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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 바리공주의 비밀​&해와 달이 된 오누이&티베트 원숭이와 청보리술

낙엽군자 2020. 4. 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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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11회~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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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함흥 바리공주의 비밀 -

  바리공주는 우리에게 불가를 경계했고, 저승행 티켓을 선물했다





함흥 <바리공주> 무속신화는 이승에서 화해를 도모하는 다른 <바리공주>와 달리 저승에서 비극을 풀고 거둔다. 사진은 서울 지역의 상류층이나 부유층이 행했던 전통적인 망자천도굿인 서울새남굿을 서울새남굿보존회 회원들이 재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바리공주로 분장한 무당이 옛 왕녀의 화려한 복식차림을 하고 있다. 아래 책 사진은 작고한 김수남 사진작가가 찍은 함경도 망묵굿 사진이 담긴 단행본. 이수형 작가 제공



우리 무속신화 가운데 그래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리공주>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더 익숙하다. 어린 시절에는 옛이야기 책에서 읽었을 테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문학 교과서를 통해 배웠을 테니까. 병든 부왕을 살리기 위해 저승 여행을 떠나는 공주 이야기. 윤리 교과서에 실릴 만한 효녀의 이야기지만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리공주 신화의 단면일 뿐이다.  


바리공주가 아버지 병을 고칠 약을 구하러 저승에 갔다고? 그렇지 않다. 바리가 효성이 지극한 공주님이라고? 천만에, 꼭 그렇지는 않다. 부친을 되살린 바리공주가 무당들의 조상신이 되었다고, 또는 천상의 신이 되었다고? 아니, 그렇지 않다. 바리는 효성이 특별한 딸이 아니었다.

바리는 아비가 아니라 ‘어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목숨을 되살리기 위해 ‘천상’으로 갔다. 바리는 거룩한 신이 되지 않고 우리가 죽듯이 죽었다. 비명횡사하여 귀신이 되었다. 그런 바리공주가 어디에 있느냐고? 함경도 함흥에 있다.
 

옛날 나무가 말을 하고 구렁이가 혀를 놀릴 때였다. 수차랑 선비는 옥황상제의 벼루를 떨어뜨려서, 덕주아 부인은 세숫대야를 떨어뜨려서 인간 세상에 귀양을 내려온다. 둘이 부부가 되어 살았는데, 늦도록 자식이 없어 한탄하다가 지리박사(점쟁이)를 찾아 점을 치고 백일기도를 한다.

‘첫 자식이 아들이면 구남매를 낳아 개국의 치를 떨고, 첫 자식이 딸이면 칠남매를 낳아 구족이 망하리라’는 점괘가 나온다


 




이렇게 시작되는 함흥 <바리공주>의 아버지는 왕이 아니다. 아비는 천상의 선관(仙官)이고, 어미는 선녀였다. 그러니 바리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구남매, 칠남매는 무녀 지금섬이 잘못 읊은 것이다. 문맥상 ‘첫째가 아들이면 아들 아홉을, 첫째가 딸이면 딸 일곱을 낳으리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아들을 낳으면 나라를 세워 이름을 떨치고 딸을 낳으면 온 집안이 망한다니, 아주 고약한 점괘다. 점괘에 투영된 남성중심적 세계관이 심히 불편하지만 지난 현실의 그림자라는 점, 아니 여전히 암약하고 있는 남근주의의 투사라는 점을 고려하면서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함흥 <바리공주>에는 이런 세계관이 시종일관 관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점괘대로 부인은 내리 일곱 딸을 낳는다. 한데 막내가 태어나기 전 아비 수차랑은 ‘아들을 낳으면 편지를 하고, 딸을 낳으면 용늪에 버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승천한다. 이제 아비는 사라지고 이야기는 모녀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비의 부재!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리공주>와 점점 멀어진다.

 

남편의 명대로 덕주아 부인은 막내딸을 돌함에 넣어 용늪에 버린다. 용늪은 천상과 지상의 경계에 있다. 다른 지역의 <바리공주>에 보이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황천강에 해당한다. 용늪은 천상의 빨래터, 마침 빨래하러 왔던 천상 수궁용왕 부인에 의해 구출된다.

논리적으로는 수긍이 안되지만 왕비는 자기가 낳은 아이라 속이고 기른다. 수궁용왕의 딸이라 ‘수왕이’라는 이름도 얻는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무당이 수왕이를 ‘바리덕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수왕이는 바리공주의 함흥식 별명이다. 수왕이는 옥황에서 잠시 ‘공주’가 된다. 
 

하루는 옥황상제가 조회를 소집했는데, 수궁용왕은 관복이 없어 식음을 전폐한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수왕이는 하룻밤 새 관복을 지어낸다. 관복을 입고 회의에 참여한 수궁용왕은 칭찬을 받았지만 동시에 오제용왕한테서 수왕이가 친자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다. 화가 난 수궁용왕은 수왕이를 쫓아낸다.
 

이런 장면은 다른 <바리공주>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연관성을 찾아보자면 남편의 조복(朝服)을 지어 바쳤다는 선도성모 이야기(<삼국유사>), 천상의 기울어진 전각을 수리하러 떠나는 남편 궁산이를 위해 하룻밤 새 구슬옷을 짓는 부인 이야기(함흥 무속신화 <일월노리푸념>) 정도다.

 동해안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옥황상제와 용왕들로 구성된 어전회의 장면도 새롭다. 함흥 <바리공주>는 다른 지역과 계보가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천상에서 축출된 수왕이는 마침내 모친을 찾아간다. 버릴 때 끊어 두었던 엄지손가락으로 친자식임을 확인받은 수왕이는 드디어 저 유명한 저승(서천서역국)행에 나선다. 그런데 길에서 만난 인물들은 무상으로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방아 찧던 할머니, 다리 놓던 생원, 실 씻던 할머니, 체 쓴 할머니 등등은 모두 ‘자신의 죄상이 무엇인지’ 물어봐 달라는 요구를 한다. 왜 이런 ‘개고생’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약속을 해야 길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 중생의 절실한 물음을 담고 있는 이런 대목도 다른 <바리공주>에는 없다. 

 

없는 게 또 있다. 수왕이는 마지막으로 사냥꾼에게 길을 묻다가 사냥꾼의 장손한테 붙잡힌다. 장손은 계속 겁탈을 꾀한다. 그러나 수왕이는 조상 제사를 핑계로 피하다가 꾀를 발휘하여 마침내 탈출한다. 우아한 바리공주의 이미지를 구축해 놓고 있는 다른 지역 <바리공주>에는 이런 ‘폭력적인’ 장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미투’ 운동의 빌미가 될 만한 성폭력 행위를 지워 놓은 셈이다.

 

축출에 탈출을 더한 수왕이는 처음 버려졌던 용늪을 찾아가 통곡한다. 통곡에 반응한 옥황상제가 보낸 ‘덩’을 타고 승천한 수왕이는 옥황의 손자와 결혼하여 아들 열둘을 낳는다. 한데 저승에 가려던 수왕이가 천상으로 올라가는 장면도 낯설지만 약수와 환생꽃을 얻는 방법도 특이하다.

남편을 다독여 천상의 꽃밭 구경을 나간 수왕이는 몰래 꽃들을 꺾어 몸에 감춘다. 도둑질이다. 이 역시 공주의 우아미와는 거리가 멀다. 약수를 어디서 퍼 올렸는지 모호하지만 세 바가지를 퍼 놋동이에 담는다.

 

귀환길에 수왕이는 길을 일러 주었던 이들의 죄상을 고지해 주고 장례행렬을 만나 죽은 모친을 살린다. 바리데기는 부활한 모친과 집으로 들어가는데, 소식을 들은 언니들이 모두 도망친다.

약수행을 거부했던 잘못, 모친을 실은 상여를 따라가는 대신 집에 남아 재물 다툼을 했던 자신들의 잘못이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면이 아주 이상하다. 함흥 <바리공주>에서 가장 희한한 장면이다. 
 

“얘들아, 내 저승 가 보배를 가지고 왔다. 기물(器物)을 나눠 줄 것이니 모두 나오너라.” 

기물을 나눠 준다고 하니 다락에서 내려온다. 쥐구멍에서 나온다. 먼지가 뿌연 얼굴로 오백나한처럼 쪼르르 모여 앉았다. 맏딸부터 차례대로 상문살(喪門煞), 극체살(克體煞), 괴강살(魁?殺)을 주니 여섯 딸이 다 죽는다.

여섯을 다 구덩이를 파고 묻고 나자 바리덕이가 아프기 시작한다. 바리덕이는 삼일고개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바리덕이를 묻고 삼일제를 지내러 올라가다가 서인대사를 만났다.  


“할머니 어디 가시오?”  

“일곱째 바리덕이 제(祭) 지내러 가오.”  

“할머니 일곱째 바리데기 죽어 생불이 돼 나와 앉아 할머니 오면 잡아먹겠다고 합디다.” 

“대사님 그러면 챙겨 가지고 온 제물은 다 잡수시오.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제일이지. 내 어찌 죽겠소.” 

“할머니 우리 절에서 윤동짓달 스무 초하룻날에 재(齋)를 하니 구경 오겠소?” 

그 말을 듣고 할머니는 윤동짓달을 찾아다니다가 삼년 묵은 보리그릇에 엎어져 죽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살던 함흥의 집, 함흥본궁 


다른 지역 <바리공주>는 이 대목에서 아버지 혹은 부모를 살린 다음 궁궐로 돌아간다. 그다음엔 큰 공을 쌓은 바리공주에 대한 포상 장면이 이어진다. 그런데 함흥 <바리공주>는 전혀 다르다. 죽음에서 돌아와 ‘바리덕이’와 귀가한 어머니 덕주아 부인은 딸들을 모조리 살해한다.

아귀다툼을 하던 여섯 딸을 모아 여러 ‘살’을 주는데, 다 죽음에 이르는 나쁜 살들이다. 살의 기운이 얼마나 강했는지 생명의 은인인 막내딸마저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것은 요즘 종종 발생하는 신세비관형 자식살해담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 같은 배신한 남편을 징치하는 복수형 자식살해담도 아니다. 바리공주의 ‘숭고한 희생’마저 처참하게 만드는 아주 괴상한 복수극이다.  

더 괴상한 것은 그다음이다. 심정적 부채를 지닌 모친은 막내딸의 망혼을 위로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한데 뜬금없이 서인대사, 곧 스님이 나타나 거짓 정보를 흘린다. 막내딸의 원혼이 복수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결국 제물은 중이 차지한다.

서인대사는 다시 ‘윤동짓달 스무 초하룻날의 재’라는 2차 거짓 정보를 흘린다. 무당이 ‘윤동짓달 초하루’를 잘못 구연한 것인데, 윤동짓달은 아주 드물게 오는 달이다. 그래서 ‘윤동짓달 초하루에 갚겠다’며 돈을 빌리면 안 갚겠다는 말이 된다.

부활한 모친은 대사한테 사기를 당해 오지 않는 날을 찾아다니다가 비명횡사한 셈이다. 막내딸의 ‘숭고한 희생’을 무위로 돌리는 허망한 종말이다. 함흥 <바리공주>는 여기서 끝난다.  


함흥 <바리공주>는 해석이 난감한 작품이다. 그래서 해석의 열쇠를 잘 깎아야 한다. 열쇠 가운데 하나는 ‘서인대사의 형상’이다. 이 사기꾼 중의 이미지는 함흥의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석가님’의 모습(연재 10회 참조)과 닮은꼴이다.

함흥 지역의 무속은 불교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이다. 중한테 속아 불사(佛事)를 쫓아다니다가는 망한다는 경고가 숨어 있다. 불교의 처지에서 보면 어불성설이겠지만 함흥의 신화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또 하나의 열쇠는 ‘죽음’이다. 다른 <바리공주>의 경우 부모는 살아나고, 저승행을 거부한 언니와 사위들도 용서를 받는다. 아들 못 얻은 부왕의 한(恨)도 바리가 낳은 외손자들을 통해 풀린다. 이승에서의 화해, 행복한 결말을 도모한다.

그러나 함흥 <바리공주>는 화해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죽음에 몰두한다. 모녀 사이의 갈등은 지속되고, 결과는 비극이다.  


이 비극을 풀고 거두는 곳이 이승이 아니라 저승이라는 인식이 함흥 <바리공주>를 점거하고 있다. 말랑말랑한 이승의 해피엔딩을 말하지 않는다. 죽음을 직시하는 현실주의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무녀 지금섬은 “옥황에 올라가 아들 열둘 낳아 열두시왕을 매겨 놓고 내려왔으니 거기서 오기탈을 받고 탈을 거두소서”라는 비념을 덧붙이는 것이다. ‘오기탈’, 곧 죽음이라는 탈을 죽음을 관장하는 옥황(저승)의 열두시왕(十大王)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함흥 <바리공주>는 ‘죽음의 향연’에 들어가는 입장권이다.

 

함경도 함흥·홍원 등지는 한국 신화 판도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역이다. 아니 아시아 신화의 구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꼭 풀어야 할 매듭이라 할 만한 곳이다. 조심스러운 소망이지만 평창 올림픽의 평화 무드가 현지조사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아시아 신화의 맥을 짚어 보고 싶다.

[출처] : 조현설 서울대학교 국문학교수 : <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경향신문




12. 평창 인면조와 하이브리드에 대한 상상

- 평창에 인면조가 나타났으니, 천하에 평화가 이룩될 것이다





지난 9일 밤 강원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사람의 얼굴을 한 새 ‘인면조’. 인면조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인도, 그리스 등에서도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했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의 관계맺기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서 비롯됐다. 연합뉴스



평창 올림픽 개막행사에 사람 얼굴의 새, 인면조(人面鳥)가 등장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연출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평안남도 덕흥리에서 발굴된, 유주자사를 지냈던 한 권력자의 무덤에는 다양한 생활풍속화와 상상화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가 수도로 삼았던 중국 지안(集安)에서 발견된 무용총의 벽화도 비슷하다. 연출자는 이 벽화들 속의 존재들을 불러내어 “고대의 원형적 평화를 형상화”(연합뉴스, 2월16일)하려 했다고 한다. 이미지화된 평화의 군무 한가운데 언론이 ‘충격’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특필한 인면조가 있었다.  

왜 고구려인들은 인면조를 상상했을까? 그런데 인면조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탁은잔(銅托銀盞)에도 새겨져 있고, <산해경(山海經)>의 “북방에 우강(禺彊)이란 신이 있는데, 사람 얼굴에 새의 몸으로 두 마리 푸른 뱀을 귀에 걸고 두 마리 푸른 뱀을 발로 밟고 있다”라는 기록을 참조하면 중국 초나라의 상상 세계에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도신화의 극락조 칼라윈카(Kalavinka), 그리스신화의 하르퓌아이(Harpyai)라는 괴조(怪鳥)도 사람의 얼굴을 지닌 것을 보면 인면조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인면조를 상상했을까? 인면조는 새와 사람이 결합된 존재다. 요즘 자주 쓰는 외래어로 하이브리드(Hybrid)다. 하이브리드의 상상력은 인류가 다른 동물과의 관계맺기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어떤 집단은 늑대를, 어떤 집단은 곰이나 호랑이를, 또 어떤 집단은 양을 시조로 삼아 다른 종족과 구별 짓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 특화된 동물에 대한 금기도 생성되고, 집단적 의례도 마련되었다. 새도 그런 동물 가운데 하나다.  

