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지구공동설과 히틀러-브릴여인 마리아 오르시치(Die Vril-Dame, Maria Orsic, 1895-1945?) 1,2부

낙엽군자 2019. 7. 20. 23:42










브릴여인 마리아 오르시치(Die Vril-Dame, Maria Orsic, 1895-1945?) 1부 오컬트 조직

2019. 7. 11. 18:52

복사 http://kimkyungho5.blog.me/221583297017

번역하기 전용뷰어 보기


The Vril Woman Maria Orsic

마리아 오르시치는 신비한 여성이다. 그에 관한 연구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알려지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는 초인간의 존재로서 UFO 를 제조하는데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람이다. 그리고 알데바란으로 VRIL-7 ODIN 을 타고 우주여행에 나선 것이 1945년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그의 이야기는 전해오는 것이 없다. 여기에 짧은

 

 

브릴여인 마리아 오르시치 (Die Vril-Dame, Maria Orsic, 1895-1945?)



 

 

중세의 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5-1274)신학의 총체 (Summa theologica) 라는 저작을 남겼다. 그 책의 서문에서 그는 자기가 다룰 테마들을 열거하였다. 1) , 2) 인간, 3) 신인, 4) 자연, 5) 종말 등의 다섯 개의 분야에 관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하였다. 거기에서 신인은 인간인데 신의 속성을 타고난 존재를 의미하였다. 그 이야기는 곧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신인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좀 더 넓은 의미로 그의 신인(

 

神人

 

)”이라는 개념을 이해한다고 하면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의 삶이 인간의 경지를 초월하여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이 역시 신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과거에 많이 있었다. 하나님이 들어 올리셨다고 하는 에녹, 멜키세덱, 엘리야, 모세 등이 다 신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신과 가장 가깝게 있었고 또 신과 의사소통이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개념으로 브릴여인 마리아 오르시치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한다. 우선 브릴(VRIL)이라는 단어는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1871년 영국의 빅토리아여왕 시대에 불워-릿튼 (Edward Bulwer-Lytton, 1803-1873)이라는 대 문호가 있었다. 그는 브릴 미래 인종의 권능 (Vril The Power of the Coming Race)”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당대에 베스트셀러였다. 거기에는 지하의 세계에 오래 전부터 지상에서 보다는 더 발전된 문명의 세계가 있는데 거기에서는 브릴(Vril) 이라는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브릴이란 우주의 태초에 생겨난 중력파와 함께 한 우주의 근본에너지로서 인간의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각종의 교통수단을 이 브릴 에너지로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서술한 공상과학소설이다. 우주의 근본 에너지를 우리 몸안으로 들어오게 한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를 몸안에 받아드리면 새로 지음받은 존재이다라고 하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가 된다. 마리아 오르시치는 바로 이러한 브릴에너지를 몸안에 받아드린 여인으로서 주변에 같은 체험을 가진 여인들을 모아서 전독일 형이상학협회라는 단체를 구성하였다. 여기에는 약 60여명의 여인들이 회원이었는데 그 중에는 다섯명의 여인들이 핵심임원이었다. 마리아, 트라우테, 지그룬, 구드룬, 하이케 등의 다섯 명은 20세기의 역사에서 브릴여인으로 남았다. 그들에 관한 신비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여기에서는 마리아 오르시치(마리아) 에 관하여

깨달음디자이너->여성은 남성보다 심령지수가 높다.

몸은 3차원이요 의식이 자리잡은 곳은 4차원이다.

그러나 모든 여성이 4차원에 연관되지만 심령적으로 깨어있는 것은아니다.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훈련되어야 깨어난다.

물론 남성도 훈련되면 의식의 진동수가 높아지고 더 높은 영역에 깨어난다.

그것은 여성은 정신 또는 정확히 그 내부 의식이 4차원 진동에 머물러 있고,

옛날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유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4차원이지만, 한을 품으면 저진동 아스트랄계 하부에 놓이는 악녀가 되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대부분 여성이 심령가가 많다. 다른말로 초지각이 발현이 많다.

그러나 남성도 극소수 4차원적인 의식을 가졌지만,

지구상에 대부분의 남성은 3차원적인 의식에 진동수에 맞추어져있어, 생물학적 특성과 정신수준이

거칠고 야만적이다. 



야기를 하려고 한다. 마리아는 18951031일 크로아티아의 챠그렙(Zagreb)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데잔 오르시치(Dejan Orsic)는 고급공무원으로서 챠그렙과 비엔나를 자주 왕래하면서 공무원의 업무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어머니 말레나 오르시치(Malena Orsic)는 당대에 활약했던 발레리나였는데 비엔나에서 유명하였다. 말레나는 아들을 원하였다가 딸을 얻어서 다소 실망하였다고 했는데 남편인 데잔이 아들보다도 더 귀한 딸자식인데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위로하였다고 한다. 사실 마리아는 평생 남성과 여성을 아우르는 방대한 차원의 인생을 살았는데 그것을 아버지는 미리 예견하였던 것 같다. 마리아는 매우 일찍 말을 할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의사가 그의 건강을 조사해 본 이후에 이 아이는 머리가 매우 영리하여서 잘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나중에 학교에 다닐 때에 교육시킨다고 하지 말고 당장에 교육문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어머니 말레나의 일기장에 기록된 내용이다.



[챠그렙의 스테판돔 사원]

마리아가 다섯 살 때의 일이라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챠그렙의 스테판 사원엘 가 본 일이 있는데 그 웅장한 건물과 내부의 화려한 장식에 도취되어서 그 장소를 떠나지 않고 샅샅이 둘러 보고는 다음날에도 또 그 사원엘 가자고 아버지에게 졸라서 아버지는 공무로 바쁘니 어머니와 함께 가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때에 어머니가 교회 안에 들어서면서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절을 하는 것을 보고서 마리아도 따라서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마리아상이 누구인가를 물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설명하면서 너 역시 이름이 마리아이니 고귀한 여성으로 자라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마리아의 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아마도 이때의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담겨진 마리아상을 그는 평생 자기자신과 동일시하게 된 것 같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어머니와 선생님들에게 이상스런 질문들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지구가 우주에서 오직 하나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지구가 존재하는가? 사람이 죽으면 그 이후에는 어디에서 사는가? 아홉 살의 어린아이인 마리아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였는데 자기 마음에 드는 해답이 없어서 늘 궁금하게 생각하곤 하였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 마리아는 10살이었다. 그때에 마리아는 학교를 옮겨서 기숙사에 거하는 엄격한 수도원 식의 학교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거기에서 마리아는 학교의 수업이 끝나면 항상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읽었는데 주로 고대 이집트의 역사에 관한 것이고 사자의 책(Book of Death)”과 갈데아 신탁 (Chaldean Oracle)의 내용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마리아의 10세 때의 일이었다. 마리아는 챠그렙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역시 카토릭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생활의 학교였다. 거기에서 트라우테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를 통하여서 음악에 심취하여서 음악회 오페라하우스 등엘 자주 방문하였고 고전문학작품들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트라우테는 기숙사에서 마리아와 같은 방을 사용한 룸메이트였다. 마리아가 15세 되던 해에 아버지는 딸의 문화적인 교양을 위하여서 챠그렙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어머니와 함께 세 가족이 바그너의 오페라를 감상한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 마리아는 잠이 오지를 않았다. 그런데 조용한 밤에 귀에 무슨 소리인가 속삭임이 들려왔다. 마리아! 마리아! 오르시치! 내 말이 들리는가? 두려워 말고 내 말에 귀를 기우려 보라! 우리는 너를 선택하였다. 서로 대화를 하기를 원한다. 리그 베다이러한 음성이었다. 매우 가냘픈 여성의 목소리였다고 한다. 마리아는 한참 동안 상념에 잠겼다. 꿈인가 생시인가?리그 베다라는 그 여성은 누구인가? 왜 이름이 인도경전인 리그 베다(Rig Veda)인가?


