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관련

〈천황의 나라〉 · 日本 · 5부작 |

낙엽군자 2013. 3. 12. 19:54


제 목    일본천황은 백제인 혈통 | 역사스페셜

천황의 나라 · 일본 1부 텐노, 살아있는 신화
천황의 나라 · 일본 2부 사쿠라로 지다
천황의 나라 · 일본 3부 신을 만든 사람들
천황의 나라 · 일본 4부 충성과 반역
천황의 나라 · 일본 5부 제국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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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황의 나라 · 일본 5부작


1부 텐노, 살아있는 신화
2부 사쿠라로 지다
3부 신을 만든 사람들
4부 충성과 반역
5부 제국의 유산


 
 
 

9·11 후 미일 동맹강화로 세계지배전략을 수정하려는 미국.
우경화한 일본의 집권세력은 미국의 개헌 요구에 부응, ‘천황 원수론’과 집단자위권을 명문화하고 있다.
55년 체제 이래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질주해 온 개헌파의 결실은 이제 멀지 않은 것일까.

호헌세력이던 사민당이 완전히 몰락한 것이 그 일차적 원인이다. 게다가 개헌에 반대하던 많은 시민들이, 장기 불황과 중국의 고도성장으로 인한 상대적 좌절과 북한위협론 등으로 인해 개헌파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개헌파는 누구인가? 9·17(북·일 공동 수교 선언) 납치 쇼크 이래 대북제재론으로 급부상한 40-50대 네오 리얼리스트들이 바로 개헌론자들이다. 이들의 주요한 특성이 세습 의원이라는 것.
그 대표 주자가 포스트 고이즈미로 손꼽히는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 아베는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천황 숭배론자다. 그의 개헌에 대한 주장은 자민당 보수 우파의 태두인 외할아버지 기시 전 수상의 ‘헌법조사회’로 소급된다. 기시는 전시 도조 내각 상공상 출신 전범으로 친미 복고주의적 개헌파의 원조다. 세습의원들에게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전쟁 책임을 인정하라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요구는 아닐까.

지난 5, 60년대의 개헌 운동과 판이한 건 바로 경단련의 주도적 역할이다.
전후 최초로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받는 국가’가 되고자 집단적 자위권을 헌법에 규정하고 ‘나라의 개혁을 향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강구’하자고 선언했다.
이들에게 개헌은, 또한 무기수출3원칙을 폐기하는 전제로써 90년대의‘불황10년’을 극복하는 유력한 탈출구다. 미국과의 MD공동개발을 계기로 세계첨단의 민수용 기술을 군사화함으로써 세계무기시장의 본격 진출을 노린다.

그러나 ‘9조의 회’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나 미키수상 부인 미키 무츠코여사는 자식들을 전쟁터에 동원할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나아가려는 개헌에 반대한다.
전국에 1,500 여개에 이르는 ‘9조 연합회’는 전후 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목표로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에 따른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반대한다.

헌법 제9조를 둘러 싼 투쟁의 본질과 그 핵심 인물들의 성격을 규명함으로써 일본의 현재와 천황제의 미래를 조망해 본다.헌법 제9조의 미래는 동아시아의 안전과 평화의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가 결코 무관심할 수 없는 이유다.

* 주요 취재 내용
- 오에 겐자부로, 미키 무츠코 등 헌법 9조를 지키는 사람들의 노력
- 나카소네 야스히로, 아베 신조 등 개헌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동향
-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니시노 루미코 밀착취재
- 이와쿠니와 사세보 기지. 미일 군사동맹 강화의 현장을 취재
- 동경 여성 전범 국제법정 관련, NHK 파문에 대한 정치적 외압의 본질

 
 
 
소위 상징천황제 이후 일어났던 상징적 사건을 통해 일본사회의 정신적 흐름을 살펴본다.
1969년 히로히토의 신년참하(신년초에 천황에게 수만 명의 일본인이 몰려가 하례를 하는 것) 현장에서 파친코 탄환을 쏜
오쿠자키 겐조 사건.
1970년 “천황의 국가를 위해 자위대가 존재해야한다”며 충격적 할복자살을 결행한 미시마 유키오 사건.
전쟁이 끝나고 근 30년 만에 필리핀 루방섬 밀림에서 극적으로
돌아와 영웅이 된 마지막 황군 오노다 히로 사건.
그리고 1990년 보수 자민당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히로히토의 전쟁책임을 말한 직후 총격을 받아야 했던 나가사키 시장
모토지마 히토시 사건.

