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정미년(1907) 가을, *월 *일 *시에 상제님께서 순창 농바우 박 장근의 집에서, 천지 대신문을 여시고 천지공사를 집행하시니라. 법을 베푸시니 마 장군이오, 24 방위요, 인경(종)이요, 장군갑주라 말씀하시되, “이곳에 큰 기운이 묻혀 있으니 이 기운을 뽑아서 쓰리라.” 말씀하시되, “전 명숙, 최 익현은 그 운이 아니오, 그 사람이 아닌지라, 고로 이곳에서 해를 당했느니라.(둘 다 이곳에서 사로잡힘)” 시를 읊어주시니,
*온갖 영웅들이 조선강산 곳곳에서 헛되이 허송세월하니(英雄消日大中華)
*사해창생만 모두 추풍낙엽(바둑의 사석)이로다(四海蒼生皆落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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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未秋 月 日 時 大先生 在淳昌籠岩 開天地大神門 行天地大公事 設法 馬將軍 二十四方位 人磬 將軍甲胄 曰 此地 有大氣 拔而用之 曰 全明淑 崔益鉉 非其運也 非其人也故 於此地 受害 詠詩 英雄消日大中華 四海蒼生 皆落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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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전경> *이날 참석한 사람은 형렬, 공신, 광찬, 원일, 도삼, 응종, 갑칠, 장근 등 이러니 이윽고 최수운과 전명숙의 원을 끌르신다 하사 사명기(司命旗)를 한 개씩 만들어서 높은 솔가지에 달아매시고 방 한가운데 짚을 많이 묶어놓고 또 종이로 송낙(승려가 평상시에 납의(衲衣)와 함께 착용하는 모자로 송라립(松蘿笠)이라고도 함)을 많이 만들어 놓고 그 아래 식혜를 놓았느니라.
상제님께서 양지로 꽃갈을 만들어 마장군(馬將軍)이라고 써서 문지방 위에 걸으시고 또 짚으로 두 아름쯤 되게 잉경(종)을 만들어 방 가운데 달아매고 백지로 돌려 바른 뒤에 이십사방위 자를 돌려쓰시고 또 간간이 다른 글자도 쓰시고 그 위에 양지를 비늘같이 오려서 돌려 붙이시니 그 모양이 쇠 비늘을 잇대어 붙인 갑옷과 같으니라. (이는 차경석을 병판감이라 하시고 곤이내는 짐이 제지하고 곤이외는 장군이 제지한다는 의미에서 처결하신 것. 마장군을 문지방위에 걸어 곤이내와 곤이외를 상징시키심. 대궐곤, 문지방 곤)*
<도전>*일찍이 전명숙은 신묘(辛卯 : 道紀 21, 1891)년부터 3년간 서울을 오르내리며 흥선대원군을 만난 일이 있더니 대원군이 명숙의 뜻을 물은즉 “제 흉중(胸中)에 품은 뜻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한 번 죽고자 하는 마음뿐이오.” 하고 대답하니라. 증산께서 명숙과 나이 차이는 많이 나나 일찍부터 교분이 있으시더니 갑오년에 하루는 명숙이 찾아와 말하기를 “내가 민생을 위해서 한번 거사를 하려 하니 그대가 나를 도와주시오.” 하거늘 증산께서 그 전도가 이롭지 못함을 미리 아시고 “때가 아니니 나서지 말라.” 하시며 “성사도 안 되고 애매한 백성만 많이 죽을 것이라.” 하고 경계하시니라. 이에 명숙이 대하여 말하기를 “그대가 안 된다면 나 혼자라도 하겠소.” 하고 물러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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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을 명하여 식혜 한 동이를 빚어 넣으라 하신 뒤, 이날 밤 초경에 식혜를 널버기에 담아서 짚으로 만든 종모양의 잉경 밑에 넣으시고) 말씀하시되, “회문 산에 오선위기 혈이 있으니, 이제 바둑의 원조 단주의 해원도수를 이곳에 부치어, 조선의 국운을 정하리라.(*돌리려 하노라)”
말씀하시되, “다섯 신선 중에 한 신선은 주인이라 수수방관할 따름이요, 네 신선은 대국하여 서로 싸워 승부가 지지부진하여 세월만 천연하니 최수운(일본명부대왕)을 불러들여 증인으로 세워 판결하리라.” (최수운을 증인으로 세워 일본으로 넘기려 하노니 이 식혜는 곧 최수운을 대접하려는 것이로다. 너희들 중에 그 문집에 있는 글귀를 아는 자가 있느냐. 몇 사람이 대하여 여쭈기를, “기억하는 구절이 있나이다.” 상제님께서 양지에 -걸군(乞軍)굿 초라니패 남사당 여사당 삼대치-라 쓰시며)
-曰 回文山 有五仙圍碁 碁祖丹朱之解寃度數 付之於此 定朝鮮國運 曰 五仙之中 一仙 爲主 垂手傍觀 四仙 對局相爭 勝負 遲遲不進 遷延歲月 招崔水雲 立證判決-
가사를 가르치시고 말씀하시되, “이 글이 주문이라 외울 때에 웃는 자가 있으면 즉시 죽으리니 주의하라. 또 고저청탁의 곡조가 있나니 외울 때에 곡조에 맞지 아니하면 신선들의 웃음을 받으리니 곡조를 잘 맞추라.” 말씀하시되, “내가 먼저 이를 선창하리니, 너희들은 따라서 부르라.”
노래를 마치심에 문득 냉기가 엄습하는지라 말씀하시되, “최수운이 왔으니 필히
조용히 들어보라. 무슨 말이 있으리라.” 잠시 뒤에 종이로 만든 잉경(종) 위에서 소리가 들려오니 그 가사에 말하기를, “가장이 엄숙하면 그런 빛(기색)이 왜 있으리, (이내수치 씻어주면 그 아니 성덕인가)” 모든 성도들에게 물어 말씀하시되, “이 가사가 어디에 있느냐.” 대하여 여쭈되, “동학가사에 있나이다.”
