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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밖성도의 천지도수 - 도통판과 남조선배도수

낙엽군자 2015. 4. 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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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밖성도의 천지도수 - 도통판과 남조선배도수


 글쓴이 : 칠현금
  

임피 오성산에서 만경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배가 머무르는 서시포는 춘추시대 월나라 미인 서시(西施)와 관련된 지명이라 하는데 서시가 태어난 곳은 대륙 절강성 항주(浙江省抗州)의 서쪽에 있는 서호(西湖)인데 이곳 서시포는 어떤 의미로 보아야 하는가? 성의 서편에 있어 서호라 하며 주위가 30리이고,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풍경이 뛰어난데 그 수원은 무림천(武林泉)이라 한다.(금만경의 만경이 또한 무읍이다) 서시(西施)는 서자(西子)라고도 하는데, 옥산진첩에도 등장한다. 또한 신장공사도의 파랑새는 서왕모의 소식을 전하는 새인데 ‘서(西)’라는 글자로 서왕모와 서자는 서로 회통된다. 파미르 고원과 카라호자(고창)의 서왕모와 서언왕의 전설이 임피술산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은 상제님의 천지조화의 중통인의한 권능의 경계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옥산진첩의 옥산(玉山)은 금만경의 옥산을 말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것도 분명해진다.
 
노양도의 길이 오히려 늦지 않은데 늘그막의 열사가 감동하여 가는 길이(寄語魯陽道 再中却未遲 暮年烈士感) 가을 배가 돌아오기 전까지 서시를 만나기 어렵다(西子亦難逢 魯魚未陽舍. 扁舟秋水歸 是范是張也)는 옥산진첩의 서자(西子)는 임피 오성산 자락 금강변 서시포(西施浦)로 관통하여 있다면 남조선 배의 인사상의 흐름이 어디서 어디로 향하는가 하는 목표점이 분명해진다.
 
두보 추흥 제8수
昆吾御宿自逶迤 (곤오어숙자위이) 昆吾(정자)御宿(냇물)길은 구부려져 있고
紫閣峰陰入渼陂 (자각봉음입미피) 紫閣峰(누각)그늘은 渼陂(저수지)잠겨있다네.
香稻啄餘鸚鵡粒 (향도탁여앵무립) 앵무새가 쪼다 남긴 香稻(벼)낱알
碧梧棲老鳳凰枝 (벽오서로봉황지) 봉황이 깃들어 늙는 碧梧桐의 가지.
佳人拾翠春相問 (가인습취춘상문) 佳人은 花草를 캐며 봄에 서로 안부를 묻고
仙侶同舟晩更移 (선려동주만갱이) 仙人들은 함께 배를 타고 밤이면 더욱 더 이동한다네.
두보의 추흥8수에 등장하는 가을 누각 자각봉(紫閣峰)은 수양산이 있는 해주의 자단산이고 이태백의 자줏빛 연기 피어오르는 향로봉이다. 해중의 자하도가 장안 서쪽의 미파(渼陂)이고 임피 용담옥정의 새만금인 것이다.
 
집지례의 “춘기春氣가 회回함”은 삼팔일(三八日)의 기운이 돌아온다는 것인데, 두보의 추흥은 옥산진첩 해석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佳人은 花草를 캐며 봄에 서로 안부를 묻고(佳人拾翠春相問) 仙人들은 함께 배를 타고 밤이면 더욱 더 이동한다네(仙侶同舟晩更移)’라는 구절에서 가인(佳人)은 용봉(龍鳳)에서 봉황의 의미, 금현옥현(金鉉玉鉉)에서의 옥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결록에서의 산조(山鳥) 혹은 산추(山隹)라고 한 그 새(隹)로 옥산진첩에서는 서자(西子)인 서시를 말한다. 이것이 새울 도수의 새올에 살던 ‘최(崔)’씨성의 사람들을 통하여 공사를 본 이유이기도 하며 또한 옥루곡의 주인공으로서 서자(西子)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옥루곡 또한 고운선생의 문장을 차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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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상제님께서 “다 터라.” 하시고 투전을 들고 탁 치시며 “○씨가 판을 쳤다!” 하시고 다 거두어들이시며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다 죽는다. 잘못하다가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니라. 알겠느냐? 도로 본자리에 떨어진단 말이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르니 봉사 잔치란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누가 가르쳐 주랴. 제가 알아야 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끝판에 ○씨가 있는 줄 몰랐지. 판 안 끗수 소용 있나. 끝판에 ○씨가 나오니 그만이로구나. 나의 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라. 나의 일은 판밖에 있단 말이다. 붉은 닭 소리치고 판밖 소식 들어와야 도통판을 알게 되고, 도통판이 들어와야 나의 일이 될 것이다.” 하시니라.
 
동곡비서의 판을 치는 ‘○씨’, ‘끝판에 있는 ○씨’를 성화진경에서는 서씨로 기록하고 있으며, 서백일은 자신이 서씨로 그 주인공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서백일의 착각에도 불구하고 ‘서씨’라는 기록 자체는 단지 서백일 때문에 진실성이 가려져 있었을 뿐 그 진위에 의구심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신장공사도의 ‘청조전어 백안공서(靑鳥傳語 白雁貢書)’는 끝 판을 치는 결정적 소식이 나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 11귀체를 의미하는 현무경 술부(戌符)는 “天地之中央心也 故東西南北身依於心 玄武經 死無餘恨符”라는 24절후에 응하는 24글자로 후천도수의 중심에 술(戌)이 있음을 나타내었다. ‘청조전어 백안공서(靑鳥傳語 白雁貢書)’의 메시지가 등장하는 것은 현무경 신부(申符)의 때를 기다려서 이루어지는 이치를 따른다. “수화금목대시이성(水火金木待時以成) 수생어화(水生於火) 고천하무상극지리(故天下無相克之理) 현무경(玄武經)”이라 한 신부(申符)는 그 순환하는 수화금목의 마지막이 목(木)이다. 현무경 인부(寅符)의 실체가 현실로 이화되어 나가는 때가 그 때라는 것이다.
 



