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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성의 이씨에 대한 2부~

낙엽군자 2019. 8. 2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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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성의 이씨에 대한 2부~
 글쓴이 : 향수
                                  
 
원성이씨(遠姓李氏) 2부

<이중성 대개벽경>*성도 물어 여쭈기를, 경석이 장차 정가로 행세하나이까.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정 씨를 가까이 말고 차 씨를 가까이 말라.”*경석이 장차 차 씨와 정 씨의 두 성을 가지고  행동하심.
-一日 在銅谷 臥房中 見月谷入來 欠以視之 不爲分明者 汝何鄭哥乎 弟子 問曰 京石 將以鄭哥 行世乎 曰 汝之徒 勿近鄭 勿近車-

정가는 정씨와 차씨 성 두개를 가진 바 있는 차경석 성도를 말합니다. 스승인 정가-차성도에게 글을 받아 책을 낸 이상호 이정립 형제가 정가를 철저히 배신해 싸운 것 역시 이 공사 내용에 나옵니다.

遠姓 이씨가 내사람이 되노라



<이중성 대개벽경>*기유년(1909) 봄에 구릿골에서, 천지 대신문을 여시고 천지 대공사를 집행하시니라. 법을 베푸시고 법을 집행하사, 칙명을 내리어 신명을 부리시니라. 말씀하시되, “공우야, 나는 오늘 말을 타고 태인 살포정으로 가리니, 너는 먼저 백암리(경학의 집)에 가서 경학과 함께 오라.” 평일의 행차는 도보로 하시고 말을 타지 않으시니라. 인암(박공우)이 명을 받고 시은(時隱:김경학)과 동행하여 살포정에 이르니, 상제님께서 바깥 대청에 근심스레 홀로 앉으사 한 번도 돌아보지 않으시니라. 두 사람이 이를 이상히 여겨 멀찍이에서 뜰 안을 바라다보니, 세 사람이 있어 서로 상투를 잡고 다투거늘, 자세히 보니 마부가 역시 그 가운데 있느니라.

-己酉春 在銅谷 開天地大神門 行天地大公事 設法 行法 下勅命神 曰 公又 我 今日 乘馬 往泰仁殺捕亭 汝 先往白岩 同道京學 來 平日行次 徒步 不乘馬 仁菴 命 同行市隱 至殺捕亭 外廳 悄然獨坐 一無所顧 二人 異之 望見內庭 有三人者 相執髻以爭之 細觀 馬夫 亦在其中-




<이중성 대개벽경>*시은(市隱:김경학)이 마부가 자기 집안의 고용인이므로, 곧바로 들어가 한마디 일갈하여 외쳐 싸움을 제지하니, 마부는 물러나 개천가에 앉고, 한 사람은 장사치라 물건을 짊어지고, 대로를 향해 분망히 길을 가며 수차 뒤돌아보고, 한 사람은 뜰 안을 횡행하며 방성대곡하여 무수히 패언(욕, 헛소리)을 하니, 누구를 향해 그러는지 알지 못하니라. 잠시 시간이 지나사 상제님께서 뜰 안으로 들어오시더니, 그 사람을 위로하시고 다가오시어 손을 끌어 당기사 주모를 청하여 먼저 한 잔을 드시고, 다시 한잔을 따라 그 사람을 주사 말씀하시되, “울음을 그치고 술을 들라.” 그 사람이 술을 마시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억지로 참고 권하는 술을 마시고 입속으로 몇 마디 중얼거리듯이 하며 눈물을 머금고 술을 마시니라.

-市隱 御者 以自家之雇故 直入一喝 以制止 馬夫 退坐川邊 一人 商賈 負荷 向大路 忙忙以行 數以顧見 一人 橫行內庭 放聲大哭 無數悖言 不知向誰爲之 過少焉 入內庭 慰其人 携手以來 請主母 先飮一杯 更酌一杯 賜其人 曰 止哭飮酒 厥 不肯飮 遂强忍以飮之 口中 如噡語(말씀 언 변;중얼거릴 첨) 飮泣爲之-




<이중성 대개벽경>*인암이 바라다봄에 그 사람의 행동이 무례한 듯 하여 이를 꾸짖으려 하니, 상제님께서 위엄 있는 눈짓으로 이를 만류함으로써 이를 경계하시니라. 그 사람이 그 뜻을 살펴 알아차리고 두 사람을 향해 통곡하고 패설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이 하는 일을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노라.” 울음을 멈추지 못하거늘 상제님께서 그치기를 명하시니라. 공우와 경학 두 사람이 그 일을 괴이히 여겨 마부에게 나아가 서로 싸우게 된 실마리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뜰 안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아래에 화로가 있어 흡연할 요량으로 그곳에 갔더니, 두 사람이 먼저 와 있으므로 3인이 자리를 마주하여 잠깐 통성명함에 이르더니, 부지불각 중에 3인이 일순간에 서로 상투를 잡고 힐난하니, 싸울만한 실마리가 전혀 없었노라.”