-敎歌詞 曰 歌此也 有笑者 立死 亦有高低淸濁 不合曲調 受仙笑 曰 我先歌之 汝衆 隨唱 歌罷 忽冷氣 襲入 曰 水雲 來 須靜聽 有言 俄而 磬上 聲出 其歌 曰 主人 爲嚴肅 其然之色 何有 問諸弟子 曰 此歌 安在 對曰 在東學歌詞-
(그 설비한 모든 물품을 불사르시고) 잠시사이에 잉경을 향하여 많은 말씀으로 명하시니, 언어는 조선말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니라. 말씀하시되, “조선을 잠시 타국에게 의탁하여 천운을 기다리게 하리니,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이 달라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오, 청국으로 넘기면 그 나라 백성이 우둔하여 능히 감당을 못할 것이오,
일본으로 넘기면 임진란(1592) 후로 그 나라 도술신명들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이제 그들에게 넘겨주어 척을 풀리라. 그러므로 잠시 그들에게 천하 통일지운(천하통일 기운)과 일월 대명지기(일월의 밝은 기운)를 잠시 그들에게 부쳐주어 천하사의 큰일을 맡아 사역케 하노라.”
-少焉 向磬命之多言 不知言語 似非鮮語 曰 朝鮮 暫與他國 以待天運 與西國 以人種之殊 有差別虐待之甚 與淸國 厥國之民 愚鈍 不能堪當 與日本 壬辰之後 厥國道術神明 有作戚 爲解戚 是故 天下統一之運 日月大明之氣 暫賜於彼 服天下之役事-
말씀하시되, “그러나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자라, 만일 어질 인자까지 부쳐주면 천하는 다 저희들 것이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어질 인자는 너희들에게 부쳐주나니, 오직 어질 인자를 잘 지키라.
너희들은 지극히 편한 사람이오, 저들은 곧 너희들의 일꾼이니 모든 일을 분명히 잘하여주고, 갈 때는 품삯도 받지 못하여 마땅히 빈손으로 돌아가리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가히 베풀 것이 없으니 언덕이라도 후하게 베풀라.“
-曰 然而不可與者 有一 仁字也 若與仁字 天下 爲彼之有 是以 與仁字於汝衆 善守之 汝衆 至便之人 彼 爲汝役軍 諸事 明處 不受雇價 終當空手歸國 是故 汝之衆 無可施 厚施言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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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농바위를 떠나 순창 피노리 이남기(화춘)의 집에 이르사 누런 개 한 마리를 잡게 하시고 술 한 동이를 받아오게 하시고 또 뒷산 솔밭 속에서 가장 큰 소나무 한주를 베어오라 하시고 남방 황토를 파오라 하사 백지 석장을 청, 홍, 황 삼색으로 물들여서 연폭(連幅)하여 베어온 소나무 위 가지에 달으시고 또 백지 석장에 각기 시천주를 쓰시고 황토를 조금씩 싸서 함께 내려 달은 뒤에 집 앞에 세우시니 깃대와 같은지라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전 명숙이 이곳에서 잡혔는데 사명기(司命旗)가 없어서 한을 품었나니 이제 기를 세워 해원시키노라. 또 개정국은 인간에게 먹는 음식인데 도가에서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또한 한이 붙어 있나니 이제 이 국을 먹는 것은 해원 겸 개정하려 함이로다.”
하시고 나누어 먹으신 뒤에 남기를 명하사 돈 설흔 석 냥을 모든 물품 둔 곳에 같이 두게 하시고 성도들은 다 돌려보내시고 오직 공신만을 머물러두시니라. 이 뒤에 공신으로 하여금 돈 설흔 석 냥을 지니게 하시고 피노리를 떠나 태인 행단 앞 주막에 이르사 술을 찾으시니 주모가 술이 없다고 대답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되, “이런 주막에 어찌 술이 없으리오.”
주모가 대답하되, “물을 붓지 아니한 새 독 술은 있나이다.” 말씀하시되, “술은 새 독 술이 좋으니라. 안주가 있어야 하리니 돝(돼지) 한 마리를 잡으라.” 하시고 글을 써서 주모를 주어 도야지 막 앞에다 불사르시니 돝이 스스로 죽는지라 주모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돝을 잡아서 삶을 때에 누구든지 먼저 고기를 맛보면 죽으리니 주의시키라“ 하시니라.
돝을 다 삶은 뒤에 그릇에 담아 뜰 가운데 놓고 술은 전주(全酒)로 걸러서 마루위에 놓고 글을 써서 주인을 명하여 뜰 가운데 불사르신 뒤에 공신과 주인과 참관한 마을 사람들과 행인들과 더불어 술과 고기를 같이 드시고 큰소리로 웨쳐 말씀하시되, ”무엇을 더 요구하느냐. 글자 한자에 하나씩만 가져가면 족하리라.“ 하시니라. 밤을 지내시고 아침에 술과 고기값으로 설흔 냥을 주신 뒤에 행단을 떠나 솔밭 속으로 지나시다가 문득 큰 소리로 ”이놈이 여기 있도다.“ 하시니 공신이 놀래어 옆을 보니 동자석이 서 있느니라.
원평으로 행하시며 공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뒷날 보라. 그곳에 일본군사가 매복하여 있으니 여러 천명이 상할 곳이라. 그러나 글자 한 자에 하나씩밖에 죽지 않게 하였노니, 저희들이 알면 나를 은인으로 여기련마는 누가 능히 이를 알리오.“ 하시더니 그 뒤에 일진회원 수천 명이 떼를 지어 이곳을 지나는데 일본군사가 의병인 줄 알고 총을 쏘아 스물 한명이 죽으니라.
농바우에서 수일 동안 공사를 행하시고 돌아오실 때에 글 한 수를 외우시니 이러 하노라.
(차경석 운명시)
*큰 뜻을 품고 천하를 경륜하다가 불의에 쇠패함으로(經之營之不意衰)
*천하사를 도모하려던 큰 그릇이 늙어 천하대병을 맺으리라(大斛事老結大病)
*천지가 돌보아 주려해도 마침내 사경에 이르니(天地眷佑境至死)
*다만 남은 복이란 어린 자손들로 하여금 장사지내는 것 뿐이로다(漫使兒孫餘福葬)
원평을 지나 신암 주막에 이르사 말씀하시되, “들으니 (의암) 손병희가 전주에 왔는데 서울에 교당을 짓는다 빙자하고 그 부하인 어린 아해들 옷고름에 채운 돈까지 떼어다가 큰 집과 작은 집을 거느리고 행락하며 온 부하들을 망친다 하니 그 무능함을 가히 알지라.
