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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경부록] 사기 천관서/태일신과 황제(黃帝), 천사(天師)

낙엽군자 2015. 9. 29. 17:11

[현무경부록] 사기 천관서/태일신과 황제(黃帝), 천사(天師)

 

 글쓴이 : 칠현금
  
사기 천관서(天官書)
 
사마천이 편찬한 사기의 천관서(天官書)는 한나라 때에 별자리에 대하여 체계적인 정리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저작이다. 점성술과 더불어 별자리를 총괄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천관서는 별자리를 천관으로 하여 기술하였다. 별의 이치에 따라 지상의 인사가 다스려져야 한다는 사마천의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천관서의 가치는 징기스칸의 명참모였던 야율초재(耶律楚材)가 이를 통하여 천체운행과 계절의 변화에 따른 이치를 체득하고 잘 활용하였던 것으로 전하기도 한다. 야율초재는 매우 뛰어난 경세가였다. 천관서는 단순한 천문의 기술이 아닌 경세의 지략이 담겨 있다. 역(曆)으로 천하를 경략한 인물을 대표적으로 거론하다면 야율초재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이치를 천문으로 기술한 사마천 역시 만고의 성인이라 할만하다. 그 부친 사마담이 기록한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는 “공자가 죽은지 500년이 되었으니 누군가 그 뒤를 이어 세상을 밝히기 위하여 역전(易傳)을 바로잡고 춘추(春秋)의 정신을 계승하여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禮) 악(樂)의 정신을 찾는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는 상고시대의 황제(黃帝)로부터 한나라 무제 태시(太始) 2년(B·C 95)까지에 이르는 대략 2600년간의 아시아 역사를 포괄하는 통사이다. 사기는 전체 구성이 130편, 52만 6500자인데, 본기(本紀) 12편, 표(表) 10편, 서(書) 8편, 세가(世家) 30편, 열전(列傳) 70편이다. 그 중 팔서(八書)는 예서(禮書)와 악서(樂書), 율서(律書)와 역서(曆書), 천관서(天官書)와 봉선서(封禪書), 하거서(河渠書)와 평준서(平准書) 등으로 두 편씩 짝을 이루고 있다. 반고의 한서 율력지와 더불어 사마천의 사기 팔서(八書)는 그 내용의 의미라는 실재적인 사실과는 별도로 거기에 담겨있는 사상적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오히려 더 값어치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천관서(天官書)
 
■ 中宮1)天極星,2) 其一明者, 太一常居也;3)旁三星三公,4) 或曰子屬. 後句四星,5) 末大星正妃,6) 餘三星後宮之屬也. 環之匡衛十二星, 藩臣. 皆曰紫宮.7)
중관에는 천극성(天極星)이 있는데, 그중 밝은 별 하나는 태일(太一)이 상주하는 곳이다. 그 옆의 세 별은 삼공(三公)에 해당하는데, 또 어떤 이는 천제(天帝)의 아들들이라고도 한다. 태일 뒤로는 네 별이 굽어져 있는데, 맨 끝의 큰 별은 천제의 정비(正妃)이고 나머지 세 별은 후궁(後宮)의 무리이다. 이들을 둘러싸 호위한 열두별은 변방을 지키는 제후들이다. 이들 모두를 자미원(紫微垣)라고 한다.
 