-仁菴所見 厥之行動 若無禮 欲責之 以威目視之 戒之 厥 察得其意 向二人而痛哭悖說曰 汝徒之爲事 我皆知之 泣以 不止 命止之 二人 怪其事 就御者 問相爭之端 曰 內庭 有桃樹一株 其下 有火爐 吸煙之故 往之 二人 先來 三人 對坐 纔及通姓 不知不覺 三人 以一時以相執髻詰難 無所爭端-




<이중성 대개벽경>*두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되, 이는 필시 신명이 시비하는 것이라 하여 성을 물으니 마부가 대답하기를, 자기의 성씨는 이(李)요, 행상인의 성씨 역시 이(李)요, 뜰에서 통곡하는 자의 성씨는 정(鄭)이라 이르니라. 성도 물어 여쭈기를, “금번 공사에 3인이 싸울만한 실마리가 없거늘, 서로 상투를 잡아 부지불각 중에 다툼이 되니 어찌된 연고이나이까.” 말씀하시되, “앞으로 이 씨와 정 씨의 다툼이 닥쳐오나니, 오직 나 혼자만이 이 다툼을 제지할 수 있노라.” “오늘의 다툼이 두 명의 이 씨와 한 명의 정씨가 싸우는 것이니 어찌된 연고이나이까.” 말씀하시되, “멀리 있는 이 씨 성이 내 사람이 되노라.” 시은(市隱:김경학)이 이로부터 항상 자긍하여 이르기를, “천하에 장차 이씨, 정씨의 난이 있어 내가 아니면 제지하는 것이 불가하리니, 그렇지 않은즉 하필이면 나를 불러 다툼을 제지했으리오.” 하며 항상 입에 달고 자부하며 다니더라.
 하루는 성도 곁에서 모심이러니 어떤 사람이 오늘 할 일을 다음날로 미루거늘 말씀하시되, “오늘 일은 오늘 하고 내일 일은 내일 하라.”

-二人 以爲 此 必是神明之是非 問姓 馬夫曰 自家之姓 李 行商之姓 亦李 在庭痛哭者 姓 鄭云 弟子 問曰 今次公事 三人 無爭端 相執髻 不覺爲爭 何以乎 曰 來頭 有李鄭之爭 制爭之道 我惟獨能 弟子 問曰 今日之爭 二李一鄭 何以乎 曰 遠姓之李 爲我人 市隱 自此 居常 自矜曰 天下 將有李鄭之亂 不以我 不可以制之 不然則何必招我以制爭 恒言 自負 一日 弟子 侍之 或 今日之事 推明日 曰 今日之事 今日爲之 明日之事 明日爲之-


이 공사는 이상호 이정립 형제가 차경석 성도를 배신해 치열하게 대드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공사뜰안에서 울며 대성통곡하는 정가는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만일 기독교 특히 순복음 중앙교회로 비유해 설명하면 서울 여의도 순복음중앙교회 몽땅 팔아서 만주로 도망간게 이상호 이정립이고 순복음에서 운영하는 국민일보 뉴스투데이 팔아 만주로 도망갔다는 게 바로 청음 이상호 남주 이정립인데 비유라서 그렇지 만일 실제 이런 일을 조용기 목사가 차경석 성도처럼 당했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게다가 깡패동원해 신도들 패서 사경에 이르게 하고 일제치하에 일제 경무국에 고발해 산으로 계곡으로 도망 다니게 하고.....또 다른 이 씨인 이달호까지 나서서 차경석 성도를 힘들게 괴롭혔지요?.... 차경석 성도는 실제로 그 이상으로 호되게 당했거든요. 그래서 그 공사에서 그 역을 맡은 인물이 신명계에서 우는 것을 보여준 거 같습니다. 선화동 말고삐를 잡은 마부 이가와 쫓겨나간 채 행랑 장사하는 원성이가로 상징되는 이가의 등장은 그 구도가 의미심장해 보여 생각할 면이 많은 듯 합니다. 이 모든 싸움은 시운벌가벌가 기측불원의 가사내용에 연관되어있습니다. 들어설 자리에 아직 결실 말복도수가 아닌 사람이 말복도수로 착각해 벌어지는 사단입니다. 그리하여 동학가사는 이는 도시사람이요 부재어근이라 결론내고 맙니다. 결론은 다음 성구 중에 들어있습니다.

