년 봄에 외숙 김요선이 의병으로부터 약탈을 당하였기에 의병대장 김영백05을 찾아가서 그 비행을 따졌더니, 그 대장은 외숙에게 사과하고 약탈한 의병을 찾아 총살하였나이다.”고 아뢰는 것이었다.

다시 상제님께서는 동곡약방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곳에서 어떤 글을 쓰고 계시는데, 문득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제자 대여섯 명이 대립을 쓰고 행의(行衣) 차림으로 찾아와 “선생님 뵈옵겠습니다.”하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나는 너희 선생이 아니로다.”고 하시며 절을 받지 않으시니, 이들은 일어나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섰다가 그냥 돌아가 버렸다. 이율곡과 송우암의 사상을 계승한 간재는 조선의 마지막 정통 유학자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는 당시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당하는 상황에서 “공자는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겠다고 하였으니 나도 바다로 가겠다.”고 하며 배를 타고 부안 앞바다에 있는 자그마한 섬 왕등도(旺嶝島)로 들어가 버렸다.

일부에서는 나라가 망하는데도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스스로 도학군자라고 자부만 하고 있던 그를 두고 썩은 선비[腐儒]라고 비판했고, 간재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을사년의 수치에도 통곡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모든 선비는 마땅히 피를 토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살 수밖에 없으나, 눈앞의 위태함만을 알고 나라의 참된 힘이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총칼 앞에 헛되이 목숨을 버리는 일일 뿐이니, 차라리 몸과 마음을 올바로 가다듬고 신명을 얻어 학문을 열심히 닦아 뜻을 편다면 1년, 2년, 10년, 20년 어느 때인가는 우리의 힘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항변하였다.

ㅡ 이런 상황에서 간재의 제자들 가운데 몇 명이 상제님을 찾아 가르침을 청한 것이었다.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간재가 매달렸던 성리학은 이제 그 수명이 다하여 나라를 구할 수도, 민생을 구제할 수도 없었다. 세상은 오직 만민을 살리시려는 상제님의 상생 천지대도에 의해서만이 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상제님께서 간재의 제자들을 물리치신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한편 이때까지 계속 상제님을 따라다니던 신원일은 상제님께 얼른 공사를 끝내시고 속히 개벽을 열어주시기를 거듭 간청하였다. 전국 곳곳에서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해가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신원일의 간청은 있을 법한 일이었다. 상제님께서는 그런 신원일을 데리시고 부안 변산 우금암 아래에 있는 개암사(開岩寺)에 가셔서, 그에게 삶은 쇠머리 한 개와 술 한 병, 청수 한 그릇을 방안에 차리고 쇠머리를 청수 앞에 진설하게 하신 후에 그 앞에 그를 꿇어앉히시고 성냥 세 개비를 청수에 넣으셨다.

 

그러자 별안간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더니 큰 홍수가 창일했다. 상제님께서 신원일에게 “이제 청수 한 동이에 성냥 한 갑을 다 넣으면 천지가 수국(水國)이 될지니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우니 그리 알지어다. 만일 이것을 때가 이르기 전에 쓰면 재해(災害)만 끼칠 뿐이니 그렇게 믿고 기다려라.”고 일러 주시고 진설케 하신 것을 모두 거두게 하시니, 곧 비바람이 멎었다.

부안의 개암사. 뒤에 보이는 큰 바위가 우금암이다. 개암사는 634년에 묘련(妙蓮)이 창건한 고찰로서,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다.

상제님께서는 신원일을 급히 집으로 보내셨다. 신원일이 자기 집에 가서 보니, 동생의 집이 갑작스런 폭우에 파괴되어 그 가족이 피난 와 있었다. 원래 신원일의 동생은 상제님을 믿지 못하고 언제나 불평을 터뜨리고 다녔던 사람이었으나, 이 일을 겪은 뒤로는 크게 두려워하여 다시는 상제님에 대한 불경한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일을 겪은 신원일은 상제님을 찾아뵙고 자신의 집으로 모셔왔다. 상제님께서는 신원일에게 다시 깨달음을 주시고자 이렇게 가르침을 내리셨다.

●“제생의세(濟生醫世)는 성인의 도요, 재민혁세(災民革世)는 웅패의 술이라. 벌써 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 지 오래되었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상생의 도로써 화민정세((化民靖世)07하리라.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바로 잡으라. 대인(大人)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호생(好生)의 덕을 쌓아야 하느니라. 어찌 억조창생을 죽이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합당하리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