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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 조조 사마의 손권중에서 최고로 운이 좋았던 사마의

낙엽군자 2015. 9. 29. 17:20

제갈공명 조조 사마의 손권중에서 최고로 운이 좋았던 사마의

 글쓴이 : 현포
  
삼국지. 제갈공명의 가장 큰 업적은 일찍부터 중원의 한황실과 노른자를 차지한 조조의 세력에 맞서 위촉오 천하삼분의 계책을 실현시킨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차피 전략적으로 중원을 먼저 차지하고 풍부한 물자, 두루 인재를 쓸줄아는 조조의 야망을 시간적으로 저지시키는것밖에는 없는 뚜렷한 한계를 지닌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조의 능력 또한 워낙 뛰어난지라 여러모로 유비와 손권은  조조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천하의 형세를 셋으로 나누어 끌고간것이 제갈량의 능력이며 가장 큰 업적이라고 봅니다.
유비와 제갈량의 입장에서는 조조는 한나라 황실을 핍박하는 난신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명분은 당연한것이었을것입니다.
그나마 공명의 삼분계책이 없었다면 천하는 일찌감치 조조의 손아귀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많았을것이며
그런 면에서 조조의 가장 큰 적수는 맨손으로 치고 올라오는 유비와 제갈공명이었으며, 사마중달 또한 제갈공명이  알고는 있지만 단순하게 과감하게 쓰지못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능력의, 공명과는 인간적인 특성이 다른 불세출의 전략가로 사마중달 또한 조조처럼 유리한 조건에서 아무리 뛰어난 제갈공명도 그 벽을 넘기가 힘들었을것입니다.
여기서 조조와 사마중달을 높이 사야 할 그들의 노련하고 출중한 능력은 자신들이 갖추고 있는 기본적인 우위의 여건을 조금의 누수도 없이 얄밉게도 극대화시키고 잘 지켰다는것입니다. 이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 하북의 원소라고 보면 될까요?
아마도 제갈공명이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그 점이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리한 조건 이런거저런거 다 떼고 대등한 조건에서 전략가 병법가로서 맞짱을 뜨면 조조는 결코 공명의 적수가 되지못함을 삼국지전반에서 느낄수 있고 공명의 전략이 뛰어나긴 하지만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않는 철칙의 측면(대세를 돌리기 위한 결전에서 상대의 허점과 실수를 놓치지않는 동물적본능)에서 제갈공명이 사마중달에게 패했다고 봐야될것같습니다.
조조도 죽고 유비도 죽은 상황에서 은둔 갇혀있다가 세상에 나와 공명의 출사표를 무력화시킨 사마중달의 능력은 기회가 왔을때 절대 놓치지 않는 심성적으로 우를 범하지않는 것이라 봅니다.
반면에 공명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더라도 얼마든지 제2,제3안으로 대처할수 있는 여력의 전략능력을 갖추었지만, 오히려 그것의 단점을 제어할수 있는 주변의 인물이 즉,유비나 관우 장비 기타 중신들이 그런 역할을 못했었음, 촉에는 관우 장비  조운 황충같은 맹장은 있어도 곽가,순욱처럼 조조의 주변에서 역시 출중한 전략가로서 조조에게 더해주고 덜어주는 보좌를 해준 수많은 전략가들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면에서 손권의 오나라보다 더 열악했다고 봐야하겠습니다.어떻게 보면 유비는 모든것을 공명에게 맡긴 공명1인의 독주(그만큼 어려운 여건에서 공명의 능력이 출중했다는 반증이기도 함)가 과신,과용됨으로 인해 훗날 결정적인 패착으로 돌아올수밖에 없는 여지를 만들었다는것입니다. 그러한 예가 적벽에서 대패하고 도망가는 조조를 관운장을 통해 살려보낸일(전쟁터에서도 그 전쟁을 치르는 방법에 있어 각 개개인의 성격과 특성이 다른만큼 승리를 위해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않는 필살의 병법가로서 제갈공명과 오나라의 명신인 노숙은 어울리지 않는 심성을 가졌다고 봐야할까요.) 