고구려 건국신화에는 유화(柳花)라는 아리따운 여성이 등장한다. 압록강의 신 하백의 세 딸 가운데 맏이다. 둘째가 훤화(萱花), 셋째가 위화(葦花)여서 이름만 보면 식물과 관련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해모수한테 잡혀 억지로 혼인을 했지만 아버지는 허락 없이 혼인했다는 이유로 유화를 추방하게 되는데, 이때 이상한 장면이 연출된다.

입술을 세 자나 되도록 잡아당겨 백두산 남쪽 우발수라는 연못으로 귀양을 보낸다. 입술이 석자나 튀어나온 여인이라니! 그래서 이규보는 “기이한 짐승이 왔다 갔다 (…) 모습이 아주 무서웠네” (<동명왕편>)라는 감회를 토로했던 것이다. 


유화는 호수에 살았다. 그러다가 어부의 쇠그물에 잡힌다. 어부 강력부추가 금와왕한테 바쳤는데 말을 못하자 입술을 세 번 잘라 말을 하게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유화는 금와왕의 궁실에서 큰 알을 낳는다. 이런 유화의 모습 위에 어른거리는 것은 부리가 긴 새의 형상이다.

알을 낳는 것도 조류의 생태에 속한다. 유화는 분명 새를 자신들의 종족적 표지로 삼던 집단의 신화 속 인물일 것이다. 하이브리드라고 하더라도 얼굴은 새의 모습이고 몸은 사람이어서 조면인(鳥面人)으로 역치(易置)되어 있기는 하지만.  조면인 유화와 연결되어 있는 신화적 인물이 만주신화의 부쿠룬이다.
 

장백산 동북쪽 부쿠리산 아래 부루후리라는 호수가 있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선녀 셋이 내려와 호수에서 목욕을 한다. 목욕을 마치고 기슭에 올랐는데 막내 부쿠룬의 옷 위에 붉은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신령한 새가 물어와 떨어뜨린 열매였다. 너무 아름다워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입에 물고 옷을 입다가 그만 삼키고 말았다.

그러자 곧 느낌이 있어 임신을 한다. 몸이 무거워진 부쿠룬은 언니들에게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언니들은 하늘의 뜻이라며 몸이 가벼워진 뒤 올라와도 된다는 말을 남기고는 떠나버렸다.

 그 뒤 부쿠룬은 사내아이를 하나 낳는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했고 성장도 빨랐다. 아이가 자라자 부쿠룬은 어지러운 나라를 안정시키라고 하늘이 너를 보냈다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진다. 


부쿠룬이 붉은 열매를 먹고 낳은 아이가 부쿠리용손인데, 이 사람이 바로 만주의 시조다. 부쿠룬과 더불어 목욕하러 온 천상의 여인들은 어떻게 내려왔을까? <만주실록(滿洲實錄)>에 실려 있는 이 자료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다.

그러나 이 신화와 같은 계통으로 보이는 일본 이카고 씨족 시조신화를 읽어보면 실마리가 잡힌다. <오우미국풍토기(近江國風土記)>에 실려 있는 신화다. 오우미국은 오늘날 교토 인근 시가현 지역이다. 
 

노인들이 전하는 말이다. 오우미국의 이카고군 요고 마을 남쪽에 이카고라는 작은 강이 있었다. 천녀 여덟이 함께 백조가 되어 하늘에서 내려와 강 남쪽 나룻가에서 목욕을 하였다. 이때 이카도미(伊香刀美)가 서쪽 산에 있다가 멀리서 백조들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기이하였다.

그래서 혹시 신인(神人)이 아닐까 의심이 들어 달려가 보니 정말로 신인이었다. 이카도미는 바로 사랑스럽다는 마음이 일어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흰 개를 보내 막내의 천의(天衣)를 훔쳐오게 하여 감추었다. 그것을 알게 된 천녀들을 모두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러나 막내는 옷이 없어 올라가지 못했다. 하늘 길이 막힌 막내는 지상의 백성이 되었다. 천녀가 목욕했던 물가를 오늘날 가미우라(神浦)라고 한다. 이카도미는 제일 어린 천녀와 부부가 되어 이곳에서 살았다. 아들 둘과 딸 둘을 낳았는데, 이들이 이카고 집안의 조상이다.

나중에 천녀는 날개옷을 찾아 입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카도미는 혼자 쓸쓸하게 살면서 한탄하는 노래를 늘 불렀다고 한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과 흡사한 신화인데, 천상에서 내려오는 여자들이 백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카도미는 백조가 기이하다고 했고, 지상의 인간이 되었던 천녀가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돌아갔다고 했으니 날개옷을 입으면 기이한 백조가 되고 벗으면 사람의 모습을 했던 것으로 상상된다.

날개옷을 입은 백조가 기이하다고 했고, 신인이라고 했으니 백조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얼굴을 지니고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사람과 새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이카도미 신화는 금강산의 ‘선녀와 나무꾼’, 만주의 부쿠룬 신화, 나아가 고구려의 유화 신화와 이어져 있다.  

하이브리드는 이렇게 집단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1차적 상징은 2차적 상징으로 확장된다. 마치 주역에서 용이 하늘을 나는 괘가 나오면 상서로운 징조로 해석되듯이 하이브리드가 보이면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으로 확대 해석된다, 고구려의 무덤 벽화에 인면조가 나타나고, 백제의 은잔에 인면조를 새겨놓은 것은 단지 그것이 집단의 표지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뜻일까?  

다시 <산해경>을 펼쳐 보자. 초나라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산해경>은 인면조를 비롯한 각종 하이브리드의 보고, 하이브리드의 금메달감이다. 이 인문지리서에 출현하는 인면조는 크게 둘로 대별된다. 하나가 부정적인 인면조라면 다른 하나는 긍정적 상징성을 지닌 인면조다.
 

거산(柜山) 새가 있는데 그 모습은 올빼미 같고 사람 손을 지니고 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암메추라기 같다. 이름을 주(鴸)라 하는데 제 이름을 스스로 불러댄다. 이 새가 나타나면 그 고을에 방사(放士)가 많아진다. 
 

<산해경> ‘남차이경(南次二經)’에 실려 있는 인면조에 대한 기록이다. 이 새의 출현과 인과관계가 설정되어 있는 ‘방사’는 ‘추방된 선비’를 뜻한다. 주가 나타나면 정변이 일어나 귀양 가는 지식인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전설에 따르면 ‘주’는 성군 요임금의 아들인 단주(丹朱)의 화신이다. 요임금은 단주의 사람됨이 사납고 교만했기 때문에 순임금한테 양위를 하고 단주는 남쪽 단수(丹水) 지역의 제후로 보낸다. 그 때문에 적개심을 품은 단주는 그 지역 삼묘(三苗)의 수령과 연합하여 순임금에 대항한다.

그러나 실패하여 삼묘의 수령은 피살되고 단주는 남해에 투신자살하고 만다. 이 단주의 원혼이 변하여 주라는 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삼묘는 오늘날 먀오족(苗族)의 조상으로 중원의 황제(黃帝)에 대항하는 적대적인 세력이다. 삼묘는 지금까지도 포악한 오랑캐의 상징이다. 그런데 황제의 후예인 단주가 남쪽 오랑캐와 손을 잡고 성군 순임금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패배는 당연한 것이고 투신자살이라는 비극도 이미 예비된 것이다. 비극의 주인공 단주의 원혼이 변하여 인면조가 되었으니 그 새가 길조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단주가 정변으로 죽었으므로 이 흉조가 출현하면 방사가 많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옹(옹)이나 부혜(鳧혜)라는 인면조도 같은 계열의 새들이다. 옹은 모습이 올빼미 같고, 사람 얼굴에 눈이 넷이며 귀도 달린 새다. 이 새가 보이면 천하에 큰 가뭄이 든다고 ‘남차삼경’에 기록되어 있다. 부혜는 생김새가 수탉 같은데, 사람 얼굴을 하고 있다.

이것이 나타나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서차이경’에 서술되어 있다. 인면조가 가뭄과 전쟁을 상징하는 흉조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 인면조의 배후에도 우리가 모르는 단주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산해경>에 실린 인면조 ‘주’.​

그런데 <산해경>의 인면조 가운데는 반모와 같은 새도 있다. 불효산이란 곳에 까마귀 같은 새가 있는데, 사람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이 새는 밤에 날아다니고 낮에는 숨어 있는데, 이 새의 고기를 먹으면 열병과 두통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북차이경(北次二經)’)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 길흉을 판단하기 쉽지 않지만 적어도 흉조는 아닐 것이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재가 된다니 길조로 분류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북한 평남 덕흥리 고분에 그려진 인면조 ‘천추’.

반모와 같은 긍정적 인면조 계열에 갈홍(葛洪, 284~364)이 지은 <포박자(抱朴子)>의 인면조가 있다. 인면조는, 수련을 통해 장수에 이를 수 있다는 설에 대해 의심하는 이에게 포박자라는 신선이 대답하는 말 중에 등장한다

“천세(千歲)는 새이고 만세(萬歲)는 날짐승인데, 모두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지니고 있으며 수명은 그 이름과 같다.” (‘대속권(對俗卷)’) 천세와 만세는 모두 인면조인데, 천년만년을 사는 짐승이다.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새라 할 만하다.

덕흥리 고분에 그려진 천추(千秋)와 만세(萬歲)라는 이름의 인면조가 바로 이 새다. 이렇게 보면 고분의 주인은 <포박자>를 읽었거나 신선사상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집단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면조가 있었다.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길조로 의미가 확장된 인면조도 있었다. 이런 내력을 지닌 인면조가 평창 올림픽 마당에 평화를 호출하는 새로 다시 출현했다. 누천년의 상징성이 누적된 인면조에 새로운 상징의 옷이 하나 더 입혀진 셈이다.

<산해경> 투로 말하자면 평창에 인면조가 나타났으니 천하에 평화가 이룩될 것이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근대 올림픽의 정신이 무엇인가?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불러오자는 것이 아니었던가!

[출처] : 조현설 서울대학교 국문학교수 : <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경향신문




13. '오뉘힘내기’ 신화 속 미투 - 남성권력 탓 ‘남동생 살고 누이 희생’

…이젠 변혁하겠다는 여성들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있는 견훤산성. 이 산성은 견훤이 쌓은 것이 아닌데도 상주 지역에 전해지는 ‘오뉘힘내기’ 전설에 따라 견훤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 전설처럼 예로부터 여성은 남성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억제해야 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오누이가 등장하는 설화가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아주 특이한 이야기가 있는데, ‘오뉘힘내기’가 그것이다. 보통 전설이라 부르는데, 이 이야기가 세계의 기원을 말하지 않고 우리 주변의 지형지물이나 역사적 인물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누이가 범인(凡人)이 아니라는 사실, 이야기의 배후에 숨은 이데올로기 때문에 이 전설은 ‘나를 신화로 독해하라!’ 종용한다.

우리 마을 근처에 견훤산성이라고 있어요. 그 산성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산성 아랫마을에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재주도 있고 기운도 셌어요. 하루는 둘이 내기를 하기로 했답니다. 동생은 말 타고 서울을 갔다 오고, 그사이 누이는 산성을 쌓아서 지는 사람이 죽기로 했어요. 그래서 동생은 말을 타고 떠났고 누이는 돌과 흙을 날라다가 성을 쌓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누이가 성을 다 쌓고 나서 성문을 달려고 하는데도 동생은 오지를 않았어요. 그때 엄마가 있다가 아들을 죽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딸을 불렀어요. 

“야야 성 쌓느라 고생한대이. 콩 볶았으이 묵고 해라.” 

“어무이, 성문 달아놓고 묵을라요.” 


그래도 먹고 하라고 자꾸 권하자 딸은 하는 수 없이 콩을 먹었답니다. 콩은 목이 메서 잘 안 넘어가죠. 그때 동생이 서울에서 돌아왔어요. 누이는 결국 성문을 못 달고 내기에 져서 죽었습니다. 그때 누이가 쌓은 성을 견훤산성이라고 합니다.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 전해지고 있는 전설이다. 힘센 누이가 쌓은 성이 견훤산성이라니? 말이 안된다. 사실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있는 이 산성은 견훤이 쌓은 것도 아니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이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고 견훤이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일 뿐이다.

‘오뉘힘내기’는 우리나라 전역에 전해지는 전설인데, 인근에 견훤에 얽힌 산성이 있으니까 갖다 붙인 이름일 따름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왜 둘은 쓸데없이 목숨을 걸고 내기를 했을까? 앞뒤에 아무 설명이 없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들의 내기는 신화의 시각에서 봐야 풀린다. 목을 건 내기는 신화의 단골 소재가 아니던가! 테바이의 스핑크스는 수수께끼 내기를 해서 행인들의 목숨을 거둬갔다.

우리가 잘 알듯이 내기에서 이긴 오이디푸스는, 거꾸로 스핑크스의 목숨을 수장(水葬)했다. 태초의 내기에서 윌겐한테 진 에를릭은 죽음의 세계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미륵님도 그랬다(10회 참고). 그렇다면 오누이의 내기도 단순한 힘자랑이 아니라 신화적 내기일 것이다. 


우리 신화에서 산성 쌓기는 본래 창세여신의 일이다. 노고할미나 마고할미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여신은 하룻밤에 산성을 쌓는다. 몸집이 거대한 데다 바위를 공깃돌 다루듯이 할 정도로 힘이 세니까 가능한 일이다.


제주도의 마고할미인 설문대할망은 화산섬 제주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300개가 넘는 오름도 창조했다. 그것도 치마에 뚫린 구멍으로 흘린 흙으로. 그러니까 오뉘힘내기 전설의 산성 쌓기는 여기가 출처다. 산성 쌓기는 괜한 힘자랑이 아니라 창조행위의 하나였던 것.


그러나 오누이의 내기는 태초의 창조행위와는 다르다. 그럼 왜, 무슨 이유로 내기를 했을까? 문면에는 아무 단서가 없다. 이긴 남동생이 뭘 얻었다는 말도 없다. 오히려 누이를 잃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뿐일까? 그렇지는 않다. 남동생은 누이와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사건 자체’를 얻었다.

달리 말하면 승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승리의 사건은 오뉘힘내기 전설이 이야기될 때마다 재현된다. 이렇게 되면 ‘성문 없는’ 산성은 누이의 패배의 상징이 된다. 마고할미가 쌓은 산성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대회’ 참가자들이 성평등을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잠시 만주신화로 우회해 보자. 만주 구전신화 ‘우처구우러본’(조상신들의 이야기)에는 압카허허라는 창세신이 등장한다. 압카허허는 여천신(女天神)이라는 뜻인데, 제 몸에서 지신 비나무허허와 성신(星神) 와러두허허를 빚어 함께 세계를 창조한다. 그런데 서사시의 끝부분에 이르면 이상한 반전이 나타난다.