희극(미시마 유키오, 오노다 히로) 아니면 비극(오쿠자기 겐조, 모토지마 히토시)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사회 속에서 당사자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취재진은 때론 거부당하기도 하고, 때론 조심스런 수락 속에서
그들을 만난다.


이들 사례는, 천황에게 충성하는 자는 영웅으로 만들고 비판하거나 저항하는 자는 반역자로 몰아
응징해 버리는 사회적 메카니즘이 아직도 엄연히 작동하고 있다는 비극적 현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국민통합의 상징’이라는 그럴듯한 표현의 이면에서 ‘천황’은 일본사회를 어느 한쪽으로
마구 몰아가는 ‘비이성의 원형질’과도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 주요 취재 내용

- 오노다 히로, 미시마 유키오, 오쿠자키 겐조, 모토지마 히토시의 스토리를 국내 최초로 집중 조명.
- 천황의 사이판 방문 현지 표정을 국내 미디어로서 단독 취재.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신화’와 ‘역사’가 혼재된 상태에서 어떻게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이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 배후의 일본 내셔널리즘은 어떻게 기술적으로 변모하며 오늘의 ‘우경화’에까지 이르는 것인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 준다.

지금 일본은 러일전쟁 100주년을 맞아 메이지의 기개를 되살리자는 캠페인이 한창이다.
일본인들은 러일전쟁이 아시아 각국의 피지배 민족에게 독립의 의지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러일전쟁은 조선 병합으로 이어졌고,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페리의 내항 이후 일본은 급속한 서구 따라잡기에 나서는데,
당시 국민통합의 구심점으로 강력한 천황제를 만들었고, 근대국가 창출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조선과 중국에 대한 침략에 나섰다. 이른바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이른바 ‘근대천황제’는
이렇듯 주변국가에 대한 침략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천황제를 둘러싼 상징조작과 함께 국민교육도 병행된다.
히노마루 기미가요를 보급하고 교육칙어와 군인칙유를 암송하게 했다. 신도를 정비해서 ‘만세일계’ 이념을 내면화시켰고 조선, 중국 등 주변국가에 대한 멸시와 차별의 이데올로기를 퍼뜨렸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 만들기’ 프로젝트의 스토리도 흥미롭다.
메이지의 초상은 수차례의 작업을 거쳐 합격판정을 받고난 후에야 비로소 일선학교나 관청에 하달되었고, 교토에서 도쿄로 거처를 옮기는 이궁(移宮) 행사는 제국창조의 엄청난 정치적 퍼레이드로 기획됐다.

소위 ‘가지고 논다’는 의미에서 ‘다마’(玉)로 불릴 정도로 정치적으로 유명무실했던 천황을 강력한 카리스마의 ‘현인신’으로 만들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 등 메이지유신 세력들은 고도의 상징조작을 진행했던 것이다.
그 조작된 신화가 의심받지 않고 사실이 되어 버린 일본사회에 대한 역사적 해부의 메스,
그것이 제3부 <신을 만든 사람들>이다.

* 주요 취재 내용
- 러일전쟁 100주년 기념식, 일본인들이 보는 러일전쟁의 의미
- 천손강림의 현장이라는 기리시마 현지
- 이세신궁의 식년천궁 행사

* 이 프로그램이 밝히는 새로운 사실

- 신이 된 천황 메이지
- 메이지 천황 전, 99% 일본인이 천황을 몰랐다
- 탈아입구
- 신을 만든 사람들
- 황군사상
 
 
 