각주
1 索隱姚氏案:春秋元命包云「官之爲言宣也, 宣氣立精爲神垣」. 又文耀鉤曰「中宮大帝, 其精北極星. 含元出氣, 流精生一也」.
2 索隱案:爾雅「北極謂之北辰」. 又春秋合誠圖云「北辰, 其星五, 在紫微中」. 楊泉物理論云「北極, 天之中, 陽氣之北極也. 極南爲太陽, 極北爲太陰. 日、月、五星行太陰則無光, 行太陽則能照, 故爲昏明寒暑之限極也.」
3 索隱案:春秋合誠圖云「紫微, 大帝室, 太一之精也」. 正義泰一, 天帝之別名也. 劉伯莊云:「泰一, 天神之最尊貴者也.」
4 正義三公三星在北斗杓東, 又三公三星在北斗魁西, 並爲太尉、司徒、司空之象, 主變出陰陽, 主佐機務. 占以徙爲不吉, 居常則安, 金、火守之並爲咎也.
5 索隱句音鉤. 句, 曲也.
6 索隱案:援神契云「辰極橫, 后妃四星從, 端大妃光明」. 又案:星經以後句四星名爲四輔, 其句陳六星爲六宮, 亦主六軍, 與此不同也.
7 索隱案:元命包曰「紫之言此也, 宮之言中也, 言天神運動, 陰陽開閉, 皆在此中也」. 宋均又以爲十二軍, 中外位各定, 總謂之紫宮也.
 
보충설명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서도 “中宮天極星, 其一明者, 太一常居也”라고 하여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한서(漢書) 천문지(天文志)에서는 “泰一之常居也”라 하여 태일(太一)을 태일(泰一)로 표기하였다. 『史記正義』에서 "태일은 천제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태일은 천신 가운데 가장 존귀하다(泰一, 天帝之別名也. 劉伯莊云, 泰一, 天神之最尊貴者也...)”고 하였다. 《한서漢書.교사지郊祀志》에서는 “천신으로 귀하신 분이 태일이다. 태일의 보좌는 오제이다. 옛날에 천자는 매년 봄, 가을에 동남쪽 교외에서 태일신에게 제사지냈다.(天神,貴者太一.太一佐曰五帝.古者天子以春秋祭太一東南郊)”고 하였다. 한서 교사지는 사기 봉선서를 인용했다 할 것이다. 사기 봉선서에서는 이어서 “소, 양, 돼지를 제물로 사용했고, 7일동안 제사를 거행하였으며 또한 신단(神壇)을 건축하고 팔방으로 통하는 귀도(鬼道)를 만들어 귀신의 통로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회남자淮南子》에서는 “태미원은 태일의 정원이고 자미궁은 태일의 거소이다. 태일은 천지의 존귀한 신이다.(太微者,太一之庭;紫宮者,太一之居.說者曰:太一,天之尊神)”라고 하였다.
 
교사(郊祀)는 하늘과 땅에 제사지내는 교제(郊祭)로 옛날 임금이 동지(冬至) 때는 남쪽 교외에 나가서 하늘에 제사 올리고 하지(夏至) 때는 북쪽 교외에 나가서 땅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사기 봉선서에 따르면, 옛날의 천자는 삼 년에 한 번 씩 태뢰(太牢-소, 양, 돼지를 함께 받침)를 갖추어 천일신, 지일신, 태일신의 삼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古者天子三年壹用太牢祠神三一:天一、地一、太一) 또 “옛날의 천자는 항상 봄에 재앙을 쫓는 제사를 지냈는데, 황제(黃帝)에게 제사 지낼 때마다 효조(梟鳥), 파경(破鏡)을 사용하고, 명양신(冥羊神)에게는 양을, 마행신(馬行神)에게는 청목마(靑牡馬) 한 필을, 태일신 택산군지장신(澤山君地長神)에게는 소를, 무이군(武夷君)에게는 마른 어물(魚物)을, 음양사자신(陰陽使者神)에게는 소 한 마리를 사용했다.”고도 한다. 한나라 때의 봉선의식은 3층의 태일단(太一壇)을 설치하고 그 밑에 오제단(五帝壇)을 각 방위별로 설치하였다. ‘5제(五帝)는 태일신의 보좌로, 태일신위(太一神位)를 세워 천자가 친히 교사를 거행해야 한다.(五帝, 太一之佐也, 宜立太一而上親郊之)”고 하였다. 사마천은 태일신을 보좌하는 것이 5제(五帝)라고 하였다. 태일지좌(太一之佐)로서 오제(五帝)의 정체성은 천관서에 나타나는 오제의 의미로 파악한다면 태일신(太一神)의 정체성과 위격 또한 소명(昭明)될 것이다.
 