창세 후 많은 시간이 흘러 대홍수가 일어난 뒤 압카허허를 사람들이 압카언두리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 압카언두리는 “9층 구름하늘에 누워 입김으로 노을을 만들고 불을 뿜어 별을 만”드는데, 남성신이다. 요컨대 천신의 성(性)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창세신의 성전환은 엄청난 사건이다. 사람들이 이름을 바꾸었다는 말은 제사에서 모시는 최고신을 바꾸었다는 뜻이다. 의례는 사회를 반영한다. 사회가 남성 중심으로 바뀌면 의례에서 받드는 최고신도 남성이 된다. 이를 설명해주는 신화가 제작되고, 이 신화는 다시 현실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권능을 발휘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하룻밤에 산성을 쌓던 여신의 계보에 있는 힘센 누이가 내기에서 졌다는 이야기는 이 전설의 바탕에 남성 지배문화가 깔려 있다는 뜻이다.


이런 시각에서 봐야 어머니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 어머니가 딸을 만류하지 않았다면 아들이 죽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왜 아들이 죽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을까? 딸보다 아들이 귀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생각’은 바로 ‘칠거지악’이라는 부조리한 도덕률을 구축한 남성지배의 산물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시몬 드 보부아르) 이런 조건 속에서 어머니는 누이를 살해하는 남성권력의 기획에 기꺼이 공모한다. 


남성권력의 기획 상품인 오뉘힘내기 전설은 구전되는 과정에서 역사적 인물과 만나면서 여성의 자발적 희생을 미화하는 새로운 상품으로 변형된다. 호남에서 전승되고 있는 김덕령 남매 이야기가 그런 사례다. 

김덕령 남매가 있었어요. 둘 다 힘이 장사였는데, 누이가 더 셌어요. 그런데 덕령이는 제 힘을 믿고 여기저기 내기 씨름을 하고 다녔습니다. 누나는 그것이 걱정이 되어 동생의 버릇을 고쳐 주려고 남장을 하고 씨름판에 나갔지요. 붙자마자 누나는 동생을 내던져 버렸습니다.

김덕령은 부아가 나서 집에 돌아와서도 이를 갈고 있었어요. 보다 못한 누이가 ‘내가 했다’고 말했지요. 그러자 김덕령이 내기를 한 번 더 하자고 했습니다. 덕령이는 나무 신을 신고 무등산을 한 바퀴 돌고, 누이는 베를 짜기로 했어요. 한데 누이가 베를 다 짜도록 동생은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누이는 베틀에서 베를 끊지 않고 동생을 기다렸어요. 그사이 김덕령이 돌아와 내기에 이겼다고 누이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김덕령 같은 영웅이 누일 죽일 그런 이치가 어디가 있어. 우린 그런 소릴 믿지 안혀.”

이 전설은 어머니를 빼는 대신 남동생한테 이름을 부여했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시기의 유명한 의병장이었지만 억울하게 옥사한 인물이다. 이 억울함이 그를 전설의 주인공으로 밀어 올렸다. 그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는 용력이 있었지만 아기장수처럼 좌절한 영웅이다.


억울함과 용력 가운데 아마도 용력이 김덕령을 오뉘힘내기 전설로 불러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설에서도 여전히 힘이 더 센 쪽은 누이다. 공모자의 개입이 없으니 씨름 대결에서는 김덕령이 패한다. 그러자 재대결을 제안하는데, 종목을 바꾼다.

사실 씨름은 양념이고 이 대결이 진짜다. 한데 문제는 누이의 경쟁 종목이 바뀌었다는 데 있다. 누이는 성을 쌓지 않고 베를 짠다. 옷을 짓는 경우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모두 여성의 노동이었다는 점이다. 베틀 앞에 앉은 누이, 누이는 가부장제 사회의 일반적 여성의 형상을 입고 있다.

이런 조건이 누이로 하여금 차마 베를 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누이의 덕성 때문이 아니다! 누이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이야기에서는 어머니가 콩이나 팥죽으로 딸의 성 쌓기를 방해했는데, 이번에는 누이 스스로 자신을 방해한다. 누이 안에 이미 어머니가 들어와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누이의 자발적 포기는 어머니의 공모와 동일한 효과를 지니게 된다. 누이도 남성지배의 동조자가 되었다.

이런 누이의 행위를 일부 남성 화자들의 인식처럼 ‘고결한 희생’으로 칭송할 수는 없다. 누이는 남성지배의 번제물이 되었을 따름이다. 


이제 신화는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라는 브루스 링컨의 정의를 음미해 볼 때가 되었다. 오뉘힘내기 전설은 남동생의 승리, 아들의 승리 담론이다. 아들의 승리에 어머니가 공모했다는 이야기다. 남성의 승리를 위해 여성들 사이의 적대를 오도하는 이야기다.

영웅이 될 남성이 죽어서는 안되니 여성이 희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뉘힘내기 전설은 남성의 승리를 정당화하는 이야기, 곧 이데올로기다. 그렇다. 오뉘힘내기 전설을 신화로 불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오뉘힘내기 ‘신화’라는 해독,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야기 현장에서 화자들은 종종 다른 목소리를 낸다. 김덕령이 누이를 죽였다는 결말이 말이 안된다는 화자들도 있지만


“그래서 누이는 약속대로 죽고 말았어. 누이가 이겼더라면 동생을 안 죽게 했을 거야” (임석재, <한국구전설화6>, 235면)라고 말하는 화자도 있다. 전자가 김덕령의 영웅성을 칭송하는 담론이라면 후자는 누이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런 화자들의 감정이 “김덕령 누나가 영웅이여. 누나만 안 죽여 버렸으면 김덕령이 큰 놈 됐어. 그런디 누나 죽여 버리고 맥이 없어. 김덕령이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6-11>, 606면)라는 식의 마무리를 이끌어낸다. 누이의 죽음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잘못되었다는 화자들의 인식이 이 목소리들에 담겨 있다. 여성 화자의 경우 이런 목소리는 더 커진다.


지난해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MeToo) 운동이 2018년 벽두부터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한동안 ‘갑질’ 행태가 우리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는데, 미투 운동은 남성의 성적 갑질에 대한 저항의 한 형식이다. 성폭력은 남성권력의 문제다. 권력은 그 속성상 대중의 암묵적 동의를 먹고 산다. 갑의 억압 이전에 을의 억제가 있다.


어머니의 공모는 여성이 남성을 위해 스스로를 억제한 결과다. 누이의 희생은 남동생을 위해 제 욕망을 억제한 결과다. 남성권력의 폭력에 대해 침묵한 결과다. 이 침묵이 오뉘힘내기 전설을 고착화시키는 자원이다. 


그러나 오뉘힘내기 전설에는 누이의 죽음이 부당하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누이의 죽음에 강한 연민을 표현하는 남성 화자의 목소리도 있다. ‘미투의 목소리’는 이야기 속에 숨어 있던 희미한 이야기들이 드디어 목청을 증폭시키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미투 운동은 더 이상 아들 편을 들지 않겠다는 어머니들의 선언이다. ‘희생의 신화’를 거부하는 새로운 신화 쓰기 운동이다. 이 운동이, 누이가 내기에서 지지 않는 새로운 오뉘힘내기 신화를 만드는 데 이를 수 있을지, 귀추를 주목해야 한다. ‘위드유’로 연대하면서! 

※이 글을 쓰는 데 김준희의 ‘오누이 힘내기 설화 연구’(서울대 석사학위 논문, 2016)를 참조하였음.

[출처] : 조현설 서울대학교 국문학교수 : <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경향신문




14. 지도자의 길, 신의 길

- ‘무력’이라는 손쉬운 길 아닌 ‘도리’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족장



만주 신화에는 늙은 어부의 딸로 태어나 신이 된 타라이한마마를 비롯해 여신이 300명이나 등장한다. 여성 신들은 권위를 과시하는 남성 신들과는 다른 갈등 해결책을 제시한다. 사진은 만주족 여신의 이미지를 다룬 책 <샤만교여신>의 표지



우리는 때로 좋은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때로는 착한 신도 필요하다. 이들이 필요한 까닭은 우리 삶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삶이란 문제와 문제해결 과정의 연속이 아니던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해결할 능력자가 긴요해진다. 그것이 공동체의 문제일 때는 더 그렇다. 그렇다면 누가 지도자가 되고 신이 되는가? 신화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까? 


1635년 10월13일 만주어로 기록한 만주 기원신화에는 만주를 세우기 전의 상황이 제시되어 있다. 장백산(백두산) 동남쪽 아타리성(城)에 세 성씨가 있었는데, 족장을 차지하려고 종일 서로 싸웠다는 것이다. 우두머리가 되려고 다투는 일은 어디서나 현재형이다.

만주 기원신화도 이 같은 문제적 상황을 던진 뒤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해결책은 이들의 싸움을 멈추게 할 영웅의 출현이다. 영웅은 어디서 오는가? 



만주 복식 차림을 한 여성을 표지로 세운 <만주풍정록>.



천상의 선녀 셋이 장백산 부르후리 호수에 목욕을 하러 내려온다. 목욕을 마친 막내 부쿠룬은 천신 압카언두리의 사자, 까마귀가 물고 와 옷 위에 떨어뜨린 붉은 열매를 먹고 임신을 하여 사내아이를 낳는다. 태어나자 바로 말을 하고 성장 속도가 남달랐던 아이가 자라자 부쿠룬은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너를 낳은 것은 진실로 난국을 안정시키려 함이다. 저 싸우는 곳으로 가 네가 태어난 까닭을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하여라.” 이 대목은 <만주실록>에 기술되어 있다. 


‘난국 안정’이라는 천명을 타고난 아이는 모친의 명에 따라 배를 타고 내려가 아타리성 근처에 닿는다. 물을 길러 왔던 사람이 아이를 보고 이상히 여겨 무리를 이끌고 돌아온다. 그들을 향해 아이는 ‘나는 천상의 신, 선녀 부쿠룬의 아들이고, 성은 아이신기오로 이름은 부쿠리용숀’이라고 선언한다.

부쿠리용숀을 맞이한 세 씨족은 합의에 이른다. “우리가 다시 웅장이 되려고 다툴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들이 그를 왕으로 높이 모셨으니 마땅히 백리녀를 처로 삼게 해야 한다.” 이렇게 결혼해 아타리성에 정착하여 나라 이름을 만주라고 했다는 것인데, 사실 만주는 국명이 아니라 종족명이다. 아이신기오로는 만주족 왕실의 성이고, 부쿠리용숀은 그 시조다. 


그런데 이런 사실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부쿠리용숀을 왕으로 추대케 한 힘의 출처이다. 세 씨족 간의 전쟁을 그치게 하고 그들을 하나로 통합한 힘은 그가 천상에서 왔다는 데 있다. 기실 그는 종전(終戰)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만주족의 최고신 압카언두리가 보냈다는 ‘천부적 권위’만으로 그는 아타리성의 문제를 해결한다. 남성 영웅, 건국 영웅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한데 만주 신화의 여성 영웅은 아주 다른 해결책을 보여준다. 우수리강 동쪽에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삼는 여러 마을이 있었는데, 이들도 싸운다. 아마도 물고기가 잘 잡히는 곳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었을 것이다. 아타리성의 여러 성씨들이 족장이 되려고 다퉜다면 우수리강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다툰다. 이 또한 문제를 해결할 영웅이 필요한 상황이다. 


궈하러족이 구전하는 <타라이한마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라이가 태어나고, 사라지고, 돌아와 타라이한, 다시 말해 족장이 되는 신화다. 타라이는 우수리강 어귀 타라이 마을에 사는 늙은 어부 비양구의 외동딸로 태어난다. 마을 이름으로 이름을 지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에 따라 외동딸은 타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열 살 되던 해 타라이는 갑자기 강풍에 휩쓸려 사라진다. 아흐레 밤낮을 찾았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타라이는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신화는 이런 궁금증에 대해 답하지 않고 다음 상황을 던진다. 연어잡이 계절에 그물을 두고 아흐레 밤낮을 싸우는 상황! 그런데 싸움의 방식이 흥미롭다. 두 마을이 기간을 정해 놓고 피터지게 싸워 죽은 사람의 수가 적은 쪽이 이기는 방식이다.

 어릴 적 고향에서 경험한 바 있는 우리의 돌싸움(石戰)과 비슷한데, 죽도록 싸운다니 석전보다는 강도가 훨씬 세다. 그때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을 가르며 남쪽으로부터 자줏빛 말을 타고 쌍칼을 휘휘 돌리는 여장수가 나타난다.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처녀,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는 사실 바람에 쓸려간 타라이였다.


타라이는 마을 간의 싸움이라는 고질을 해결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마을 청년들은 빈정대며 정체를 밝히라고 요구한다. 타라이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뒤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만일 누구든 내 두 손을 잡아 벌린다면 싸움에 관여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못한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어린 처녀를 얕잡아 본 사내들은 서로 나섰다. 먼저 석공 비라. 그는 손을 떼려고 용을 쓰다 얼굴을 붉히며 물러난다. 이를 본 사내들 일여덟 명이 연이어 대들었지만 타라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우수리강 일대의 최고의 역사인 나르한이 나섰다. 그는 큰 곰을 번쩍 들고 아름드리 자작나무를 뽑는 장사였다. 아버지는 걱정이 되어 나르한한테 부탁도 하고 딸도 말렸지만 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굴복하지 않는 타라이한테 화가 난 나르한은 달려들어 두 팔을 잡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손을 벌리려 했다. 그러나 타라이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두 손을 모으고 있을 뿐이었다. 나르한은 무릎을 꿇었고, 일전을 벼르던 우수리 주민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타라이는 다시 제안을 한다. 우리 앞에 서 있는 큰 버드나무를 뽑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사실 이 물음 뒤에는 ‘나는 얼마든지 뽑을 수 있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 모두 고개를 젓자 타라이는 힘센 청년 20명을 선발해 함께 뽑아 보라고 권한다. 청년들이 힘을 합치자 버드나무는 쉬 뽑혔다. 타라이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한다. 

여러분, 한마음으로 뭉치면 황토도 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물질을 할 때도 합심해야 합니다. 큰 그물을 혼자서 당길 수 있습니까? 협력해서 함께 고기를 잡읍시다. 목숨을 걸고 싸울 힘으로 고기를 잡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연설에 감복한 주민들은 타라이를 여러 마을의 통일 촌장으로 추대했고, 타라이는 수락한다. “여러분이 저를 믿어준다면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타라이는 48개의 고기잡이 터를 균분하고 청년 남성들에게는 무예를, 여성들에게는 길쌈을, 노인들에게는 광주리 엮는 법을 가르친다. 타라이는 우수리강 일대의 부흥을 이끈다.

