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世大丈夫무극대도인
징기즈대한 (sunkore****)
[자료]봉우 권태훈 선생의 한민족 미래와 무극대도인 예언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유명한 19세기말 한국이 낳은 세계적 사상가이자 도인이며 선지자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도 또한 세계의 변혁기에 우리나라에서 전인류의 위대한 성인(聖人)이 나오리라는 것을 예언한 바 있으며, 그가 5만년 무극대도 - 장차 인류에게 다가올 평화세계를 상징함 -를 이끌어나갈 만세 대장부라 설파하였다.
지구적 차원의 만세 대장부(萬世大丈夫)-하나로 융합할 동방의인 무극대도인
인류만민의 뇌와 하나로 연결되는 인터넷시대에 출현하게 되는 대도인은 어디에서 출생하는가? 마땅히 인류문명과 한민족의 뿌리땅에서 출생한다.
"무극 대도인이 순풍에 돛달고 노 저어 가니 순종하여 따라 오라!"
동방은 고대부터 한반도 땅을 의미한다. 기독경 이샤야에서도 섬들(일본)아! 잠잠하라! 땅 끝 땅 모퉁이 동방에서 의인 한 사람(인류가 고대한 구세주.미륵불 상징)을 불러 열국(만국)의 통치자들을 회 반죽하듯이 통치할 것이라고 예언해 놓은 배경이다. [격암유록]에는 그러한 존재가 호남에서 출생하는데, 남쪽바다 섬에서 태어난 사람이 진짜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도진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 봉우 권태훈 선생님 (1900∼1994. 민족운동가, 단군사상가)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인학(寅鶴), 자는 윤명(允明) 또는 성기(聖祈), 호는 여해(如海), 봉우(鳳宇), 물물(勿勿), 연연(然然). 서울 재동(齋洞)출생. 권율(權慄)장군의 11대손이다.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내부판적국장(內部版籍局長), 평산, 진도(珍島), 능주 군수를 역임한 중면(重冕)이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이다. 중면은 을사조약에 서명한 중현(重顯)과 형제의 의를 끊고, 1907년의 정미칠조약을 계기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권태훈은 이러한 특수한 가계와 집안분위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머니로부터 6세 때 조식법(調息法)을 배운 이래 선도(仙道)의 세계를 접하였으며, 유교경전들을 섭렵하였다. 10세 때인 1910년에는 서울 종로구 마동(麻洞)에 있는 단군교 포교당에서 나철(羅喆) 대종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충청북도 영동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면서 수학 등 근대학문을 접하였는데, 이 때 일본유람단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13세에 선도계의 거인인 우도방주(右道坊主) 김일송(金一松)을 처음 만났으며, 19세에 그를 따라 구월산에 입산하여 3개월간 선도수련에 입문하였다. 이 때 좌도(左道), 우도(右道)의 여러 심법(心法) 등을 전수받았으며, 그 뒤 인천에서 산주(汕住) 박양래(朴養來) 등 선도계의 여러 인물들을 만나기 시작하였다. 3.1운동이후에는 만주에서 독립전쟁에 참여하였고, 국내로 잠입하여 지하운동을 하였다. 해방 이후에 한독당(韓獨黨)에 가입하는 등 정치운동에 나섰으나 고난을 치렀다. 60세 때에 공주에 연정원(硏精院)을 신축하여 수련을 하다가 65세 때에 상경하여 한의원을 개업, 83세가 되는 1982년에 대종교의 최고지위인 총전교에 취임하였다. 1984년에는 《단(丹)》이란 소설을 통해서 선인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1986년에는 한국단학회 연정원을 설립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1989년에 수필집 《백두산족에게 고(告)함》을 출판하였고, 같은해《천부경(天符經)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를 구술, 감수, 출간하였다. 또한 1992년에는 《민족비전(民族秘傳) 정신수련법》을 구술, 감수, 출간하였다. 그리고 95세인 1994년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上莘里)에서 운명하였다. 권태훈은 유ㆍ불ㆍ선의 여러 사상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주로 선도를 바탕으로 하였고, 시대적 영향을 받아 민족종교인 대종교 사상의 영향도 받은 듯 하다. 6세 때부터 시작한 호흡법을 기본으로 평생 선도수행에 열중하였고, 예언ㆍ사상 등도 역시 그에 기초한 것이 많았다. 1951년에 이미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예언하였으며, 원자탄의 발명. 일본의 멸망. 남북의 통일. 중국의 분단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예언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을 비판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문명비평가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 선도수행의 내용권태훈은 선도수련을 대중화시키고자 선도수행법을 소개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체계화시켰다. 