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천운수 궁팔십 달팔십.지금운수 동지한식 105제.-金剛 大仙師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초중말복 5진주 세명. 5+5+5(6)=15(16).마지막 5진주는 판모리 6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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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est:
금강
♤♤ 선천운수 궁팔십 달팔십.
지금운수 동지한식 105제.
○○
참종자 외에는 모르느니라
1 너희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이 세상에서 누구하나 알게 하시는 줄 아느냐.
2 천부지(天不知) 신부지(神不知) 인부지(人不知) 삼부지(三不知)이니, 참종자 외에는 모르느니라.
●●3 선천 운수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이요
4 지금 운수 동지(冬至) 한식(寒食) 백오제(百五除)니라.
5 후천 창생 되기도 어려우니. 살아 잘되기를 바랄지라.
6 내 일은 되어 놓고 봐야 아느니라.
7 일은 ● 딴 사람이 하느니 조화 조화 개조화(改造化)라.
●심통 공부 어서 하라
8 선천에서 지금까지는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이요
지금부터 후천은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니라.
9 피차 마음을 알아야 인화(人和) 극락 아닐쏘냐.
10 마음 닦는 공부이니 심통(心通)
공부 어서 하라.
제가 제 심통도 못하고 무엇을 한단 말이더냐.
11 불(佛)은 선(仙)의 밑자리니라.
☆☆
강태공 궁팔십 달팔십 운수가 선천운수라는 것은 강태공이 성군(문왕)만나 무왕 혁명을 도와 제업성국함으로 80년 궁핍을 제왕으로 80년 영달한 것처럼 선천은 대인을 만나 성공하는 운수가 최고 운수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개벽시대 지금의 최고운수도 동지한식 105제 때 후천진인 진주를 만나 성공하는 것이 최고의 운수라는 것입니다.
●● 동지한식105제의 뜻은 동지 지뢰복의 운수에서 7(일곱)절기를 지나 청명(한식)꺼지 105일을 지나 진3월 용(대인)을 만나라는 뜻입니다.
갑진년 2024 3월3진 용머리기두 제비도수.
제는 제한다는 뜻과. 관직을 제수받는다는 입신의 뜻이 있읍니다.
정읍이 각성분야에 있다.
처녀자리 스피카가 동방칠성 청룡의 용뿔 각성입니다.
고깔과 상투의 덕은 신탁ㆍ천명.
○○도통천지 해원상생 개벽도수.
1. 21일 추분(秋分)치성에 태모님께서 바둑판을 가져오게 하시어 방 한가운데 놓으시고 장점(丈點)을 두신 후에
2 .마당에 제구(祭具)와 청수동이를 놓게 하시고 술과 포, 감, 매실, 삼씨, 밤, 대추 등을 진설케 하시니라.
3. 이어 태모님께서 큰 소리로 외쳐 말씀하시기를
天動 地動 人動 萬物合動 所願成就
천동 지동 인동 만물합동 소원성취
라 하시며
성도 10여 명으로 하여금 따라 읽게 하시고
4. 달을 향하여 담뱃대를 좌에서 우로 두르시니 달무리가 일어나 담뱃대를 따라 돌아가더라.
5. 다시 성도들에게 ‘춘분(春分) 추분(秋分) 하지(夏至) 동지(冬至)’ 라 읽게 하시니.
갑자기 지동(地動)과 천동(天動)이 크게 일어나거늘
6. 이에 성도들로 하여금
道通天地 解寃相生
도통천지 해원상생
이라 읽게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
●대를 잇는 개척開拓과 창업創業 주周 문왕과 무왕
‘도전 인물열전’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의 도정(道政)이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에서 그쳤느니라.” (道典 2:27:1)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문왕(文王)은 유리(羑里)에서 384효(爻)를 해석하였고 태공(太公)은 위수(渭水)에서 3,600개의 낚시를 벌였는데 ●문왕의 도술은 먼저 나타났거니와 태공의 도술은 이 때에 나오느니라” (6:9:1-3)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문왕(文王)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리라.” (5:207:3)
○○ 두 남자 이야기,
그 첫 번째.