그런데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타라이의 별명은 ‘쌍칼여장수’였다. 아마도 사라진 10여년 동안 신들의 무예를 전수받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는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전혀 쌍칼을 사용하지 않는다.

쌍칼은 무력의 상징이다. 타라이는 분쟁 중인 우수리강 주민들을 얼마든지 무력으로 굴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재된 파워를 발휘하지 않는 방법으로, 연설을 통해 협력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성난 주민들을 굴복시킨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젊은이가 사냥을 갔다가 타라이의 관할 밖에 있는 하마탕 마을에서 사슴을 훔친다. 사슴을 찾으러 온 이웃에게 젊은이는 사과는커녕 폭력을 돌려준다. 그러자 하마탕 사람들이 사생결투를 신청한다. 이를 안 타라이는 하마탕 촌장이 내건, ‘사슴을 되돌려주고 채찍 50대를 맞으라’는 조건을 수용한다. 그리고 스스로 채찍을 맞는다. 이 행동이 도둑질한 젊은이도, 하마탕 주민들도 감동시킨다. 


일이 마무리된 뒤 사람들이 물었다. 하마탕 사람들이 무서워 싸움을 피하느라 채찍을 맞았냐고. 타라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무서워한 것은 하마탕 사람들이 아니라 도리입니다.” 타라이는 무력이라는 손쉬운 길이 아니라 ‘도리’라는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한 족장이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를 연구한 인류학자 로버트 로위는 1948년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한다. 그는 남북 아메리카의 모든 인디언 사회에서 발견되는 족장의 공통점 셋을 든다.

첫째가 족장은 평화중재자라는 것. 족장은 강제가 아니라 전원합의에 의해 평화를 이끌어낸다.

셋째는 말을 잘하는 자만이 족장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전원합의에 이르려면 말로 모든 구성원들을 설득해야 하니까. 타라이한이 바로 이런 족장이었다. 그는 무력에 의한 강제를 버리고, 설득력 있는 연설을 통해 우수리강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낸 지도자였다. 


그러나 타라이한이 족장을 넘어 신이 되는 데는 또 하나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신 사이의 평화중재자가 되는 과정이다. 불만을 품은 세 젊은 적대자가 신통력 있는 늙은 이리와 연합하여 타라이한과 대결한다. 그 과정에서 타라이한은 이리의 침이 담긴 독(毒) 단지를 선물로 받는다.

이날 타라이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남쪽 하구에서 한창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목이 마르던 참에 세 젊은이가 아가위즙 한 단지를 들고 타라이 앞에 와 공손히 말하였다.

“우리를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보답할 방법이 없어서 아가위즙을 가져왔으니 목이나 축이십시오.” 


타라이는 세 젊은이와 아가위즙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 세 분의 마음이 정말 고맙긴 하지만 이 아가위즙은 냄새가 너무 역하니 돌단지에 담아두면 좋겠군요. 그렇지만 가련한 오빠, 어질고 약한 내 마음에 어찌 안 마실 수 있겠어요.”


이 말은 원래 늙은 이리가 한 말인데, 그녀가 어떻게 이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세 사람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녀는 아가위즙을 받아들고 다시 말하였다. 

“나는 이 즙을 마시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들 호의를 거절하기 어려우니 감사히 받겠어요.”

타라이한은 아가위즙이 독물임을 간파하고 있었지만 ‘호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단번에 마신다. 이는 바로 로위가 지적했던바 족장의 둘째 특징이다. 족장은 ‘피통치자들의 끊임없는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족장은 경제적으로는 제일 가난한 상태에 처한다.

재화에 대한 요구는 아니었지만 타라이한은 적대적 주민들의 호의조차 거절할 수 없었던 것. 거절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타라이한은 ‘족장답기’ 위해 죽음마저 받아들인다. 


그러나 죽음이 끝은 아니다. 유언에 따라 자작나무껍질에 싸여 큰 소나무에 매달린 뒤 부활한다. 타라이한 부재의 틈을 타 마을을 공격하는 이리떼를 물리쳐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과 부활의 과정은 족장 타라이한이 타라이한마마 신으로 승화되는 통과의례의 과정이었다.

 타라이한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마을연합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선물로 내놓음으로써 신이 된 것이다. 타라이한은 악신을 제거하여 인신지간의 화해를 이뤄냄으로써 만주 궈하러족의 조상신이 되었다.


부쿠리용숀과 타라이한마마, 둘 다 집단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여 지도자가 된다. 전자는 청 황실을 이룩한 아이신기오로 집안의 조상으로 신격화되었고, 후자는 궈하러족의 조상신이 되었다. 전자는 ‘천명’이라는 일방적 권위로, 후자는 힘을 억제한 채 사약까지 받아들임으로써 지도자가 되고 신이 되었다. 


과연 어느 쪽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일까? 남북의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한반도, 성폭력이라는 고통스러운 언어가 점령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치유할 영웅은 누구일까? 나는 부쿠리용숀보다는 타라이한마마 쪽이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아니 외부의 타라이한마마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타라이한마마를 불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촛불로 새 길을 열었듯이.

[출처] : 조현설 서울대학교 국문학교수 : <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경향신문




15.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그늘

- 해와 달로 쫓고 쫓기는 오누이…‘근친혼 스캔들’이 숨어 있다



일러스트 | 김상민기자


신화에는 그늘이 있다. 해가 뜨면 그늘이 생기듯. 달은 해의 그늘이다. 해는 빛을 뿜고 달은 빛을 받아들인다. 달은 차고 해는 뜨겁다. 해와 달은 거인 창세신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다. 과학적 이해 이전에 인류는 해와 달을 불가피한 짝으로 상상했다. 해와 달의 관계가 그러하듯 밝게만 보이는 이야기에도 어딘가 그늘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양지와 음지를 함께 봐야 신화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 많이 듣던 옛날이야기, 아이들이 그림책으로 많이 보고 읽는 민담이다. 영문학자 정인섭이 1911년에 채록하여 1952년 런던에서 출판한 <Folk Tales from Korea(한국의 민담)>에 실어놓은 이야기를 번역하면 이렇다.


호랑이가 이웃 부잣집에 품일을 갔다 오던 늙은 어머니를 잡아먹고, 어머니의 옷과 머릿수건으로 변장하고 오누이가 있는 집으로 찾아가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오누이는 문구멍으로 내다보고 호랑이인 줄 알고 뒷문으로 도망쳐 나무 위로 피한다. 오누이를 쫓아 호랑이가 나무로 올라오자 오누이는 하늘에 빈다. 하늘에서 내려준 쇠줄을 타고 오누이는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지만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타고 하늘에 오르다가 줄이 끊어져 수숫대가 있는 곳에 떨어져 죽는다.

하느님은 오빠는 해, 동생은 달이 되게 하였지만 동생이 밤이 무섭다고 하여 역할을 바꾸어 오빠는 달, 여동생은 해가 된다. 여동생은 낮에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 부끄러워 강력한 빛을 뿜어낸다.(‘해와 달’)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사나운 호랑이의 형상은 빠져 있지만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야기다.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무섭기는 하지만 호랑이는 결국 하느님의 엄벌을 받는다. 별로 그늘이 보이지 않는 ‘아동용’ 옛날이야기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라도 민속학자 손진태가 1930년에 일본어로 출판한 자료는 좀 다르다.  옛날 하느님은 오빠를 태양으로, 누이는 달로 만들었다. 어느 날 달은 사람들에게 쳐다보이는 게 부끄럽다면서 태양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오빠는 양보하지 않았다. 심하게 다투다 오빠가 담뱃대로 누이의 눈을 찌른다. 오빠는 눈이 찔린 누이가 불쌍해서 자리를 양보한다. 결국 누이가 해가 되고 오빠가 달이 된다. 그때 찔린 눈의 상처가 태양의 흑점이라고도 한다. 


앞의 이야기에서는 오누이의 역할 바꾸기가 사이좋게 이뤄졌지만 이 이야기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담뱃대로 누이의 눈을 찌르는 오빠의 폭력이 드러난다. 누이가 불쌍했으면 처음부터 폭력을 행사하지 말았어야 한다.

대체 오빠는 왜 그랬을까? 손진태가 <한국민족설화의 연구>(1947)에서 인용한 또 다른 자료에 보면 호랑이는 “이번에는 ‘옷 벗어 주면 안 잡아먹지’ 하므로 치마를 주었다. 이어서 저고리, 바지, 속적삼, 속옷까지 다 주고 나신(裸身)이 되었으므로 가랑잎사귀를 따서 음부를 가리고 갔다. 범은 繼續(계속)하여 나왔다. 팔과 다리를 要求(요구)하고 最後(최후)에는 몸뚱이까지를 要求(요구)”한다.


호랑이도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그늘에는 폭력이 감춰져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누이는 처음에는 밤이 무섭다며 해로 바꿔달라고 한다. 달이 되고 보니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것이 부끄럽다고도 한다. 모두 하느님의 결정을 부정하는 태도다. 왜 누이는 신의 명령을 거부하면서까지 부끄럽다고 했을까? 왜 무서움과 부끄러움은 여성의 것이어야 할까? 또 다른 그늘이 아닐 수 없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만나면서 내내 지울 수 없었던 이런 그늘을 풀 실마리를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1-날것과 익힌 것>을 읽다가 발견했다. 베링해협에 거주하는 이누이트족의 일월기원신화가 그것이다. 


옛날에 한 남자와 그의 아내가 바닷가 외딴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이가 둘 있었는데 하나는 여자고 다른 하나는 남자였다.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소년은 여동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줄기차게 동생을 쫓아다녔으므로 동생은 하늘로 피신해 달이 되었다. 그 뒤로 소년은 해의 형상으로 소녀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때때로 소년은 여동생과 합류해 그녀를 껴안는 데 성공했고 그렇게 월식을 일으켰다. 아이들이 떠난 후 아버지는 사람들을 향한 암울하고 미운 마음을 가졌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으로 나와 질병과 죽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질병으로 죽은 희생자들을 자신의 먹이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탐식은 만족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러자 그는 건강한 사람들마저 잡아먹기 시작했다. 


오누이가 해와 달이 된 이야기인데 해와 달이 되는 과정이 전혀 다르다. 우리 이야기에는 없는 아버지가 출현하여 자식을 잃은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질병과 죽음의 신이 되고, 식인귀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아버지의 고통을 초래한 원인이 심상찮다.

오누이의 사랑, 특히 오빠의 욕망이 원인으로 던져져 있다. 이누이트인들은 해와 달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식과 월식의 원인을 오빠의 끊임없는 누이 쫓기, 곧 근친상간의 결과로 상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레비-스트로스는 ‘일월식과 근친상간이 등가관계라는 원칙을 제시하는 신화’라고 해석했다. 


1887년 박물학자 루시엔 터너가 캐나다 퀘벡의 포트 치모(현재 쿠주아크)에 거주하는 이누이트로부터 들은 신화에는 이 문제가 더 선명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한밤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의 방문을 받은 여자가 정체를 밝히기 위해 젖꼭지에 그을음을 칠한다. 견훤 출생담에 등장하는 야래자(夜來者)와 비슷하다.

광주 북촌 부잣집 딸을 찾아온 사내의 정체는 큰 지렁이였지만 이 경우는 전혀 다르다. 다음 날 여자는 오빠의 입술이 까만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누이는 놀라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른다. 이유를 모르는 부모는 화가 나서 오누이를 꾸짖는다. 그날 밤 누이는 집을 떠났고 오빠는 동생을 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도망치는 누이가 해고, 뒤쫓는 오빠가 달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오누이 사이에 신이 개입하면 근친상간 모티프가 희미해진다. 만주족의 일월기원신화가 그렇다. 옛날 해도 달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세상에 오누이가 살았다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들은 어둠의 사람들을 위해 빛을 찾기로 결심한다. 둘은 갖은 고난을 헤치며 서천으로 달려가 마침내 부처님을 만난다. 


부처는 오누이에게 등불 하나와 날아다니는 신발(飛鞋) 한 켤레를 주었다. 누이동생이 신발을 신고 날아다니자 오빠는 아무리 달려도 누이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 소리가 부처에게 전해지자 부처는 오빠에게 거울 하나를 준다. 오빠가 거울을 비추자 누이동생의 모습이 나타나 쫓아갈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거울 속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도 비쳤다. 누이동생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려 달아나자 오빠가 뒤에서 쫓았는데 쫓고 쫓기면서 둘은 점점 하늘로 올라갔다. 마침내 누이동생의 손에 있던 등불은 태양이 되고, 오빠의 손에 있던 거울은 달이 되었다고 한다. 


만주족 신화에는 부처님이 창조신으로 등장한다. 거울과 등불을 주어 오누이를 달과 해로 만든 존재가 부처 아닌가! 날아다니는 신을 신은 누이는 등불을 들고 도망치고, 거울을 든 오빠는 누이의 뒤를 쫓지만 왜 도망치고 쫓는지 분명하지 않다.

부끄러움의 정서도 근친상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타인의 나신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근친상간과 동일시되는 일월식도 없다. 부처님과 오누이의 사랑은 공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신화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양상이 루마니아 구전 서사시 <해와 달의 유래>에는 더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도 해와 달은 오누이다. 태양인 오빠는 누이 일레아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누이 같은 여자를 찾아 천지간을 돌아다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오빠가 청혼하자 누이는 그럴 수 없다고 거부한다. 하느님도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며 현명한 판단을 내리라고 권한다. 그러나 오빠는 “일레아나와 함께라면 영원한 지옥을 선택하겠노라”고 선언한다. 태양은 하강하여 누이와의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한다.


하지만 오누이의 결혼을 허락할 하느님이 어디 있겠는가! 둘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거행하려는 순간 거대한 손이 누이를 번쩍 들어 바다로 던져버린다. 바다에 던져진 누이는 잉어로 변신한다. 근친혼을 부정하는 하느님의 제재를 받은 것이다. 그래도 태양은 기어이 누이를 쫓아 바다에 몸을 담근다. 그 순간,

“성스러운 하느님/

전능하신 하느님이/

물결 사이로 손을 넣어/

손으로 잉어를 잡아/

하늘로 내던졌네/

보름달로 변하도록/

하느님은/

엄숙한 목소리로 이르셨지./

너 일레아나야/

너 빛나는 태양아/

두 눈으로 보아라/

너희들이 항상 떨어져 있는 것을/

밤에는 한없는 그리움으로/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영원히 서로를 뒤쫓아야 하는 것을/

끝없이 하늘을 돌며/

이 세상을 비추면서”.


하느님은 잉어로 변신한 누이를 다시 보름달로 만든다. 그리고 끊임없이 서로의 뒤를 쫓을 뿐 만날 수 없는 해와 달의 질서를 만든다. 여기에도 일월식은 없다. 