만일 재능이 있으면 천하 집이 모두 저의 집이 될지니 집을 지어 무엇 하리오. 이제 호남 각지를 돌면 그 부하들은 다 망하리라. 이제 누구든지 몽둥이를 들어 그 머리를 치며 네 재능이 무엇이건데 부하들을 그다지 망치느냐고 꾸짖으면 대답하지 못하고 돌아가리라.“
응종이 몽둥이를 들며 여쭈어 가로대 제가 쫓아가서 그리하겠나이다. 말씀하시되, ”네가 진실로 쾌남자로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되, ”저희들은 다 구암이오, 이곳은 신암이니 곧 도안(都安:都는 모두(All)의 뜻이니 根於女姓(姜)成於女(安)의 安家공사니 “무당의 집에 가서 빌어야 살리라”에서 安가는 본래 집안에 계집이 있어 무당 성씨라 세속에서 말함)의 집이니라.“ 하시니라. 이때에 손병희가 호남지방을 순회하려다가 뜻밖에 예정을 변경하여 돌아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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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 년(1907) 겨울 11월에 구릿골에서, 김형렬 성도- 이보다 먼저 순창 농바우에
서 명을 받고 광찬과 도삼을 데리고 구릿골로 돌아가 3인이 각기 종이 한 방촌을 끊어서 모실 시(侍)자 한 자를 쓰고 한 사람이 하루에 4백자를 써서 사방의 벽에 붙이니, 하루에 총 수가 천 이백 자라, 하루에 조석으로 매일 두 차례씩 한 번에 청수 24그릇을 받들고, 하룻밤 칠성경 37편(대순전경 21회)을 읽어 10일에 그치니, 글자의 총수가 일만 이천 자라, 명을 기다리더니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성천 강선루는 허 미수가 중창(중수)하여 일만 이천 칸 고물은 녹 줄이 붙어있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은 겁살이 끼어 있나니 이제 그 겁살을 벗기리라.”
-丁未冬十一月 在銅谷 弟子 先時 在淳昌籠岩 受命 來銅谷 弟子 三人 折紙一方寸 書侍一字 一人 一日 書四百字 付四壁 一日總數 千二百字 一回 奉淸水二十四器 一日 行朝夕二次 一夜 讀七星經三七遍 十日 乃止 字之總數 一万二千字 待命 曰 成川降仙樓 許眉未 重創 一萬二千間 祿之付在 金剛山一萬二千峰 蔽劫 今 脫其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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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원경> 증산(甑山)께옵서 신도(信徒) 사인(四人)에게 명(命) 하사 “일시내(一時內)에 시자(侍字) 만이천자(万二千字)를 기록(記錄) 하라” 하시며, 지편(紙片)을 절단(絶斷)하야 주신 중(中) 일매(一枚)가 부족(不足) 한지라, 추심(推尋) 즉(則) 욕리(褥裡:요 속)에 입재(入在)한지라 후(後)에 양일두(羊一頭)를 포지(捕之:잡아)하야 기혈(其血)을 시자두(侍字頭)에 지점후(指点後) 신도(信徒)에게 “하물여야(何物如也:무엇과 같으뇨)오”
문(問) 한즉, 개위부답이(皆爲不答而:모두 아무대답 없으므로) 증산(甑山)께서 “아라사(俄羅斯:러시아) 병정(兵丁) 같다” 하시며 “금강산(金剛山) 일만이천봉(一万二千峰) 겁기(劫氣)를 제거(除去)한다”하시니라. “금강산(金剛山) 겁기(劫氣)로 아세강성고(俄勢强盛故)로 겁기(劫氣)를 제지(除之)하야 아세(俄勢)를 진압(鎭壓)하난 공사(公事)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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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평 신암을 떠나 구릿골에 이르사, 흰 양 한 마리를 잡아 일만 이천 모실 시 자 머리위에 손가락으로 선혈을 찍어 바르시니 일만 이천 글자 수가 다함에 피도 또한 다하니라. 글자를 가리키시고 말씀하시되, ”글자 모양이 아라사(러시아) 병정과 같느냐.“ 대하여 여쭈기를, ”그러하나이다.“ 말씀하시되, ”아라사 병정이 내 군사가 되노라. 물을 담는 사기(沙器:邪氣)그릇은 김제로 옮겨 후일을 준비하리라.(용화동의 도판이 20년 말점도 도수에 의해 유기됨을 상징/금산圖得문제)“ 잠깐사이에 김제인 임상옥이 내알하거늘 사기를 구탕에 씻으사(邪氣를 壬戌 개띠 성인의 기운으로 씻으심) 이를 주시고 말씀하시되, ”나라에 장차 백성을 크게 사용하여 부역시키리니 그때를 당하여 이 그릇을 가히 사용할지니라.“
-屠白羊一首 鮮血 打點侍字之首 萬二千次 其血 盡 指字 曰 字樣 如俄之兵丁乎 對曰 然 曰 俄兵 爲我軍 盛水之器 送金堤 爲後日之備 少焉(金堤人林相玉 來謁 洗器狗湯 與之 曰 東土 將大用民役 當其時 此器 可用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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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원경>*증산(甑山)께서 원평(院坪)에서 공사(公事)를 행(行) 하시난대, 농기(農器-사발) 이십사개(二十四介)에 개정국을 묻혀서 김제(金提) 신도(信徒) 김 상국(金相國)에게 시키며 김제(金提) 시장(市長)에 가서 매각(賣却)하라 하시니라. 이 공사(公事)난 장차(將次) 고씨(高氏)께서 김제(金提)로 이주(移住) 하사 작농(作農) 이십 사 두락(二十四斗落) OO이며 개정국 일은 조종리(祖宗里)에서 도국개정(道局改政)의 공사(公事)인 듯 하도다.(임 상옥 공사와 별도 공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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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물어 여쭈기를, “갑진(1904)공사에 러일전쟁을 붙이도록 명하시고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사, 일본사람을 천하의 일꾼으로 내세우시더니, 지금에 와서 아라사(러시아) 군사가 내 군사가 된다 하시니 어찌된 연고이나이까?”