그는 중원의 서북부 황토고원 일대를 다스린 지도자였다. 그의 할아버지인 고공단보古公亶父는 막내아들 계력季歷과 며느리 태임太任 (주1) 사이에서 태어난 그에게 성인의 기운과 자질을 보았다. 그가 어렸을 때 입에 ‘붉은 글씨’를 문 주작朱雀이 집 문 앞에 떨어지는 일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통치하게 되면 그의 족속이 크게 흥성할 것이라는 상서로운 징조였다.
이 일로 고공단보는 그를 특별히 아끼게 되고, 후계 자리를 그에게 넘겨주고자 했다. 이를 눈치 챈 큰아버지들인 태백과 우중은 그에게 자리가 돌아갈 수 있게 동생 계력에게 지도자 자리를 양보하고 남방으로 내려가 오나라를 세웠다. 그는 아버지 뒤를 이어 통치자가 되니 시조인 후직后稷(이름은 기棄, 동이족 출신인 제곡고신의 정비 소생)으로부터 15세손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 계력이 제정한 법도를 본받아 어진 정치에 힘쓰고 노인을 공경하며 젊은이들을 아꼈다. 어진 사람에게는 자신을 낮추어 예로 대하고, 한낮이 되도록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선비들을 접대하니 많은 선비들이 그에게 귀의하였다. 그러나 이게 화근이 되었다. 그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자 그를 시기한 이의 참소로 그는 유리(지금의 허난 성 탕음현)에서 기약 없는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이에 후환을 없애기 위해 임금(상商나라 주紂왕)은 그의 큰아들 백읍고伯邑考를 인질로 삼은 다음 자신을 위해 수레를 몰게 했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그가 진짜 ‘성인聖人’인지 여부를 시험해본다며, 아들 백읍고를 죽여 가마솥에 넣고 푹 끓여서 삶은 국물을 마시게 했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내 눈으로 직접 그가 성인인지 아닌지 확인해야겠다.
만약 성인이라면 자기 아들의 고기라는 것을 알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에 그는 가슴 속 울분과 눈물을 삼키며 모른 척 아들을 삶은 곰탕을 다 먹었다.
그 뒤 그가 그동안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니, 작은 무덤(吐墳)이 되었다고 한다.
생명이 위협받는 7년 유배 생활과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태호 복희씨께서 그리신 8괘를 64괘 384효로 해석해 현재의 주역을 만들어내며(연역衍易)(주2) 문명의 빛을 열고 때를 기다렸다.
그는 더 큰 대업을 위해 뇌물로 여자와 준마, 진귀한 보물들을 바치고 풀려난 뒤 낙서 서쪽 땅(위수의 지류로 지금의 함양 서쪽)을 바쳤다.
그 대가로 포락炮烙이란 형벌을 없애 줄 것을 원했다. 포락형은 충언을 하는 신하나 불만을 품은 백성들에게 가하는 것으로 아래에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고 그 위에 기름칠을 한 구리 기둥을 올려놓고서 죄수에게 기둥 위를 걷게 하는 형벌이다.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불덩이 속으로 떨어지면 타죽게 되므로 죄인은 숯불 위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구차하고 치욕스럽게 목숨을 구걸하게 되는데, 주紂왕과 그의 애첩인 달기는 이를 보면서 조롱을 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그의 형벌 폐지 요청에 대해 뜻밖에도 주紂왕은 이를 받아주었고, 그에게 활과 화살, 큰 도끼를 주며 주변 제후국을 토벌할 수 있는 권한도 주었다. 이에 그의 덕행은 또 한 번 크게 민심을 얻었고, 제후들이 그에게 달려와 그의 세력은 점점 커졌다.
치욕과 고통을 참아내고 그는 물질적 욕망을 최대한 억제하고, 사치와 음탕은 물론 지나친 방종은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다.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했다. 이렇게 하여 그가 다스리는 지역 인민들은 소박하고 근면한 미덕을 유지하면서 검소한 생활을 유지해갔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부지런히 자신의 나라를 다스렸다. 한 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그의 덕치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그의 세력이 강성해지니 제후들이 그에게 와서 공정한 판결을 청했다. 이때 우虞와 예芮 지역의 제후들 사이에 해결할 수 없는 송사가 발생해 그를 찾게 되었다. 그들이 주나라 영토에 들어서자 밭을 가는 사람들은 모두 밭의 경계를 서로 양보하고, 백성들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 양보하는 풍속을 보고, 사사로운 욕심을 부리거나 사소한 이익을 놓고 다투던 그들은 그를 만나기도 전에 부끄러워하며 서로 양보하고 돌아갔다. 그는 말보다는 생생한 덕정德政을 베푼 결과로 제후들을 교육시켰고, 간단하게 영토분쟁을 해결했다는 소식이 천하에 널리 퍼져 그를 따르는 제후가 마흔이 넘었고, 사람들은 그가 천명을 받았다고 했다.