이누이트 신화에서 루마니아 서사시까지 읽고 보니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형상화되어 있는 오빠의 폭력과 누이의 부끄러움의 원인(遠因)이 보인다. 눈을 찔러 태양의 흑점을 낳는 이야기에는 오빠의 성적 폭력이 은폐되어 있고, 쳐다보는 것이 부끄러워 사람들이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도록 빛을 쏘는 이야기에는 근친상간 금지 위반에 대한 죄의식이 감춰져 있었다.

일월식과 같은 자연의 괴변을 성적 폭력이나 터부의 위반 사태와 동일시하는 원시적 사유가 오랜 전승과정에서 잊히고 변형되었던 셈이다.


글을 쓰고 보니 아이들이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의 스캔들을 보도한 꼴이 되었다. 그렇다고 아이들한테 그늘을 강요할 필요는 없겠다. 아이들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밝은 빛을 보고 행복해하면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면 고통스러워도 그늘을 봐야 한다. 진실은 그늘에 있으니까. 

[출처] : 조현설 서울대학교 국문학교수 : <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경향신문


16. 오늘이 그 이름의 비밀

 - 부족한 존재들의 서로를 채우려는 몸짓…그것이 진정한 ‘오늘’

이성강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오늘이>(2005)에서 매일이와 장상이가 만나는 장면이다. 오늘이가 길에서 만난 이들은 그에게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오늘이는 이를 하나하나 해결해주면서 신녀, 즉 무녀가 된다


신의 이름에는 비밀이 있다. 천신(天神)을 풀면 ‘하늘님’인데 우리 신화에서 하늘님의 다른 이름에는 환인·천지왕·옥황상제 등이 있다. 환인은 불교의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에서 왔고, 옥황상제는 도교에서 왔고, 천지왕(天地王)은 무교(巫敎)에서 하늘님 대신 사용하는 이름이다.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튀르크어에서는 하늘을 뜻하는 ‘텡그리’가 천신의 이름이고, 일본에서는 빛나는 태양을 뜻하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가 천신의 이름이다. 만주어에서는 하늘을 뜻하는 ‘압카’와 여음(女陰)을 뜻하는 ‘허허’가 합쳐져 천신의 이름이 되었다. 최고신들의 이름은 대개 하늘을 의인화한 것이다.


이렇게 신들의 이름을 추적해가노라면 한 권의 책이 될 테지만 오늘은 특별한 이름 하나를 불러보고 싶다. 제주도 무속신화인 <원천강본풀이>의 주인공 ‘오늘이’가 그 이름이다. 강림들판에 홀로 버려진 아이,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고아. 여자아이를 발견한 세상 사람들은 “너는 낳은 날을 모르니 오늘을 낳은 날로 하고 이름을 오늘이라고 하라”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 오늘이는 누구인가?


오늘이를 알려면 먼저 <원천강본풀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원천강본풀이>는 두 종류가 전해지고 있는데 하나는 아카마스 지조 등이 1930년대에 조사한 자료이고, 다른 하나는 1960년대에 진성기 선생이 조사한 자료다.

둘 가운데 오늘이가 주인공인 신화는 앞의 것이고 박봉춘 심방(무당)이 구술했다. 하지만 두 자료 가운데 <원천강본풀이>라는 제목에 더 어울리는 신화는 조술생 심방이 구연한 후자다. 왜 그런가? 


제목에 포함된 원천강(袁天綱)은 <구당서>에 따르면 7세기 무렵에 살았던 실존 인물로 관상이나 풍수, 또는 점술에 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관상감의 관원이 되기 위한 과거시험의 교과목으로 사용되었던 책의 제목도 <원천강오성삼명지남>(袁天綱五星三命指南)이었다. 원천강이 조선시대 이래 점쟁이의 대명사처럼 쓰인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술생 심방이 구연한 <원천강본풀이>가 바로 여주인공이 점쟁이가 되는 이야기다. 본래 여주인공의 남편은 왕이 될 영웅이었다. 그래서 국가권력의 제거 대상으로 지목된다. 남편은 이를 미리 알고 숨었고, 역적을 찾아낼 방도가 안 보이자 권력은 여자의 질투심을 이용한다.

느닷없이 작은 마누라가 아이를 안고 나타나자 여자는 장독을 열고 남편한테 따진다. 그 순간 ‘안가’가 노출된 영웅은 체포된다. 사지로 떠나는 남편이 남긴 말은 “나를 잡아가면 너는 살 수 없을 테니 원천강이나 보면서 살아라”였다.

여주인공이 원천강이란 이름을 얻고, 원천강을 보면서 살게 된 내력이다. 원천강이 점쟁이가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원천강본풀이>라는 제목에 딱 맞다.


조술생 버전과 달리 박봉춘의 <원천강본풀이>는 당나라 출신 원천강하고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신화다. 이 신화에서 원천강은 인명이 아니고 천상에 있는 공간의 이름일 따름이다. 하지만 따지다 보면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왜 그런가? 의문을 해소할 단서가 오늘이의 이름 안에, 행로 뒤에 숨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날 “옥 같은 계집애가 적막한 들에 외로이 나타나니 그를 발견한 이 세상 사람들이 ‘너는 어떤 아이냐’고 묻”는다. 고독한 인간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첫머리 진술이다. 아이는 부모가 없으니 제 정체를 모른다. 아이를 키운 것은 하늘에서 날아온 학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발견한 세상 사람들이 ‘오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비로소 첫 정체성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 이름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아이는 제 이름에 걸맞은 일을 찾기 위해 부모를 찾아간다. 떠돌다 만난 백씨 부인으로부터 부모의 소재지가 원천강이라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오늘이가 원천강을 찾아가는 길은 ‘복(福) 타러 가는 사람 이야기’, 곧 ‘구복여행담’의 길을 빼닮았다.

“원천강은 어떻게 갑니까?” “원천강을 가려거든 별층당에 높이 앉아 글 읽는 아이가 있으니 그 아이를 찾아가 문의하면 소망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이와 백씨 부인 사이의 첫째 문답이다. 오늘이는 별층당을 찾아가 아이를 만난다. 아이의 이름은 장상이, 글을 읽으라는 옥황상제의 분부로 종일 책읽기에 매여 있는 인물이다. 통성명을 한 오늘이는 원천강 가는 길을 묻는다. 장상이는 연화못을 찾아가 연꽃나무한테 물어보면 길을 알 수 있으리라고 하면서 이런 부탁을 한다. 

[출처] : 조현설 서울대학교 국문학교수 : <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경향신문


17. 백두혈동과 백두산 신화- ‘백두혈통’ 신성한 군주 만들기

…김일성, 그 이전에도 있었다.


‘백두산06’(150×220㎝).

하늘에서 바라본 백두산은 신비한 등줄기와 골짜기가 웅건하게 드러나고 있다. 북한이 1987년 출판한 <백두산전설집>은 백두산을 “조종의 산일 뿐 아니라 조선의 신성한 정기가 이는 성산”이라고 썼다. 안승일 작가 제공


1996년 1월 어느 날, ‘백두산 밀영’을 보았다. 당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던 베이징외국어대학의 학과장이 나눠준 새해 북한 달력에 그 사진이 있었다. 정일봉 아래 통나무집, 북한의 2대 수령 김정일이 ‘탄생’했다는 성지(聖地), ‘성지순례’를 온 학생들이 예를 표하는 사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물음표가 일어났다. 수령은 왜 백두산에서 태어나야 했을까? 


후에 옌볜대학교 도서관에서 북한에서 출판된 책을 살필 기회가 있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백두산전설집>(김우경 정리, 문예출판사, 1987)을 통해 북한 사회에서 백두산이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백두산전설집>을 열면 첫머리에 ‘백두산의 장군별’이라는 작품이 실려 있다. 한반도와 만주를 점령하고 중국 대륙까지 넘보던 일본 천황이 ‘장군별’을 보고 정신줄을 놓는다는 이야기다.


사건은 후지산에 별이 떴는데 사실은 백두산에 뜬 것이라는 궁내부대신의 보고로부터 시작된다. 백두산에 별이 뜬 것이 무슨 대수냐고 천황이 반문하자 대신은 이렇게 고한다.

예로부터 조선사람들은 백두산을 하늘의 령을 받은 성산으로, 조선의 생기가 일어번지는 근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조선땅의 지맥은 모두 백두산에 뿌리를 두고 조선의 산들은 모두 백두산을 우러러 솟아있습니다. (…)


이렇듯 백두산은 조종의 산일뿐아니라 조선의 신성한 정기가 이는 성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성산에 보통별이 아니라 장군별이 떴은즉 그것은 장차 조선을 구원할 성인이 내렸다는 뜻인데 이는 실로 우리 대일본제국의 앞길에 짙은 그늘을 던져주는것이옵니다.

보고에 이어 번개가 쳐 궁성의 기와가 날아가고 유리창이 깨지는 이변이 일자 놀란 천황은 장군별의 내막을 탐문하기 위해 천문학자를 보낸다. 지리산 자락에서 이야기판을 기웃거리던 천문학자는 ‘조국해방의 기치를 든 김일성장군별’이라는 민심을 듣고는 깜짝 놀라 돌아가 보고한다.


그러나 천황은 화를 내며 학자의 목을 자른 뒤 후지산의 중을 다시 보낸다. 중은 이번에는 태백산 아래서 같은 여론을 수집, 보고했다가 죽음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천황은 자신의 근위장교를 파견한다.


백두산까지 올라가 신비한 별을 확인한 근위대장이 “백두산의 장군별은 우리 일본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아뢰자 천황은 ‘당장 목을 베라’고 소리 지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이 전설집에 이어 출간된 <날개돋친 흰말>(김우경 정리, 문예출판사, 1992)에도 ‘백두산 대장수’라는 비슷한 작품이 맨 첫머리에 실려 있다. 용마를 탄 큰 장수가 백두산에 내려왔다는 소문을 들은 박오득이라는 젊은이는 백두산 대장수를 찾아가 무술과 도술을 배운다.


강제로 땅을 빼앗은 ‘왜놈들’한테 복수하려고. 이를 알게 된 왜인들이 경찰과 군대를 총동원하여 백두산을 공격했지만 박오득과 대장수의 반격에 몰살당한다. “그리하여 왜놈들은 김일성 장군님의 이름만 들어도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면서 다시는 백두산으로 기여오를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고 한다.” 

<백두산전설집>에 실려 있는 삽화, 용마를 탄 백두산 대장수의 모습


두 전설집은 신출귀몰한 백두산 대장수를 칭송하는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백두산전설집>의 머리말에 따르면 이 전설들은 <불멸의 력사> 총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4·15창작단이 수집한 자료 가운데 따로 묶은 것이라고 한다.


 “누가 의식적으로 조직화함이 없이 자연군중들 속에서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전설들이 수없이 창조”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채록된 전설들을 정리하면서 작가들이 다시 쓴 ‘창작 전설’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웅신화나 장수전설 등 구전되던 신화적 영웅담을 재료로 삼아 ‘백두산 대장수’, 곧 북한의 초대 수령을 반일무장투쟁의 신성한 영웅으로 미화한 창작품들인 것이다. 


머리말에서 거론한 <불멸의 력사> 총서는 1972년에 첫 권이 나온 장편소설 연작이다. 모두 김일성의 ‘항일혁명투쟁’과, 해방 후의 ‘현지지도’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2대 수령 김정일이다.


그렇다면 총서의 여적(餘滴)으로 정리되었다는 ‘백두산전설’들도 총서와 같은 취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수령 승계를 준비하고 있던 김정일은 초대 수령의 신성화를 통해 혁명투쟁의 성지인 백두산 밀영에서 탄생한 자신의 정통성을 확인하고자 했을 것이다.


1994년 2대 수령의 등장 이후 쓰이기 시작한 ‘백두혈통’이라는 왕조적 개념은 이 스토리텔링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유념해야 할 대목은 ‘백두혈통 만들기’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163~1164년경에 고려의 김관의는 <편년통록(編年通錄)>이라는 문서를 제작한다.


목표는 고려 왕실의 신성화였다. 이를 위해 김관의가 기획한 것이 일종의 ‘백두혈통 만들기’였다. 그는 여러 귀족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던 문서를 모아 고려의 건국자 왕건의 조상신화를 편집하는데, 그 선두에 6대조 호경(虎景)이 있다.

호경(虎景)이라는 사람이 있어 스스로를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 불렀다. 백두산으로부터 두루 유람하다가 부소산(扶蘇山)의 왼쪽 골짜기에 이르러 장가들고 살림을 차렸는데, 부유했으나 자식이 없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호경 신화는 평나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동네사람들과 굴에 유숙했는데, 범의 선택에 의해 혼자만 살아남은 사건으로 이어진다. 관을 던지는 제비뽑기를 했는데, 범이 호경의 관을 물어 굴 밖으로 나갔더니 굴이 함몰되었다는 사건! 그리고 산신제 때 여산신(범)의 요청에 따라 부부가 되어 신정(神政)을 폈다는 다음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한데 호경 이야기에서 중요한 대목은 호경이 구룡산대왕신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부소산으로 내려왔다는 진술이다. 성골장군이라면 신라 귀족이고, 그 정도 혈통이면 새로운 왕가의 조상이 될 만한데 왜 백두산까지 오른 것일까? 답은 백두산과 부소산의 관계에 있다.


부소산은 송악산(호경의 아들 강충이 풍수가의 말대로 고친 이름)의 별명으로, 고려의 수도 개경의 진산(鎭山)이다. 호경의 행보는 개경의 진산을 백두산과 연결시키려는 상징적 여정이다. 그리고 이 상징적 여정을 그려낸 붓은 당시 유행하던 풍수지리설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백두산은 한반도 풍수 용맥(龍脈)의 조산(祖山)이다. “삼국을 통일한 후 처음으로 고려도(高麗圖)가 생겼으나 누구의 손으로부터 나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산을 보면 백두(白頭)에서 시작하여 구불구불 내려오다가 철령에 이르러 돌기하여 풍악이 되었다. 겹겹이 겹쳐 태백산, 소백산, 죽령, 계립, 삼하령, 추양산이 되었다”는 <동문선(東文選)>의 기록에 따르면 지도상 한반도 모든 산맥들의 뿌리에 백두산이 놓여 있다.


혈통으로 따지면 시조 할아버지 자리에 백두산이 있는 셈이다. 고려의 수도를 감싸고 있는 송악산이 백두산에서 시작되었음을, 고려 왕실의 신성한 기원이 백두산에 있음을 말하기 위해 호경은 여정의 출발점을 백두산으로 잡았던 것이다.


백두혈통 만들기는 이미 고려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두산 장군별’의 “백두산은 조종의 산일뿐아니라 조선의 신성한 정기가 이는 성산임에 틀림이 없다" 는 진술은 이런 풍수지리설에 연원을 두고 있다.


백두혈통 만들기는 청나라 건국신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만주실록(滿洲實錄)>(1635)은 만주족의 원류에 대해 “만주는 원래 장백산 동북 포고리산 아래 포륵호리라고 하는 호수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장백산은 우리가 다 알듯이 백두산의 다른 이름이고, 포고리산은 만주족이 부쿠리산이라고 부르는 산으로, 땅의 빛깔 때문에 홍토산(紅土山), 적봉(赤峰)으로도 불린다. 이 산자락의 호수에 천녀들이 목욕하러 왔다가 막내 부쿠룬이 신작(神鵲)이 물고 온 주과(朱果)를 먹고 잉태한 뒤 시조 부쿠리용숀을 낳는다.


