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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전(2)-흥부집 미인에게 대접받고 제비집 지어 박씨 심어 타는 대목

낙엽군자 2017. 10. 14. 01:31








흥보전(2)

 

 

 

흥보가 졸부(猝富) 되었단 말이 사면에 퍼지니 놀보가 듣고 생각하여,

'그것 모두 뺏어다가 부익부를 하면 좋되, 이놈이 잘 안 주면, 어떻게 작처할꼬. 만일 아니 주걸랑, 흥보가 부자로서 제 형을 박대한다고 몹쓸 아전 뒤를 대어 영문(營門) 염문(廉問) 적어 주고, 출패를 돈 백 먹여 향중에 발통(發通)하고 도회까지 붙였으면, 이놈의 살림살이 단참에 떨어 엎지.'

흥보가 사는 동네 급히 물어 찾아가니, 고루거각(高樓巨閣) 오간팔작(午間八作), 봉방수와(蜂房水渦) 천문만호(千門萬戶), 즐비하고 웅장하다.

대문을 여럿 지나 안사랑 앞 당도하니, 흥보가 제 형을 보고 버선발로 내려와서 공손히 절을 하고 반기어 하는 말이,

"형님이 오십니까. 어서 올라갑시다."

방으로 들어가서 상좌에 앉힌 후에, 흥보가 두 손 잡고 고개를 숙이고서 조용히 사죄한다.

"박복한 이놈 신세 자분필사(自憤必死)하였더니, 선영의 음덕이며 형님의 덕택으로 부자가 되었기에 자식들을 데리옵고 형님 댁에 건너가서 형님을 뵈온 후에 형님을 모시옵고 선산에 성묘하자 일자를 받았더니, 형님이 먼저 오셨으니 하정(下情)에 황송하오."

놀보의 하는 어조, 좋게 하는 말이라도 평생 남을 잡아 뜯어,

"저러한 부자들이 우리같이 가난한 놈 찾아오기 쉽겄는가. 어찌하여 부자가 됐는고.?"

흥보가 제비 살려 박씨 얻어 부자가 된 내력을 종두지미(從頭至尾) 다 고하고,

"한퇴지(韓退之)는 취식강남(取食江南)이라 하더니 나는 좌식강남(坐食江南)이오. 밥이나 옷이나 기물이 다 강남 것이요."

놀보가 바로 가기로 들어,

"내가 집 일이 많은데 부득이 나왔더니 어서 가야 하겄고."

흥보가 만류하여,

"안으로 들어가서 처자나 보옵시고 무엇 조금 잡수어야 환행차를 하시지요."

놀보가 어서 가서 제비를 청할 테나 양귀비 구경키로 흥보따라 들어가니, 제수가 나와서 연접하여 이놈이 양귀비를 찾느라고 눈을 휘휘 내둘러 수숙(嫂叔)이 절한 후에 제수 먼저 문후하여,

"아주버님 뵈온 지가 여러 해 되었으니 기체 안녕하십니까."

놀보놈의 평생 행세 제수 보기 종 같아서 아주머니 고사하고 하오도 안 하더니, 오늘은 전과 달라 앉은 방 차린 의복 새 눈이 왈칵 띄어 홀대(忽待)를 하여서는 탈이 정녕 날 듯하고 경대를 하자 하니 혀가 아니 돌아가서 매운 것 먹은 듯이 입을 불며 얼버무려,

"허 평안하오."

흥보가 종을 불러,

"도령님네 계시느냐. 들어들 와 뵈오래라."

이것들이 멍석 구멍에 근본 길이 들었구나. 세 줄로 늘 엎디어 절하고 꿇안으니, 소위 백부 되는 놈이, "모시고들 잘 있더냐." 하든지, "선영의 음덕이다. 좀 잘들 생겼느냐." 하든지, 할 말이 좀 많을새, 저 때려 죽일 놈이 흥보를 돌아보며,

"너 닮은 놈 몇 되느냐?"

흥보 부처의 넓은 소견, 개 같은 놈 탄컸느냐. 묵묵무어(默默無語)하는구나.

자식들 나간 후에, 또 종을 불러,

"이리 오너라."

이것들이 강남에서 나와서 아주 열쇠 같지.

"예."

"강남 아씨께 여쭈어라."

아이(俄而)오 미인 하나가 들어오는데, 당 명황 같은 풍류 천자도 정신을 놓았는데, 놀보 같은 상놈 눈에 오죽 놀랐겄나. 보더니 턱을 채고 일어서 절 받기를, 큰 제수께 비하면 갑절이나 공순하다. 양귀비 거동 보소. 옥수를 땅에 짚고 청산미(靑山眉) 나직하고 양도순을 반개하여 옥반낙주성(玉盤落珠聲)으로 문후를 하는데,

"먼데 살고 천한 몸이 이 댁 문하에 의탁한 지 오래지 않삽기로 처음 문후 드립니다."

놀보놈 제 생전 처음 보는 미색이요 처음 듣는 옥음이라. 넉넉잖은 제 언사에 어찌 대답할 수 없고 턱 들입다 안고 싶어 정신을 놓겄구나. 벌벌 떨며 대답하되,

"오시는 줄 알았더면 내가 와서 박 타지요."

앵무 같은 아이 종이 주물상을 올리는데, 소반 기명 음식 등물 생전에 못 보던 것. 형제 함께 상을 받고 종년이 옆에 앉아 술을 연해 권하는데, 놀보가 좋은 술을 십여배 먹어 놓으니 취중에 광심이 나서 참다가 못 견디어 양귀비의 고운 손목 썩 들입다 쥐면서,

"술 한 잔 잡수시오."