50년간 나라를 다스린 그는 생전에 조부인 고공단보를 추존하여 태왕太王이라 했고, 아버지인 계력을 높이어 왕계王系라고 했다. 또한 스스로의 법령과 달력 체계를 채용하였다. 내정을 개혁하고, 생산을 발전시키며, 인재를 중시하였고, 위수 이북인 반계磻溪에서 걸출한 군사, 정치전문가인 강상姜尙(태공망, 강태공, 강여상, 강자아라고도 불림)을 얻게 된다.
그는 생애 마지막 7년 동안 중원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천명을 기다렸다.
서북의 소국들을 차례로 정벌하여 후방을 안정시킨 다음 힘의 중심을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는 도읍을 기산 아래에서 풍읍豊邑(지금의 산시 성 호현 동쪽)으로 이동하여 중원 통일의 마지막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질 무렵 그는 큰 병을 얻고, 불행히도 세상을 뜨고 만다. 천명을 받고 천하를 안정시키려고 절치부심하던 그는 한 많은 인생을 남기고, 중원 제패라는 대업을 그 아들 대로 넘겨주고 만다. 그는 주周나라의 실질적인 창업자로 후에 주周 문왕文王이라 일컬어지는 서백西伯(서쪽의 맹주) 창昌이다.
○○두 남자 이야기,
그 두 번째
이제 이 밤이 지나 동이 트면 그는 아버지의 한을 풀고 중원을 제패하게 될 것이다. 그의 눈빛은 형형했다.
형은 억울하게 참살을 당했고, 아버지는 그 형을 끓인 곰국을 먹어야 했다. 평생을 대업을 위해 울분과 치욕을 참아내며 국력신장을 해온 아버지의 바람을 이룰 때가 되었다. 이제 천하 만민을 편하게 할 것이다. 동쪽의 천자국으로부터도 승낙의 명이 내려 왔다. 나는 주周나라 창업자 무왕武王 희발姬發주3이다.
천하 만민의 삶을 위해, 동방 천제의 나라에 역逆한 상나라를 칠 것이다! 내 아비와 형의 원한을 갚고자 경검輕劍(주周무왕이 자살한 상商나라 주紂왕의 시신을 내리친 검)을 들었다. 칼이 울고 있다. 이제 천명은 상나라의 제신帝辛(주왕紂王)이 아닌 나에게 온 것이다. 11년의 세월을 기다렸다. 그동안 나는 태공망을 ‘사師’로 삼고, 동생인 주공周公 단旦은 ‘보補’로 삼았다. 다른 동생인 소공召公 석奭과 필공畢公 고高 역시 나를 보좌하여 아버지의 위업을 본받게 했다. 2년 전 우리는 아버지 주周 문왕文王의 피 맺힌 한을 한시바삐 풀어드리고자 필에서 제사를 올리고 동쪽으로 가서 군대를 사열하고 멍진盟津(지금의 허난성 뤄양시 동북쪽 황하 연변에 있음)에 이르렀다. 거기서 나는 문왕의 뜻을 받들어 정벌함을 밝혔고 군대를 일으켰다. 사상보師尙父주4는 제후들을 호령하였고, 강 중류에 이르렀을 때, 흰 물고기가 내 배 안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몸을 숙여 물고기를 들어 제를 올렸다. 이 때 모인 제후의 수가 800으로 모두 주왕紂王을 정벌할 수 있다고 했으나, 동방천제의 천명이 없었는데 드디어 그 때가 온 것이다. 상商나라의 제신은 어리석음과 포악함이 갈수록 심하여 직언하던 숙부 비간比干을 죽이고 기자箕子는 감금하였다. 이에 나는 제후 모두에게 “은殷(=상商)나라(주5) 주왕의 죄가 너무 무거워 정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알려 다시 한 번 회맹을 명령하였다. 출정 길에 고죽국 출신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내 말고삐를 잡으며, 인과 의로 만류하였으나, 제폭구민의 대의에 불타 있었던 나에게는 한가한 도덕설에 불과하였다.
