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경전>다음 밴드에 들어가면 전체 파일 다운됩니다. 비회원 입장 가능.엄밀히 말하면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밝혀지는 '천지공사 진법을 설명해주는 안내서'로 <통합경전 서문>입니다.<통합경전> 전체는 본문 포함 기독교 신구약 두배가 넘는 분량입니다.http://band.us/#!/band/61758246
1 곽종석(郭鍾錫)이 세상에 나오매 천하가 모두 촉망하거늘, 상제님께서 하루는 구릿골에서 공사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2 “곽면우(郭俛宇)의 이름이 세상에 들리니 무엇으로 그리 인망을 끄느냐? 다만 헛된 이름에 지나지 않으니 그 기운을 누르리라.” 하시고
3 우물에 손을 넣어 저으시더니 댓가지 하나를 건져내시니라. (증산도 道典 5:115)
●곽종석 선생은 한말의 유학자였다. 단성丹城출생으로 25세 때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이진상의 문하에 들어가 심즉이설心卽理說에 심화 되었다. 퇴계 학문을 분석하고 주리설主理說을 변론하고 기호학회 논쟁에 참여하였다
●면우 곽종석 선생의 사단십정도. 성리요결.몽이(어린이.계몽서).저술.
【곽종석(郭鍾錫 1846~1919)】 한말의 학자·독립운동가. 본관 현풍(玄風). 자 명원(鳴遠). 호 면우(俛宇).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고종 초기 음보(蔭補)로 중추원 의관이 되었으며, 1903년 비서원승에 특진, 이어서 참찬으로 시독관을 겸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폐기와 조약 체결에 참여한 매국노를 처형하라고 상소.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고향에서 은거하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전국 유림(儒林)들의 궐기를 호소하고, 거창에서 제자 김창숙(金昌淑)과 협의하여 파리의 만국평화회의에 독립호소문을 보내고 옥고를 치렀다.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스승 이진상에게서 성리학을 이어받아 주리(主理)에 입각하여 이기설(理氣說)을 주장. 저서에 《면우문집(俛宇文集)》이 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 면우 곽종석에 대한 도수는 곽종석의 기운을 거두는 공사라기 보다는 구한말 유림의 독립운동을 갑오 동학혁명과 같은 시각으로 도수를 짜신것입니다. 공연히 인명만 상한다는 뜻이니 경계하란 얘기입니다.
유교 유지범절은 다수의 평범속에 존재하는 절차의 가르침이다. 다수를 움직일수있는. 설득할수 있는 대의명분과 절차와 순서 그리고 조직. 그 구성원들의 체면(정체성) 조선은 구한말 노론과 재야 유림은 대의명분도 절차도 체면도 잃어버린 잘못된 명분과 어긋난 절차와 타락한 체면만 남은 나라였다.
지금 현시대 또한 그러합니다. 거짓 명분과 타락한 하향평준화와 어긋난 체면들... 모몰염치(염치없는 인간들)추존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