<동곡비서>*하루는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앞으로 천하에 수기가 고갈될 참이니 수기를 돌려야 하리라.” 하시고, 그 뒷산 피난동 안씨 재실에 가사 그집 앞 동쪽 우물을 댓가지로 한번 저으시고 가라사대, “음양이 고르지 못하니 무슨 연고가 있으니, 재실에 가서 물어보라.” 안 내성이 명을 받고 재실에 가서 사연을 물으니, 재실직이는 사흘 전에 죽고 그의 처만 있거늘 돌아와서 사유를 아뢰니 또 가라사대, “다시 행낭 채에 가서 보라. 딴 기운이 떠서 있다.”

<동곡비서>*내성이 그 행낭 방에 가서 보니 행상하는 남녀 두 사람이 들어있거늘 돌아와서 사실을 아뢰니, 선생이 이에 재실 마루 위에 오르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서천(西天)을 바라보고 “만수!”를 고창케 하시고 가라사대, “이 가운데 동학가사를 가진 자가 있으니 가져오라.” 하시니, 과연 한 사람이 가사를 내어 올리니, 선생이 그 책 중간을 펴시고 한 귀절을 읽으시니, ‘시운 벌가벌가(詩云 伐柯伐柯)여 기측불원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은 어길 바 없건마는 이는 도시 사람이요, 부재어근이라. 목전지사 쉽게 알고 심량 없이 하다가서 말래지사 같쟎으면 그 아니 한일런가.’ *모두 사람 잘못 써서 비롯된 문제이므로 바로 사람 제대로 들어서는 문제이지(도시사람) 사람 빼놓고 그 어느 가까이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지마라(기측불원)

<동곡비서>*처음에는 가는 소리로 한번 읽으시니, 대낮에 문득 뇌성이 대발하거늘, 다시 큰소리로 읽으시니 뇌성이 대포소리같이 일어나서 천지를 진동하니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지라, 또 지진이 일어나서 천지를 진동하니, 모든 사람이 정신을 잃고 엎어지거늘 선생이 안 내성을 명하여 각기 물을 먹이니 모두 일어나는지라.*<동곡비서>

<대순전경 3판>*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천하에 수기(水氣)가 말랐으니 수기를 돌리리라 하시고 뒷산 피난동 안씨 재실(齋室)에 가사, 그 앞 우물을 대가지로 한번 저으시고 가라사대, 음양이 고르지 못하니 재실에 가서 연고를 물어오라. 내성이 대답하고 들어가서 물으니, 사흘 전에 재직(齋直)이는 죽고 그 아내만 있거늘, 돌아와서 아뢴대 가라사대, 다시 행랑(行廊)에 가보라, 딴 기운이 고이고 있도다.

<대순전경 3판>*내성이 행랑에 들어가 보니 봇짐장수 남녀 두 사람이 들어있거늘, 돌아와서 아뢴대 이에 재실 대청(大廳)에 오르사 여러사람들로 하여금 서쪽하늘을 바라보고 만수(萬修)를 크게 부르게 하시며 가라사대, 이 가운데 수운가사(水雲歌詞)를 가진 자가 있으니 가져오라. 과연 한 사람이 가사를 내어 올리고 물러가거늘, 그 책 중간을 펴 드시고 한 절을 읽으시니 하였으되,

<대순전경 3판>*「시운(時運) 벌가벌가(伐柯伐柯)여 기측불원(基則不遠)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을 어길 바 없지마는 이는 도시(都是) 사람이요, 부재어근(不在於近)이라. 목전지사(目前之事) 쉽게 알고 심량(深量)없이 하다가서, 말래지사(末來之事) 같잖으면 그 아니 내 한(恨)인가.」라 하니라. 처음에 가는 소리로 한번 읽으시니 맑은 날에 문득 뇌성(雷聲)이 일어나거늘, 다시 크게 읽으시니 뇌성이 대포소리와 같이 일어나서 천지진동하며, 또 지진이 일어나서 여러 사람이 정신을 잃고 엎드러지거늘 내성을 명하사 각기 일으키니라.
                                         