1906년(丙午) 벽력표(霹靂票)를 땅에 묻으시고 ‘40년도 10년이지만 넘지는 아니하리라’고 하셨는데, 1934년 갑술년 대지진 이후 81년만에 터진 네팔의 카트만두 대지진은 ‘천지는 말이 없으되 뇌성과 지진으로 표징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그 참혹함의 크기만큼 매우 중요한 표징의 의미가 있다. 옛 이름이 칸티푸르(Kantipur)인 카트만두(Kathmandu)는 원래 이름이 만주파탄으로 나무의 집(house of wood)이라는 뜻의 Kasthmandap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카트'는 나무, '만디르'는 사원 또는 건축물이라는 뜻으로 목조사원이란 이름이 도시명칭이 된 것이다. 파괴와 재생의 신 시바가 봉헌된 시바사원, 우주 질서를 유지하는 비슈누신을 지키는 나라얀사원의 탑도 ‘신들의 땅 최악의 참사’라고 일컫는 대지진을 비켜나지 못했다. 불교와 힌두교의 문화재가 즐비한 카트만두 대지진의 발생은 ‘나무’의 기운이 옮겨온다는 의미가 있다. 나무관세음과 나무아미타불의 ‘나무’의 상징성의 이동인 것이다. 1934년 갑술년 대지진과 병자개로, 2015년 을미년 대지진(4월 25일 신미일)은 향후 도운사의 중대한 변국점을 시사한다.
 
2001년 3월 아프간의 바미얀대불이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이후 세계 도처에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가장 큰 석가대불을 세우게 되었는데, 2008년의 남대문이 전소된 사건과 1915년 콘크리트 보수 이후 약 100년 이후 다시 복원되는 익산미륵사 석탑 복원(2016년 완료예정) 또한 상호관련이 있다. 서역 서천에서는 석가불의 흔적을 지워 없애고 동방의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미래부처의 이상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단주수명서에서는 “동곡신선이 불상으로 세상에 나타나면 유혼이 고원로(고향)를 다시 밝히느니라. 불(佛)의 광명이 사명기로 출번하면 천지의 화와 복이 함께 내리니, 세상 사람들의 안목이 이때 열리기 시작 하느니라. 보상현명이 천지의 공이니라.(銅谷仙化現佛像 遊魂更覺故園路 佛日出幡禍福降 世間眼目今始開 有緣者皆聞之來 輔相顯明天地功)"라고 하였다. 화현(化現)이란 불보살(佛菩薩)이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고 구제(救濟)하려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變)하여 세상(世上)에 나타나는 일을 가리킨다. 불상(佛像)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중화경에서는 “상(像)을 이루는 것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건(乾)이 기(氣)를 주재하는 까닭에 상(像)을 이룸이니, 상(像)이란 것은 법이 정해지지 아니한 것(未定)이니라. 형(形)을 이루는 바가 땅에 있다는 것은 곤(坤)이 형을 주관하는 까닭에 법이 드러남이니, 법이란 것은 상(像)이 유형으로 이미 나타난 바니라. 변화하고 유행하더라도 형상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까닭에 형상이 드러남으로 인하여 변화의 자취를 가히 보게 되니, 사람이 이치에 순응하여 공을 이루면 곧 하늘과 땅이 화육하는 바를 돕는 것이니라.(在天成像이라, 乾主氣故로 成像하나니 像者는 法之未定이오. 在地成形이라, 坤主形故로 效法하나니 法者는 像之已形이니라. 變化流行이라도 非形像이면 無以見故로 因形像而 變化之跡을 可見이니 人이 順理而成功하면 乃贊天地之化育하리라)고 하였다.
 
상제님께서는 "나를 잘 믿고 일을 잘하는 자에게 익산(益山) 삼기산(三箕山) 와우(臥牛)를 주리라"고 하셨는데, 익산시 삼기면의 삼기산(三箕山)의 명칭은 인근에 미륵산이 함께 있는데, 미륵산에 비하여 작은 새끼산이라 하여 '새끼뫼'라 한데서 왔다고 한다. 옛 금마저(金馬渚)의 땅으로 익산북쪽 삼기면과 금마면을 잇는 황금로의 삼각형 지점에서 북쪽에 오룡리가 있고 삼각지점의 동쪽 간촌삼거리에서 황금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석기 삼거리를 지나면 삼기산 교차로가 나오는데 그 북쪽으로 기산리 삼기산이 있다. 갈산 삼거리에서 더 동쪽으로 가면 기양 미륵사지가 나오고 금마면이다. 금마면의 미륵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용화산, 서쪽은 삼기산이 있다. 임피술산에서 익산에 이르는 도중에 만중리가 있는데, 을사년 10월 익산 배산(舟山) 서쪽의 넓은 평야지대인 만중리 정춘심의 집에서 “산하대운을 돌려 남조선 배 도수를 돌리리라”고 하셨다. 남조선 배의 상륙을 위한 준비로 임피술산에서 세차례 배말뚝 공사에 의하여 삼천의 판밖성도 준비단계는 다음 단계인 본격적인 도수가 익산 만중리 공사에 의해 발동하는 것인데, 만중리(萬中里)는 만경의 중심이란 의미로 남조선 배가 천하사의 중심궤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