[챠그렙의 오페라하우스]

 


다음날 마리아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이집트의 고대문헌 뿐만 아니라 인도경전인 리그 베다를 열심히 공부하였다. 19111월 어느날 학교의 친구가 신비한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 가자고 하여서 비엔나에서 그 친구를 따라서 모임에 참석을 하였는데 당대에 유명한 점성술사 마담 푸스티쉬(Madam Pustisch) 가 주관하는 모임이었다. 그는 영계와 소통하는 사람으로서 이미 세상을 떠난 죽은 사람들과도 대화를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마리아는 차그렙 오페라하우스에서 음악감상을 하고난 그날밤에 자기에게 들려온 음성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하여서 친구가 제안한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마담 푸스티쉬의 강의가 끝나자 마리아는 자기가 외계에서 보내오는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닌가고 물었다. 마담 푸스티쉬는 두려워 하거나 주저하거나 하지 말고 또 다시 그러한 음성이 들려오면 답변을 하라고 하였다. 지구내에서가 아니라 외계에서 보내오는 음성이 있을 수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마리아는 마담 푸스티쉬와 그날 이후로 자주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널링이라고 하는 텔레파시의 상태에서 외계인들과 서로 소통이 되는 그러한 경지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마담 푸스티쉬로부터 들은 마리아는 용감하게 그 외계인과 대화를 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한 동안은 그 외계인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마리아는 리그 베다를 연구하다가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생각하는 기능이다 라고 하는 구절을 리그 베다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는 삼차원의 세계에서는 빛이 가장 빠르겠지만 다차원인 영적인 세계에서는 생각하는 기능이 빛보다 더 빠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마리아는 자신을 리그 베다로 말한 그 여성의 목소리를 다시 경청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였다. 19113월말 경에 마리아는 또다시 그 가냘픈 외계여인의 음성을 들었다. 마리아는 누구이냐? 리그 베다라고 말하지 말고 이름을 이야기 하라! 무슨 일로 나를 선택하였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외계여인의 목소리는 다소 커지면서 또렷또렷한 음성으로 이사이 (ISAI)라고 자기의 이름을 말하면서 자기네들과 소통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종이와 연필을 준비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마리아는 이상스런 체험을 하게 된다. 남이 손을 움직이면서 글씨를 쓰게 되는 일이 생겨난 것이다. 몇 줄을 그렇게 종이에 자기도 모르는 글씨를 받아 적었다. 손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다. 마리아는 전혀 그 이상스런 글씨를 판독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이상스런 일이 있은 후에 마리아는 차그렙으로 가서 부모님을 만났다. 마리아는 차그렙 국립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고대 이집트에 관한 역사와 메소포타미아의 슈메르문명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문헌들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도서관에서 자기 아버지의 나이만큼 차이가 나는 한 귀하게 생긴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터키와 이집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돈을 벌어서는 독일로 재 귀화한 세보텐도르프 (Sebottendorf)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 당시에 비엔나에 살았는데 차그렙에 와서는 도서관에서 고대문헌들을 찾고 있었다. 바로 마리아가 열심히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던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관한 서적들이었다. 세보텐도르프는 마리아를 비엔나의 자기집으로 초대한다고 하였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 1916년에 마리아는 비엔나에서 고등학교과정을 졸업을 하게된다. 그 어간에 졸업하기 이전에 세보텐도르프를 비엔나에서 자주 만난 일이 있었다. 세보텐도르프는 마리아가 학교를 졸업한 그해에 비엔나의 카페 쇼펜하우엘에서 저녁초대를 한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템플기사인 플렐랏 게르노(Praelat Gernot)와 공군 파이롯트 로타르 바이츠(Rothar Waiz)라는 사람이 자리를 함께 하였다. 모두들 저녁식사를 하고나서 여러가지 신비스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마리아에게 오랜만에 외계로부터 음성이 들려왔다. 마리아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종이와 연필을 준비하고 외계인의 음성과 대화를 하였다. 그러자 손이 움직이면서 그전에서처럼 글씨가 쓰여지기 시작하였다. 그 자리에 함께 하였던 세 남자들은 이상스런 눈으로 마리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보텐도르프의 나중에 이야기로는 마리아는 그 당시에 눈을 감고 비몽사몽간의 경지에 있으면서 손을 놀려서 글씨를 썼다고 말하였다. 그중에서 템플기사인 게르노는 그 글씨를 판독할 수가 있었다. 이는 템플기사들의 옛날 문헌에서 자주 본 바로 그 글씨라는 것이다. 게르노에 의하면 마리아가 받아 적은 그 내용은 외계로 여행할 수 있는 특이한 비행물체에 대한 설계 및 기술을 설명하는 내용과 함께 엔진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가장 놀란 사람은 물론 마리아였다. 그러나 세보텐도르프는 놀란 표정으로 지금 세계전쟁 중인데 외계에서 이러한 메시지가 오는 것은 머지 않은 장래에 세계적인 평화가 오리라는 징조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게르노는 그 글씨는 13세기에 템플기사가 이사이(ISAI)라는 여신으로부터 받은 글씨라고 설명하였다. 마리아는 그러면 이사이라고 자기의 이름을 말한 그 여인이 여신인가고 물었다. 마리아는 더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르노는 마리아가 보여준 종이장에 적혀있는 글씨들을 더 자세히 판독하였다.