다른 계집 같거드면 뺨을 치며 욕을 하며 오죽하겄느냐. 안색이 천연하여 좋게 대답하는 말이,

"왜 내가 물에 빠지오."

놀보놈이 깜짝 놀라 손목을 썩 놓으며,

"일색뿐 아니시라, {맹자} 많이 읽었구나."

양귀비가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가니 흥보 마누라가 그 뒤 따라 가는구나. 놀보놈이 무안하여 술상을 물리고서 무슨 심사를 부리려고 사면을 살펴보니, 좋은 비단 붉은 보로 이불을 덮었거든. 일어서서 쑥 빼내어 청동 화로 백탄 불에 비비어 던지면서 부담을 하는 말이,

"계집년은 내외하여 안으로 가려니와 이불도 내외하나."

저 비단이 불 붙더니 재 되기는 어림없고 빛이 더욱 고와 간다. 놀보가 물어,

"그게 무슨 비단이냐."

"화한단(火漢緞)이오. 불쥐 털로 짠 것이라 불에 타면 더 곱지요."

"얘, 그것 날 다오."

"그럽지요."

"또 무엇을 가져갈꼬. 너 그 첫 통 속에 쌀 들고 돈 들었던 궤 둘 다 주려느냐?"

"부자 된 밑천이니 둘 다 어찌 드리겄소, 하나씩 나눕시다. 어떤 것을 가지시려우."

"돈궤를 가질란다."

"그럽시오. 또 무엇 생각 있소."

"다 주면 좋건마는, 내가 바빠 가겄기로 그것만 가져가니, 다시 생각나는 대로 연해 와서 가져가지. 내가 번번이 올 수 없어, 기별을 하는 대로 칭탁 말고 보내어라."

"그리 하오리다."

벼룻집 같은 궤를 화한단 보에 싸서 제 손수 옆에 끼고 제 집으로 급히 가서 문 안에 들어서며 종 불러 하는 말이,

"짚 댓 뭇 급히 축여 돈꿰미 한 천 발을 어서어서 꼬아 오라."

안으로 들어가서 제 계집께 자랑하여,

"여보소 흥보놈이 참 부자가 되었거든. 그놈의 재산 밑천 내가 여기 뺏어 왔네."

화한단 보를 풀며,

"이것은 불에 타면 더 고운 것이로세."

돈궤를 내놓으며,

"이것은 돈이 생겨 비워 내면 또 생기지."

궤 문을 열어 놓으니 돈은 나전돈(신이나 부처께 복을 빌 때 그 삶의 나이 수효대로 놓는 돈), 몸뚱이는 구전(舊錢) 꿴 듯, 구부려 누운 길이 넉냥 아홉 돈만한 샛누런 구렁이가 고개를 꼿꼿이 들고 긴 혀를 널름널름. 놀부부처가 대경하여 궤 문을 급히 닫고 노속을 바삐 불러,

"이것을 갖다가 문 열어 보지 말고 짚불에 바로 태워라."

놀보 계집이 말려,

"애겨 그것 사르지 맙쇼. 인제 그런 흉한 것들, 돈 나는 궤 주었다고 자세(藉勢)하면 어쩌게. 구렁이 쌌던 보를 두어서 무엇 하게. 그 보로 도로 싸서 급급 환송하소."

놀보가 추어,

"자네 말이 똑 옳으네."

사환을 급히 시켜 흥보 집에 환송커늘, 흥보가 받아 열고 보니 거렁이는 웬 구렁이, 돈이 한나 가득하지. 제 복이 아니면은 할 수 없는 법이었다.

욕심 없는 놀보놈이 제비를 청하기로 차비를 장만할 제 이런 야단이 없구나. 신 잘 삼는 사람들을 십여 명 골라다가 메일에서 돈 공가(工價), 삼시 먹고 술 담배를 착실히 대접하고, 외양간 더그매(지붕 밑과 천장과의 빈 공간)에 신 삼을 찰벼 짚을 여남은 짐 내어놓고, 제비받기 수백 짐을 밤낮으로 걸어 내어, 안채 사랑 행랑이며 곳간 사당 뒷간채에 앞되 처마 다 지르고, 제 대가리 상투 밑에 풍잠(風簪)지른 모양으로 앞뒤로 갈라 꽂고 제비 몰러 나갈 적에,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한산석경(寒山石俓)에 올라가고, 설청운산 북풍한(雪靑雲散北風寒), 초수오산(楚水吳山)을 다 찾아도 제비 소식 알 수 없다. 놀보가 제비에 상사병이 달려들어, 길짐승은 족제비를 사랑하고 마른 그릇은 모제비('모집'이라고 하는 '고리'의 사투리)만 사고, 음식은 칼제비 수제비만 하여 먹고, 종이 보면 간제비를 접고, 화가 나면 목제비(목접이의 사투리)를 하는구나.

그렁저렁 과동하여 정월 이월 삼월 되니, 강남에서 오는 제비 각 집을 날아들제, 신수 불길한 제비 한 쌍이 놀보 집에 들어 가니 놀보가 제비 보고 집짓기에 수고된다 제가 손수 흙을 이겨 메주 덩이만씩 뭉쳐 처마 안에 집을 짓고, 검불을 많이 긁어 소 외양간 짚 깔 듯이 담뿍 넣어 주었더니, 미친 제비 아니면은 게다 알을 낳겄느냐. 위가상치(違家相値, 깃들일 집을 그릇 듦) 하였기로 알 여섯을 낳았더니, 마음 바쁜 놀보놈이 삼시로 만져 보아, 다섯은 곯고 하나 까서 날기 공부 익힐 적에 이 흉녕한 놀보 소견 구렁이가 먹으렬 제 쫓았으면 저리 될까. 축문 지어 제사하되 구렁이가 아니 와 대발 틈에 절각하면 제가 동여 살려 줄까 밤낮으로 축수하되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날기 공부하느라고 제 집가에 발 붙이고 날개를 발발 떨면 놀보 놈이 밑에 앉아,

"떨어지소 떨어지소."