봉선서를 보면 황제(黃帝)가 보정(寶鼎)을 제조한 때가 동지라고 한다. 공손경(公孫卿)이 목간(木簡)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황제(黃帝)께서 원구(宛朐)에서 보정을 얻으신 후에 귀유구(鬼臾區)에게 이 일을 물었더니, 귀유구가 ‘황제(黃帝)께서 보정과 신책(神策)을 얻으셨을 때가 그해 기유(己酉) 초하룻날 아침이 동지에 해당되는 때이며, 이때는 바로 천도운행의 계통과 부합해 계속 순환하는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래서 황제(黃帝)께서는 일월삭망에 의거해 매 20년 간격으로 초하룻날 아침에 동지가 순환된다는 것을 추정하셨으며, 20여 차례를 합산하니 380년 만에 황제(黃帝)께서는 신선이 되어 등천하셨다.(黃帝得寶鼎宛朐, 問於鬼臾區. 鬼臾區對曰:『(黃)帝得寶鼎神策, 是歲己酉朔旦冬至, 得天之紀, 終而復始.』於是黃帝迎日推策, 後率二十歲復朔旦冬至, 凡二十推, 三百八十年, 黃帝僊登于天)”라고 쓰여 있었다.
 
공손경은 신공(申功)이라는 사람에게서 목간을 받았는데, 신공(申功)은 제나라 사람으로 신선 안기생과 왕래했고, 황제(黃帝)의 말을 이어받았다고 하는데, 다른 글은 남기지 않고 단지 다음과 같은 정서(鼎書)만을 남겨 놓았다고 한다.
 
"한나라의 흥성은 황제(黃帝)가 정(鼎)을 얻은 연명(年名)이 다시 나타날 때 있게 될 것이다. 또, 한나라의 성주(聖主)는 고조의 손자 혹은 증손자에서 나타날 것이다. 보정(寶鼎)이 출현한다는 것은 신의 뜻에 상통한다는 뜻이니, 반드시 봉선대전을 거행해야 한다. 자고로 봉선을 행했던 제왕은 72명이나 되지만, 황제(黃帝)만이 태산에 올라 천신에게 제사 지냈다. ......중원에는 화산(華山), 수산(首山), 태실산(太室山), 태산(泰山), 동래산(東萊山)이 있는데, 이 5개의 산은 황제(黃帝)가 항시 유람하며 신선과 만났던 곳이다. 황제(黃帝)는 한편으로 전쟁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선의 도를 배웠는데, 백성들이 그의 선도(仙道)를 반대할까 두려워, 귀신을 비방하는 자는 즉시 참살했으며, 이렇게 1백여 년이 지난 후에서야 신선과 상통할 수 있었다. 황제(黃帝)는 옹현 교외에서 상제께 제사 지내느라 3개월간 머물렀다. 귀유구(鬼臾區)는 별호가 대홍(大鴻)이며, 그가 죽후 옹현에 장사지냈는데, 이 때문에 홍총(鴻冢)이 바로 그의 묘이다. 이후 황제(黃帝)는 명정(明廷)에서 많은 신령들을 영접했는데, 명정은 바로 지금의 감천궁을 말하며, 황제가 등천한 장소 한문(寒門)은 지금의 곡구(谷口)를 말한다. 황제(黃帝)는 수산(首山)에서 동(銅)을 채취해 형산(荊山) 아래에서 정을 주조했다. 정이 완성되자 하늘에서는 긴 턱수염을 드리운 용이 황제(黃帝)를 영접했으며, 황제가 용의 등에 올라타자 군신, 후궁 등 70여명도 따라서 용의 등에 올라탔고, 그러자 용은 상공으로 올라갔다......”
『漢興復當黃帝之時』. 曰『漢之聖者在高祖之孫且曾孫也. 寶鼎出而與神通, 封禪. 封禪七十二王, 唯黃帝得上泰山封』. 申公曰:『漢主亦當上封, 上封能僊登天矣. 黃帝時萬諸侯, 而神靈之封居七千. 天下名山八, 而三在蠻夷, 五在中國. 中國華山、首山、太室、泰山、東萊, 此五山黃帝之所常游, 與神會. 黃帝且戰且學僊. 患百姓非其道者, 乃斷斬非鬼神者. 百餘歲然後得與神通. 黃帝郊雍上帝, 宿三月. 鬼臾區號大鴻, 死葬雍, 故鴻冢是也. 其後黃帝接萬靈明廷. 明廷者, 甘泉也. 所謂寒門者, 谷口也. 黃帝采首山銅, 鑄鼎於荊山下. 鼎旣成, 有龍垂胡髥下迎黃帝. 黃帝上騎, 群臣後宮從上者七十餘人, 龍乃上去. 餘小臣不得上, 乃悉持龍髥, 龍髥拔, 墮, 墮黃帝之弓. 百姓仰望黃帝旣上天, 乃抱其弓與胡髥號, 故後世因名其處曰鼎湖, 其弓曰烏號.』」
 