 


[마리아가 받아적은 외계인언어 글씨] [비엔나의 Café Schopenhauer]

 

    


마리아는 템플기사 게르노로부터 대단한 숭경의 대상이 되었다. 1220년도 후베르투스(Hubertus) 템플기사에게 이사이 여인이 나타난 것은 13세기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서 마리아가 받아 적은 그 글씨가 템플기사들에게는 이미 알려진 것이라고 하였다. 초대 템플기사 후베르투스는 신약성서 마태복음 2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권능에 관한 내용과 이사이의 나타남을 연관시켰다. 그래서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 근교의 운터스베르그(Untersberg)라는 산속에 태고때로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오는 지하로 통하는 굴을 숭상하였다. 그 굴을 통하여서 지구로부터 외계와 연관을 맺을 수가 있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사이는 여신이라기 보다는 외계에 사는 메신저로서 지구의 인간과 유사한데 외계에 사는 한 인간이라고 템플기사들은 믿었다. 그런데 13세기에 템플기사들은 예루살렘의 솔로몬성전에서 아래와 같은 형상을 발견하여서 독일의 잘츠부르그 근교의 운터스베르그로 가지고 왔는데 지금은 그 예술조각품분실되었다고 한다. 이 지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인데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머리가 하나로 조각이 되어 있으며 여자의 긴머리가 아래로 내려져서 약 1.5미터의 높이를 이루고 있는 형상이다. 일명 이는 대형상 (Magna Figura)”이라고 불려진다. 그것은 금으로 된 형상인데 위에는 보라색의 자수정이 들어 있고 아래에는 흑색크리스탈 즉 흑수정이 들어 있고 연결은 여자의 긴머리로 되어 있다. 이것은 우주의 에너지 곧 브릴을 불러 들이는 물체로서 이러한 형상을 가까이에 두면 몸이 건강해지고 만사형통한다고 하는 전설이 있었다. 그래서 솔로몬왕은 이러한 형상을 만들어서 예루살렘성전에 비치하였던 것이다. 템플기사단은 나중에 이를 복원하여서 복사판의 형상을 만들었는데 전시효과에 지나지 않을 뿐 실제로 브릴에너지는 그 속에 담겨지지가 아니한다고 한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우주의 에너지는 여성들의 긴 머리를 통하여서 여성들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한 몸을 이루는 성적인 관계는 곧 여성의 몸에 들어있는 우주의 에너지를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통하여서 얻을 수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대 바빌론이나 고대 인도에서는 남녀간의 성적인 교섭이 단순한 불륜의 타락행위로 보지 아니하고 우주의 기운이 담긴 여성의 몸으로부터 남성들은 브릴 곧 우주에너지를 몸 안으로 불러 드릴 수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깨달음디자이너->

1 지구에너지(물리)

2 우주에너지(4차원)명상을 통해서 혼련되어야

3 크리스탈 에너지(5차원)

4 영의 에너지(6차원 이상)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심령적인 요소들은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이 주되었다.

남녀 음양.조화에서 황금빛 진기 또는 우주에너지와 관계가 있어보인다.

인체 신장에 정기 생기 진기 원기 (천지기 작용포함)

대부분 인간이 진기를 받을때 효과가 뒤바뀌는듯 한데, 훈련되지 못함,




 그런데 이러한 대형상 (Magna Figura)”은 위에는 자수정 아래에는 검은색의 크리스탈인 흑수정이 들어있고 그 중간을 여성의 머리카락으로 연결시켰는데 조각품은 겉으로 보이는 상징이고 실제로 자수정과 흑수정과의 연결에는 1.5미터 이상이나 되는 긴 여성의 머리카락을 꼬아서 연결을 시켰다고 한다. 템플기사인 플렐랏 게르노는 아무 여성의 머리카락이나 절단하여 그 형상 속에 넣는다고 하여서 브릴에너지를 그 형상에 담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외계인들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높이 빼어난 여성의 머리카락이라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여서 템플기사단에서 모조품을 만들어 놓은 것의 내부에 마리아의 머리카락을 넣게 되면 원래 고대 바빌론에서처럼 우주에너지 곧 브릴에너지가 그 형상에 담겨질 것이라는 확신을 이야기 하였다. 그래서 템플기사단에서 보유하고 있는 형상을 다시 복제하여 만들어서는 마리아는 자기의 집에다 비치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템플기사단의 형상에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넣는 일을 허용하였다. 그로부터 본격적인 브릴여인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하였다. 이 즈음하여서 마리아는 옛날 기숙사의 룸메이트였던 트라우테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트라우테 아몬 (Traute Amon)이었다. 마리아는 트라우테를 세보텐도르프와 템플기사 프랄렛 게르노와 공군 파이롯트 로타르 바이츠에게 소개하였다. 트라우테도 마리아로부터 영적으로 외계인들과 접촉하는 텔레파시의 경지를 배웠다. 원래 그 분야에 타고난 성품이 있어서 쉽게 영적교섭의 경지에 몰입할 수가 있었다. 마리아는 이사이에게 새로운 친구인 트라우테를 소개하였다. 이렇게 하여서 브릴여인의 외계인과의 교섭에는 두 사람이 서로 함께 하게 되었다. 트라우테 역시 긴 머리를 일부 절단하여서 대형상의 안에다 넣는 일에 협조를 하였다. 템플기사단에서는 이러한 일로 인하여서 브릴여인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스트리아 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에 전파되기에 이른다. 세보텐도르프는 이 즈음하여서 독일의 뮌헨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러면서 뮌헨공과대학의 슈만박사 그리고 하우스호퍼 교수 들과 친분을 맺고 이른 바 툴레협회 (Thule Gesellschaft)”라는 것을 결성하게 된다. 여기에 마리아 트라우테 그리고 템플기사 게르노 공군장교 로타르 바이츠 등이 회원이 된다. 이때가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였다.

 


                                                       [툴레협회가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던 뮌헨 포시즌호텔]

 

 

 

툴레협회는 1919년 루돌프 폰 세보텐도르프 (Rudolf von Sebotendorff)에 의하여서 결성되었다. 그 협회에 카알 하우스호퍼 (Karl Haushofer), 루돌프 헤쓰 (Rudolf Hess), 빌프리드 오토 슈만 (Wilfried Otto Schumann)박사 등이 회원이 되었다. 나중에는 하인리히 힘믈러 (Heinrich Himmler)도 회원이 되었다.

 


                                                  [Rudolf von Sebottendorf] [툴레협회 창단기념 포스타 1919]

 

이와 때를 같이 하여서 마리아는 독일의 베르히테스가덴 (Berchtesgaden) 을 방문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그와 연결된 운터스베르그 (Untersberg) 산에서 13세기때에 템플기사 후베르투스에게 이사이 여신이 나타난 것을 생각하면서 마리아는 그 지역을 방문하였던 것이다. 혹시 자기가 그곳에 가면 이사이(Isais)가 직접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옛날 13세기 때에 후베르투스가 만났었다고 하는 이사이 여신을 거기에서 만나지는 못하였다. 다시 뮌헨으로 돌아온 마리아는 그곳에서 작곡가 부르크너의 비서로 일하면서 심리학자 프로이드와 절친한 사이였던 프리드리히 에크슈타인 (Friedrich Eckstein)과 만나게 된다. 그를 통하여서 마리아는 당시의 새로운 학문분야였던 신지론(Theosophie)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게 된다. 에크슈타인은 마리아에게 헬레나 블라바츠키 (Helena Blavatsky) 여사의 저서를 소개한다. “비밀의 가르침”, “이시스의 재발견등의 저서는 마리아가 이미 10대의 소녀로서 이집트연구에 몰입하였던 일로 인하여서 매우 친근하게 여겨지는 내용들이 담긴 책들이었다. 마리아가 비엔나의 쇼펜하우엘 카페에서 이사이 여신과 채널링교신을 하면서 받은 우주비행체의 기술설명서 그리고 둥근비행체의 엔진의 모습을 담은 기록은 벌써 3년전의 일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다. 마리아는 우주비행체 (JFM: Jenseits Flug Maschine)를 제작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사이가 있는 알데바란에로 여행을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결국 그는 툴레협회