두손 싹싹 비비어도 종시 아니 떨어지니 그렁저렁 점점 커서 날아가게 되었구나.

놀보가 망단(妄斷)하여 절로 절각되기 기다리면 놓치기 가려(可慮)하니 울려 놓고 달래리라. 제비 집에 손을 넣어 제비 새끼 집어내어 그 약한 두 다리를 무릎에 대고 자끈 꺾어 마룻바닥에 선뜻 놓고 천연히 모르는 체 뒷집 지고 걸으면서 목소리를 크게 내여 풍월을 읊는구나.

"황성허조 벽산월(荒城虛照碧山月)이요, 고목은 진입창오운(枯木盡入蒼梧雲)."

앞으로 돌아서며 제비 새끼 얼른 보고 생침 맞는 된 목소리로 제 계집을 급히 불러

"여보소 아이 어멈. 내가 아까 글 읊느라 미처 보지 못했더니 제비 새끼가 떨어져 절각이 되었으니 불쌍해 보겄는가. 어서 감아 살려 주세."

저 몹쓸 놀보놈이 제비 다리 감으렬 제 흥보보다 더하려고 대민어 껍질을 벗겨 세 겹을 거듭 싸고, 당사실은 가늘다고 당팔사 주머니 끈으로 단단히 동인 후에 제 집에 도로 넣고 행여나 촉풍(觸風)할까. 섶 두껍고 큰 누더기를 서너 겹 둘렀더니 놀보 망칠 제비여든 죽을 리가 있겄느냐. 십여 일이 지났더니 절각이 완합하여 비거비래 출입터니 연지사일 사소거(燕知社日辭巢去) 강남으로 들어갈 제 놀보가 부탁하여

"여봐라 제비야. 똑 죽을 네 목숨을 내 재조로 살렸으니 아무리 짐승인들 재생지덕(再生之德) 잊겄느냐. 흥보 은혜 갚은 제비 세 통 박씨를 주었으니 너는 갑절 더 보태어 여섯 통 열 박씨를 부디 쉬이 물고 오라. 삼월까지 있지 말고 과세 즉시 발행하여 정월 망전에 당도하면 기다리기 괴롭잖고 오죽 좋겄느냐.

그 제비 들어가서 놀보의 전후 내력을 장수전에 고한 후에 박씨 하나 얻어 두고 명년 삼월 기다릴 제, 이때에 놀보놈은 정월 보름에 제비 올까 앉은 뱅이 삯군 얻어 강남에 급주 보내 보고 안질 난 놈 중가 주어 제비 오는 망을 보아 제비에게 드는 돈은 아끼잖고 써낼 제 그렁저렁 삼월 되어 자거자래 당상연(自去自來堂上燕) 놀보 집에 다시 오니 놀보놈이 참으로 반겨,

"반갑다 내 제비야 어디 갔다 이제 왔나. 금천씨이조기관(金天氏以鳥紀官) 벼슬하러 네 갔더냐. 유소씨 구목위소(有巢氏構木爲巢) 집짓기 배우러 네 갔더냐. 오의항구석양사(烏衣巷口夕陽斜) 왕사당전(王社堂前)에 네 갔더냐. 기다홍분위황니(幾多紅紛委黃泥) 미앙궁중(未央宮中)에 네 갔더냐. 어이 그리 더디 와서 내 간장을 다 녹이냐. 박씨 물어 왔거들랑 어서 급히 나를 다오."

손바닥을 딱 벌리니 저 제비 거동 보소. 물었던 박씨 하나 놀보 손에 떨어치고 두 날개 편편(翩翩)하여 돌아도 안 보고 백운간에 날아가니 놀보 좋아 춤을 추며

"얼씨구나 좋을씨고. 부익부를 하겄구나."

저의 가속을 급히 불러 박씨 주며 자랑한다.

놀보 가속이 박씨 보고

"애겨 이것 내버리소. 갚을 보(報)자 원수 구(仇)자 바람 풍(風)자 쓰었으니 원수 갚을 바람이니 어디 그것 쓰겄는가."

놀보가 대답하되

"자네가 어찌 알어. 원수구라 하는 글자 군자호구(君子好逑)란 짝 구(逑)자와 통용하니 어떠한 미인으로 내 짝 갚잔 말이로세."

놀보 가속이 들어 보니 이런 죽을 말이 있나. 못 심을 말 연해 하여

"만일 그러하면 바람 풍자는 웬일인가."