이제 진군 뿐! 그런데 상나라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세찬 눈보라와 비바람처럼 우리의 행군을 방해하였다. 이 때 홀연히 동이의 족속들과 황하의 하백족이 천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말하고는 도와주었다. 간신히 상나라 군대의 저항을 물리쳤다. 이 때 나는 태서太誓(주 무왕이 상의 주왕을 정벌하기에 앞서 제후들을 모아놓고 맹세한 문장으로 세 편이 있음)를 지어 모두에게 선언하였다. “이제 나, 발은 천벌을 삼가 집행하려 하오. 노력하시오. 서방의 병사들이여! 그대들의 창을 들고 방패를 맞추시오. 옛 사람들 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는다. 암탉은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주6)고 하였소. 지금 은왕 주는 오로지 부인의 말만 듣고 스스로 선조에 대한 제사와 신령에 대한 답례를 돌보지 않고 내팽개쳤으며, 자기 나라를 멸시하며 저버렸소. 이에 이 사람 발發이 여러분들과 함께 삼가 천벌을 대행할 것이오. 힘을 냅시다! 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에는 그대들에게 죽음이 돌아갈 것이오!”라고. 이제 그 때가 되었다. 아버지의 유업을 이룰 때가. 우리 주나라가 천하를 제패할 때가.
상주商周 교체기의 진실, 목야대전牧野大戰과 그 이후
2월 갑자일, 멍진을 건넌 주의 군대는 상나라 교외의 목야牧野(지금의 허난성 치현 남서부 지역)에 진을 쳤다. 이때 주 무왕은 왼손에는 누런색 큰 도끼를, 오른손에는 소꼬리가 달린 흰색의 깃발을 휘두르며(주7 )진격을 명령했다. 주의 군대는 전차 300대와 군사 3,000명,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 4만 5,000명. 상나라의 제왕 자수신子受辛(주왕紂王의 원래 이름)은 주무왕의 군대가 수도인 조가朝歌 근처에 이르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70만 대군을 동원하였다. 이에 강태공은 100명의 용사로 싸움을 걸게 하면서 주력부대는 주왕을 향하여 돌격하게 했다. 드디어 천하 쟁패의 치열한 공방전이 목야들녘에서 벌어졌다.
당시 중원의 패자는 성탕成湯이 세운 상나라였다.
초기 상나라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을 문화의 조국으로 받들었으나, 12세 하단갑河亶甲 때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았고, 22세 무정武丁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단군조선의 변방을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조선의 21세 소태蘇台 단군과 22세 색불루索弗婁 단군은 상나라를 쳐 대파하였다.
이 후 상나라는 국운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임금인 31세 제신帝辛(주왕紂王)은 총명하고 말재간이 뛰어났으며 일 처리가 신속하고 맨손으로 맹수와 싸울 정도로 힘이 강해 문무를 겸비한 인재였다. 하지만 재능이 많아도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 재능이 도리어 자신에게 해가 되는 법, 자신의 재능만 믿고 교만한데다 임금의 자리이다 보니 그 안하무인의 행동은 더욱 심해졌다. 스스로를 상제님에 비겨 천왕이라 칭하는 등 참람한 행동을 하며 단군 조선과 대립되는 행동을 취했다. 또한 술과 음악, 여색을 지나치게 좋아하였고, 특히 달기妲己를 총애하여 그녀의 말이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고, 유능하고 어진 자를 멀리하고 간사한 자를 중용하여 민심을 흩어놓고 원망이 들끓게 했다. 무리한 토목 공사를 벌여 녹대라는 궁궐을 7년에 걸쳐 지었다.주8 그 외에 경실瓊室과 요대瑤臺라는 아름다운 옥으로 치장한 궁궐에 사구沙丘라는 넓은 정원을 조성하여 그곳에 온갖 진기한 짐승들을 수집해 풀어놓았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을 본받아 바로 이 사구에 술로 연못을 만들고(주지酒池), 나무에 고기를 열매처럼 매달아 놓은(육림肉林) 뒤, 그 안에서 남녀가 벌거벗고 밤이 새도록 음란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음란한 짓거리를 일상적으로 하였다. 주왕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백성들이 아닌 자신의 쾌락을 위해 발휘하였다. 여기에 충언을 하는 신하를 포락의 형으로 죽이는 잔혹함을 보였다. 이런 폭정은 결국 민심을 잃게 되었고,
다수의 동이인 들이 무왕의 대업에 협조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강태공이었다.