내성을 명해 14-05-29 15:46
 
원성이씨(遠姓李氏)와 관련 안씨재실에서  "모든 사람이 정신을 잃고 엎어지거늘 선생이 안 내성을 명하여 각기 물을 먹이니 모두 일어나는지라.*<동곡비서> "뇌성이 대포소리와 같이 일어나서 천지진동하며, 또 지진이 일어나서 여러 사람이 정신을 잃고 엎드러지거늘 내성을 명하사 각기 일으키니라."<대순전경>하는 것만 보아도 도안 세살림이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시간의벽 14-05-29 18:06
 
공사로 보면 공사 아닌것이 없고 퍼즐을 맞추듯 꿰어가지만 넓은 바탕으로 좁게 들어가는 관문으로 생각해보면
뭔가 심오한 이치가 숨겨진것이 있는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아롱 새겨봄니다
소녀시대 14-05-29 18:39
 
이 공사는 이상호 이정립 형제가 차경석 성도를 배신해 치열하게 대드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공사뜰안에서 울며 대성통곡하는 정가는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만일 기독교 특히 순복음 중앙교회로 비유해 설명하면 서울 여의도 순복음중앙교회 몽땅 팔아서 만주로 도망간게 이상호 이정립이고 순복음에서 운영하는 국민일보 뉴스투데이 팔아 만주로 도망갔다는 게 바로 청음 이상호 남주 이정립인데 비유라서 그렇지 만일 실제 이런 일을 조용기 목사가 차경석 성도처럼 당했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게다가 깡패동원해 신도들 패서 사경에 이르게 하고 일제치하에 일제 경무국에 고발해 산으로 계곡으로 도망 다니게 하고.....또 다른 이 씨인 이달호까지 나서서 차경석 성도를 힘들게 괴롭혔지요?.... 차경석 성도는 실제로 그 이상으로 호되게 당했거든요.
소녀시대 14-05-29 18:40
 
그래서 그 공사에서 그 역을 맡은 인물이 신명계에서 우는 것을 보여준 거 같습니다. 선화동 말고삐를 잡은 마부 이가와 쫓겨나간 채 행랑 장사하는 원성이가로 상징되는 이가의 등장은 그 구도가 의미심장해 보여 생각할 면이 많은 듯 합니다. 이 모든 싸움은 시운벌가벌가 기측불원의 가사내용에 연관되어있습니다. 들어설 자리에 아직 결실 말복도수가 아닌 사람이 말복도수로 착각해 벌어지는 사단입니다. 그리하여 동학가사는 이는 도시사람이요 부재어근이라 결론내고 맙니다.
거울 14-05-29 20:44
 
많은 내용을 비교 해설해주시니 그동안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것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진리를 탐구함에 있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됨을 절실히 느낍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공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칠현금 14-05-29 20:49
 
遠姓에서 遠은 멀다는 일반적인 뜻으로 보통 쓰이지만
선조(先祖)를 의미하는 뜻도 있습니다.

천지개벽경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원래의 상제님 말씀의 음가를  알 수는 없지만
원성( 遠姓)의 의미는 선조의 성씨라는 의미가 되므로
선조의 성씨가 이씨인 것이 원성 이씨가 됩니다.

천지개벽경에서 전주이씨는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칠현금 14-05-29 22:19
 
자못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하여 더 보충하자면,

연안차씨 차경석과 연안이씨 이상호 이정립의 상극적 갈등은
바로 원성 이씨의 출현을 위한 극생(克生)의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씨와 정씨의 분쟁에서 "원성 이씨가 내 사람이 된다"는 문맥의 전후관계 맥락이 이러한 관점에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관람자 14-05-30 06:16
 
3번을 읽어 본 후 고개를 끄떡입니다. 향수님글 칠현금님 학고재글 그리고 향수님글에 칠현금님 댓글보충
읽으니 많이 와닿습니다  목욕탕에서 때미는 기분입니다
싸운상대는? 14-05-30 09:53
 
이상의 내용으로 싸운 과정을 추정하면 시은의 마부 이씨(이상호이정립역)가 정씨(차경석 성도 역)에게 시비를 걸어 싸우고 다시 행상하러 대로로 나가며 뒤를 여러번 돌아본 원성이가의 대역에게 시비를 걸어 싸움을 한 거로 볼 수 있고 행상인 이씨와 정씨와는 아무 다툼이 없는 거 같습니다. 싸운 상대가 저절로 드러나는군요
향수 14-05-30 10:10
 