"바람 풍자 더 좋지. 태호(太昊) 복희씨는 풍성(風姓)으로 왕하시고 순임금의 오현금(五絃琴)안 남풍시를 노래하고, 문왕 무왕의 장한 덕화는 천무열풍(天無烈風) 하였으며 주공은 성인이라 빈풍시(빈風詩) 지으시고, 한 태조 수수풍(睡水風) 광무황제 곤양풍(昆陽風) 와룡선생 적벽풍(赤璧風) 대풍이 삼조한(三助漢) 장하다 하려니와, 백이숙제 고절충풍(高節淸風) 엄자릉(嚴子陵)의 선생지풍(先生之風) 도정절(陶靖節)의 북창청풍(北窓淸風) 만고에 맑았으니 그 아니 좋을손가. 우리도 이 박 심어 습습동풍(習習東風)에 입묘하여 삼월 남풍에 점점 자라 우순풍조(雨順風調) 호시절에 꽃이 피고 박이 열어 팔월 고풍에 따서 켜면 보물이 풍풍 나와 집안이 풍덩풍덩 근래 풍속 좋은 호사 갑사 풍차(風遮) 금패 풍잠 학슬풍안(鶴膝風眼) 떠 괴고, 은안 백마 도춘풍(銀鞍白馬度春風)에 풍호무호(風乎舞乎)하여 보고 풍류랑(風流郞) 좋은 팔자 밤낮 풍악으로 지낼 적에, 네 귀에 풍경 단 집 방 안에 병풍 치고 풍로에 차관(茶罐) 얹고 풍석(風席)없는 자네 배를 선풍도골(仙風道骨) 내가 타고 풍편수성침(風便數聲砧)을 풍풍 찧었으면 경수무풍야자파(鏡水無風也自波)가 짤끔짤끔 날 것이니 그만하면 풍족하지 잔말 말고 심어 보세."

책력을 펴놓고 재종일을 가려내어 사랑 앞을 급히 파고 못자리할 거름을 모두 게다 퍼 쟁이고 단단히 심었더니 아침에 심은 것이 오후가 겨우 되어 솟아난 큰 박 순이 수종(水腫)난 놈 다리 만큼. 놀보 아내가 깜짝 놀라

"여보시오 아이 압시 이것 급히 빼 버리오. 은나라 상상곡(詳桑穀)이 아침에 났던 것이 저녁에 큰 아람 요물이라 하였으니 이것 정녕 재변이오."

놀보가 장담하여

"나물이 되련 것은 떡잎부터 알 것이니 사오 삭이 지나가면 억만금 세간 그 덩굴에서 날 터이니 일찌감치 잡죄겄나(잘 되지 않겄는가)."

이 박의 크는 법이 날마다 갑절씩이 더럭더럭 크는구나. 연거푸 순이 나고 순이 나고 한 순이 커지기를 한 아름이 넘는구나. 어디 가 턱 걸치면 모두 다 무너질 제 사당에 걸치더니 사당이 무너져 신주가 깨어지고 곳간에 걸치더니 곳간이 무너지고 온 동네 집집마다 부지불각 턱 걸치면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지면 값을 물고 무너지면 값을 물고. 그렁저렁 거기에 든 돈이 삼 사천 냥 넘었으니 놀보가 벌써부터 박의 해를 보는구나.

꽃이 피어 박 맺을 제 처음에 바로 북통만씩 십여 일이 지나더니 나루의 거룻배만 한 달이 되더니 조창(漕倉) 세곡선(稅穀船)만. 여섯 통이 열었거든 놀보가 좋아라고 가리키며 국량(局量)하여

"저 통 색이 노란 것이 속에 정녕 금 들었지 황금 적금이라니 은도 누르겄다. 어느 통에 미인 있노. 그 통을 꼭 알면은 포장으로 둘러 두게."

한참 이리 걱정할 제 허망이라 하는 놈이 성명 듣고 행사 보면 명불허득(名不虛得)하였구나. 동네 사람들이 앉으면 놀보 공론.

"놀보 같이 약은 놈이 박에다 쓰는 돈은 아끼잖고 써 내니 무슨 꾀를 냈으면 돈 천이나 쓰게 할꼬."

허망이가 장담하여

"나밖에 할 이 없지."

놀보 집에 건너가서

"여보소 놀보씨 박통일을 몰라 걱정을 하신다니 나를 어찌 안 찾는가."

놀보가 반가이 물어

"자네가 알겄는가."

허망이 대답하되

"모수자천(毛遂自薦)하는 말을 남은 암만 웃더라도 노형이야 속이겄나. 값 정해 주었다가 박 타보아 안 맞거든 그 돈 도로 찾아가소."

"그리 할 일일세."

맞히면 천 냥 결가(決價) 삼백 냥 선폐하고 박 속 일을 알려 할 제 허망이 지닌 재조 복구분법(卜龜分法)이었다. 박통 놓인 좌향(坐向)을 복구분법으로 보아 가니 신통히 맞히거든. 첫째 통 보고 하는 말이

"모두 다 생금인데 누가 혹 가져갈까 노인 한분 수직한다."

둘째 통을 한참 보다

"사람이 많이 들었구나."

놀보가 옆에 앉아 손수 장담이 더 우스워

"집 지을 장인들과 종들이 들었나뵈."

셋째 통을 보더니

"애겨 계집 많이 있다."

"서시(西施)가 나오는데 계집종들이 따라오나."

넷째 통 또 보더니

"풍류기계 많이 있다."

"내가 두고 행락하게."

다섯째 통을 가리키며

"그 가마 장히 길다."

"나하고 서시 둘이 타게."

여섯째 통 가리키며

"그 말 장히 좋다."

"타고도 다닐 테요 바 늘여 매어 두지."

"대강만 볼지라도 들 것 다 들었으니 어서 타고 보는 술세."

책력을 펴놓고 납재일(納財日) 가려내어 박통을 타려 할 제 섬(石)술 빚고 섬밥 짓고 소 잡히고 개 잡혀서 먹이를 차린 후에, 팔 힘 세고 소리 좋은 건장한 역군들을 잔뜩 먹고 닷 냥 삯에 삼십 명을 얻어다가 생금 통을 먼저 탈 제, 놀보가 좋아라고 제가 소리를 메기는데 똑 금이 나올 줄로 금으로 메겨  

"여보소 세상 사람 금 내력을 들어보소. 여수(麗水)에 생겨나고 흙 속에 묻히어서 소진(蘇秦)은 구변으로 많이 얻어 실어 오고 곽거(郭巨)는 효성으로 묻힌 것을 파내었네."