만주족 청나라의 시조는 호수를 품고 있는 부쿠리산을 통해 장백산으로 연결된다. 호경이 부소산을 통해 백두산에 연결되는 형식과 같다. 


그런데 구전되던 시조탄생신화에는 장백산이 없다. 후금이 점령했던 이 지역의 투항자 가운데 목희극이란 사람이 구술한 신화는 이렇다. 

우리 조상은 대대로 부쿠리산 아래 부르후리 호숫가에 살았습니다. 기록은 없고 말로 전하길 세 천녀가 호수에서 목욕을 하다가 막내 부쿠룬이 신작이 보낸 주과를 입에 물고 있다가 삼킨 뒤 잉태하여 부쿠리용숀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 동족이 만주국 사람들입니다.



지난 4월27일 오후 판문점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기념식수 행사에서 백두산 흙이 한라산 흙과 함께 뿌려졌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목희극에 따르면 부르후리 호수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이야기라는데 어디에도 장백산이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면 청나라 건국신화에 돌연 나타난 장백산은 <만주실록>을 필두로 한 역사서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만주족과 청의 기원을 신성시하려는 기획의 산물로 보인다. 이런 기획에 부응하여 <만주실록>은 신화 앞에 장백산의 지리적 정보를 자세히 기술한다.


그뿐만 아니라 장백산에서 발원한 “세 강에서는 늘 주보(珠寶)가 나”오고 “여름날 산으로 돌아오는 짐승들은 모두 이 산속에서 쉰다”는 식의 신비화를 잊지 않는다. <동화록(東華錄)>(1765)에 이르면 “기운을 보는 자가 말하기를 이 땅이 장차 성인을 낳아 여러 나라를 통일할 것이라고 했다”는 풍수지리학적 언급도 덧붙는다. 장백산을 신비화하여 청 황실의 기원을 신성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실 흰 눈을 갓처럼 쓰고 있는 높은 산은 주변의 거민들에게 신성한 장소이고 종교적인 공간이다. 티베트인들에게는 초모랑마가 그렇고, 그리스인들에게는 올림포스가 그렇다. 일본인들에게는 후지산이 그런 공간이고, 중국인들에게는 태산이 그런 장소다.


 백두산은 한반도와 그 이북에 있는 주민들에게 그런 성소였다. 일찍이 단군신화가 태백산 신단수를 천상의 통로로 인식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래서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최남선은 백두산을 신성한 순례의 공간으로 인식했던(<백두산근참기>, 1927)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8일 백두산에 올랐다고 한다. 북한 중앙통신의 보도대로 아마도 “백두의 신념과 의지로 순간도 굴함 없이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과시하려는 상징적 행보였을 것이다.


그가 “앞선 두 수령보다 유독 백두산을 강조”하는 것도 “백두산 칼바람 정신, 백두산 대국 등의 구호로 3대 세습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의도 (백기철, ‘백두산 밀영’, 한겨레신문, 2017년 12월12일) 때문일 것이다.


 백두산 신화 만들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지난 4월27일 남북 정상의 기념식수 자리에서 한라산 흙과 하나가 된 백두산 흙에도 신화는 숨 쉬고 있었다.

[출처] : 조현설 서울대학교 국문학교수 : <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경향신문




18. 티베트 원숭이와 청보리술- “하루 만에 땅 개간하라”

…소년, 농경으로 바뀐 사회 시험대에 서다.


자연재해 이후 유일한 생존자 - 천신의 막내딸 얻기 위해 분투
당대 최신 기술 ‘경작’ 시험 후 - 부부, 씨앗 훔쳐 땅으로 내려와



신후를 유혹하는 나찰녀가 그려진 티베트 민족기원도


지난 세기말 라싸에서 시가체에 이르는 티베트 고원을 답사한 적이 있다. 청두(成都)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라싸 공항에 착륙했을 때 별다른 느낌이 없었기에 별거 아니라고 나는 고산병을 괄시했다. 그러나 버스로 20여분을 달리다가 마애불을 만나려고 잠시 하차했을 때 문워킹을 하는 듯한 이상한 감각을 경험했다. 그날 밤 나는 감기몸살 비슷한 고산병을 호되게 앓았다.


호된 신고식 덕분인지 다음날부터 몸이 가벼웠다. 가이드는 술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날부터 쉬지 않고 술과 벗하여 답사를 이어갔다. 그때 ‘줄창’ 먹어댄 술이 칭커주(靑과酒)였다. 칭커, 곧 티베트 사람들의 주식인 청보리를 원료로 만든 바이주(白酒)였다. 우리는 웃고 떠들면서 아마 원숭이도 이 술을 먹고 사람이 되었을 거야, 농담을 하곤 했다. 칭커주는 티베트의 원숭이 신화를 호출하는 맑은 술이다. 


그런데 티베트 원숭이를 호출하기 전에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다. 티베트 곡물기원신화가 그것이다. 왜냐하면 원숭이가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청보리가 이 신화에 먼저 등장하기 때문이다.


천지가 개벽한 뒤 아직 곡식 종자가 없었을 때 사람들은 사냥을 하면서 동굴에서 살았다. 그때 티베트 어느 지방에 아홉 형제가 살았는데, 막내는 새의 말을 알아들었다. 막내는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까치의 제안을 받는다. ‘사슴고기를 주면 좋은 정보를 주지!’ 까치의 말은 놀라웠다.

태양이 9개나 떠오르는 대재난이 닥칠 테니 이러저러한 준비를 하라는 것! 하지만 말은 알아듣는 이에게만 가치가 있다. 아홉 길 되는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내장을 파낸 젖소를 넣고, 그 위에 가시나무 아홉 층을 쌓고, 다시 그 위에 돌판 아홉 층을 덮은 뒤 노루·말·개미 한 마리씩과 방망이 하나를 들고 젖소의 배 속에 들어가 숨으라는 것. 형들은 미친놈이라고 했고, 결국 타죽었다. 형들만 죽은 것이 아니라 9개의 태양열에 인류가 다 타죽었고, 새의 말을 알아들은 막내만 살아남는다. 


■인간 분투로 얻어낸 곡물 


막내가 숨은 구덩이 속의 소의 배 속은 ‘노아의 방주’와 비슷하다. 이 신화가 홍수신화의 변형판이란 뜻이다. 물의 심판이 아니라 불의 심판이란 차이가 있을 뿐. 하지만 이 불의 재앙은 인류의 죄악에 대한 신의 심판하고는 무관하다. 9개의 태양이라는 신화소가 알려주듯이 가혹한 자연재해일 뿐이다. 재난을 피하려면 신의 음성을 듣지 말고 새의 말, 곧 자연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홍수신화에는 크게 두 유형이 있다. 하나가 오누이가 살아남아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 남매혼(혹은 근친혼) 유형이라면 다른 하나는 사내 혼자만 살아남아 어쩔 수 없이 짝을 찾아 천상에 올라가 천신의 딸과 결혼하는 인신혼(人神婚) 유형이다.


이 티베트 신화에 변형된 홍수신화의 화소가 스며들어 있다면 막내의 다음 이야기는 짝을 찾아 떠나는 것이어야 한다. 과연 그렇다. 소의 배 속에서 나와 폐허의 대지를 확인한 막내는 물을 찾아 세상의 끝까지 여행한다. 거기서 마침내 찾아낸 샘물이 하늘샘(天泉)이고, 이 샘이 천신의 세 딸이 삼년에 한번 물을 길러 오는 샘이라는 정보를 이번에는 ‘붉은 새’한테서 듣는다. 


이제 지상의 유일한 생존자가 천신의 막내딸과 결혼해야 하는 힘든 여정이 시작된다. 새의 가이드에 따라 막내는 반지를 나무에 걸어놓는데, 반지는 천신의 막내딸에게만 보인다. 제 눈에 안경이다. 막내딸한테 청혼한 막내는 천신의 허락을 얻기 위해 하늘로 올라간다.


<종자의 기원>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구전신화는 승천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고통을 길게 구술한다. 그러나 이 승천통(昇天痛)은 허혼에 이르는 고난의 예고편일 뿐이다. 


“왜 이리 늦었느냐?” 솔직한 막내딸의 이실직고는 천신의 분노를 부른다. 지상의 모든 아빠들이 그렇듯이 천신은 ‘사위 될 놈’을 경계한다. 딸을 주지 않으려고 감당할 수 없는 시험문제를 낸다.


 첫째 문제, 하루 만에 네 말의 청보리 씨앗을 뿌릴 만큼 넓은 땅을 개간하라!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막내는 막내딸이 일러준 주술로 신을 불러내어 땅을 개간한다. 그러나 딸을 안 주기로 작심한 천신이 호락호락 물러설 리가 없다.


자네가 개간한 땅을 하루 만에 혼자서 갈아놓지 않으면 결혼 못하네. 막내는 두 번째 문제도 같은 주술로 해결해 버린다. 문제는 이어진다. 세 번째는 유채씨 네 말을 하루에 다 뿌리라고 했다가, 네 번째는 그것을 다 회수하라고 한다. 천신의 심통이 보통이 아니지만 문제는 해결되고 둘은 부부가 된다. 


그런데 또 다른 분란이 발생한다. 사위가 지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 장인은 천구(天狗)의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주면서 ‘신어서 찢어지면 지상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조건을 건다. 물론 조건에는 함정이 있었다. 그 ‘특수신발’은 찢어져도 바로 복원되는 ‘엑스맨 같은’ 신발이었다.


그러니 찢어질 때까지 종일 뛰어다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제 기댈 곳은 한 군데뿐! 하지만 이번에는 막내딸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막내딸도 내심은 친정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낙심한 막내 앞에 천신을 위해 숯을 굽는 노인이 나타난다. 숯구이노인은 찢어진 신발이 원상복구되지 못하게 하는 비법을 알려준다. 천기누설! 


■신의 은총으로서의 곡물 


불교 들어오며 이야기도 변형 - 원숭이·나찰녀 부부의 자식들
청보리·콩·메밀 등 가져다준 -관자재보살 덕에 굶주림 면해


마침내 승리한 막내에게 천신은 마지막 바리케이드를 친다. “설령 딸이 자네를 따라간다 하더라도 식량은 한 톨도 못 가져가네!” 천신은 막내딸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막내딸은 아비의 소망과 달리 남편을 따라 지상으로 내려가겠다고 선언한다.


이제 남은 희망마저 버린 천신은 딸과 사위를 단호히 추방한다. 딸은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엄마랑 언니들하고 작별인사만이라도 하게 해주세요.” 딸을 이기는 아빠는 없다. 결국은 맨몸으로 들어갔다 맨몸으로 나오라는 조건을 달아 허락한다.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지상으로 시집가는 딸이 걱정되어 온갖 좋은 곡물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맨몸으로 나가야 하니 방법이 없다. 막내딸은 아버지 몰래 청보리와 밀 한 톨씩은 입안에, 완두콩 한 톨은 콧구멍에, 메밀 한 톨은 손톱 밑에 감추고, 제비콩 두 알은 귀고리처럼 두 귀에 걸고 어머니·언니들과 작별인사를 한다.


 천신의 확인을 거친 뒤 마침내 둘은 지상으로 내려온다. 이렇게 하여 이 땅에 농사가 시작되었고, 농사로 인해 인류의 생활은 점점 나아졌다. 아직 긴 후일담이 더 남았지만 지면상 생략한다. 


티베트의 설산처럼 막아선 신화의 산을 넘으려면 숨이 가빠도 질문을 접을 수는 없다. 두 가지는 꼭 물어야 한다. 왜 천신은 지상에서 온 소년에게 그토록 가혹한 과제를 부과했을까? 천신은 왜, 천상의 곡물종자가 지상으로 반출되는 것을 그렇게 꺼렸을까? 


인신혼 홍수신화에는 두 가지 문화적 변곡점이 반영되어 있다. 하나가 결혼제도의 변화라면 다른 하나는 생산양식의 변화다. 족내혼에서 족외혼으로의 변동, 수렵에서 농경으로의 전환이다. 소년이 짝이 없어 천상으로 올라갔다는 것은 씨족 외부로 신부를 구하러 갔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랑다루기’ 민속처럼 심한 시험을 겪은 것이다. 동시에 시험 과제가 경작이었던 까닭은 사위의 농경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농경이야말로 당대의 최신기술이었으니까. 최신기술의 유출을 꺼리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천신의 막내딸은 문익점처럼 곡물의 종자를 밀반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곡물기원담 속 사회 변곡점 


수렵에서 농경으로의 이행 -족외혼으로 결혼 제도 변화


그런데 또 하나의 변곡점이 있다. 티베트 고원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곡물기원신화는 아주 달라진다. 이전에 없던 원숭이와 관세음보살에 나찰녀까지 등장한다. 1388년에 샤카 쇠남걀첸이 쓴 <서장왕통기(西藏王統記)>의 민족기원신화를 요약하면 이렇다. 곡물기원담은 민족기원신화 안에 포함되어 있다.



티베트인들의 삶과 신화의 젖줄, 야루장부강


신이한 원숭이(神후) 한 마리가 구족계를 받으려고 티베트 설산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바위산의 나찰녀가 와서 유혹한다. 원숭이가 계율을 깰 수 없다며 거절하자 나찰녀는 하루에 만령(萬靈)을 상하게 하고 일천의 생명을 먹어치우겠다고 위협한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신후는 포탈라산의 관자재보살을 찾아 길을 구한다. 답은 간단했다. 부부가 되라! 둘이 부부가 된 뒤 육도(六道), 곧 지옥도·아귀도·축생도·아수라도·인간도·천상도의 정(情)이 태에 들어와 여섯 마리의 새끼 원숭이로 태어난다. 육도에서 왔으므로 여섯의 천성은 각각이었다. 


신후는 새끼 여섯을 얄룽 계곡의 새들이 모이는 삼림으로 보내 3년 동안 살게 했다. 3년 만에 갔더니 500마리로 늘어나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 비참한 상황이었다. 신후는 순식간에 포탈라산의 관자재보살을 찾아가 구원을 요청한다.


보살은 “네 후예들은 내가 돌볼 것이야”라고 하면서 수미산 틈새에서 청보리·콩·메밀·보리를 가져와 지상에 뿌렸다. 땅 위에는 곧 씨를 뿌리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는 향기로운 곡식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아버지 신후는 새끼들을 이끌고 그 땅에 이르러 곡식들을 먹으라고 한다. 그래서 땅의 이름이 쩨탕강뽀리산이 되었다. 


새끼 원숭이들은 곡식을 먹으면서 아주 만족해했다. 원숭이들은 곡식을 먹으면서 털이 점점 짧아지고 꼬리가 줄어들더니 말까지 하게 되었고, 마침내 사람이 된다. 그들은 향기로운 곡식을 먹으면서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고 살았다. 