천황제 국가 일본의 최대의 희생자가 국민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전쟁말기 ‘인간어뢰’로 불린 카이텐(回天)부대와 ‘인간폭탄’으로 불리웠던 오오카(櫻花)부대원들의 무모한 죽음을 통해 보여준다. 이들은 익히 알려진 ‘가미카제’ 이후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미국 항공모함 격침을 목표로 1945년 오끼나와 전선 등지에 투입된, 초특급 자살특공대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야스쿠니에 모셔져 소위 ‘카미(神)사마’가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전쟁말기의 비화이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 인간의 진실은 감추어지고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라는 강요된 명분과 皇國守護의 이데올로기만 남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사랑하는 자식과 형제자매를 잃은 유가족, 그리고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남은 특공대원들은 증언한다.
유가족이 취재진에게 공개한 특공대원의 출격 직전 녹음이나 , 군대에서 검열을 거치지 않고 가족에게 보내진 私信에는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 즉 인간 본연의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급 전범’까지 합사된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의 제사에 천황은 여전히 칙사를 보내 위로하고, 사람들은 해마다 야스쿠니 신사의 사쿠라 아래 모여서 전쟁당시의 최고의 군가였던 ‘동기의 사쿠라’를 부르며 향수에 젖는다. 그것은 죽음에의 선동이자 찬미이다.

국가는 전쟁을 통해 개인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나중의 역사는 그를 ‘영령’으로 미화함으로써, 과거 일본군국주의는 전후 60년 오늘에 다시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현실을, 제2부 <사쿠라로 지다>는 보여준다.

* 주요 취재 내용
- 카이텐: 항모나 구축함을 격침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자살공격용 유인어뢰
- 오오카: 미사일이 없던 당시에 인간이 탑승하는 자살공격용 로켓.
-야스쿠니의 예대제와 유슈칸
-특공대원들의 최후의 목소리 녹음반

* 이 프로그램이 밝히는 새로운 사실

- 마쓰시로 대본영 : 본토 결전을 위한 천황의 마지막 보루로써 나가노 지역에 건설된 거대 지하호 군(群). 1990년에야 일반에 공개되었으며 아직도 상당 부분이 미공개 상태이다.
 
 
 
일본인들은 이 밀레니엄 시대에도 왜 천황에 그토록 집착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후 히틀러나 뭇솔리니의 비극적 종말과 달리
초특급 전범 히로히토가 역사의 단죄를 받지 않고 ‘천황’으로서
天壽를 누릴 수 있었던 사회.
그리고 그의 사후에도 아들 아키히토 천황을 비롯한 황실에 대해 여전히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사회.
그리고 소위 ‘기쿠 터부’ 때문에 천황가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허용되지 않고 침묵이 강요되는 사회.

전후, 일본은 경제적으로 세계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나라임에도 정신적으로는 그렇게 전전과 다름없다.
맥아더 치하에서 <인간 선언>을 해야만 했던 ‘천황’은 일본 헌법에 의해 정치적 파워가 없는 ‘상징’으로 규정됐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내면 속에서는 여전히 그들의 ‘아라히토카미(현인신)’인 것이다.

2월 11일 건국기념일 행사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천황은
천조대신의 직계자손인 ‘현인신’이며, 일본은 그러한 천황이
영원히 다스리는 '신의 나라’라고 믿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신화’일 뿐인데도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대다수 일본인들의 내면을 깊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인들은 오사카에 있는 ‘인덕천황능’이 ‘세계 최대의 능’이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황실 관리 주무 기관인 궁내청은 이것의 역사적 실증을 위한 현장조사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소위 ‘만세일계’의 신화가 붕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고학자들은 현재 여러 개의 천황능이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발굴조사는 불가능하다.

최근 나카소네 전수상과 자민당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천황 원수제’는 일본인들의
이러한 정서를 파고 들 위험이 있다. 여전히 일본인들의 내면을 규정하고 있는 천황제의 막강한 힘,
그 수수께끼를 제1부 <텐노, 살아 있는 신화>에서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 주요 취재 내용
- 천황 신년참하 및 이바라기 식수제 밀착 취재
- ‘천황 원수론’에 대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인터뷰
- 후쿠지마 사민당 당수, 이치다 공산당 사무국장의 반론
- 인덕 천황릉과 진무 천황릉 고고학자 동행 취재
- 나라의 헤이조교 발굴현장
- 히로히토 와병 당시의 과잉자숙 현상


* 이 프로그램이 밝히는 새로운 사실

- '아라히토카미' (인간의 모습을 한 신)
- 대중천황제
- 기쿠 터부
- 여성천황제
- 천황원수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