에서 세보텐도르프를 통하여서 뮌헨공과대학의 슈만박사와 만나서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면을 의논할 계획을 세운다. 바로 이러한 때에 세보텐도르프가 마리아를 툴레협회의 모임에 초대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트라우테가 또 새로운 브릴여인인 구드룬 라인하르트 (Gudrun Reinhardt)를 데리고 마리아의 아파트를 방문하였다. 트라우테가 구드룬을 마리아에게 데리고 온 이유는 구드룬 역시 알데바란으로부터 보내온 메시지를 받은 일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툴레협회에 회원이 되어서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마리아는 자기의 침실로 두 여인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커튼을 쳐서 어둡게 하고서는 옷장 안에 깊이 넣어둔데서 대형상을 꺼냈다. 커튼을 쳐서 방이 다소 어두운데 바로 그 대형상에서 희미하게나마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얼굴모습이 여실히 들어나면서 그 형상은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상당히 뜨겁게 느껴졌다. 세 여인은 돌아가면서 그 형상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마리아가 설명을 하였다. 지금 이 형상에는 나의 머리카락이 들어 있는데 우주의 에너지인 브릴이 이 형상안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빛과 열을 발하고 있다고 하였다. 트라우테도 자기집에 자기의 머리카락을 넣은 대형상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브릴여인들은 앞으로 그 대형상을 자기 침실의 옷장안에 넣고 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밤에 잠을 잘 자고 몸이 건강하게 된다고 마리아가 설명을 하였다. 그런데 마리아도 트라우테도 긴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구드룬은 머리를 짧게 한 단별형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도 머리를 길게 하여서 대형상안에 넣게 되면 브릴 에너지를 가까이에 둘 수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마리아는 우리 모두는 몸안에 브릴에너지를 받아 드려야 하는데 그 과정으로 대형상안에 우리의 우주안테나인 머리카락을 짤라서 넣어두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세보텐도르프는 마리아에게 우편엽서를 보냈다. 거기에는 마리아가 한번 방문하였던 베르히테스가덴의 산장레스토랑인 람자우 (Ramsau) 에서 19191212일에 만나자고 하는 내용이었다. 마리아, 트라우테, 구드룬 이 세명의 브릴여인들은 그날 저녁에 람자우 산장레스토랑으로 갔다. 그 자리에는 범바빌론협회 (Panbabylonische Gesellschaft)의 회장인 페터 옌센 (Peter Jensen), 뮌헨공과대학의 빌프리드 오토 슈만박사가 세보텐도르프의 초대를 받고 미리 와 있었다. 이미 3년전의 일이었지만 마리아는 그 당시에 채널링으로 받아쓴 기록과 엔진설계도면을 가지고 갔다. 제일 먼저 범바빌론협회의 옌센이 그 기록된 문서를 주도면밀히 검토하였다. 그는 매우 정확하게 그 외계인의 문자들을 판독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슈메르문자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슈만박사에게 기술설명서를 그대로 번역하였다. 슈만박사는 옌센이 번역해 주는 내용을 독일어로 다시 받아 썼다. 그리고는 그 두 사람들은 머리를 흔들면서 매우 흥미가 있는 우주비행체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슈만박사는 자기가 그 비행체를 제작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였다. 마리아는 비록 3년을 기다렸지만 이렇게 현실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았을때에

 

 마음이 너무나 기쁘고 설레였다. 트라우테도 구드룬도 흥분된 분위기를 자제하기에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슈만박사는 알데바란까지는 68광년 떨어져 있는데 차원통로를 이용하게 되면 훨씬 더 빠르게 도착할 수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알데바란에 갈 수가 있다는 확신을 브릴여인들에게 넣어주었다.


​깨달음디자이너->혹시 이게 간차원으로 진동 주파수를 맞추어 차원이동이 가능한게 아닌가? 또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주파수가 동일해야 한다. 물론 태양권 외각이 병풍 홀로그램이라면, 이미지만 표적을 맞추면 되지않을까?


슈만박사가 그날 람자우 산장레스토랑에서 설명한 차원통로 (Dimensionskanal)는 오늘날에는 웜홀 (Wormhole) 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주비행체로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는 속도인 시속 4만 킬로미터 (40,000km/h) 이상으로 비행하게 되면 우주공간에 차원통로가 생겨나게 된다. 즉 지구와 알데바란의 거리가 축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68광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2 3 년이면 도달할 수가 있다고 슈만박사는 설명하였다. 문제는 그러한 속도로 우주에 진입할 수 있는 우주비행체를


​깨달음디자이너->물론 이론상이지만, 2~3년 걸리면 충분한 양식을 가져가야겠다 도중 가다가 굶어죽기 십상이다. 그보다 더 빠를 것같다.

아무래도 그게 20세기 초중반에 완성되고 그것이 대중에 공개될정도라면 21세기 우리는 누구나 달나라 여향이 가능하고 개인 자가용항공기로 출퇴근을 할 것이다.

 

어떻게 제작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말하였다. 베르히테스가덴의 람자우 산장호텔 레스토랑에서의 모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가까운 장래에 우주비행체가 완성이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리아, 트라우테, 구드룬 세 브릴여인은 모두 다 알데바란으로의 여행을 간곡히 원하고 있었다. 이사이 여신은 다름아닌 알데바란의 세계의 여황제가 아니겠는가? 속히 알데바란에 가서 그를 만나보고 싶은 충동을 세 브릴여인은 억제치 못하였다. 슈만박사는 뮌헨공과대학에서 과학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둥근형체의 우주비행체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면서 슈만박사는 자기가 추천하는 두 과학자에게 편지를 보내서 직접 만나서 우주비행체를 제작하는데 대한 자문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그러면서 빅토르 샤우베르거 (Viktor Schauberger)와 알베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의 주소를 알려 주었다. 마리아는 다음날에 두 과학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19205월초에 마리아는 뮌헨에서 비엔나로 향하였다. 뮌헨에는 트라우테와 구드룬이 툴레협회의 사무실에 나가서 세보텐도르프와 함께 앞일에 관하여서 의논하기로 하였다. 마리아는 비엔나에서 아인슈타인과 샤우베르거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그 당시에 일반적인 상대성원리를 발표하여서 뉴톤 이후의 우주물리학에 전환점을 야기시키는 것으로 인하여서 전 세계에 그의 명성이 알려지고 있었고 여러 나라로부터 초청강의의 청탁을 받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그때에 비엔나 공과대학에서 상대성원리에 대하여 특강을 해 달라는 청탁을 받은 바 있었다. 마리아에게는 그것이 아인슈타인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또 아인슈타인도 만나주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는 슈만박사의 각별한 부탁과 주선 때문이기도 하였다.