손빈은 개인적인 원한으로도 방연을 
마릉으로 유인해 인정사정없이 화살로 벌집을 만들었는데 제갈량은 중차대한 전쟁의 승부처에서 왜 고도의 여유를 부렸는지 그것은 개인적인 여유로밖에 볼수가 없음이며 완벽에 가까운 제갈공명에게 전략가로서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공명의 심성문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읍참마속을 하게 된 요충지인 가정에 처음부터 마속을 보낸일입니다. 마속을 보내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 특별히 군령장까지 써가며 신신당부를 했지만 마속은 어이없게도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으며 문제는 공명이 그런걸 다 짐작하고도 마속을 보냈다는 그 자체가 조조나 사마중달은 범하지 않을 실책을 스스로 범했다는것이 어떻게 보면 공명 스스로도 어떻게 하지못한 복합적으로는 촉에서 막중한 요충지인 가정으로 보낼 인재풀이 넉넉하지못해 마속을 보냈다고도 봐야 하며, 결과적으로는 모사재인 성사재천의 예로 보아야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공명의 한이 왜 없겠습니까.
오늘날 삼국지연의를 통해 유비관우장비 공명과 촉나라의 많은 영웅들이 부각되는 점은 위촉오를 천지인에 대비시킬때
위는 천, 촉은 인, 오는 지의 특성을 갖고 삼분천하로 쟁패를 했다고 보면 어떨까요. 결국은 제일 유리한 나라가 위나라이며 조조 또한 불세출의 전략가였으며, 오나라는 일찍이 강동에 자리잡아 지형적 이점을 최대한 잘 활용해 촉과 더불어 위에 대항했던것이며,  변변한 근거지도 없이 떠돌다 삼고초려해서 공명을 얻어 촉나라를 건국했지만 오나라 손권의 입장에서 유비는 집없는 거지가 기어들어와 엉큼하게 집을 장만한 눈엣가시로밖에 안보였을것입니다.그러면서도 워낙 강대한 조조에게 서로 연합해서 대항하지않으면 안되는 딜레마가 손권에게는 있었다고 봐야지요.
그래서 형주와 익주를 얻고 사천성에 근거해 촉이라는 나라를 세웠지만 그 전쟁을 경영하는 측면에서 유비는 모든것이 사람만 모여 급조된 촉나라로 위와 오나라에 비해 태생적으로 열악했다고 봐야겠습니다.
단지 한황실을 핍박하는 난신인 조조에 맞선다는  충정심으로 모인 인물들의 집단이라고 봐야지요. 그래서 유비와 제갈량 그외 많은 촉의 영웅들을 높이 사야 할점은 천혜의 조건인 천이나 지에 비해 모든것이 불리한 조건에서 오로지 몇몇의 인간의 의지로 천하삼분의 형세를 끌고 갔다는것입니다. 그러면서 숱한 영웅호걸들이 세월의 무게에 모두 다 낙엽지듯 스러져가고 그 형세가 아직도 연명되고 있을때 
일찍이 사마중달을 알아본 조조의 경계심을 풀기위해 중달은 허언 은둔과도 같은 세월속에 자신의 의지와 힘을 응축시키며 묻혀살다가 조조도 가고 유비 손권도 가고 난 마지막 장에서 
역시 예전에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동지들을 다 보내고 새로이 올라온 신진후예(그래도 위나라에 비해 미약)들을 데리고 출사표를 던졌지만 어쩌면 당시 상황으로 홀로 버티던  제갈공명을 상대해서
그 제갈공명이 범한 한번의 실책을 놓치지않고 기회를 결정지어버린 사마중달이야말로 인의명분같은 관념을 떠나 어찌했든 그 지루했던 천하삼분의 삼국전쟁을 끝내고 대업을 성취한 역할을 만났다는 그 자체의 의미로서 조조 유비 손권이 각축했던 갈무리를 제갈량도 아닌 의외의 사마중달이 끝냈다는것이 결국은 진나라를 여는 계기가 됐다고 봐야겠습니다. 즉,한나라가 망하면서 난세영웅들에 의해 세상이 어지러워짐에 제갈량은 천하를 삼분시켜 조조의 야망을 저지하면서 천하는 삼국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고 그 삼국전쟁을 종결할 사람으로 병법가와 인간의 특성으로 보아 사마중달이 그 역할을 만났다고 보아야 하며 제갈량과 유비가 비록 손을 잡고 천하를 쟁패했지만 기울어져가는 한황실을 일으키기에는 시대운과 천운이 따르지 않은 인간의 의지로만 끝난것이었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후세인들이 오늘날의 입지전적인 모델과도 같은 유비와 제갈공명, 관우장비등 촉나라의 영웅들을 좋아하는것같습니다. 그러한 모사재인 성사재천의 전형적인 유형속에 숱한 영웅호걸들의 땀과 한이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어딘가 세월의 낙엽속에 지나가는 바람처럼 묻혀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국전의 주인공인 조조 유비 손권도 세월에 묻혀가고 한 인간이 생사고락의 전성기를 다 보내고 혼자남아 많이 미약해진 제갈공명에 비해 삼국시대전반에 걸쳐 쇠하지않은 감각이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던 사람이 사마중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삼국지에 대한 저의 허접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