선도는 수행방법과 조직, 논리 등이 ‘비인물전(非人勿傳)’, 즉 비공개를 원칙으로, 수행자들간에만 전달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의적(秘儀的)이고 신비적이었으며,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이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선도수련의 실제와 과정 및 선도인들의 활동을 역사상의 인물은 물론 당시대의 인물들까지 실명으로 등장시키는 등 공개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선도가 일반화되고, 또한 조직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는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裏覺)”이란 문장을 사용하여 행위의 측면을 매우 중시하였다. 따라서 선도의 초역사성, 탈역사인식을 극복하고 역사성을 가진 사회사상으로 변화시켜 민족역사에 근원을 둔 수행과 인식을 통해 민족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21세기는 문명의 내용과 실현 방법 등에서 전환이 일어나고 주체가 백인에서 황인으로 바뀐다는 ‘황백전환론(黃白轉換論)’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문명의 전환과정에서 한민족이 적극적인 주체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역할론이 바로 ‘백산대운론(白山大運論)’, ‘백두산족론(白頭山族論)’이다. 이러한 문명관은 학문과 수행, 사상적 편력 등을 통해서 단계적으로 형성되었으나, 천지도수의 변화, 원상(原象), 산법(算法) 등의 선도적 방법론도 근거로 하고 있다. 권태훈의 존재와 사상은 《단丹》이란 책을 통해서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으로 여겨졌던 기(氣)의 존재를 일반화시켰다. 또한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논리화되지 못했고, 조직적인 사회운동이 되지 못했으나 1980년대 인간의 정신과 가치관은 물론 사회문화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왜곡당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자긍심을 갖게 하였으며 한민족의정체성을 민족 내부의 문제를 뛰어넘어 세계는 물론 문명의 전환이라는 거시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게 하였다. 《출 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윤명철 (동국대 교수, 역사학) 기록 《참고문헌》 丹(김정빈, 정신세계사, 1984) / 백두산족에게 고(告)함(권태훈, 정신세계사, 1989) / 민족비전 정신수련법(권태훈 감수, 정재승 편저, 정신세계사, 1992) / 민족지성 2호(1986) /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권태훈 구술 및 감수, 안기석 연구, 정재승 엮음, 정신세계사 1989) / 봉우일기(권태훈 저, 정재승 엮음, 정신세계사 1998) / 봉우선인의 정신세계(봉우사상연구소, 정신세계사, 2001) / 일만년 겨레얼을 찾아서(봉우사상연구소, 정신세계사, 2001) / 세상속으로 뛰어든 신선(정재승 편저, 정신세계사, 2002) / 선도공부 (권태훈 구술, 정재승 엮음, 솔출판사, 200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79년 9월 25일 대통령령 제9268호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사업추진위원회 규정'이 공포되면서 사업수행을 위해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추진위원회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업무를 위탁, 1980년 4월 15일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가 발족하였다. 정부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받은 편찬부는 편찬업무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연인원 7,000여 명의 전문분야 학자들을 집필에 참여시켰다. 수록항목은 민족문화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약 6만 5,000항목을 선정하였다. 1980∼1987년을 편찬 준비기간으로 정하고 원고집필과 자료수집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1988∼1991년에는 순차적으로 전27권을 발간하였다. 이 기간에 175억 원의 국가예산이 투입되었고, 200자 원고지 42만 장이 원고 작성에 쓰였다. 사전 1권의 분량은 950쪽 안팎이며, 부록 1권은 편람이고, 나머지 1권은 총색인이다. 수록된 도판은 4만여 장이다. 편찬의 기본방침은 한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정리·집대성하여 새로운 민족문화 창조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두었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연구성과를 집약하되 학설상의 논란도 함께 다루었다. 각 항목의 본문 끝에는 집필자의 성명과 참고문헌을 밝혀 책임과 출처를 분명히 하였다. 북한관련 항목은 민족문화의 동질성을 인정할 수 있는 사실만을 다루었다. 이것은 사전 편찬 초기의 국내 정치분위기 때문이었으나, 북한관련 항목의 기술이 현실에 맞지 않고 충분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고 있다. 책의 맨 앞에는 민족문화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설명, 민족문화 분류표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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