칠현금님의 정심하고 박학 다식한 논고에 깊은 감사 드립니다. 칠현금님이 누구신지 전혀 모르고 잇읍니다. 밀알님들에게 모습을 보여주시길 부탁드려 봅니다.~~
퍼온글 14-05-30 11:33
 
http://blog.naver.com/giha2000/150166135306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1) 이중성李重盛의 생애와 신앙배경

 ① 20대 초반의 독립운동가

이중성은 20세의 젊은 나이에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1897년생이니 그의 나이 20세면 보천교가 24방주(1916년) 조직을 이미 가동했고 60방주(1919년) 조직으로 확대개편 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하던 때다. 그 때 그는 독립운동에 몰두해 있었다. 그러므로 독립운동 자금의 원천이었던 보천교에 대해서 그가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가 보천교에 입교했을 때는 이미 차경석 성도가 소위 ‘무진설법’으로 믿음의 대상을 변경하여 순수한 상제님 신앙에서 이탈해 있던 때다. 주된 이유는 차경석 성도가 무진년(1928년)에 이르러 아내 이씨로부터 ‘영안을 통하여 보니 상제님의 자리에 삼황오제신이 들어서고 상제님께서 풀대님에 삿갓을 쓰고 보좌를 떠나시더라.’는 말과 ‘삼황오제신은 곧 경석의 아버지 차치구’라는 말을 듣고 혹하여 차치구를 신앙 대상으로 받들고 교리도 유교식으로 바꾸었던 것이다.(『도전』 6:90:3 각주) 후일 보천교가 거의 망하게 되자 차경석 성도는 당시 보천교 신도들에게 “그대들은 나한테 속았고, 나는 강증산에게 속았다.”는 말을 할 정도로까지 낙담하였다. 무진년 당시의 이런 보천교 분위기에 이중성은 아마 혼란스러웠을 거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해서 『천지개벽경』을 쓰게 되었는가. 저 그의 생애부터 살펴보자.

 
이중성은 1897년 4월 29일(음력) 경상도 동래군 기장면 동부리에서 부친 이치삼과 李致三과 모친 밀양 박씨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의 본관은 합천(陜川) 이씨였는데 후일 자신에게 종통을 끌어 붙이기 위해 전주 이씨가 아닌 ‘원성(遠姓)의 이씨’라는 말로 조작하게 된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뛰어나고 총명하여 고향 마을에서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또 일본어를 무척 잘 하였는데 14세에 면장面長의 통역을 할 정도였으며, 그 일본인 면장의 추천으로 역시 일본인이었던 경남도지사의 통역까지 지냈다.

 18세 되던 1914년 10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한 적도 있으며 20세인 1916년부터는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주 임무는 독립운동에 소요되는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었다.바로 이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보천교와 접촉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보천교는 당시 독립운동 자금의 상당부분을 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치하였기 때문에 비밀리에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헌성자의 명단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독립운동에서 차지하는 보천교의 역할이 현재 역사적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진실마저 사라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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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이 보천교에 입교했을 당시에 보천교는 전환기에 처해있었다. 무진(1928)년 (음력) 정월 3일에 차경석 성도는 상제님 신앙에서 이탈하여 보천교를 유교식으로 변경하였고, 다음해인 기사(1929)년 (음력) 3월 15일 거행 예정이었던 정읍에 새로 지은 보천교의 성전聖殿인 십일전十一殿의 봉안식마저 정읍경찰서장에 의해서 두 번씩이나 연기당했다가 결국 하지 못했다. 경찰서장이 말하는 불허 이유가 “보천교 탈퇴자가 이 기회를 이용하여 행동을 개시하니, 만약 그 날에 거행하면 큰 싸움이 날 것이요...”라 했으니 그 당시 보천교의 내분이 심각하여 탈퇴자가 상당히 많았음을 알 수가 있다. 이중성도 그 탈퇴자들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중성이 보천교에 입교했을 때는 이미 보천교가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을 때였다. 상제님께서 수석성도인 김형렬 성도에게 하신 “정읍이 대창大昌하되 잠농지운蠶農之運이라. 누에는 집만 지으면 죽나니 집만 끝이 나면 죽으리라.”는 말씀 그대로 정읍에서 크게 부흥했던 차경석 성도의 보천교의 운명이 보천교의 집인 십일전의 완공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보천교 쇠퇴의 가장 큰 이유는 상제님을 미든 신앙에서 이탈한 것이다. 이후 보천교는 예전의 세력을 다시는 만회하지 못하고 병자(1936)년에 차경석 성도가 사망함으로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보천교를 탈퇴한 이중성은 정읍 비룡촌飛龍村에 거처를 정하게 된다. 이중성이 보천교를 탈퇴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보천교에서 남긴 역사자료인 『보천교연혁사(상),(하)』에서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박문기 씨의 수집자료에 의하면 “이중성이 주장한 것은 민족자결이었고 교주(차경석 성도)가 주장한 것은 (일본과의) 대동단결이었다.”는 것이다. 이중성은 독립운동가였으니 당연히 조선의 자주독립을 원했을 것이다. 조선 사람의 합쳐진 힘으로 조선의 독립을 회복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러나 차경석 성도는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100% 다 참여치는 못했으나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세계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이 모든 시대상황이 다 상제님의 천지공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의 과정임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차경석 성도는 상제님께서 하신 “내가 이제 조선의 국운을 거두어 잠시 일본에 맡기려 하노니...”(『도전』 5:125:2)라는 말씀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천지공사의 후반기인 비교적 늦은 정미(1907)년에 입도했기 때문에 직접 듣지 못했다면 동료 성도들로부터 전해 들었을 것이다. 상제님의 천지공사가 그렇게 되어있었던 것이다. 상제님께서 조선을 일본에 잠시 맡기셨기 때문에 차경석 성도의 입장에서는 일본과의 대동단결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성이씨 정체 14-05-31 10:24
 