깨달음디자이너->아인슈타인에게 정보가 넘어갔다면, 시오니스트들에게 정보를 넘겨주는 꼴이 될 것인데,? 피니스 저널에 아인슈타인은 여배우 멀로와 분륜 혼전관계 그런 스토리를 언급하고 있다. 실뢰성이 있는 과학자는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영국언론이 키웠다. 특별히 그가 유명한 것은 아니다. 많은 과학자들의 수많은 이론이나 획귀적인 것들도 많지만, 세상에 다 들어난 것은 아니다.

  

마리아는 비엔나의 카페 쇼펜하우엘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났다. 슈만박사로부터 미리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면서 아인슈타인은 마리아에게 젊은 여인이 어떻게하여서 우주비행체를 만들 생각을 하였으며 슈만박사와 같이 능력이 많은 학자와 만나서 그런 사업를 구상하게 되었는가



 

매우 궁금하다고 하였다. 마리아는 알데바란으로부터 채널링을 통하여서 텔레파시에 의하여서 외계인들의 기술을 전수 받았다고 이야기 하면서 이미 3년전의 일인데 조심스러워서 혼자서만 가지고 있었던 기술정보를 슈만박사에게 내어 보였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범바빌론협회에서 그 외계인의 문자를 해독하여서 슈만박사에게 번역해 주었다는 해명을 하였다. 마리아는 아인슈타인박사가 지금 뉴턴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상대적인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있어서 차원통로에 관한 이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론적으로는 그런데 현실적으로 차원통로를 통하여서 우주여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유토피아이며 먼 훗날 실현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공상과학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부정적인 태도를 표명하였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러한 일에 대하여서는 별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원할 수가 없는 입장이라고 말하였다. 결국 아인슈타인과의 만남은 한시간도 못되어서 끝나고 말았다. 그 다음날에 마리아는 같은 커피숍에서 빅토르 샤우베르거를 만났다. 그는 흔쾌히 마리아의 제안을 받아드리면서 비엔나에서 당분간 슈만박사와 함께 일을 하기 위하여서 뮌헨으로 거처를 옮기겠다고 하였다. 이제 우주비행체를 만드는 일에 있어서 샤우베르거와 슈만박사가 함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인슈타인박사로부터는 동의를 얻지 못했으나 마리아는 샤우베르거의 탁월한 지식과 기술개발이 전제가 되고 슈만박사의 제반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노력이 합해지면 분명코 우주비행체가 탄생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뮌헨으로 돌아왔다. 19206월부터 샤우베르거는 뮌헨으로 거처를 옮겨서 슈만박사와 함께 불철주야 우주비행체를 제작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1925년초에 첫번의 우주비행체(JFM)가 탄생되었다. 슈만박사와 샤우베르거는 마리아에게 직접 테스트 시운전을 해 보라고 하였다.




출쳐

https://www.scribd.com/document/318543369/The-Vril-Woman-Maria-Orsic






https://youtu.be/jA3sCC8LvWQ



















[출처] [스크랩] 브릴여인 마리아 오르시치(Die Vril-Dame, Maria Orsic, 1895-1945?) 1부 |작성자 깨달음디자이너


Maria Orsic - The Goddess of the Devil: Hitler's Medium. Occult secrets of Nazi super science.

 



브릴여인 마리아 오르시치(Die Vril-Dame, Maria Orsic, 1895-1945?) 2부 오컬트 조직

2019. 7. 11. 19:58

복사 http://kimkyungho5.blog.me/221583342360

번역하기 전용뷰어 보기



깨달음디자이너->플레아데스 비행체나 그레이들 비행체 원반형이 비슷하다. 어떤 정보에서는 많은 외계비행체들중 이것이 안전도가 떨어진다고 언급되어있다.

 


 

 

뮌헨의 툴레협회가 사무실을 두고 있는 포시즌 호텔과 매우 가까운 곳에 연구소 겸 우주비행체 제작 및 시운전의 장소를 정한 지 4년 만에 눈에 보이는 멋진 둥근 모습의 우주비행체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탄생된 것이다. 직경이 8미터이고 가운데에는 1.8미터 높이의 조종실이 유리로 반구형의 모습으로 올려져 있었다. 트라우테와 구드룬도 이 우주비행체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당장에 알데바란으로 날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리아는 사다리를 집고서 조종실 안으로 들어갔다. 슈만박사와 샤우베르거가 작동법을 잘 설명하였다. 마리아가 채널링을 통하여 전수받은 이 둥근 비행체의 엔진은 직경이 8미터에다 위에는 7미터 직경의 원반이 놓이고 아래에는 6미터직경의 원반이 부착되어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을 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범바빌론협회의 옌센이 번역하여 준 외계의 기술설명대로 제작된 것이다. 그 시운전하는 자리에는 제작자 슈만박사와 샤우베르거는 물론 세보텐도르프 그리고 범바빌론협회의 옌센이 함께 하였다. 트라우테와 구드룬은 자기네들이 시운전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마리아가 시운전하는 일에 대하여서 가슴이 벅차 오르기 시작하였다. 우선은 그 우주비행체가 부상을 제대로 하는가를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작실의 밀폐된 공간에서 엔진을 가동시켜서 마리아가 시운전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아주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기계체가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상부와 하부의 원반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이 조용하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동 역시 요란하였다. 그런데 외형이 그리 멋진 우주비행체가 잠시 2미터 정도 부상하다가 다시 내려앉고서는 더 이상 엔진이 작동하지를 않았다. 시운전은 성공하지 못한 채 마리아는 다시 조정실에서 나왔다. 슈만박사와 샤우베르거는 모든 기계체들을 다시 조사해 보기로 하고 그날의 시운전은 더 이상 안 하기로 하였다. 19205월초에 비엔나의 카페 쇼펜하우엘에서 아인슈타인박사와 만나서 한시간도 못되는 짧은 시간의 대화가 결론적으로 성공이 되지 못한 줄로 마리아는 생각하고 아인슈타인박사와 만난 사건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샤우베르거와 슈만박사와 열심히 우주비행체의 제작에만 몰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1921년초에 아인슈타인박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자기의 생각은 우주비행체의 제작이 유토피아로 생각된다고 하였지만 자기와 함께 일하는 뉴욕에는 니콜라 테슬라라고 하는 전기공학자가 있는데 그를 소개해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번 교류발전기 제작 등으로 에디슨과는 의견의 대립이 있었고 또 자본주들과의 불협화음으로 인하여서 생각은 훌륭한데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를 초대하여서 우주비행체를 제작하는 일을 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내용의 비교적 장문의 편지를 마리아는 아인슈타인으로부터 받았다. 마리아는 즉각 여행비와 체류비를 부담하는 것 이외에 그의 부채의 일부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가 있다고 하는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는 세보텐도르프에게 니콜라 테슬라를 뉴욕으로부터 초대하여서 우주비행체의 제작에 참여시키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서 니콜라 테슬라는 19215월에 베를린을 거쳐서 뮌헨에 도착하였다. 마리아 트라우테 구드룬의 세명의 브릴여인들은 니콜라 테슬라를 일단 포시즌 호텔에 머물게하고 툴레협회에서 그의 체류비용을

 

 

  

전담하도록 주선하였다. 물론 그의 여행경비 일체와 약속한대로 부채의 일부를 상환하는 금액도 세보텐도르프가 결재를 하였다. 테슬라는 유럽에서 세 명의 젊은 미인들과 함께 외계인 기술인 우주비행체를 제작하는 일에 합류하게 된다. 그런데 이미 슈만박사와 샤우베르거가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어서 그들과 자주 만나면서 테슬라는 자기나름대로 우주비행체를 제작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테슬라는 툴레협회의 공식적인 초청으로 약 1년간 뮌헨에 체류하고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는 경제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 상태에서 그의 연구와 사업을 뉴욕에서 다시 계속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1925년 슈만박사와 샤우베르거가 첫번으로 우주비행체를 제작하여서 시운전을 할때와 거의 동시에 테슬라는 미국에서 둥근 우주비행체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였다. 그가 특허신청을 위하여 제출한 서류에는 아래와 같은 그림이 포함되어 있었다.