"어기여라 톱질이야."

"오행의 가운데요 팔음의 머리로다. 아부(亞父)를 반간(反間)키로 진평(陳平)은 흩었는데, 고인이 주는 것을 양진(楊震)어이 마다하고."

"어기야라 톱질이야."

"나는 제비 살렸더니 금 박통 씨 얻었으니 이 통을 어서 타서 금이 많이 나오면은 석숭(石崇)을 부러워할까. 이 동네가 금곡(金谷) 되리."

"어기여라 톱질이야."

"서시 소군 앉히기로 황금옥을 지어 볼까. 자류청총 달리기로 황금편을 만들고저."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근 슬근 거진 타니 박통 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나 "맹자 견양혜왕(孟子見梁惠王)하신데 왕왈수불원천리이래(王曰 不遠千里而來)하시니 역장유이이오국호(亦將有以利吾國乎)이까. 마상에 봉한식(逢寒食)하니 도중에 송모춘(送暮春)을 가련 놀보 망하니 불견상전(不見上典)인가."

놀보가 듣고 하는 말이

"어디 그게 박 속이냐 정녕한 서당이지. 귀글은 당음(唐音)인데 강포(江浦)가 놀보 되고 낙교(洛橋)가 상전 되니 그것은 웬일인고."

한참 의심하노라니 박통 문을 반만 열고 노인 한 분이 나오는데 차린 복색 제법이어 헐고 헌 쳇불관(冠)에 빈대 알이 따닥따닥 생마포 적삼 위에 개가죽 묵은 배자가 무릎 밑에 털렁털렁 구멍이 뻔뻔한 중치막 아랫단에 황토 묻고 세전지물(世傳之物) 묵은 바지 오줌 싸서 얼룽이 지고 석 자 가웃 홑베 주머니에 일가산을 넣어 차고 또닥또닥 기운 버선 사날(네 날로 된 짚신) 초혜(草鞋)를 들메신고 곱돌조대 중동 쥐고 개털 모선으로 차면하고 놀보의 안방으로 제 집같이 들어가니 놀보가 보고 장담하여

"흥보는 첫 통 탈 제 동자가 왔다더니 내 박은 첫 통에서 노인이 나오시니 그로만 볼지라도 관동지분(冠童之分)이 있고 저 주머니 속에 든 게 다 선약이지."

바삐바삐 따라가서 자상히 살펴보니 토끼 같은 낯에 반대코가 맵시 있다. 뱁새 눈 병어 입에 목소리는 장히 커

"이놈 놀보야 구상전(舊上典)을 모르느냐. 네 할아비 덜렁쇠 네 할미 허튼 댁 네 아비 껄덕놈이 네 어미 허천네 다 모두 댁 종이라. 병자 팔월에 과거 보러 서울 가고 댁 사랑이 비었을제 흉녕한 네 아비놈 가산 모두 도둑하여 부지거처 도망했으니 적년을 탐지하되 종적을 모르더니 조선에 왔던 제비 편에 자세히 들어 보니 네놈들이 이곳에서 부자로 산다기로 불원천리 나왔으니 네 처자 네 세간을 박통 속에 급히 담아 강남 가서 드난하라."

놀보가 들어 보니 정신이 캄캄하여 아무렇다 못 하겄다. 아니라 하자 한들 삼 대나 되었으니 증인 설 사람 없고 싸워 보자해도 이 양반 생긴 것이 불에 넣어도 안 탈 테요 송사를 하자하니 좋잖은 그 근본을 읍촌이 다 알터니 어찌하면 무사할꼬. 저 혼자 국량할 제 저 양반의 호령 소리 갈수록 무섭구나.

"이놈 놀보야 구상전이 와 게신데 네 계집 네 자식이 문안을 아니하니 이런 변이 있단 말고. 일 오너라."

박통 속이 관문같이

"예."

범강 장달 허저 같은 설금찬(힘세고 무섭게 생긴) 여러 놈이 몽치 들고 올가미 바 들고 꾸역꾸역 퍼나오니 놀보가 이 광경을 본즉 죽을밖에 수 없구나. 엎디어서 애걸한다.

"여보시오 상전님 이 동네가 반촌이요 아비 가세 요부(饒富)키로 착관하고 지내오니 이 고을 통경 내에 모모한 양반 댁이 다 모두 사돈이요. 이 소문이 나게 되면 소인은 고사하고 그 양반들 우세오니 방장부절(方長不折) 생각하와 아무 말씀 마옵시고 속전(贖錢)으로 바치옵게 속량(贖良)하여 주옵소서."

"그새 여러 십 년 네 놈의 아비 어미 네놈과 계집 자식 드난 아니하였으니 공돈은 어찌할꼬."

"분부대로 하오리다."

"네놈 죄상을 생각하면 기어이 잡아다가 주야 악역시키면서 만일 조금 잘못하면 초당전(草堂前) 마줏대(말뚝의 사투리)에 거꾸로 매어 달고 대추 나무 방망이로 두 발목 복사뼈를 꽝꽝 우려 때려 가며 부려먹자 하였더니 네 말이 그러하니 차역인자(此亦人子)라 가선우지(可善遇之)로 공돈 속전을 바칠 테면 지체 말고 썩 들여라."

놀보가 물어

"몇 냥이나 바치올지."

"너 같은 놈을 데리고서 돈 다소를 다투겄나."