일반적인 민족기원신화(시조신화)처럼 이 신화도 동물기원담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원숭이와 나찰녀의 결합으로 설역(雪域)의 민족, 곧 티베트인들이 비롯되었으니까. 그런데 불교의 외투를 걸치고 있어 간단치가 않다.


원숭이는 힌두신화의 원숭이 신 하누만을 염두에 둔다면 설역의 여러 민족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토템동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찰은 힌두신화의 락샤사이고, 불교에서는 악귀로 수용된 존재지만 바위산에 거주하는 존재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암석신앙과 결합된 티베트 샤머니즘, 다시 말해 뵌뽀의 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이들의 결합이 관자재보살의 기획 작품이라는 신화적 사실이다. 관자재보살은 누구인가? 관자재보살은 티베트 불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이다. 관자재보살은 포탈라산에 있고, 그의 현신인 달라이라마는 지상의 포탈라궁에 거주한다.


티베트인들에게 곡물이라는 천상의 선물을 주어 사람으로 만들고, 설산 아래 야루장부강 유역에 살게 해준 존재도 관자재보살이다. 따라서 티베트 사람들은 조상인 신후가 설산에서 수행했듯이 수행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이 불교신화의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티베트에는 두 가지 곡물기원신화가 있는 셈이다. 새의 말을 알아들어 대재난을 피한 지상의 유일한 소년이 온갖 고생 끝에 천상에서 훔쳐온 곡물 이야기가 하나라면 관자재보살의 뜻으로 결혼한 원숭이와 나찰녀의 자식들을 굶주림으로부터 구원하고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관자재보살이 수미산에서 가져온 곡물 이야기가 다른 하나다. 전자가 인간의 분투를 말하고 있다면 후자는 신의 은총을 말하고 있다.



신화적인 곡물인 칭커를 수확하는 티베트 사람들.


생각해 보니 그때 라싸의 뒷골목에서 놓친 것이 있었다. 칭커주를 마시면서 원숭이만 호출했지 새의 말을 알아듣는 소년은 불러내지 못했다. 그 소년을 찾아 다시 설산으로 가야겠다.

[출처] : 조현설 서울대학교 국문학교수 : <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경향신문




19. 뼈와 구슬 -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뼈, 동서양의 ‘신데렐라’들도 소원을 빌었다.


스님들 사리 모시는 까닭 - 사리, 뼈의 변형·신령한 구슬
신데렐라 설화의 원형 ‘섭한’  -섭한이 몰래 키우던 물고기
계모가 죽인 뒤 뼈 숨겨놓아 - “뼈에 빌어라” 하늘의 음성

동물의 뼈, 재생산·증식 의미 - 아시아권 ‘신화적 사유’ 비슷
살은 변하되 변하지 않는 뼈 -삶과 죽음 사이 존재하는 사물
이생에는 없는 보물 얻게 해



무산 스님 다비식 지난 30일 강원 고성군 건봉사에서 봉행된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의 다비식에 참석한 스님과 불자들이 무산 스님의 뼈를 수습하는 습골 절차를 앞두고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다. 무산 스님은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라는 열반송을 남기고 사리로 남았다. 연합뉴스



엊그제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의 다비식이 있었다. 문인들과 스스럼없이 지냈고 스스로 시인이기도 했던 그의 시 제목처럼 ‘아득한 성자’가 되었다.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은 하루살이 떼”가 되었다.


불의 신 아그니와 만나는 다비 의례는 사리를 남긴다. 사리는 신골(身骨), 뼈의 변형이다. 영주(靈珠)라고도 하니 신골은 신령한 구슬이다. 오현 스님도 사리가 되어 부도탑에 봉안될 것이다. 문득 신화적 화두가 떠올랐다. 왜 사리를 모시는가?


근래에는 범인들의 화장도 일반적이다. 화장 비율이 80%를 넘어섰다고 한다. 화장터에 가면 화장 후 뼈를 수습하는 습골, 가루로 만드는 분골 과정을 거친다. 분골된 뼈는 납골당으로 간다. 어떤 뼈들은 수목장 혹은 바다장의 이름으로 자연에 귀의한다. 장례의 형식이 어떠하든 우리는 뼈를 몹시 소중히 여긴다. 뼈에 대한 애착, 이것은 인류 보편의 감각이자 의식이다.


하루살이 같은 존재일 뿐인데 우리는 왜 이리도 귀하게 뼈를 모시는가? 

당나라 때 단성식(약 803~863)이 지은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섭한(葉限)’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문헌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스토리로 유명한 설화다.


이 이야기에는 계모의 학대를 받는 섭한이라는 소녀가 등장한다. 섭한은 험산에서 나무도 하고 심정(深井)에서 물도 길어야 했는데, 어느 날 붉은 지느러미에 금빛 눈을 가진 두 치쯤 되는 물고기 한 마리를 얻는다. 섭한은 그릇을 바꿔가며 몰래 물고기를 키우다가 너무 커지자 연못에서 키운다. 물고기는 섭한이 올 때만 나와 먹이를 받아먹었다.


계모가 알게 되었지만 물고기가 나오지 않자 섭한을 아주 먼 샘에 보낸 뒤 의붓딸의 옷을 입고 가서 물고기를 부른다. 물고기가 머리를 내밀자 칼로 찔러 죽인다. 물고기는 크기가 한 길이 넘었는데, 맛도 아주 좋았다. 계모는 물고기 뼈를 거름 밑에 숨긴다. 이 대목에서 바로 뼈가 등장한다. 왜 계모는 뼈를 버리지 않고 거름 아래 숨겼을까? 


섭한은 물고기가 보이지 않자 들판에 나가 통곡한다. 그때 머리를 풀어헤치고 해진 옷을 입은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와 말한다. “울지 말거라. 네 어머니가 물고기를 죽였단다. 뼈가 똥거름 밑에 있으니까 잘 추려 방에 숨겨 두어라. 그리고 원하는 게 있을 때 뼈한테 빌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을 게야.” 섭한이 말대로 해봤더니 금옥(金玉)이건 옷이건 먹을 것이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남루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 이야기 속에는 아무 단서가 없다. 하지만 다른 신데렐라 이야기들과 견주어보면 죽은 친어머니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대개 소나 요정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생모는 불쌍한 섭한한테 하늘의 음성, 곧 뼈의 비밀을 속삭였던 것이다. 하늘의 비밀이란 뼈가 새로운 것, 좋은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 뼈의 비밀은 재생산이고 증식이다.



삼월삼짇날 열리는 좡족의 가우절 축제.

따쟈는 이 축제에 가다가 다리 위에서 금신 한 짝을 물에 떨어뜨린다.



단성식은 이 이야기를 하인이던 이사원한테서 들었다고 한다. 이사원은 옹주(邕洲) 동중(洞中) 사람이라고 했는데, 오늘날 베트남 국경에 가까운 중국 땅이다. 이에 대해 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는 <인류 최고의 철학>(2001)에서 이 지역이 좡족(壯族) 거주지이므로 이 이야기가 좡족의 전승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좡족은 ‘따쟈와 따룬’이라는 민담을 구전하고 있는데, 바로 신데렐라 이야기다. 이름의 뜻대로 ‘고아와 막내’로 번역할 수도 있고, 외모를 따라 ‘예쁜이와 곰보’라고 옮길 수도 있겠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신데렐라보다 길고 복잡한 이야기인데, 문제는 ‘따쟈와 따룬’에는 물고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숲속에 사는 사악한 무녀한테는 곰보 딸이, 마을에 사는 한 부부한테는 예쁜 딸이 있었다. 하루는 무녀가 마을에 들어가 구걸하자 불쌍히 여긴 따쟈 모녀가 잘 돌봐주지만 무녀는 오히려 주문을 걸어 모친을 소로 변신시킨다. 그러고는 소뿔에 받힌 어머니가 계곡에 떨어져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무녀는 따쟈의 계모로 들어와 따쟈를 학대했고, 남편마저 주술로 살해한다. 계모가 시킨 힘든 일을 하느라 따쟈가 울고 있을 때 암소가 걱정하지 말라면서 삼 껍질을 먹고는 저물녘이면 희고 가는 삼실을 엉덩이에서 뽑아 주었다. 


계모는 따쟈를 때려 삼실의 비밀을 알게 된다. 계모는 부자가 될 생각으로 따룬을 시켜 소한테 억지로 한꺼번에 많은 삼 껍질을 먹인다. 기대와 달리 암소는 삼실이 아니라 물똥을 쌌고, 화가 난 계모는 소를 죽인다. 소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을 때 까마귀가 날아와 소의 뼈를 파초 뿌리 아래 묻으라고 한다.


마침 노래를 주고받으면서 짝을 찾는 마을 축제인 가우절이 열린다. 계모는 잔뜩 치장한 곰보 딸을 데리고 가면서 의붓딸한테는 어려운 일을 맡긴다. 따쟈가 울고 있을 때 다시 까마귀가 날아와 파초 밑에 옷도 있고 금신발도 있으니까 축제에 가라고 알려준다. 물론 따쟈는 이 축제에 가다가 다리 위에서 금신 한 짝을 잃어버리고 금신이 인연이 되어 지역 수장의 아들과 결혼한다.



‘해골의 사원’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 마리아 델라 콘체치오네 성당의 해골들.



‘따쟈와 따룬’의 뼈는 암소의 뼈고, 생모의 뼈다. 뼈만 생각하면 ‘섭한’이 좡족의 구전 민담을 기록한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오히려 물고기 뼈를 기준으로 보면 ‘섭한’은 베트남의 신데렐라 이야기 ‘카종과 할록’에 가깝다. 악한 할록은 카종이 키우던 물고기를 잡아 요리해서 먹어버린다.


그날 밤 카종의 꿈에 물고기가 나타나 뼈를 코코넛 껍질 속에 담아 네거리에 묻어달라고 한다. 카종은 물고기 뼈를 묻은 곳에서 금신 한 짝을 얻는다. ‘섭한’의 물고기 뼈처럼 ‘카종과 할록’의 물고기 뼈도 카종이 원하는 것을 준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식민지 관리에게 인도네시아 계통의 베트남 사람이 전해준 것이다. ‘섭한’ 이야기는 동남아시아 신데렐라에 더 다가서 있다.


소를 기준으로 삼으면 ‘따쟈와 따룬’은 먀오족(苗族)의 ‘오러와 샤오나’, 우리의 ‘콩쥐팥쥐’와 한 계열이다. 먀오족의 신데렐라 오러는 치료해준 물소의 도움으로, 혹은 죽은 어머니의 변신인 소의 도움으로 축제에 참가한다. 콩쥐도 죽은 생모의 변신체인 검은 암소 덕분에 옷과 신을 마련해 잔치에 참석한다.


일일이 다 거론하기 어렵지만 이라크·아프가니스탄·아르메니아 지역 신데렐라의 경우도 엄마인 암소가 살해당하자 뼈를 땅속에 묻은 뒤 거기서 원하는 것을 얻고 신발도 얻는다. 좡족의 ‘따쟈와 따룬’은 이들 신데렐라군에 오히려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수백편이나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다 읽을 수 없으니 이쯤에서 그림형제가 정리한 <재투성이 소녀>를 잠깐 만나봐야겠다. 이 이야기는 병든 엄마가 외동딸한데 유언을 남기고 떠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소녀는 매일 어머니의 무덤에 가서 운다.


어느 날 장에 가는 아버지가 딸들에게 무슨 선물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계모의 딸들은 아름다운 옷과 보석을 말했지만 재투성이 소녀는 ‘아버지 모자에 스치는 첫 번째 나뭇가지’라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개암나무 가지를 꺾어다 주었고, 소녀는 그것을 어머니 무덤가에 심는다. 소녀의 눈물이 나무에 떨어질 때마다 나무는 쑥쑥 자랐고, 소녀가 가서 기도할 때마다 나무는 소원을 들어준다. 물론 나무는 왕궁의 잔치에 갈 때 입을 아름다운 옷과 황금 슬리퍼도 준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재투성이 소녀>를 해석하면서 개암나무에 주목했다. 개암나무는, 켈트 문명 시대에는 떡갈나무와 더불어 신성한 나무였고,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나무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개암나무는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하는 천지를 이어주는 우주수(cosmic tree)였던 셈이다.


그러나 나는 나무보다 어머니의 무덤에 주목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무는 홀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무덤 곁에서 소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나무의 배후에는 무덤이 있다. 그리고 무덤에는 어머니의 뼈가 묻혀 있다. ‘따쟈와 따룬’이 파초 밑에 묻은 암소의 뼈와 다르지 않다. 소원성취의 에너지는 나무가 아니라 뼈에서 발산되었던 것이다. 


대체 뼈가 뭣이기에 이런 힘이 나올까? 화두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인류의 원시사유로 돌아가봐야 한다. 주경철 교수는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2005)에서 18세기 중엽 극지방의 라프족을 찾아갔던 덴마크 전도사의 말을 소개한 바 있다. 라프족 샤먼은 이렇게 말했다.

 “희생한 동물 뼈를 조심스레 모아 도로 맞추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희생을 받은 호라갈레스신이 동물의 생명을 되돌려 줍니다. 이전보다 더 강하게 부활시켜 줍니다.” 이런 생각은 ‘의례적 사냥’을 하는 원시사회에서 아주 보편적이었다.


곰 사냥을 하는 시베리아 지역의 한티·나나이·니브히·어웡키족 등도 곰을 잡은 뒤 곰의 뼈를 따로 모아 제사를 지낸다. 그래야 곰의 뼈에서 곰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은 곰을 자신들을 낳은 첫 어머니라고 믿는다. 곰의 뼈는 종족의 기원이다.

 

동물의 뼈에 대한 이런 믿음은 이원적 사유, 곧 신화적 사유의 결과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죽으면 뼈와 살로 분리된다. 살은 변하고 뼈는 변하지 않는다. 뼈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신화적 사유는 이렇게 간단치 않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짝이 있으면 삶과 죽음의 짝, 이승과 저승의 짝도 있다. 변하는 것이 죽은 것인가 하면 변하지 않는 것이 죽은 것이기도 하다. 변하는 것이 죽지 않는 것인가 하면 변하지 않는 것이 죽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뼈는 죽었지만 변하지 않는 것, 저승에 속하지만 이승에 존재하는 사물이다. 뼈는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의 중간에 걸쳐 있다. 겨울나무가 겨울과 봄, 생사의 경계에 있는 것처럼 뼈는 이 세계와 저 세계 경계에 존재한다. 


뼈를 통한 부활, 뼈가 지닌 증식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기 때문에 저 세계의 힘, 곧 여기 없는 보물을 저기서 캐낼 수 있는 것이다. 섭한이 방에 감춘 물고기의 뼈, 따쟈가 파초 밑에 묻은 암소의 뼈, 신데렐라가 개암나무를 심었던 어머니의 무덤이 지금 여기 있는 소녀들에게 없는 것들을 선물할 수 있었던 것은 뼈의 이중성, 뼈의 중개성에 대한 신화적 믿음 덕분이다.