깨달음디자이너->로즈웰 파일 필립 J코로소 소령이 언급한 테슬라 사후 CIA가 모든 자료를 회수해간 것과 관련이 깊다. 테슬라가 배신자였다면 사업과 돈독에 눈이 멀었다고 보인다.

어차피 아인슈타인이 니콜라테슬라를 소개해줬고 머리좋은 테슬라가 개발할 수도 있고, 테슬라 사후 미국정부가 그 기술을 빼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알려져 있지 않는데 테스트 비행에서 성공을 거둔 사진이 유럽에까지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테슬라는 툴레협회로부터 초청을 받고 또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는데 슈만박사와 샤우베르거 그리고 마리아의 외계인 기술을 그대로 복제하여서 자기의 기술로 특허까지 출원한 것은 마리아에게는 매우 가슴아픈 일이 되었다. 그나마 슈만박사와 샤우베르거가 노력한 그 우주비행체가 성공적인 비행을 하지 못한 처지에서 테슬라의 우주비행체가 미국에서 특허를 득하게 되고 또 실험비행에서 자기네들보다 앞서게 된 것은 브릴여인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소식이라 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또 10년이라는 세월이 갔다. 1934년에 둥근비행체 (RFZ: Rund Flug Zeug) 가 완성이 되어서 공군 파이롯트인 로타르 바이츠(Lothar Waiz)가 시운전을 하기로 하였다. 툴레협회에서는 브릴여인들과 슈만박사 그리고 샤우베르거가 열심히 둥근비행체의 개발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둥근비행체 RFZ1 (Rundflugzeug)19346월에 완성이 되었다. 마리

 

 

아는 템플기사 플랄렛 게르노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자기가 직접 시운전을 하지 말고 전문 조종사에게 일임토록 할 생각에서였다. 게르노는 마리아에게 1916년도에 비엔나의 카페 쇼펜하우엘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공군 파이롯트 로타르 바이츠가 자리에 함께 했던 것이 생각나는가고 물었다. 마리아는 무릎을 치면서 자기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는가 하면서 게르노에게 바이츠와 연락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게르노는 마리아에게 로타르 바이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지금 외국여행중인데 한 주일후에는 뮌헨으로 돌아와서 RFZ1의 시운전을 맡을 수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서 19346월말경에 RFZ1의 시운전이 시작되었다. 로타르 바이츠가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였는데 비교적 소음이 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공중으로 부상하였다. 60미터 상공에 올라가서는 방향키의 오작동으로 인하여서 불규칙한 라선형의 회오리바람이 불듯이 40미터를 하강 하였다. 10미터 상공에서 로타르 바이츠는 RFZ에서 탈출하여 뛰어 내렸다. 겨우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다리에 타박상을 입고 쓸어졌다. 비행체 RFZ는 지상에 추락하여서 완전히 파손되었다. 마리아와 트라우테 두 여인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쓸어진 로타르 바이츠를 부축해 일으켜서 연구실로 데려다 눕히고 간호하였다. 슈만박사는 자신의 자력부상의 엔진과 추진력장치를 재점검하기로 하였다. 그날의 RFZ1의 시운전 실패에 관한 내용을 마리아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RFZ의 시험운행에 대하여 무슨 할말이 있는가? 지난번의 우주비행체 (JFM) 보다 더 크고 잘 제작된 둥근비행체이지만 시험운행에서 실패하였다. 19346월의 일이다. 60미터 상공에까지 올라가서는 약 5분간 비정상 회전운행 끝에 지상에 추락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지상에 추락하여서 큰 충격과 함께 기계체가 파손되기직전에 로타르 바이츠는 탈출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RFZ1 실험운행의 마지막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인 또 절망적인 시험비행 이후인 그해 10월달에 툴레협회와 브릴여인들의 전체회의가 있었다. 우주비행체의 제작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전자기력을 이용한 자력부상 및 추진에 대한 많은 수정을 가한 슈만박사가 소상한 설명을 마친후에 다시 시험비행을 시도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다음날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중에 RFZ2의 시험비행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로타르 바이츠가 시운전의 책임을 맡았다. 2시간의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로타르 바이츠는 착륙하였다. 툴레협회 회원들과 브릴여인들은 이제부터 우주여행의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게 되었다고 기뻐하였다. 19368월 독일에서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올림픽 경기를 재현하였다. 온 세계에서 젊은이들이 독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나 툴레협회와 브릴여인들은 올림픽경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슈만박사와 샤우베르거는 계속하여서 둥근비행체를 개발하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그래서 19373월에는 브릴타입 둥근비행체 (VRIL-1)의 제작을 완료하게 된다. 시험운행을 밤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마리아는 제안하였다. 이는 대낮에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우려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브릴타입의 둥근비행체 (VRIL-1)는 직경이 11.5미터이고 중간에 조정실은 1.8미터의 높이에 더 넓어져서 세 사람이 탑승하도록 디자인이 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마리아가 시험비행에




동승하였다. 조종사는 로타르 바이츠였고. 한 사람의 기술자가 함께 동승하여서 모두 3인이 시험비행에 탑승하였다. 시속 5,000킬로미터 (5,000km/h)에다 90도와 22.5도의 방향전환이 가능하였다. 이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시속 5,000킬로미터에서 방향전환이 가능하였다. 역시 2시간의 성공적인 시험비행을 마치고 무사히 착륙하였다.