조그마한 주머니를 허리에서 끌러 주며

"아무것을 넣든지 여기만 채워 오라."

놀보놈 제 소견에 저 양반 저 억지에 많이 달라 하게 되면 이 일을 어찌할꼬 잔뜩 염려하였다가 이 주머니 채우자면 얼마 안 들겄거든. 아주 좋아 못 견디어

"예 그리 하오리다."

주머니를 가지고서 제 방으로 들어가서 돈 열 냥을 풀어 놓고 한 줌 넣고 두 줌 넣어 열 줌이 넘어가도 아무 동정이 없었구나. 싸돈이라 그러한가. 양돈으로 넣어 보아 닷 냥 열 냥 스무 냥 얌만 넣어도 간데없다. 묶음으로 넣어볼까 스무 냥씩 묶음 묶음 백 묶음이 넘어가도 형적이 없어 간다. 이 주머니 생긴 품이 무엇을 넣으려 하면 주둥이를 떡 벌려서 산덩이도 들어갈 듯 넣고 보면 딱 오무려 전과 도로 같아진다.

"어허 이것 어찌할꼬."

돈 천 냥 쟁인 궤를 궤째 모두 밀어 넣으니 어디 간지 알 수 없다. 이대로 하다가는 묵은 상전 고사하고 자신 방매하여 새 상전 생기겄다. 부피가 많겄기로 곡식을 넣어 보자 쌀 백 석을 넣어 보아 이백 석 삼백 석이 곧 넣어도 그만이라. 벼 천 석 쌓은 노적 나무가리 짚가리 심지어 뒷간 거름을 모두 쓸어 넣어도 발름(볼록)도 아니한다.

놀보가 겁을 내어 주머니를 들고 보아

"이게 어디 구멍 났나."

혼솔(홈질한 솔기) 밑을 다 보아도 가죽으로 만든 것이 바늘 찌를 틈이 없다.

"애겨 이것 어찌할꼬. 사람 죽일 것이로다."

주머니를 가지고서 양반전에 다시 빌어

"여보시오 상전님 이게 무슨 주머니요."

"에라 이놈 간사하다. 그럴 리가 왜 있으리. 조그마한 주머니를 채워 오라 하였더니 아무것도 아니 넣고 이 소리가 웬 소린고. 일 오너라 네 저놈 매달아라."

놀보가 황겁하여 애긍히 빈다.

"비옵니다 상전님 덕택에 삽시다. 공돈 속전 또 바치지 이 주머니 챌 수 없소."

"네 원이 그러하면 네 할아비 네 할미 네 아비 네 어미 네 아들 네 딸년 네놈까지 일곱 구(軀) 매구에 일천 냥씩 칠천 냥을 바치라. 만일 잔말을 해서는 네놈을 여기에 넣으리라."

주머니를 떡 벌리니 놀보가 황겁하여 칠천 냥을 또 바치니 저 양반 그 돈 받아 주머니에 들여치니 경각에 간데없다.

놀보가 속량터니 상전이라 아니하고 생원으로 부르겄다.

"여보시오 생원님, 이왕 작처한 일인 주머니 이름이나 가르쳐 주옵소서."

속 얕은 저 양반이 먹을 것을 다 먹더니 마음이 낙락하여 수작을 좋게 하여

"이 주머니가 능천낭(凌天囊)이다. 천지 개벽한 연후에 불충불효한 놈들 무륜무의(無倫無義) 모든 재물을 뺏어 오는 주머니다."

"뉘 것 뉘 것 뺏어 왔소."

"어찌 다 말해야. 한나라 양기(梁冀)의 세간 한 편 귀도 못 차더라."

"그 세간은 얼마나 되더라우."

"돈 많아도 삼십여 만만이지. 당나라 원재(元載)의 세간 한 편 귀도 못 차더라."

"그 세간은 얼마나 되더라우."

"호초(胡椒)만 해도 팔천 석이지야."

"그렇게 뺏어다가 다 어디다 쓰시오."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친구 구제하는 사람 형세가 가난하면 이 재물 노나 주어 부자 되게 하였지야. 그것도 조선땅이지. 박흥보라 하는 사람 마음이 인자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되 형세가 가난키로 이 주머니에 있는 세간 절반 남짓 보냈지야."

놀보놈의 평생 성기(性氣) 다른 사람 하는 말을 기어이 뒤받겄다.

"만일 그렇다면 안자(顔子) 같은 아성인(亞聖人)이 단표누항 하였으며, 동소남(董召南)의 출쳔지효 숙수공양(菽水供養) 못 하오니 주머니에 있는 세간 왜 아니 보내었소."

"그럴 리가 있겄느냐. 많이 많이 보냈더니 염결(廉潔)하신 그 어른들 무명지물(無名之物)이라고 다 아니 받더구나. 누가 허물이 없으리요 구치면 귀할 터니 너도 이번 개과하여 형제간에 우애하고 인리(隣里)에 화목하면 이 재물 더 보태어 도로 갖다 줄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한 장(場)동안에 한 번씩을 큰 비가 올지라도 우장(雨裝)하고 올 것이니 지질하게 알지 마라."

당하에 내리더니 인홀불견이라.

박 타던 역군들이 이 꼴을 보아 놓으니 무색이 막심하여 다시 탈 흥이 없어 각기 귀가하려 하니 놀보가 만류하여

"아까 왔던 그 노인이 상전인 게 아니시라 은금이 변화하여 내 지기(志氣)를 받자 하니 만일 중지하여서는 저 다섯 통에 있는 보화 흥보 갖다 줄 것이니 대명당(大明堂)을 쓰려 하면 초년패(初年敗)가 똑 있나니 무안히 알지 말고 어서 어서 톱질하소."