제주 무속신화 ‘사만이본풀이’의 사만이가 사냥 나갔다가 발에 차인 해골을 집에 모시고 나서 부자가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조상을 잘 모셔야 발복한다는 효행 관념의 심층에 있는 것도 결국은 뼈에 대한 인류의 오래된 인식이다. 


한국 신데렐라 이야기 <콩쥐팥쥐>에는 감사(선비)와 결혼한 콩쥐를 시기한 팥쥐가 콩쥐를 연못에 빠뜨려 죽이는 후일담이 붙어 있다. 감사가 연못가에 핀 꽃이 아름다워 꺾어다 문에 꽂아 두었더니 팥쥐가 드나들 때마다 괴롭힌다. 화가 난 팥쥐는 꽃을 뽑아 아궁이에 넣어 태워버리는데, 이웃 노파가 불씨를 얻으러 왔다가 아궁이에 굴러다니는 구슬을 가지고 간다.


이 구슬이 콩쥐로 변신하고, 마침내 감사와 재회하게 된다. 이런 식의 변신 과정은 ‘따쟈와 따룬’에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콩쥐는 꽃으로, 구슬로 거듭된 변형의 과정을 거치지만 핵심은 구슬이 바로 콩쥐라는 것이다. 콩쥐는 아궁이에서 화장된 뒤 구슬이 되었다,


그렇다면 구슬은 콩쥐의 뼈이고, 뼈가 구슬인 셈이다. 콩쥐는, 아니 학대받던 신데렐라들은 뼈-구슬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었고, 스스로 뼈-구슬이 되어 소원을 성취했던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구슬을 여의주(如意珠)라고 한다. 여의주를 입에 문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상상력도 거기서 비롯되었다. 불교적 구슬의 상상력 아래 묻혀 있는 것이 심원한 뼈의 상상력이다. ‘뼈-구슬-사리’는 재생 혹은 부활의 소망을 품고 있는 신화적 상징물이다.


무산 스님은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라는 열반송을 남기고 사리로 남았다. 그분의 ‘뼈-사리’에서도 무엇인가가 증식될 것이다. 그것은 소원하는 자의 마음에 달렸다.

[출처] : 조현설 서울대학교 국문학교수 : <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경향신문



20. 헤드한팅괴 믄신, 그리고 야만

- 대만 고산족 풍요 기원 의식 ‘머리사냥’ 반일 저항 무기 되다

헤드헌팅은 원시문화의 일부 -사냥 성공 땐 ‘문신’도 부여
머리는 새로운 생명 증식시켜  -농경사회 열리며 ‘풍농’의 상징
대만 고산족 시디그족 전사들 - 항일봉기에 앞장서다 ‘전멸’- 그들의 저항은 생존의 몸부림 

고산족 머리사냥은 의례이자 -이웃 종족과 교환하는 행위
일제의 머리베기는 폭력이자 -더 많은 죽음 생산하는 ‘야만’


20세기까지 대만 고산족 남성들의 통과의례가 돼 온 머리사냥 문화의 심층에는 죽음을 통해 삶을 증식시키려는 은유적 사고가 숨어 있다. 이것이 개인의 무용을 뽐내고, 일본도의 성능을 자랑하고, 제국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한 폭력일 뿐이었던 일제의 머리사냥과 다른 점이다. 사진은 일제의 학살을 다룬 대만 영화 <시디그 발레> 중 일본 병사의 목을 베는 장면


1930년 10월27일 대만 난터우현 우서에서 반일봉기가 발생한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청으로부터 대만을 할양받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발이었다. 대만총독부는 한반도에서 했던 바와 다르지 않게 경찰과 군대를 파견하고, 토지조사·일본어교육·출초(出草) 금지와 같은 방법으로 대만 원주민들을 동화시키려고 했다. 통제와 탄압에 맞선 항일봉기의 한가운데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시디그족 족장 모나루다오(1882~1930)가 있었다. 


2011년 대만의 웨이더성(魏德聖) 감독이 연출한 영화 <시디그 발레(賽德克 巴萊·Seediq Bale)>는 바로 이 사건을 극화하고 있다. 영어로는 ‘무지개 전사들(Warriors of the Rainbow)’이라고 아름답게 번역되었지만 사실은 일제의 학살에 관한 이야기다.


이 슬프고도 장엄한 영화를 따라가다보면 두 가지 인상적 이미지와 만나게 된다. 출초, 곧 머리사냥(獵頭·Head hunting)과 문신(Tattoo)이 그것이다. 시디그족 성인들은 대개 얼굴 문신을 가지고 있고, 그 문신은 남성의 경우 머리사냥과 연결되어 있다. 먼저 머리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타얄족은 원래 문신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누군가 발에 문신을 했더니 보기에 아주 좋았다. 그래서 다시 얼굴에 문신을 해봤는데, 다들 아름답다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문신 풍속이 생겨났다. 얼굴에서 시작된 문신은 나중에는 얼굴 전체를 검게 하는 데까지 갔지만 나중에는 문신의 범위가 갈수록 축소되었다. 


남자들은 평지인(平地人)들의 머리를 베어 돌아오면 이마와 턱에 문신을 할 수 있었다. 머리사냥에 나설 때 어른들은 남자아이들 한 무리를 대동하고 가서 머리를 벤 뒤 아이들한테 머리카락 한 올씩을 준다. 아이들은 이렇게 배우면서 성장한다. 평지인들을 많이 사냥한 경우 한 건에 한 줄씩 가슴에 가로줄 문신을 한다.


머리사냥에서 돌아올 때 마을의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축하한다. 다음날에도 계속 노래하고 춤을 추는 가운데 머리를 아랍파오(머리를 걸기 위해 나무로 얽어 짜놓은 시렁)에 바친다.


부녀들은 좁쌀을 찧어 빚은 떡을 베어온 머리의 입에 넣어 먹인다. 그다음에 그 떡을 나눠 머리베기에 참가한 남자아이들에게 먹인다. 그 후 부녀들은 술을 빚고 남자들은 사냥에 나선다. 마을사람들은 잡아온 고기와 술을 함께 나눠 먹으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집단적 축제를 벌인다.



대만 고산족 시디그족의 족장 모나루다오의 동상.



이 구전 자료는 시디그족의 전승이 아니다. 시디그족과 인접해 살고 있는 아타얄족의 머리사냥과 문신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아름답다’는 문신에 대한 인식, 문신과 머리사냥의 관계, 머리사냥을 후대에 전수하는 방법, 사냥한 머리에 대한 의례와 마을 축제 등등이다. 아타얄족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시디그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시디그 발레>는 바로 이런 머리사냥 축제의 장면을 화면 가득 담아놓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장면은 ‘머리에 대한 의례’다. 왜 이들은 베어온 머리를 아랍파오에 걸고 좁쌀떡을 해서 먹이는가? 또 베어온 머리가 먼저 먹은 떡을 왜 나눠 먹는가? 이는 조상신에게 먼저 음식을 바치고, 조상신이 먹은 음식을 의례에 참여한 이들이 나누는 우리의 제사와 흡사하다. 이들은 베어온 머리를 단순한 전과(戰果)로 여기지 않고 신으로 숭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아타얄족 또는 시디그족의 의례와 인식은 우리를 머리사냥문화의 심연으로 이끈다.


중국 윈난성 란창강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와족, 필리핀의 이푸가오족 등은 대만의 고산족과 더불어 머리사냥문화를 오랫동안 고수해오던 종족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고(古)문화권, 다시 말해 원시적 관습을 20세기까지 지속해오던 문화권의 종족들로 부른다. 이들 가운데 와족의 신화는 대만 고산족의 머리사냥문화를 해석하는 데 흥미로운 실마리를 던져준다. 


와족의 원조(元祖) 부부는 처음에는 올챙이였다가 개구리가 되었고, 나중에는 괴물로 변해 동굴에 살면서 동물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람들이 사는 먼 마을에 들어가 사람을 잡아먹고는 두개골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 후 인간의 모습을 한 아이들을 많이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두개골을 숭배했고, 자손들에게 사람의 머리를 계속 바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 짤막한 신화가 ‘야만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야기의 심층에는 흥미로운 문화 코드가 숨어 있다. 올챙이와 개구리 그리고 괴물은 인간이 아니다. 이들 비인간과 인간의 경계에 원조 부부의 사냥 행위와 종교적 의례가 있다.


이들의 머리사냥과 식인(食人)은 괴물 부부에게 많은 아이들을 선물한다. 사람을 먹은 괴물이 인간을 낳았다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주술적 사유다. ‘개고기를 많이 먹으면 개를 닮는다’는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동시에 머리를 계속 바치고 모시라는 와족 조상 부부의 유언에는 머리사냥과 머리 숭배가 이들에게 다산을 약속한다는 사유도 함축되어 있다. 이는 내가 지난 회 ‘뼈와 구슬’(19회)에서 거론했던 뼈가 지닌 증식의 힘과 연결된다. 죽은 어머니의 변신인 소의 뼈가 신데렐라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었듯이 사냥에서 획득한 인간의 머리뼈도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런데 와족 신화를 좀 더 들여다보면 머리사냥과 숭배의례에는 문화 코드 하나가 더 숨어 있다.


옛날 하늘과 땅 사이가 아주 가까워서 사람들은 씨를 뿌려 양식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천신 메이지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한 사람을 죽여 그 머리로 신께 제사를 드리면 씨를 뿌릴 수 있을 거야”라고 했다. 어떤 사람이 듣고는 자신의 양자(노예)를 죽여 머리를 잘라 제사를 드렸다. 과연 하늘이 높이 올라가 씨를 뿌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신화는 머리베기와 농경의 시작을 연결짓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농경기원신화를 살펴보면 천지분리신화와 접합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천지개벽 초기에는 하늘과 땅이 아주 가까워 사람들이 나무나 사다리, 높은 산을 딛고 쉽게 하늘을 오갈 수 있었고, 인간과 신이 결혼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농사를 지으면서 드디어 하늘이 멀어져 인간은 더 이상 하늘에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곡물을 재배하면서 식량이 많아지자 낭비가 심해져서,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싸자 화가 난 신들이 하늘을 데리고 멀리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와족 신화에는 농경기원신화와 천지분리신화에 머리사냥이라는 신화소가 더 부가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천지분리와 파종의 인과관계가 전도되어 있다.


곡물을 재배해서 하늘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이 높이 올라가서 곡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모든 것이 천신 메이지의 기획이라고 말한다. 머리베기와 제사를 신의 뜻으로 긍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농경의 기원으로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전통복식에 얼굴 문신을 한 대만 고산족의 하나인 싸오족 청년들.



바로 이 지점에서 와족의 신화와 머리사냥의례는 대만 고산족의 머리사냥의례와 만난다. 왜 아타얄족은 좁쌀로 떡을 해서 잘라온 적의 머리에 먹이고 자신들도 나눠 먹었는가? 그것은 ‘머리베어모시기’가 농경의 풍요와 무관치 않다는 문화적 증표다. 와족 신화를 참조한다면 머리사냥은 일종의 풍농의례였다. 이는 또 하나의 고산족인 푸유마족이 좁쌀 파종 전의 머리사냥을 필수적 의례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이렇다. 원시사회가 동물을 의례적으로 사냥하고 뼈를 소중히 여겨 숭배하는 것은 뼈를 통해 해당 동물이 재생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뼈가 뼈를 낳고 뼈가 새로운 생명을 증식시킨다. 사람의 뼈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뼈, 곧 머리(해골)는 새로운 생명을 증식시킨다. 다산을 약속한다. 이 원시적 사유가 농경의 개시와 더불어 머리사냥과 풍농을 연결시키는 또 하나의 주술적 사유로 확장되어간 셈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머리사냥은 남성들의 통과의례가 되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적절한 답을 얻으려면 머리사냥이 왜 문신과 결합되어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오래전에 <문신의 역사>(2003)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다.


거기서 문신은 신체를 보호하거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고, 신분을 표시하거나 종족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고 정리한 바 있다. 고산족의 문신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성들의 문신은 기혼자의 표지이거나 베짜기 능력의 표현이다. 그런데 고산족 남성들의 경우 문신은 전사로서의 통과의례를 거친 자의 외적 표지로 작동한다. 어떤 이유로 문신이 전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었을까? 


나는 전쟁과 지배가 아니라 협력이 인류 진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의 목을 베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머리사냥은 문화적인 것이다. 헤드헌팅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해서 만들어낸 원시문화의 일부다. 거기에는 죽음을 통해 삶을 증식시키려는 은유적 사고가 숨어 있다.


머리사냥이 문화인 한 새로운 세대는 성장 과정에서 통과의례의 형식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머리베기는 두려운 행위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고산족은 머리사냥에 남자아이들을 참여시키고 획득한 머리카락을 수여한다. 


머리사냥에 성공한 신참자에게는 문신을 부여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문신이 전사의 상징이 되면 문신은 아름다움으로 인식되고 욕망의 대상이 된다. 문신문화는 이런 인지적 과정을 거쳐 머리사냥문화와 통합되었다고 생각된다. 


1937년 중일전쟁기의 난징에서, 식민통치기의 한반도에서, 태평양전쟁기의 동남아 밀림에서 일본군의 머리베기가 무수히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대만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본군의 머리베기와 고산족의 머리사냥은 같은가 다른가?


이는 원시사회의 의례적 동물 사냥과 국가사회의 동물 사냥의 차이(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에 실려 있는 ‘두 가지 사냥 두 가지 신화’를 읽어보기 바람)를 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물음이다.


고산족의 머리사냥은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적 행위이다.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이웃 종족과 머리를 교환하는 행위이다. 폭력이라고 해도 그것은 의례적 폭력이고 생존에 필요한 불가피한 폭력이다. 그러나 일제의 머리사냥은 개인의 무용을 뽐내고 일본도의 성능을 자랑하고 제국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한 폭력이다.


전자의 경우 죽음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만 후자의 경우 죽음은 더 많은 죽음을 생산할 뿐이다. 야만성은 고산족의 것이 아니라 제국 일본의 것이다. 독가스까지 살포하여 시디그족 전사를 전멸시킨 우서 반일투쟁을 재현하는 영화 <시디그 발레>는 저 일제의 야만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때 야만은 문명의 탈을 쓰고 출현했었다고! 


글을 쓰는 동안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장면을 보았다. 공동성명은 “이번 합의가 한반도 및 세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의 ‘볼품없는 전용기의 추락’과 같은 야만적인 발언을 뚫고 이뤄낸 역사적 진일보다.


이즈음에서 느닷없이, 1930년 10월, 시디그족의 머리베기와 일제 군경의 머리베기를 북핵과 미핵의 대립으로 환치시켜보고 싶어진다. 지나친 상상일까? 지금 우리에겐 저 야만의 시간을 넘어서려는 상상력이 절실한 때가 아닐는지?

[출처] : 조현설 서울대학교 국문학교수 : <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