말씀하시되, “내게 구정과 신정의 이정(二政)이 있으니, 구 러시아군(구 소련)이 패하지 않으면 새 러시아군(민주 러시아)이 일어나지 못하노라. 구 정사는 천하의 폐단이 되고 새 정사는 천하의 새로움을 힘쓰노라.”
말씀하시되, ”입을 곤륜산처럼 무겁게 하라. 아라사 병사가 수도 한경(서울)으로 들어올 날이 있으리니, 너희들이 가서 방문하면 너희들을 존경하여 서로 경배하리라.“ 말씀하시되, ”아라사 병사가 한경으로 들어오면 내 일이 이루어지노라.“
말씀하시되, ”병란병란(兵亂病亂)이 동시에 일어나노라.” 말씀하시되, “아라사 병사가 와서 한경(서울)에 머물면, 천하의 운세가 너희들에게 돌아가나니 내 일은 일시에 이루어지느니라.”
-弟子 問曰 甲辰公事 命作俄日大戰 助日退俄 日人 爲天下役軍 今 俄兵을 爲俄(我?)軍 何以乎 曰 俄 有二政 舊俄 不敗 新俄 不起 舊政 爲天下之弊 新政 役天下之新 曰 口重崑崙山 俄兵 有入韓京之日 汝之徒 往訪 敬汝相拜 曰 俄兵 入韓京 我事 成 曰, 兵亂病亂 同時 發 曰 俄兵 來在韓京 天下之勢 歸汝徒 我事 一時以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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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전경>*형렬의 종제 준상(俊相)의 아내가 좌우 발바닥에 종창이 나서 모든 약에 효험을 보지 못하고 마침내 사경에 이르렀거늘 준상이 사방으로 의원을 찾아 의논하니 어떤 의원이 말하되 그 종처가 곧 용천혈이라 다스리기 어려우나 만일 정성을 다하여 고치려 할진대 돈 백 냥이 들어야 하리라 하는지라.
준상이 돌아와서 탄식하여 가로대, 집이 가난하여 돈 백 냥을 판출(辦出)하기 어려우니 집을 팔 수 밖에 없다 하더니, 상제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준상을 불러 물어 말씀하시되, 반드시 집을 팔아야 병 치료를 하겠느냐.
대하여 가로대 집을 파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나이다. 말씀하시되, 진실로 그러할진대 집문서를 써오라. 내가 그 의원을 대신하여 고쳐 주리라. 준상이 곧 문서를 써 올
리니 상제님께서 받아서 불사르시고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그 종처를 만져 낫게 하신 뒤에 그 집은 준상으로 하여금 전과 같이 살게 하시고 다만 머리방 한 칸만 수리하여 약방을 차리시니라.*
<동곡비서>*하루는 동곡약방에 계시사 약방 주인 김준상이 무식한 고로 선생님 앞에 와서 “저의 처가 발이 아픈지가 우금 일 년이 지났는데도, 발이 점점 썩어서 냄새가 나서 살 수가 없읍니다. 발은 영영 버렸으나 사람이 차마 볼 수 없고 해서 약국 의원에게 보이니, 돈 150냥만 있으면 발은 버리나 사람은 살리겠다 하기로 달리는 할 수 없고 집을 잡힐까하니, 집문서를 하여주고 돈을 얻고자하니 계약을 써주소서.”
하니, 선생님이 들으시고 “준상아. 네가 너의 아내 발 낳술려고 집을 잡히려 하는구나.”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너의 집을 나한테 잡히라. 너의 아내 병을 고치려고 집을 잡히려하니, 너의 아내 병만 나으면 그만이로구나.” “예. 그렇습니다.” 준상이 선생님 앞에 집문서를 해서 올리니, 선생께서 받으시고 “내일부터 병을 나순다. 그리 알라” 하시더니, 과연 일 년이 넘도록 낫지 못하고 썩은 발이 보름 만에 완쾌하는지라.
준상의 아내가 나와서 백배사례하며 좋아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며 “세상은 저렇도다. 몰라서 욕을 하지, 알고 보면 누구나 물론하고 저토록 좋아할지라. 병이 들어 죽게 된 놈, 병만 나사주면 그만이지. 만법 가운
데 의통법(醫統法)이 제일이로구나.” 하시더라.*
<대순전경> *구릿골 이 재헌(李載憲)의 아내가 병들어서 수년 동안 앓음에 수척하여 뼈만 남았거늘 재헌이 상제님께 와 뵈옵고 고쳐주시기를 청하니 말씀하시되, 그 병은 병자가 평소에 남에게 욕설을 많이 하여 그 보응으로 난 것이니 날마다 회개하면 병이 저절로 나으리라. 재헌이 명하신대로 그 아내를 효유하여(깨우쳐) 날마다 허물을 뉘우치게 하였더니 그 뒤로 곧 나으니라.
용암리(김 사유의 물방앗간 집) 앞 주막에 지나실 새 그 주모가 연주나력(연주창)으로 여러 해 동안 신고(辛苦:힘들게 고통받음)하다가 상제님께 고쳐주시기를 애걸하거늘 상제님께서 글을 써서 그 집개에게 던지시니 개는 곧 엎어져 죽고 주부의 병은 곧 나으니라.*
<대순전경>*정미(道紀 37, 1907)년 섣달에 상제님께서 고부 와룡리(臥龍里) 신경수(申京守)의 집에서 공사(公事)를 보실 때 원일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일찍이 동천(東天)을 향하여 붉은 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앉은 사람에게 사배(四拜)한 일이 있으니 이제 다시 그와 같이 절하라. 내가 곧 그 사람이로다.”
하시니 원일이 곧 일어나서 사배(四拜)하거늘 추종성도들이 원일에게 연고를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연전(年前)에 우연히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더니 정신이 황
홀한 중에 어떤 사람이 사인교(四人轎)를타고 와서 내게 말하되 ‘네가 새 옷을 입고 문밖에 나가서 동천(東天)에 붉은 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앉은 어른에게 절하라.