놀보가 설 소리를 또 메기되 부자만 원하겄다.

"어기야라 톱질이야."

"인간에 좋은 것이 부자밖에 또 있는가. 요임금은 어찌하여 다사(多事)타 마다시고 맹자는 어찌하여 불인하면 된다신고. 다사해도 내사 좋고 불인해도 내사 좋으이."

"어기여라 톱질이야."

"범려의 부자 되기 계연(計然)의 남은 꾀요. 백규의 치산하기 손오(孫吳)의 병법이라. 물이 없으면은 잘난 사람 쓸데없네."

"어기여라 톱질이야."

"공자 같은 대성인도 자공이 아니면은 철환천하(轍環天下) 어찌 하며 한 태조 영웅이나 소하(蕭何) 곧 아니면은 통일천하할 수 있나."

"어기여라 톱질이야."

"배금문입자달(排禁門入紫 )에 임금도 사랑하고 일백금전 편반혼(一百金錢便返魂) 귀신도 안 무서워."

"어기여라 톱질이야."

"이 통을 어서 타서 좋은 보물 다 나오면 부익부 이내 형세 무궁 행락하여 보세."

슬근슬근 거의 타니 필채 꿰미가 박통 밖에 뽀조록이. 놀보가 보고 좋아라고

"애겨 이것 돈꿰미."

쑥 잡아빼어 놓으니 줄봉사 오륙백 명이 그 줄들을 서로 잡고 꾸역꾸역 나오더니 그 뒤에 나오는 놈 곰배팔이 앉은뱅이 새앙손이 반신불수 지겟다리에 발 디딘 놈 밀지(蜜紙)로 코 덮은 놈 다리에 피칠한 놈 가슴에 구멍난 놈 얼어 부푼 낯바닥에 댕강댕강 물든 놈 입술이 하나 없어 잇속이 앙상한 놈 다리가 통통 부어 모기둥만씩한 놈 등덜미가 쑥 내밀어 큰 북통 진 듯한 놈 키가 한 자 남짓한 놈 입이 한쪽으로 돌아간 놈 가죽 관을 쓴 놈 쳇불관 쓴 놈 패랭이 꼭지만 쓴 놈 웅장건(熊掌巾) 끈 달아 쓴 놈 물매 작대 멜빵만 진 놈 감태(甘苔)한 줌 헌 공석 진 놈 온몸에 재 칠하여 아궁에서 자고 난 놈 헐고 헌 고의 적삼 등잔 그을음이 질음한 놈 그저 꾸역꾸역 나오는데, 사람들 모은 수가 대구 시월령 만한데 각청으로

"놀보 불러 놀보 불러."

이런 야단이 없구나. 그 중에도 영좌(領座) 고원(雇員) 있어 영좌라 하는 영감 나이 오십 남짓한데 다년 과객질에  공것 먹는 수가 터져 힘도 별로 안 들이고 예상으로 하는 수작 사람 조질 말이로다. 헌 갓에 벌이줄(물건을 버티어서 이리저리 얽어매는 줄) 헌 중치막 방울띠 휠씬 긴 담뱃대를 한가운데 불끈 쥐고 점잖게 나오더니 동무들을 책망하여

"왜 이리들 요란하냐. 한 달 두 달 내에 끝날 일이 아닌 것을 어찌 그리 성급한고. 아무 말도 다시 말고 내 영대로 시행하지."

놀보 안채 대청 위에 허물없이 올라앉아 끝없는 반말 소리

"밖주인이 어디 있노. 이리 와서 내 말 듣지."

놀보가 전 같으면 이러한 과객보고 오죽 호령할 터로되 여러 걸인 호령 소리에 정신을 놓았다가 이분의 하는 것이 잠잖아 보이거든 원정(原情)을 하여보자. 올라가 절한 후에 공순히 묻삽기를

"본댁은 어디온데 무슨 일로 오셨으며 저리 많은 동행 중에 성한 사람 없사오니 어찌하여 오셨나이까."

영좌가 대답하되

"우리들 온 내력은 오륙 일 쉰 후에 종차(從此) 수작하려니와 수다한 동행들이 저 좁은 박통 속에서 여러 날 고생하여 기갈이 자심하니 좋은 안주 술 대접과  갖은 반찬 더운 점심 정결한 사처방에 착실히 대접하지."

놀보가 깜짝 놀라 애긍히 비는 말이

"저 많으신 손님네들 주식 대접할 수 있소. 대전(代錢) 차하(差下) 하옵시다."

영좌가 대답하되

"손님 대접하는 법이 밥상 하나 하자 하면 접시 일곱 종자 둘 조칫보(김칫그릇)에 갖은 반상 반찬 값만 할지라도 댓 냥이 넘을 테나 주인의 폐를 보아 댓 냥으로 작처하니 손님 한 분에 매일의 식가 석 냥 술 담배 값 한 돈씩 파전(破錢) 소전(小錢) 섞이잖게 착실히 차하하라."

놀보가 하릴없어 삼천 냥을 내어 놓고 한 끼 식가 차하하니 몇 냥 아니 남았구나. 놀보가 다시 빌어

"귀하신 손님네를 여러 날 만류하여 쉬어가면 좋을 테나 내 집 십 배 더 있어도 못다 앉힐 터이오니 오신 내력 말씀 쉽게 작처하옵시다."

