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투사 김창숙, 자신이 세운 성균관대에서 축출되다
청와대에서 열린 원로급 인사 오찬 회동 모습인데, 오른쪽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게 흥미롭다.
맨 오른쪽은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 이명세의 손녀인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이고, 그 왼쪽은 만주군 중위 다카키 마사오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 왼쪽은 조선 독립군을 토벌하던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인 백선엽 장군이다.
일제가 패망한 지 70년이 다 돼가는데도 이 세 사람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청와대 안방에 같이 앉아 있으니 정말 혀를 찰 일이다.
이 세 사람 가운데 이인호가 지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단지 그녀의 할아버지가 친일파라서 그런 게 아니라 손녀의 말과 행각이 조부의 복사판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에 출연해서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교회 발언과 관련해 "(문 씨의) 교회 강연을 보고 감동받았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문 씨가) 낙마한다면 이 나라를 떠날 때라고 느낄 것"이라는 옹호 발언을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조부의 친일 행각에 대해 "당시 일제가 요구하는 협력의 글을 쓰실 수 밖에 없는 위치에 계셨지만 본인 목표는 서양 사조에 맞서 유학의 영향력을 증대시키자는 데 있다"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이인호 교수의 KBS 이사장 취임을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친일파이면 손녀도 친일파라는 연좌제가 아니라 이인호 본인의 위험한 역사관을 문제삼는 것이다.
그녀가 옹호하는 조부 이명세가 마지막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승만 정권 때 독립투사인 김창숙 선생을 성균관대학과 유도회에서 쫓아낸 사건이다.
또 친일파가 설쳐대던 성균관을 정화한 뒤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해 총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독재 행각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이승만 독재정권의 보복에 시달려야 했다.
마침내 1957년 7월 11일 김창숙을 축출하라는 이승만의 밀명을 받은 이른바 '재단파'가 폭력으로 김창숙 세력을 몰아내고 유도회와 성균관대를 차지했다.
이들은 유도회 분규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한 '유도회 및 지방향교대표자회의'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에 분격한 김창숙 등 '정통파'가 퇴장했으나, 경찰의 도움을 받아 회의를 강행해 유도회를 장악했다.
김창숙을 몰아내고 유림을 장악한 인물들은 일제 때 황해도 송화서장을 지내고 이승만 정권에서 서울시경국장, 치안국장을 역임한 친일파 윤우경이 중심이 된 자유당 정치 브로커들이었다.
유도회 총재에는 기독교 신자인 이승만이, 최고 고문에는 역시 기독교 신자인 이기붕이 추대되었다.
유도회가 자유당의 외곽단체로 전락한 것이다.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장에는 바로 이인호의 조부인 이명세가, 총장 자리는 이선근이 가져갔다.
이선근은 일제 때 만주에서 관동군에게 군량미를 납품하던 인물이다.
그러니까 이명세는 일제 때 대일본제국에 충성을 다한 것처럼 자유당 때는 독재자 이승만을 위해 발로 뛴 셈이다.
◈ 이명세,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황국신민화를 다짐하다
조선의 유교, 조선 유림의 간부인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참사가 된 것이다.
이 단체는 사회지도층인 유림을 앞세워 조선인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이때부터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시국강연을 했다.
또 조선유도연합회의 기관지 <유도>에 일본을 찬양하고, 유교를 통한 황국신민의 본분을 다하자고 역설했다.
이것도 모자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동아공영을 만들자는 내용의 논설과 한시까지 게재했다.
그가 쓴 한시 '축 징병제 실시'를 읽어보자.
"집안에선 아들 난 것을 중한 일임을 더욱 알고 나라 위해 죽는 것은 가벼이 여겨야 하리
우리들은 후회 없나니 하루빨리 전란의 시대가 평화의 시대 되길 바랄 뿐이라네"
여기서 '나라'란 당연히 '대일본제국'이다.
유림의 일원으로 이명세는 조선의 젊은이를 사지로 모는 징병제 실시를 찬양하는 시를 쓴 것이다.
<유도> 창간호에 실린 '동아공영권, 유고의 역할'이란 기고문을 보자.
"나라를 세운 이래 만세일계의 천황을 받드는 빛나는 역사를 가지며, 세계 인류를 위해 최고 문화의 건설을 사명으로 하는 우리 일본은 이번 대동아전쟁을 계기로 동아 신질서 건설을 실현하고자 또 하나의 걸음을 내디뎠다"고 선언했다.
그야말로 뼈속까지 친일파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명세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의 종교 부문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돼 있다.
이런 인물에 대해 아무리 자기의 할아버지라고 해도 "유학의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는 그 손녀의 역사의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역사의식을 가진 인사가 공영방송의 이사장이 되는 나라가 정상적인 국가일까?
누구 말대로 "프랑스가 공영방송 이사장으로 나치 독일에 협력한 부역자 후손을 임명한 셈'이라는 지적이 수긍이 간다.
KBS 이사장으로 내정된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 지난해 3월 13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원로급 인사 오찬 회동에 참석했다. (사진=청와대출입사진기자단 제공)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사진이 있다.청와대에서 열린 원로급 인사 오찬 회동 모습인데, 오른쪽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게 흥미롭다.
맨 오른쪽은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 이명세의 손녀인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이고, 그 왼쪽은 만주군 중위 다카키 마사오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 왼쪽은 조선 독립군을 토벌하던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인 백선엽 장군이다.