그러면 네 병이 나으리라.’ 하므로 그 말대로 새 옷을 입고 문밖에 나가서 동천을 바라보니 과연 붉은 옷을 입고 (“나는 三離火니라”는 말씀 기억) 구름을 타고 앉은 어른이 계시므로 사배(四拜)를 올렸더니 그 때부터 병이 곧 나았는데 집안사람들은 새 옷 입고 밖에 나가는 것을 해괴하게 여겼다.” 하니라.*
정미년(1907) 가을, *월 *일 *시에 상제님께서 순창 농바우 박 장근의 집에서, 천지 대신문을 여시고 천지공사를 집행하시니라. 법을 베푸시니 마 장군이오, 24 방위요, 인경(종)이요, 장군갑주라 말씀하시되, “이곳에 큰 기운이 묻혀 있으니 이 기운을 뽑아서 쓰리라.” 말씀하시되, “전 명숙, 최 익현은 그 운이 아니오, 그 사람이 아닌지라, 고로 이곳에서 해를 당했느니라.(둘 다 이곳에서 사로잡힘)” 시를 읊어주시니,
*온갖 영웅들이 조선강산 곳곳에서 헛되이 허송세월하니(英雄消日大中華)
*사해창생만 모두 추풍낙엽(바둑의 사석)이로다(四海蒼生皆落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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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未秋 月 日 時 大先生 在淳昌籠岩 開天地大神門 行天地大公事 設法 馬將軍 二十四方位 人磬 將軍甲胄 曰 此地 有大氣 拔而用之 曰 全明淑 崔益鉉 非其運也 非其人也故 於此地 受害 詠詩 英雄消日大中華 四海蒼生 皆落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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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전경> *이날 참석한 사람은 형렬, 공신, 광찬, 원일, 도삼, 응종, 갑칠, 장근 등 이러니 이윽고 최수운과 전명숙의 원을 끌르신다 하사 사명기(司命旗)를 한 개씩 만들어서 높은 솔가지에 달아매시고 방 한가운데 짚을 많이 묶어놓고 또 종이로 송낙(승려가 평상시에 납의(衲衣)와 함께 착용하는 모자로 송라립(松蘿笠)이라고도 함)을 많이 만들어 놓고 그 아래 식혜를 놓았느니라.
상제님께서 양지로 꽃갈을 만들어 마장군(馬將軍)이라고 써서 문지방 위에 걸으시고 또 짚으로 두 아름쯤 되게 잉경(종)을 만들어 방 가운데 달아매고 백지로 돌려 바른 뒤에 이십사방위 자를 돌려쓰시고 또 간간이 다른 글자도 쓰시고 그 위에 양지를 비늘같이 오려서 돌려 붙이시니 그 모양이 쇠 비늘을 잇대어 붙인 갑옷과 같으니라. (이는 차경석을 병판감이라 하시고 곤이내는 짐이 제지하고 곤이외는 장군이 제지한다는 의미에서 처결하신 것. 마장군을 문지방위에 걸어 곤이내와 곤이외를 상징시키심. 대궐곤, 문지방 곤)*
<도전>*일찍이 전명숙은 신묘(辛卯 : 道紀 21, 1891)년부터 3년간 서울을 오르내리며 흥선대원군을 만난 일이 있더니 대원군이 명숙의 뜻을 물은즉 “제 흉중(胸中)에 품은 뜻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한 번 죽고자 하는 마음뿐이오.” 하고 대답하니라. 증산께서 명숙과 나이 차이는 많이 나나 일찍부터 교분이 있으시더니 갑오년에 하루는 명숙이 찾아와 말하기를 “내가 민생을 위해서 한번 거사를 하려 하니 그대가 나를 도와주시오.” 하거늘 증산께서 그 전도가 이롭지 못함을 미리 아시고 “때가 아니니 나서지 말라.” 하시며 “성사도 안 되고 애매한 백성만 많이 죽을 것이라.” 하고 경계하시니라. 이에 명숙이 대하여 말하기를 “그대가 안 된다면 나 혼자라도 하겠소.” 하고 물러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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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을 명하여 식혜 한 동이를 빚어 넣으라 하신 뒤, 이날 밤 초경에 식혜를 널버기에 담아서 짚으로 만든 종모양의 잉경 밑에 넣으시고) 말씀하시되, “회문 산에 오선위기 혈이 있으니, 이제 바둑의 원조 단주의 해원도수를 이곳에 부치어, 조선의 국운을 정하리라.(*돌리려 하노라)”
말씀하시되, “다섯 신선 중에 한 신선은 주인이라 수수방관할 따름이요, 네 신선은 대국하여 서로 싸워 승부가 지지부진하여 세월만 천연하니 최수운(일본명부대왕)을 불러들여 증인으로 세워 판결하리라.” (최수운을 증인으로 세워 일본으로 넘기려 하노니 이 식혜는 곧 최수운을 대접하려는 것이로다. 너희들 중에 그 문집에 있는 글귀를 아는 자가 있느냐. 몇 사람이 대하여 여쭈기를, “기억하는 구절이 있나이다.” 상제님께서 양지에 -걸군(乞軍)굿 초라니패 남사당 여사당 삼대치-라 쓰시며)
-曰 回文山 有五仙圍碁 碁祖丹朱之解寃度數 付之於此 定朝鮮國運 曰 五仙之中 一仙 爲主 垂手傍觀 四仙 對局相爭 勝負 遲遲不進 遷延歲月 招崔水雲 立證判決-
가사를 가르치시고 말씀하시되, “이 글이 주문이라 외울 때에 웃는 자가 있으면 즉시 죽으리니 주의하라. 또 고저청탁의 곡조가 있나니 외울 때에 곡조에 맞지 아니하면 신선들의 웃음을 받으리니 곡조를 잘 맞추라.” 말씀하시되, “내가 먼저 이를 선창하리니, 너희들은 따라서 부르라.”
노래를 마치심에 문득 냉기가 엄습하는지라 말씀하시되, “최수운이 왔으니 필히
조용히 들어보라. 무슨 말이 있으리라.” 잠시 뒤에 종이로 만든 잉경(종) 위에서 소리가 들려오니 그 가사에 말하기를, “가장이 엄숙하면 그런 빛(기색)이 왜 있으리, (이내수치 씻어주면 그 아니 성덕인가)” 모든 성도들에게 물어 말씀하시되, “이 가사가 어디에 있느냐.” 대하여 여쭈되, “동학가사에 있나이다.”