브릴타입 둥근비행체 (VRIL-1)는 나중에 전쟁에 사용할 수 있도록 레이저빔 무기를 장착하였다. 힘믈러는 이러한 둥근비행체를 최첨예 신종무기로 전쟁에서 사용하게 되면 승리가 보장되리라고 하는 생각을 하였다. 1937년도는 아직도 제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아니한 때였다. 마리아는 앞으로 수십명의 브릴여인들이 탑승하고 알데바란의 우주여행 장도에 오르려면 둥근비행체가 거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그러한 거대한 우주비행체를 제작하는데에는 많은 경비가 소요될 것을 생각하여서 히믈러에게 브릴타입의 둥근비행체 (VRIL-1) 독일 국방처와 신형비밀병기개발처에다 매각할 의사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힘믈러는 당시 40,000제국 마르크를 내고 VRIL-1 을 매입하면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변형시켜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마리아는 당시의 나치독일에서 최고의 권력자로 부상한 빌헬름 카나리스(Wilhelm Canaris) 장군을 만나고자 하였다. 카나리스장군은 독일정보 총책임자로서 해외로부터 원자재를 수입하는 일에서 거대한 우주비행체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리아에게는 한 낯선 여인이 찾아왔다. 자기를 지그룬 폰 엔슈테텐 (Sigrun von Enstetten)이라고 소개하면서 카나리스장군이 보내서 왔다고 하였다. 카나리스는 힘믈러로부터 둥근비행체의 성능에 대하여 보다 상세히 알기 위하여서 마리아와 접촉을 하고자 한 것이었다. 카나리스장군 휘하에는 지그룬이라는 여인 전투기조정사가 있었다. 그는 미국의 무스탕전투기 두 대를 격추시킨 일이 있고 영국의 랑카스터 폭격기도 격추시킨 공군파이롯트로서 승전기록을 많이 보유한 젊은 공군비행사였다. 힘믈러/카나리스는 지그룬으로 하여금 VRIL-1을 조종하면서 제반 문제점들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지시를 한 것이다. 40,000제국 마르크를 내고 구입한 최첨예장비로서 제반 조종에 대한 새로운 방법들이 다 습득이 되어야 하고 또 기능면에서 공군의 최첨단무기로서 전쟁에 사용하는 일이 적합한가 등을 조사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한 지그룬에게는 마리아의 초능력 내지는 채널링에 의한 외계인들과의 소통문제와 알데바란으로 우주여행을 떠나는 일 등에는 별로 관심이 있을 수가 없었다. 지그룬에게는 VRIL-1의 성능과 최첨단무기로서 전쟁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가 하는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마리아의 질문이나 설명에는 별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아는 지그룬이 여자로서 공군비행조종사라는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 거대한 우주비행체의 조정도 로타르 바이츠가 아니라 지그룬에게 다 맡끼고 싶은 생각이 간곡하였다. 마리아는 히틀러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정보를 듣고 이에 대하여서 반대한 사람이다. 우주의 넓은 세계로 향하는 차원에서는 우주에서 볼 품이 전혀 없는 작은 지구내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하는 생각에서였다. 마리아는 세보텐도르프를 통하여서 히틀러와 힘믈러에게 전쟁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 독일을 위하여서 좋은 일이라고 자신의 의사를 피력하였고 또 히틀러에게 직접 그러한 자기의 소신을 말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19399월 히틀러는 폴란드에다가 선전포고를 하므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된다. 우선 지그룬은 VRIL-1을 조정해 보기를 원하였다. 슈만박사와 샤우베르거가 기계전반에 관한 설명과 함께 조정에 필요한 제반 작동장치를 소상히 알려 주었다. 그래서 지그룬이 단독으로 VRIL-1 을 약 한 시간동안 실험비행을 해 본 일이 있었다. 그리고나서는 전쟁에서 정찰하는 임무수행에는 매우 탁월하다고 평가하였다. 높은 고도에서 프리즘망원경으로 선명하게 표면을 조사할 수 있는 장비가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나 빠르고 주행각도가 90도와 22.5도 이외에는 불가능하여서 폭격기나 공격기로서는 부적당하다고 하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슈만박사와 샤우베르거는 조정사와 7명의 군인들이 탑승하고 시속 4800킬로미터로 비행하는 매우 큰 둥근비행체 하우네부 1 (Haunebu 1)1939년말에 완성이 되었다. 그 하우네부 1 은 직경이 25미터나 되는 거대한 것

    

이다. 52시간의 실험비행을 마친 후에 실전에 배치하였는데 정찰의 임무를 띄고 영국상공을 날다가 아일랜드의 해변가에 추락하였다. 힘믈러는 1940년초에 전보를 받았다. “하우네부 1 정찰비행체는 아일랜드 해변에 추락 / 원인불명 / 탑승자 전원사망 / 하우네부 2가 곧 완성됨이러한 하우네부 1의 사고사건은 힘믈러로 하여금 하우네부 2의 제작을 완성하는데에 계속적인 지원이 어렵게 되었다.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를 다량으로 제조하는 일에만 해도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였다. 거기에 재래식 비행기, 군함, 잠수함 등을 제조하여 전쟁에 사용하는 문제가 시급하게 되자 최첨단의 우주비행체를 전쟁목적이 아닌 순수한 우주탐험 내지는 알데바란으로의 우주여행 등에 대하여는 생각할 여유가 없이 되었다. 그런데 항공기제작자 안드레아스 에프 (Andreas Epp)는 비행기를 제작하다가 1939년부터는 둥근비행체를 젯트엔진으로 추진하는 방법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비록 우주의 장거리 여행에는 부적당하나 전쟁에 사용될 수 있으며 제작비용도 저렴하여서 힘믈러와 카나리스는 에프의 비행체에 더 관심을 두게 된다. 결국 툴레협회나 브릴여인들의 외계인 기술인 전자기력을 사용하는 것은 우선 제작하는데에 경비가 많이 들고 또 실제로 전쟁에 사용되기는 어려운 비행체라고 하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힘믈러와 카나리스는 더 이상의 자금지원을 할 수가 없다고 하는 입장을 툴레협회와 브릴여인들에게 서면으로 통보하였다. 마리아를 비롯한 브릴여인들에게는 히틀러가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전쟁에 사용될 수 있는 중무장한 비행체를 만드는 것보다는 하루속히 거대한 하우네부 3 이나 VRIL-7 과 같은 우주비행체를 만들어서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가는 지구를 떠나서 영원히 행복한 이사이(ISAIS)의 나라인 알데바란으로 우주여행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생각에 합의하게 된다.

 

 


   

하우네부 II 1943년도에 제작이 완성되어서 52시간의 실험비행을 마쳤으며 직경은 26미터이고속도는 6000km/h 이다. 9명이 탑승할 수가 있다. 그리고 하우네부 III 1945년도에 완성되어서 102시간 실험비행을 마쳤으며 직경은 71미터이고 38명이 탑승할 수가 있다. 이러한 거대한 둥근비행체를 1945년도에 완성하고나서 브릴여인들은 19454월에 지구를 떠나서 알데바란으로 우주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고 전해온다. 하우네부 III 보다 더 큰 VRIL-7 ODIN 은 직경이 102미터

 



이고 실험비행을 위하여서 베를린-브란덴부르그를 떠나서 남극대륙으로 비행하였다고 한다. 80명이 탑승한 VRIL-7 ODIN은 속도가 40,000km/h 로서 차원통로에 진입할 수 있는 확률이 100%라고 한다. 브릴여인들 40명과 나치독일의 수뇌들 40명 합하여 80명이 30분만에 남극대륙으로 비행하여서 그곳의 211기지에서 쉬었다가 다시 알데바란으로 여행한 것으로 상상해 본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확증은 없다.