일제가 패망한 지 70년이 다 돼가는데도 이 세 사람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청와대 안방에 같이 앉아 있으니 정말 혀를 찰 일이다.
이 세 사람 가운데 이인호가 지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단지 그녀의 할아버지가 친일파라서 그런 게 아니라 손녀의 말과 행각이 조부의 복사판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관련 단체와 야당 국회의원들이 이인호의 KBS 이사 임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언론개혁시민연대 제공)
이인호는 현재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이른바 뉴라이트의 원로 역할을 자처하며, 논란을 빚은 교학사 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가 하면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한 사람'이라는 엉뚱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방송에 출연해서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교회 발언과 관련해 "(문 씨의) 교회 강연을 보고 감동받았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문 씨가) 낙마한다면 이 나라를 떠날 때라고 느낄 것"이라는 옹호 발언을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조부의 친일 행각에 대해 "당시 일제가 요구하는 협력의 글을 쓰실 수 밖에 없는 위치에 계셨지만 본인 목표는 서양 사조에 맞서 유학의 영향력을 증대시키자는 데 있다"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이인호 교수의 KBS 이사장 취임을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친일파이면 손녀도 친일파라는 연좌제가 아니라 이인호 본인의 위험한 역사관을 문제삼는 것이다.
그녀가 옹호하는 조부 이명세가 마지막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승만 정권 때 독립투사인 김창숙 선생을 성균관대학과 유도회에서 쫓아낸 사건이다.
평생을 독립운동과 반독재투쟁으로 일관한 심산 김창숙. 일경의 모진 고문 때문에 앉은뱅이가 되었다. (사진=심산 김창숙선생 기념사업회 제공)
일본이 패망하자 김창숙 선생은 유림 내부의 썩은 유생들을 몰아내고 유림을 결속시켜 유도회를 결성했다.또 친일파가 설쳐대던 성균관을 정화한 뒤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해 총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독재 행각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이승만 독재정권의 보복에 시달려야 했다.
마침내 1957년 7월 11일 김창숙을 축출하라는 이승만의 밀명을 받은 이른바 '재단파'가 폭력으로 김창숙 세력을 몰아내고 유도회와 성균관대를 차지했다.
이들은 유도회 분규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한 '유도회 및 지방향교대표자회의'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에 분격한 김창숙 등 '정통파'가 퇴장했으나, 경찰의 도움을 받아 회의를 강행해 유도회를 장악했다.
김창숙을 몰아내고 유림을 장악한 인물들은 일제 때 황해도 송화서장을 지내고 이승만 정권에서 서울시경국장, 치안국장을 역임한 친일파 윤우경이 중심이 된 자유당 정치 브로커들이었다.
유도회 총재에는 기독교 신자인 이승만이, 최고 고문에는 역시 기독교 신자인 이기붕이 추대되었다.
유도회가 자유당의 외곽단체로 전락한 것이다.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장에는 바로 이인호의 조부인 이명세가, 총장 자리는 이선근이 가져갔다.
이선근은 일제 때 만주에서 관동군에게 군량미를 납품하던 인물이다.
그러니까 이명세는 일제 때 대일본제국에 충성을 다한 것처럼 자유당 때는 독재자 이승만을 위해 발로 뛴 셈이다.
◈ 이명세,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황국신민화를 다짐하다
<친일인명사전> 어플에서 확인해 본 이명세 관련 기록의 일부.
친일기업을 운영하면서 부를 축적한 이명세는 1939년 47세 나이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중요한 자리를 받았다.조선의 유교, 조선 유림의 간부인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참사가 된 것이다.
이 단체는 사회지도층인 유림을 앞세워 조선인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이때부터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시국강연을 했다.
또 조선유도연합회의 기관지 <유도>에 일본을 찬양하고, 유교를 통한 황국신민의 본분을 다하자고 역설했다.
이것도 모자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동아공영을 만들자는 내용의 논설과 한시까지 게재했다.
그가 쓴 한시 '축 징병제 실시'를 읽어보자.
"집안에선 아들 난 것을 중한 일임을 더욱 알고 나라 위해 죽는 것은 가벼이 여겨야 하리
우리들은 후회 없나니 하루빨리 전란의 시대가 평화의 시대 되길 바랄 뿐이라네"
여기서 '나라'란 당연히 '대일본제국'이다.
유림의 일원으로 이명세는 조선의 젊은이를 사지로 모는 징병제 실시를 찬양하는 시를 쓴 것이다.
<유도> 창간호에 실린 '동아공영권, 유고의 역할'이란 기고문을 보자.
"나라를 세운 이래 만세일계의 천황을 받드는 빛나는 역사를 가지며, 세계 인류를 위해 최고 문화의 건설을 사명으로 하는 우리 일본은 이번 대동아전쟁을 계기로 동아 신질서 건설을 실현하고자 또 하나의 걸음을 내디뎠다"고 선언했다.
그야말로 뼈속까지 친일파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명세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의 종교 부문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돼 있다.
이런 인물에 대해 아무리 자기의 할아버지라고 해도 "유학의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는 그 손녀의 역사의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역사의식을 가진 인사가 공영방송의 이사장이 되는 나라가 정상적인 국가일까?
누구 말대로 "프랑스가 공영방송 이사장으로 나치 독일에 협력한 부역자 후손을 임명한 셈'이라는 지적이 수긍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