-敎歌詞 曰 歌此也 有笑者 立死 亦有高低淸濁 不合曲調 受仙笑 曰 我先歌之 汝衆 隨唱 歌罷 忽冷氣 襲入 曰 水雲 來 須靜聽 有言 俄而 磬上 聲出 其歌 曰 主人 爲嚴肅 其然之色 何有 問諸弟子 曰 此歌 安在 對曰 在東學歌詞-
(그 설비한 모든 물품을 불사르시고) 잠시사이에 잉경을 향하여 많은 말씀으로 명하시니, 언어는 조선말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니라. 말씀하시되, “조선을 잠시 타국에게 의탁하여 천운을 기다리게 하리니,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이 달라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오, 청국으로 넘기면 그 나라 백성이 우둔하여 능히 감당을 못할 것이오,
일본으로 넘기면 임진란(1592) 후로 그 나라 도술신명들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이제 그들에게 넘겨주어 척을 풀리라. 그러므로 잠시 그들에게 천하 통일지운(천하통일 기운)과 일월 대명지기(일월의 밝은 기운)를 잠시 그들에게 부쳐주어 천하사의 큰일을 맡아 사역케 하노라.”
-少焉 向磬命之多言 不知言語 似非鮮語 曰 朝鮮 暫與他國 以待天運 與西國 以人種之殊 有差別虐待之甚 與淸國 厥國之民 愚鈍 不能堪當 與日本 壬辰之後 厥國道術神明 有作戚 爲解戚 是故 天下統一之運 日月大明之氣 暫賜於彼 服天下之役事-
말씀하시되, “그러나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자라, 만일 어질 인자까지 부쳐주면 천하는 다 저희들 것이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어질 인자는 너희들에게 부쳐주나니, 오직 어질 인자를 잘 지키라.
너희들은 지극히 편한 사람이오, 저들은 곧 너희들의 일꾼이니 모든 일을 분명히 잘하여주고, 갈 때는 품삯도 받지 못하여 마땅히 빈손으로 돌아가리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가히 베풀 것이 없으니 언덕이라도 후하게 베풀라.“
-曰 然而不可與者 有一 仁字也 若與仁字 天下 爲彼之有 是以 與仁字於汝衆 善守之 汝衆 至便之人 彼 爲汝役軍 諸事 明處 不受雇價 終當空手歸國 是故 汝之衆 無可施 厚施言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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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농바위를 떠나 순창 피노리 이남기(화춘)의 집에 이르사 누런 개 한 마리를 잡게 하시고 술 한 동이를 받아오게 하시고 또 뒷산 솔밭 속에서 가장 큰 소나무 한주를 베어오라 하시고 남방 황토를 파오라 하사 백지 석장을 청, 홍, 황 삼색으로 물들여서 연폭(連幅)하여 베어온 소나무 위 가지에 달으시고 또 백지 석장에 각기 시천주를 쓰시고 황토를 조금씩 싸서 함께 내려 달은 뒤에 집 앞에 세우시니 깃대와 같은지라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전 명숙이 이곳에서 잡혔는데 사명기(司命旗)가 없어서 한을 품었나니 이제 기를 세워 해원시키노라. 또 개정국은 인간에게 먹는 음식인데 도가에서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또한 한이 붙어 있나니 이제 이 국을 먹는 것은 해원 겸 개정하려 함이로다.”
하시고 나누어 먹으신 뒤에 남기를 명하사 돈 설흔 석 냥을 모든 물품 둔 곳에 같이 두게 하시고 성도들은 다 돌려보내시고 오직 공신만을 머물러두시니라. 이 뒤에 공신으로 하여금 돈 설흔 석 냥을 지니게 하시고 피노리를 떠나 태인 행단 앞 주막에 이르사 술을 찾으시니 주모가 술이 없다고 대답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되, “이런 주막에 어찌 술이 없으리오.”
주모가 대답하되, “물을 붓지 아니한 새 독 술은 있나이다.” 말씀하시되, “술은 새 독 술이 좋으니라. 안주가 있어야 하리니 돝(돼지) 한 마리를 잡으라.” 하시고 글을 써서 주모를 주어 도야지 막 앞에다 불사르시니 돝이 스스로 죽는지라 주모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돝을 잡아서 삶을 때에 누구든지 먼저 고기를 맛보면 죽으리니 주의시키라“ 하시니라.
돝을 다 삶은 뒤에 그릇에 담아 뜰 가운데 놓고 술은 전주(全酒)로 걸러서 마루위에 놓고 글을 써서 주인을 명하여 뜰 가운데 불사르신 뒤에 공신과 주인과 참관한 마을 사람들과 행인들과 더불어 술과 고기를 같이 드시고 큰소리로 웨쳐 말씀하시되, ”무엇을 더 요구하느냐. 글자 한자에 하나씩만 가져가면 족하리라.“ 하시니라. 밤을 지내시고 아침에 술과 고기값으로 설흔 냥을 주신 뒤에 행단을 떠나 솔밭 속으로 지나시다가 문득 큰 소리로 ”이놈이 여기 있도다.“ 하시니 공신이 놀래어 옆을 보니 동자석이 서 있느니라.
원평으로 행하시며 공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뒷날 보라. 그곳에 일본군사가 매복하여 있으니 여러 천명이 상할 곳이라. 그러나 글자 한 자에 하나씩밖에 죽지 않게 하였노니, 저희들이 알면 나를 은인으로 여기련마는 누가 능히 이를 알리오.“ 하시더니 그 뒤에 일진회원 수천 명이 떼를 지어 이곳을 지나는데 일본군사가 의병인 줄 알고 총을 쏘아 스물 한명이 죽으니라.
농바우에서 수일 동안 공사를 행하시고 돌아오실 때에 글 한 수를 외우시니 이러 하노라.
(차경석 운명시)
*큰 뜻을 품고 천하를 경륜하다가 불의에 쇠패함으로(經之營之不意衰)
*천하사를 도모하려던 큰 그릇이 늙어 천하대병을 맺으리라(大斛事老結大病)
*천지가 돌보아 주려해도 마침내 사경에 이르니(天地眷佑境至死)
*다만 남은 복이란 어린 자손들로 하여금 장사지내는 것 뿐이로다(漫使兒孫餘福葬)
원평을 지나 신암 주막에 이르사 말씀하시되, “들으니 (의암) 손병희가 전주에 왔는데 서울에 교당을 짓는다 빙자하고 그 부하인 어린 아해들 옷고름에 채운 돈까지 떼어다가 큰 집과 작은 집을 거느리고 행락하며 온 부하들을 망친다 하니 그 무능함을 가히 알지라.