VRIL-7 ODIN 이 지구의 중력을 벗어날 수 있는 속도 40,000km/h 를 가지고 지구를 벗어난다고 하면 성층권을 지나자마자 차원통로에 진입하게 되는 것은 오늘날 웜홀의 이론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알데바란에까지 68광년이나 되는 먼거리를 2 3 년의 우주여행에서 도착할 수가 있을 것이다. 명 공군 파이롯트 지그룬 폰 엔슈테텐이 직접 VRIL-7 ODIN 을 조정하고 마리아 오르시치를 비롯한 브릴여인들이 모두 다 1945년에 알데바란으로 떠났다고 한다면 71년이 지난 오늘날 그들은 알데바란에 도착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비록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운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차원통로 (웜홀) 내에서는 우주시간 개념이 달라지고 우주공간개념도 달라져서 알데바란에 지구시간으로 2 3 년의 운행기간이면 도착이 가능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이사이(ISAIS)가 영원히 늙지 아니하는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알데바란에서 여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렇게 간곡하게 채널링을 통하여서 마리아에게 교신한 보람이 있다고 여길 것이다. 우주의 에너지의 존재를 믿는 브릴여인들이 알데바란에서 행복하게 그들의 젊음을 영원히 유지하면서 복잡다단한 지구에서의 생활을 다 잊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줄로 믿는다.

출쳐https://www.scribd.com/document/318543369/The-Vril-Woman-Maria-Orsic

옮김이 깨달음디자이너->우주 비행에 변수 방사능 생명유지기능 산소공기, 몇칠만에 도착한다면 몰라도 3년이란 새월은 그들은 우주 미아가 되거나 굶어죽을 가능성, 차원이동시 무시간이라면 모를까?

생명유지에 필요한 메시지도 기술도 적용되었다면 모를까?

근처 외계인 도와준다면 모를까?

불가능에 가깝다.

중력을 벗어날 수 있는 속도 40,000km/h에서 차원이동에 대한 기술적 이론적으로 미흡하다.

그 알데바란 설계도는 어디로 갔을까?

마리아가 일부로 나치에 인도한 반중력체가 전쟁에 적합하지않도록 설계를 주문했을지도 모른다.


----

마리아 오르시치는 채널링과 초지각을 갇춘 여자로 보입니다.

당시 1~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대전세계에서 서방세계는 정치적 혼돈기이기때문에

보통 심령가가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 개입하는 것은 옳지않지만,

그당시는 일부 지식인들 층에 오컬트 신비주의가 유행하던 시대였기에  

오컬트는 '오컬트 과학'으로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깨달음디자이너:--> 오컬트

 

오컬트란 주로 서구문명의 신비주의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주로 오컬트는 마법이나 주술등을 가리키는 뜻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오컬트는 두 부류로 나눌수 있는데요.

그것은

상위 오컬트와 하위 오컬트입니다.


상위 오컬트 부분은 동양사상이 말하는 () 또는 깨달음에 관련이 깊고,

서구에는 '그노시스 영지주''연금술' 비의 '이집트 신비주'의 유대신비주의 '카발라'등이 속합니다.

19세기 20세 초 신성한 지혜 뜻을 가진 신지학창립자 마담 헬레나 블라바츠키 러시아계 미국 이민자입니다.

초기는 인지학 색채학의 창시자 중 루돌프 슈타이너도 창립 맴버이자만 이 둘은 갈라졌습니다.

   

대부분 서양 오컬트 영역은 진동수준이 질적으로 하위 차원에 속해 있습니다.

주로 아스트랄차원(마음계)와 멘탈계에 속한 지식들이 많습니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민간 하위 오컬트적인 요소들 신화 비의 점성술 타로카드 주술 백마법 흑마법 이러한 것을 포함하고, 더 하위로 내려가면 무분별한 심령주의가 판을 치는데, 귀신 유령 악마 이런 자동구술 하위 심령학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밀 오컬트 조직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이러한 추종자들은 대부분 인간의 욕망에 사로잡혀있고, 순수한 오컬트를 변질시키고 오컬트 과학을 남용하는 사례로 접어들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모든 계층에 이러한 오컬트 비술을 연구하거나 공부하거나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것을 직접으로 삶에 적용할 때 대부분 Master 마스터 깨어있는 경지의 마스터가 지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욕망 마음에 의해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이죠.

불교의 시초 석가모니 부처 물질적 육체의 '고타마 시타르타'가 나타나기전

당시 인도는 베다에 기초한 종교가 성행했고, 힌두교라는 수 많은 다신관을 만들었습니다.

초기 이들 수행자라기 보다 심령가 심령술사에 가까웠는데,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향정신성물질 특정한 약초뿌리등을 이용한 (일반마약아님)의 심령체험을 유도하는 환각 유발하여 뇌를 자극해서 아스트랄계 심령체험을 유도해서 그러한 신화적 지식들이 힌두교 문화가 나타나는데 기초적인 역활을 합니다.

책 '환각의 우연을 넘어'에서도 서구에 원주민들이 샤먼이 환각제 심령유도물질을 이용해서 그러한 심령언급합니다. 이러한 것이 나중에 CIA와 의료계에 암암리 LSD 임상시험등에 나오는데 유사성질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유뷰브에서 본 영상에는 원주민들 약물중에 마약중독을 끈는 약제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성경 신약에 뿌리인 구약 2000년전 지구 진동상태나 또는 유대교가 나왔던 시대에 유대교는 중동 아랍의 신화와 역사를 각색하여 만들었다는 것이 이스라엘 유대교학자들이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때 특별한 심령능력을 가진 자들중에는 오늘날 채널링메시지 처럼 야훼, 여호와 라는 그들의 유대교적 신에 대한 계시나 메시지를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그때 당시는 야만인이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인격적인 신관에 야훼는 분노하고 시기하고 타인종에 대해 남자와 아이는 죽이고 여자는 전리품으로 팔아라 라는 그러한 사마귀신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신약성경은 예수그리스도 말씀을 따라야 하는데, 유대교 구약에 기초한 것들이 텍스트들이 많습니다.


예수도 모세와 유대교를 부정했습니다.

결국은 십자가형에 처해졌지만 말이죠.


그러므로 진동층이 떨어지는 4차원 아스트랄계 하부 저급한 외계인과 관련을 맺는데 대부분이 Anunnaki와 관련이 깊습니다.


이것이 무분별한 심령주의 태동시기 원시샤머니즘입니다.


모세도 4차원 아눈나키 원혼에서 지구에 환생했다고 다른 고차원 존재가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특별한 수련을 하고 각종 지식과 유대인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간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인들처럼 신전을 지으려고 했는데, 그들의 육적DNA가 맞지 않아 실패하고 맙니다. 이집트 기자 대피라미드들과 그외 기술들은 대단히 진보된 문명이 신성한 수학적 비의로 만든 것이라서 모방이 어렵습니다. 물론 모세가 피라미드를 짓는게 아니라 신전을 건축하려고 했지만, 실패합니다.


보통 오늘날 이슬람 성지들이 있고, 유대인들의 성지들도 존재하는데 특별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을 선점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