다시 천하의 대세를 판가름하는 당시 목야 전투로 돌아가 보자. 이 전투는 어찌나 참혹했던지 피가 강물이 되어 흘렀고, 그 위로 병장기가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상나라 주왕紂王을 토벌하는 주무왕 연맹군은 일치단결한 정의의 힘이라면, 상나라의 군사들은 급조된 오합지졸에 불과하였다. 이에 상나라 주왕의 군대 수는 비록 많았지만, 모두가 싸울 마음이 없었고 오히려 무왕이 빨리 공격해 오기를 바라고 있던 터라 무기를 거꾸로 돌리고 무왕에게 길을 터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무왕의 군대가 상나라 수도를 함락시킬 위기에 처하자. 상나라 군사들은 주왕의 곁을 떠나 모조리 흩어져 버렸다. 주왕은 도망가서 녹대의 꼭대기로 올라가 보옥寶玉으로 치장한 옷을 입고 불기둥 속으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써 6백년을 이어온 상나라는 멸망하게 되었다.
무왕이 은나라 도성에 입성하기 위해 행군을 계속하자 백성들은 모두 성 밖으로 나와 무왕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무왕은 군신들로 하여금 상商나라 백성들을 향해 큰 소리로 알리게 하였다.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서 그대 백성들에게 큰 복을 내리셨도다!”
무왕이 손으로 대백기大白旗를 흔들며 제후들을 지휘하였다. 제후들이 모두 무왕을 향해 배례拜禮를 드리자 무왕도 역시 두 손을 높이들이 읍을 하여 예를 취했다. 무왕은 하늘을 대신해 벌한다는 명분으로 주왕의 시신과 요부 달기의 시신에 활쏘기를 하고 군기에 그 목을 효수하고, 대업을 이루었음을 널리 알렸다.
이후 단군조선의 거수국(渠帥國: 단군조선의 제후국을 가리킴) 주9 제도를 본 뜬 것처럼, 영토를 형제들과 공신들에게 분봉했다(세계 최초의 봉건제封建制). 동생인 주공은 곡부曲阜에 도읍을 정해 노魯나라를 건립하게 했고,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을 상나라 도읍에 남겨 은후殷侯로 책봉하여 상조의 유민들을 안정시켰다. 특히 신경을 쓴 점은 강태공을 영구營丘에 도읍을 정해 제齊나라를 건립하게 한 점인데. 이는 그의 공적에 대한 포상이기도 하지만 동이족 출신인 강태공이 주 왕실에 비협조적인 산동지역 동이족을 다스릴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무왕 이후 주나라는 이전 왕조들과 마찬가지로 단군 조선에 조공과 방물을 바쳐 예를 표하며 정치의 안정, 경제의 발전, 사회 문화의 번영을 이루어 나가 문왕과 무왕 2대에 걸친 개척과 창업의 역사는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주1. 태임(太任)은 계력의 처로 주 문왕 창을 낳는다. 시어머니인 태강 太姜, 며느리인 문왕의 처 태사太姒와 함께 ‘삼현모’로 불린다. 3대에 걸친 현모들의 덕으로 주나라는 중원대륙을 통치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바로 이 태임을 본받기 위해 자신의 당호를 사임당(師任堂)으로 했다.
주2. 주문왕이 유리에 갇혔을 때 8괘를 64괘로 풀이하였다는 것을 전설로만 여겼는데, 최근 주의 갑골에서 역의 괘와 비슷한 숫자들이 발견되면서 문왕의 64괘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주3. 희姬는 주나라 왕족의 성이다. 참고로 상나라 왕족의 성은 자子씨이다. ‘성’과 ‘씨’는 원래 두 개의 다른 개념이었다. 한 조상에서 나오면 같은 ‘성’이고, 같은 ‘성’을 어떤 이유 때문에 구분할 때 이를 ‘씨’라 하였는데 이후 구분이 모호해져 섞여 사용되었다.