사마천이 사기에서 효무제(孝武帝) 때의 교사제(郊祀祭)에 대한 기사에서 기록한 귀유구(鬼臾區)는 황제(黃帝) 시대의 여섯 천사(天師) 중의 하나이다. 기백(岐伯)을 비롯하여 귀유구(鬼臾區), 백고(伯高), 소사(少師), 소유(少兪), 뇌공(雷公) 등이 황제(黃帝)의 천사(天師)들이었다. 황제(黃帝)가 등천 한 곳을 한문(寒門)이라 하고 또 곡구(谷口)라고 하였는데 곡(谷)을 고을, 마을, 성의 뜻이 있다. “무기(戊己)는 천지의 한문(閈門)이라고 할 때 이를 ‘기운이 새는 것을 막아 주는 문’이라 하기도 하고 ‘중앙을 여는 문’이라고도 하지만 한(閈)은 가득차서 넘친다(滿溢)는 뜻이 있는가 하면, 마을 입구의 문(里門也) 또는 마을, 거소, 울타리(廣韻 ; 里也,居也,垣也)를 나타내기도 하고 또 닫는다(閉也)는 의미로도 해석한다. 그러면 한문(閈門)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두산백과에서는 '巫具나 巫神圖를 모셔 놓은 장소'를 ‘당집’이라고 한다. 이를 정확히는 ‘닫집’이라고 하는 것이다. 닫집 즉 당가(唐家)이다. 상나라 탕임금을 무탕(武湯) 무당(武唐) 성탕(成湯) 성당(成唐) 등으로 부르는데 갑골문에서는 당태을(唐大乙)이라고도 한다. 이 의미는 당(唐)이 하늘과 통하는 신인합일의 무당적 존재로서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의 궁전에 닫집이 있는 것과 사찰의 불상 위에 닫집이 있는 것과 같이 상탕(商湯)은 신성입극의 존재로 상나라의 하늘님이란 호칭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한문(閈門)은 닫는다(閉也)는 의미에서 온 닷문에서 닫문으로 파생된 고유어이다. 이래야 말의 뜻이 성립한다. 호천 상제의 명을 집행하는 천자, 즉 상제의 대행자로서 천자나 부처만이 드나드는 하늘문이 닫문, 닫집인 것이다. 무기(戊己)는 중궁을 나타내는 토(土)에 해당하므로 천지간을 왕래하는 문으로 그 위격을 가진 이가 아니면 드나들 수 없는 문이다. 이를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황제가 등천한 곳을 한문(寒門)이고 곡구(谷口)라고 밝혀 놓은 것인데, 이 한문(寒門)이 한문(閈門)인 것이다. 천간을 나타내는 간(干)은 왕(王)과 같은 의미이다. 간(干)이 드나드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