만일 재능이 있으면 천하 집이 모두 저의 집이 될지니 집을 지어 무엇 하리오. 이제 호남 각지를 돌면 그 부하들은 다 망하리라. 이제 누구든지 몽둥이를 들어 그 머리를 치며 네 재능이 무엇이건데 부하들을 그다지 망치느냐고 꾸짖으면 대답하지 못하고 돌아가리라.“
응종이 몽둥이를 들며 여쭈어 가로대 제가 쫓아가서 그리하겠나이다. 말씀하시되, ”네가 진실로 쾌남자로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되, ”저희들은 다 구암이오, 이곳은 신암이니 곧 도안(都安:都는 모두(All)의 뜻이니 根於女姓(姜)成於女(安)의 安家공사니 “무당의 집에 가서 빌어야 살리라”에서 安가는 본래 집안에 계집이 있어 무당 성씨라 세속에서 말함)의 집이니라.“ 하시니라. 이때에 손병희가 호남지방을 순회하려다가 뜻밖에 예정을 변경하여 돌아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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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 년(1907) 겨울 11월에 구릿골에서, 김형렬 성도- 이보다 먼저 순창 농바우에
서 명을 받고 광찬과 도삼을 데리고 구릿골로 돌아가 3인이 각기 종이 한 방촌을 끊어서 모실 시(侍)자 한 자를 쓰고 한 사람이 하루에 4백자를 써서 사방의 벽에 붙이니, 하루에 총 수가 천 이백 자라, 하루에 조석으로 매일 두 차례씩 한 번에 청수 24그릇을 받들고, 하룻밤 칠성경 37편(대순전경 21회)을 읽어 10일에 그치니, 글자의 총수가 일만 이천 자라, 명을 기다리더니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성천 강선루는 허 미수가 중창(중수)하여 일만 이천 칸 고물은 녹 줄이 붙어있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은 겁살이 끼어 있나니 이제 그 겁살을 벗기리라.”
-丁未冬十一月 在銅谷 弟子 先時 在淳昌籠岩 受命 來銅谷 弟子 三人 折紙一方寸 書侍一字 一人 一日 書四百字 付四壁 一日總數 千二百字 一回 奉淸水二十四器 一日 行朝夕二次 一夜 讀七星經三七遍 十日 乃止 字之總數 一万二千字 待命 曰 成川降仙樓 許眉未 重創 一萬二千間 祿之付在 金剛山一萬二千峰 蔽劫 今 脫其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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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원경> 증산(甑山)께옵서 신도(信徒) 사인(四人)에게 명(命) 하사 “일시내(一時內)에 시자(侍字) 만이천자(万二千字)를 기록(記錄) 하라” 하시며, 지편(紙片)을 절단(絶斷)하야 주신 중(中) 일매(一枚)가 부족(不足) 한지라, 추심(推尋) 즉(則) 욕리(褥裡:요 속)에 입재(入在)한지라 후(後)에 양일두(羊一頭)를 포지(捕之:잡아)하야 기혈(其血)을 시자두(侍字頭)에 지점후(指点後) 신도(信徒)에게 “하물여야(何物如也:무엇과 같으뇨)오”
문(問) 한즉, 개위부답이(皆爲不答而:모두 아무대답 없으므로) 증산(甑山)께서 “아라사(俄羅斯:러시아) 병정(兵丁) 같다” 하시며 “금강산(金剛山) 일만이천봉(一万二千峰) 겁기(劫氣)를 제거(除去)한다”하시니라. “금강산(金剛山) 겁기(劫氣)로 아세강성고(俄勢强盛故)로 겁기(劫氣)를 제지(除之)하야 아세(俄勢)를 진압(鎭壓)하난 공사(公事)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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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평 신암을 떠나 구릿골에 이르사, 흰 양 한 마리를 잡아 일만 이천 모실 시 자 머리위에 손가락으로 선혈을 찍어 바르시니 일만 이천 글자 수가 다함에 피도 또한 다하니라. 글자를 가리키시고 말씀하시되, ”글자 모양이 아라사(러시아) 병정과 같느냐.“ 대하여 여쭈기를, ”그러하나이다.“ 말씀하시되, ”아라사 병정이 내 군사가 되노라. 물을 담는 사기(沙器:邪氣)그릇은 김제로 옮겨 후일을 준비하리라.(용화동의 도판이 20년 말점도 도수에 의해 유기됨을 상징/금산圖得문제)“ 잠깐사이에 김제인 임상옥이 내알하거늘 사기를 구탕에 씻으사(邪氣를 壬戌 개띠 성인의 기운으로 씻으심) 이를 주시고 말씀하시되, ”나라에 장차 백성을 크게 사용하여 부역시키리니 그때를 당하여 이 그릇을 가히 사용할지니라.“
-屠白羊一首 鮮血 打點侍字之首 萬二千次 其血 盡 指字 曰 字樣 如俄之兵丁乎 對曰 然 曰 俄兵 爲我軍 盛水之器 送金堤 爲後日之備 少焉(金堤人林相玉 來謁 洗器狗湯 與之 曰 東土 將大用民役 當其時 此器 可用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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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원경>*증산(甑山)께서 원평(院坪)에서 공사(公事)를 행(行) 하시난대, 농기(農器-사발) 이십사개(二十四介)에 개정국을 묻혀서 김제(金提) 신도(信徒) 김 상국(金相國)에게 시키며 김제(金提) 시장(市長)에 가서 매각(賣却)하라 하시니라. 이 공사(公事)난 장차(將次) 고씨(高氏)께서 김제(金提)로 이주(移住) 하사 작농(作農) 이십 사 두락(二十四斗落) OO이며 개정국 일은 조종리(祖宗里)에서 도국개정(道局改政)의 공사(公事)인 듯 하도다.(임 상옥 공사와 별도 공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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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물어 여쭈기를, “갑진(1904)공사에 러일전쟁을 붙이도록 명하시고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사, 일본사람을 천하의 일꾼으로 내세우시더니, 지금에 와서 아라사(러시아) 군사가 내 군사가 된다 하시니 어찌된 연고이나이까?”