원성이씨 문제는 이중성 선생이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중성 선생은 당시 보천교에 입교하면서 보천교가 마치 지금의 증산도처럼 혼란상에 빠지고 하자 도중에 발을 뺍니다. 이중성 선생은 이상호씨가 차경석, 김형렬 두 성도로부터 구술을 받아 펴낸 증산천사공사기를 알고 있었으며 이상호 이정립이 차교주를 배신하고 대순전경을 출간하여 동화교를 창교하여 2인 추수자로 자임하던 즈음 천지개벽경(대개벽경) 출간을 위한 사료채취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중성 선생은 동방칠성에 대한 자신의 기대는 제외하고라도 원성이씨는 없던 이야기는 아니라 보여지며 다만 상제님께서 전주이씨는 아니라 확실히 하였기에 합천이씨인 자기가 원성이씨가 아니겠는가 하는 일말의 기대감은 가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차경석 성도도 이러한 전말은 당연히 알았기에 자신이 이끈 보천교가 의도대로 풀리지 않자 나는 누구에게 속고 너희는 나에게 속았다는 유명한 말을 전하며 유교로의 신로변경을 하며 처인 이씨를 아마도 원성이씨로 해석해 너무도 쉽게 처의 말대로 따라 보천교를 운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의 원 아무개 수호사가 무당딸의 영끼를 그대로 받아들여 헛소리하는 것과 같은 것이 소위 알량한 지식의 한계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그 대표적인 가르침이 태모님의 무식도통이라야 하지 유식한 것들은 늙은 당나귀같아 아무 쓸모없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멀 원자가 대부분 멀 원으로만 알지만 두번째로는 선조라는 뜻이 있어 "원성이씨=선조의 성씨가 이씨"가 됩니다. 이 야기는 지금은 이씨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이야기 다 된 겁니다.
참고자료 14-06-02 08:15
 
<이중성 대개벽경>*성도 물어 여쭈기를, “『동토산림고결』에 고구려와 신라가 통합된 후 천여 년 만에 세 명의 큰 장수가 나와서, 세 명 장수 역시 몸을 보존하지 못하고, 최 씨가 일을 벌려 원성 이 씨 성이 마침내 나라를 되찾는다 하옵니다.” 말씀하시기를, “원성 이 씨 성이 마침내 나라를 되찾느니라.” 제자가 다시 여쭈기를, “원성 이 씨 성이 전주 이 씨가 아니옵니까?” 말씀하시기를, “전주 이 씨가 아니니라. 제자가 여쭈기를, 그를 가히 상봉할 수 있나이까?” 말씀하시기를, “내 신하인 이 씨니라.”(*배, 윤, 조 씨의 등장을 말씀하시고 이 도삼을 배 도삼으로 부르심)

-弟子 問曰 東土山林古訣 麗羅統合之後一千餘年 三大將 出 三大將 亦不保身 山隹 用事 遠姓之李 終乃復邦也 曰 遠姓之李 終乃復邦也 問曰 遠姓之李 非全州李乎 曰 非全州之李也 問曰 厥 可逢乎 曰 我臣之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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