주4. 강태공을 말한다. 당시 강태공은 군사와 정치 전반을 책임지는 ‘사師’라는 벼슬에 있었기 때문에 사상보로 불렸다. 여기서 상보尙父는 존칭으로 관중을 ‘중보仲父’라 부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주5. 은殷나라는 상商나라를 달리 부르는 명칭이다. 상나라는 여러 차례 수도를 옮겼는데, 반경왕이 마지막으로 옮긴 수도가 은殷이었기 때문에 ‘은나라’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은’이라는 이름도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하나, 개국 이후 나라를 세운 부족 이름인 ‘상商’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상’으로 통일해 부르고 있다.
주6. 古人有言曰
,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악명 높은 명언은 주周 무武왕이 상商의 주紂임금을 치면서 옛 속담을 인용하여 제후들에게 한 말이다. 이는 상 말기, 나랏일에 달기 등 아녀자가 간섭한 것을 비유하여 한 말로, 본 뜻은 주 임금에 대한 비난으로 여성에 대한 비하는 아니다.
주7. 정벌에 따른 권위를 상징하는 기물로 큰 도끼는 죽음을, 오른손 깃발은 교령敎令을 나타낸다.
주8. 녹대鹿臺: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허비시鹤壁市 치현淇县 차오거진朝歌镇 남쪽에 은나라 마지막 왕 주왕紂王이 지었던 대臺로 한나라 때 학자 가의가 쓴 [신서]의 묘사를 보면 주위가 3리(1.300미터), 높이가 천 척(尺:3백 미터)에 달해 구름이 내려다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주9. 거수제도는 단군 조선의 통치 제도 중 하나로, 단군이 직접 다스리는 영역(도읍과 인근지역)과 도읍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을 거수 즉 제후를 임명해 다스리게 했다. 단군 조선은 거수국 제도를 활용해 크게 세력을 넓히고 오랜 번영을 누렸는데, 부여, 고구려, 예, 맥, 청구 ,낙랑, 구다, 기자조선 등이 거수국에 해당한다. 즉 상(은) 왕실의 후예인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해 조선후로 봉해진 것은 기자가 단군조선을 계승해 기자조선을 열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단군조선 내에 있던 작은 제후국이었다는 의미이다.
문왕과 무왕의 이야기는 온갖 시련을 물리치고 대를 이어 마침내 대업을 이루는 개척과 창업의 정신을 담고 있다. 이는 난세의 고통에 처한 천하 만민을 살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두 지도자의 역정이 인간으로서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개척의 역사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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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리더금강
80이란 수를 꼭 80년으로만 해석하는 우는 범하지 마시길....
두문동성수 구구 ㆍ팔팔.
복중80년 신명.
천부경 81자.
9×9=81분열 최대수.
81도 생성도.
팔방(8)으로 열려(10) 나간다.
1871년에서 80년 1950 한국동란
1950년에서 80년 2029.2030 무신ㆍ기유ㆍ경술에 관왕 신명
어느정도 의미는 있죠.