말씀하시되, “내게 구정과 신정의 이정(二政)이 있으니, 구 러시아군(구 소련)이 패하지 않으면 새 러시아군(민주 러시아)이 일어나지 못하노라. 구 정사는 천하의 폐단이 되고 새 정사는 천하의 새로움을 힘쓰노라.”
말씀하시되, ”입을 곤륜산처럼 무겁게 하라. 아라사 병사가 수도 한경(서울)으로 들어올 날이 있으리니, 너희들이 가서 방문하면 너희들을 존경하여 서로 경배하리라.“ 말씀하시되, ”아라사 병사가 한경으로 들어오면 내 일이 이루어지노라.“
말씀하시되, ”병란병란(兵亂病亂)이 동시에 일어나노라.” 말씀하시되, “아라사 병사가 와서 한경(서울)에 머물면, 천하의 운세가 너희들에게 돌아가나니 내 일은 일시에 이루어지느니라.”
-弟子 問曰 甲辰公事 命作俄日大戰 助日退俄 日人 爲天下役軍 今 俄兵을 爲俄(我?)軍 何以乎 曰 俄 有二政 舊俄 不敗 新俄 不起 舊政 爲天下之弊 新政 役天下之新 曰 口重崑崙山 俄兵 有入韓京之日 汝之徒 往訪 敬汝相拜 曰 俄兵 入韓京 我事 成 曰, 兵亂病亂 同時 發 曰 俄兵 來在韓京 天下之勢 歸汝徒 我事 一時以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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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전경>*형렬의 종제 준상(俊相)의 아내가 좌우 발바닥에 종창이 나서 모든 약에 효험을 보지 못하고 마침내 사경에 이르렀거늘 준상이 사방으로 의원을 찾아 의논하니 어떤 의원이 말하되 그 종처가 곧 용천혈이라 다스리기 어려우나 만일 정성을 다하여 고치려 할진대 돈 백 냥이 들어야 하리라 하는지라.
준상이 돌아와서 탄식하여 가로대, 집이 가난하여 돈 백 냥을 판출(辦出)하기 어려우니 집을 팔 수 밖에 없다 하더니, 상제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준상을 불러 물어 말씀하시되, 반드시 집을 팔아야 병 치료를 하겠느냐.
대하여 가로대 집을 파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나이다. 말씀하시되, 진실로 그러할진대 집문서를 써오라. 내가 그 의원을 대신하여 고쳐 주리라. 준상이 곧 문서를 써 올
리니 상제님께서 받아서 불사르시고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그 종처를 만져 낫게 하신 뒤에 그 집은 준상으로 하여금 전과 같이 살게 하시고 다만 머리방 한 칸만 수리하여 약방을 차리시니라.*
<동곡비서>*하루는 동곡약방에 계시사 약방 주인 김준상이 무식한 고로 선생님 앞에 와서 “저의 처가 발이 아픈지가 우금 일 년이 지났는데도, 발이 점점 썩어서 냄새가 나서 살 수가 없읍니다. 발은 영영 버렸으나 사람이 차마 볼 수 없고 해서 약국 의원에게 보이니, 돈 150냥만 있으면 발은 버리나 사람은 살리겠다 하기로 달리는 할 수 없고 집을 잡힐까하니, 집문서를 하여주고 돈을 얻고자하니 계약을 써주소서.”
하니, 선생님이 들으시고 “준상아. 네가 너의 아내 발 낳술려고 집을 잡히려 하는구나.”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너의 집을 나한테 잡히라. 너의 아내 병을 고치려고 집을 잡히려하니, 너의 아내 병만 나으면 그만이로구나.” “예. 그렇습니다.” 준상이 선생님 앞에 집문서를 해서 올리니, 선생께서 받으시고 “내일부터 병을 나순다. 그리 알라” 하시더니, 과연 일 년이 넘도록 낫지 못하고 썩은 발이 보름 만에 완쾌하는지라.
준상의 아내가 나와서 백배사례하며 좋아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며 “세상은 저렇도다. 몰라서 욕을 하지, 알고 보면 누구나 물론하고 저토록 좋아할지라. 병이 들어 죽게 된 놈, 병만 나사주면 그만이지. 만법 가운
데 의통법(醫統法)이 제일이로구나.” 하시더라.*
<대순전경> *구릿골 이 재헌(李載憲)의 아내가 병들어서 수년 동안 앓음에 수척하여 뼈만 남았거늘 재헌이 상제님께 와 뵈옵고 고쳐주시기를 청하니 말씀하시되, 그 병은 병자가 평소에 남에게 욕설을 많이 하여 그 보응으로 난 것이니 날마다 회개하면 병이 저절로 나으리라. 재헌이 명하신대로 그 아내를 효유하여(깨우쳐) 날마다 허물을 뉘우치게 하였더니 그 뒤로 곧 나으니라.
용암리(김 사유의 물방앗간 집) 앞 주막에 지나실 새 그 주모가 연주나력(연주창)으로 여러 해 동안 신고(辛苦:힘들게 고통받음)하다가 상제님께 고쳐주시기를 애걸하거늘 상제님께서 글을 써서 그 집개에게 던지시니 개는 곧 엎어져 죽고 주부의 병은 곧 나으니라.*
<대순전경>*정미(道紀 37, 1907)년 섣달에 상제님께서 고부 와룡리(臥龍里) 신경수(申京守)의 집에서 공사(公事)를 보실 때 원일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일찍이 동천(東天)을 향하여 붉은 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앉은 사람에게 사배(四拜)한 일이 있으니 이제 다시 그와 같이 절하라. 내가 곧 그 사람이로다.”
하시니 원일이 곧 일어나서 사배(四拜)하거늘 추종성도들이 원일에게 연고를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연전(年前)에 우연히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더니 정신이 황
홀한 중에 어떤 사람이 사인교(四人轎)를타고 와서 내게 말하되 ‘네가 새 옷을 입고 문밖에 나가서 동천(東天)에 붉은 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앉은 어른에게 절하라.
그러면 네 병이 나으리라.’ 하므로 그 말대로 새 옷을 입고 문밖에 나가서 동천을 바라보니 과연 붉은 옷을 입고 (“나는 三離火니라”는 말씀 기억) 구름을 타고 앉은 어른이 계시므로 사배(四拜)를 올렸더니 그 때부터 병이 곧 나았는데 집안사람들은 새 옷 입고 밖에 나가는 것을 해괴하게 여겼다.”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