종통 진주도수 *1954 갑오생 안경전이 매듭짓는 말복지도자 인물이 아니고 과도기 중복지도자인 천지공사 이유 http://blog.daum.net/cheramia/15691200
종통 진주도수 *1954 갑오생 안경전이 매듭짓는 말복지도자 인물이 아니고 과도기 중복지도자인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문왕 사명자 초,중,말복 都安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안내성 성도 都安 安家 초중말복 세살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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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 상제님 말복종통 인사-성주가, 안동김씨 솔씨 심어(영사재) 문왕 낙락장송 낸(일등방문공사) 뜻과 문왕 초,중,말복 3살림 연원비밀
종통1.천지공사의 최종 결론- 문왕추수 세살림 정체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8aIN&articleno=15691103&admin=
종통2. 천지공사의 최종 결론- 문왕추수 세살림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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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종통 인사-성주가, 안동김씨 솔씨 심어(영사재) 문왕 낙락장송 낸(안씨 추원재 천지수기공사&안씨 일등방문공사) 뜻과 문왕 3살림 연원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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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말복종통 인사-성주가, 안동김씨 솔씨 심어(영사재) 문왕 3부자 낙락장송 낸(안씨추원재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초중말복 5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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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통宗統. <선도신정경(정영규)>*-천지대사가 6월 7월 8월, 나는 바닥에 일1 붙은 줄 알고 빼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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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통宗統. <선도신정경(정영규)>*-천지대사가 6월 7월 8월, 나는 바닥에 일1 붙은 줄 알고 빼느니
<통합경전>다음 밴드에 들어가면 전체 파일 다운됩니다. 익명으로 다운만 받아도 됩니다. http://band.us/#!/band/61758246 종통宗統. 종통 인사문제 6,7,8 월생 부연설명 <선도신정경(정영규)>* -천지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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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통宗統. 대순진리회, 증산도 및 범 증산계 40년 신앙 도반 동료들에게 진심을 다해 드리는 글.By 慧光 大仙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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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통宗統. 대순진리회, 증산도 및 범 증산계 40년 신앙 도반 동료들에게 진심을 다해 드리는 글.B
상제님 천지공사의 핵심은 종통 인사문제이며 누가 마지막으로 선천 상극의 역사를 종결하고 상생의 만사지 조화세계인 후천을 개창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인사문제의 최종결론 수지지어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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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통宗統.종통문제의 노른자 핵심, 핵심 중의 핵심- 진주 가구판 15진주 노름 판에 대한 최종정리 By혜광 대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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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통宗統.종통문제의 노른자 핵심, 핵심 중의 핵심- 십오진주노름 판에 대한 최종정리 By慧光 大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西神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통합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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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복운수의 본부 근무자와의 진리전쟁에서> 보낸 카톡글 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By 慧光 大仙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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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복운수의 본부 근무자와의 진리전쟁에서> 보낸 카톡글 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By 慧光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통합경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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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 들른 과객들에게. 이것 하나만 건지고 가시오. 나가면 깜부기요 들어서면 만복동이라.건존 천지공사 9년, 곤존 신정공사 10년 도합 건존곤존 음양합덕공사 19년의 최종 결론은 낙종물(태을교, 선도교)-이종물(보천교)-추수 세살림 문왕사명자 인사문제라는 것. 이 카드가 펼쳐지는 원리가 선천운수 궁팔십달팔십한 강태공이 문왕 만나 달팔십했듯, 추수종통의 만날 사람 만나는 문왕 추수사명자 만나는 것. 문왕사명자 도안의 초중말복의 내피 속살 카드 소위 히든카드는 사마중달이며 세살림 전개는 사마중달-사마사-사마소로 전개된다는 것이며, 문왕사명자인 사마중달의 정체는 살아생전 드러나지 않아 '지금운수는 동지한식백오제'에 열리는 사오미개명장에 진법이 열려 세살림 전체 얼개 인사문제가 드러나 문왕 사명자가 초복살림을 여는 사마중달이며 중복도정 책임자 안경전 전 종정이 사마사사명자라는 것. 사마중달 3부자이자 문왕사명자 3부자가 초중말복 추수사명을 매듭짓는 삼련불성(三聯佛成)이 삼불산(三佛山), '삼련불성(三聯佛成) 되게 되면 천하만사 아련마는 어느 누가 알쏘냐.(도전11:309:8)' 문왕사명자 선화등천이후 혼란에 편승해 상제님 진리세계에 마지막 자작사당의 난법이 판치니 현무지도 그 중의 하나라는 것. 선천 말 마지막 운수놀음에 척신발동에 넘어가지말고 마지막으로 부디 인연법줄 잘 잡아 만복동이 되시오들.
말복운수로 보는 인사와 도수, 그리고 현실 시리즈5-2, 포교 50년 공부 종필에 대하여(2)- 慧光 大仙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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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운수로 보는 인사와 도수, 그리고 현실 시리즈5-2, 포교 50년 공부 종필에 대하여(2)- 慧光 大��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초중말복 5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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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운수로 보는 천지공사의 도수와 인사 그리고 현실 !-시리즈 3-1>-By慧光 大仙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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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운수로 보는 천지공사의 도수와 인사 그리고 현실 !-시리즈 3-1>-By慧光 大仙師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통합경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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