"주인 말이 그러하니 아무렇게나 하여 볼까 우리 나라 벼슬 중에 활인서(活人署) 마름 있어 관원 서리 고자(庫子)들이 누만 냥 돈 식리하여 수많은 우리 걸인 요(料)를 주어 먹이더니 주인 조부 덜렁쇠가 삼천 냥 보전(保錢)쓰고 병자년에 도망하여 부지거처되었으니, 매년 삼리 삼삼 구를 본전에서 범용되어 그렁저렁 수십 년에 본전이 다 없어서 우리 반료(頒料) 못 하더니, 조선 왔던 제비 편에 주인 소식 자세히 듣고 활인서에 백활(白活)한즉 관원이 분부 내어 '만리타국에 있는 놈을 패문왕복(牌文往復) 번거로우니 너희들이 모두 가서 축년(蓄年) 변리(邊利) 받아 오되 만일 완거(頑拒)하거들랑 그놈의 안방에가 먹고 반듯 누었어라.' 분부 모시고 나왔으니 갚고 안 갚기는 주인의 소견이지."

놀보가 기가 막혀 공순히 다시 물어

"우리 조부 그 돈 쓸 제 수표 착명(着名) 증인 있소."

"있지."

"여기 가져오셨습니까."

"안 가져왔지."

"수표가 있더라도 신사면(信士面)이 중한데 수표도 안 가지고 빚 받으러 오셨습니까."

"일년쯤 되면 강남 왕래할 터이니 우리 식구 예서 먹고 동행 하나 보내어서 수표를 가져오지."

놀보가 들을수록 사람 죽일 말이로다. 무한히 힐난하다 갑절로 육천 냥에 사화(私和)하여 보낼 적에 영좌가 하는 말이

"갖다가 바쳐 보아 당상께서 적다 하면 도로 찾아올 것이니 홀홀(忽忽)히 떠난다고 섭섭히 알지 마소."

일시에 간데없다.

걸인들을 보낸 후에 셋째 통 또 타렬 제 놀보 저도 무안하여 아니리를 연해 짜

"선흉후길(先凶後吉)이요 고진감래요 삼령오신(三令五申) 이라니 무한 좋은 보화 이 통 속엔 꼭 들었지."

박 타는 역군 중에 입바른 사람이 있어 옆구리에 칼이 와도 할 말은 똑하겄다.

"여보게 놀보 씨. 이 통 설소리는 내가 메겨 어떤가."

놀보가 허락하니 놀보를 꾸짖는 박 사설로 메기겄다.

"요순우탕(堯舜禹湯) 태평시에 인심들이 순박 공맹안증(孔孟顔曾) 성인님은 행실들이 검박 밀화 늙어 호박 구슬 발은 주박(珠箔)."

"어기여라 톱질이야."

"근래 풍속 그리 소박(疎薄) 사람마다 모두 경박 남의 말을 대고 타박 형제간에 몹시 구박."

"어기여라 톱질이야."

"흥보의 심은 박 제비 은혜 받는 박, 놀보의 심은 박 제비 원수 갚는 박. 양반 나와 바로 결박 걸인 나와 무수 공박."

"어기여라 톱질이야."

"네 정경이 저리 민박(憫迫) 네 사세가 하도 망박(忙迫), 불의로 모은 재물 부서지기 쪽박."

슬근 슬근 거의 타니 사당(寺黨)의 법이란 게 그 중에 연계사당이 앞서는 법이었다.

허튼 낭자 때 묻은 옷 박통 밖에 썩 나서니 놀보가 깜짝 놀라

"애겨 서시가 나오느라고 하님 먼저 나온다."

내외를 시키려고 금잡인(禁雜人)이 대단하여 울력꾼을 모두 다 문 밖으로 보내고서 휘장이 모자라니 홑이불 이불 안팎 돗자리 문발이며 심지어 공석까지 담뿍 둘러 막았더니 그 뒤에 서시들이 꾸역꾸역 나오는데 낭자도 했으며 고방머리 곱게 빼고 주사(紬絲) 수건 자지(紫地) 수건 머리도 동였으며 연두색 저고리에 긴 담뱃대 물었으며 따라오는 짐꾼들은 곱게 결은 오쟁이에 이불보 요강 망태 기름병도 달아 지고 꾸역꾸역 나오더니 놀보 보고 절을 하며

"소사(小寺) 문안이요 소사 등은 경기 안성 청룡사(靑龍寺)와 영남 하동 목골이며 전라도로 의론하면 함열에 성불암(成佛菴) 창평에 대주암 담양 옥천 정읍 동복 함평에 월량사 여기 저기 있삽다가 근래 흉년에 살 수 없어 강남으로 갔삽더니, 강남 황제 분부 내어 '네 나라 박놀보가 삼국에 유명한 부자라니 박통 타고 그리 가서 수천 냥을 뜯어내되 만일 적게 주거들랑 다시 와서 아뢰어라.' 분부 모시고 나왔으니 후히 차하하옵소서."

놀보가 하릴없어 제 손수 눅이겄다.

"나오던 중 상(上)이로다. 너희들 장기대로 염불이나 잘하여라."

사당의 거사 좋아라고 거사들은 소고 치고 사당의 절차대로 연계사당이 먼저 나서 발림을 곱게 하고

"산천초목이 다 성림한데 구경 가기 즐겁도다. 어야여 장송은 낙락 기러기 훨훨 낙락장송이 다 떨어진다. 성황당 어리궁 뻐꾸기야 이 산으로 가며 어리궁 뻐꾹 저 산으로 가며 어리궁 뻐꾹."

"야 잘 논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초월이오."

또 한 년이 나서면서

"녹양방초(綠楊芳草) 녹양방초 다 저문 날에 해는 어찌 더디 가며 오동야우(梧桐夜雨) 성긴 비에 밤은 어찌 길었는고 얼싸절싸 말 들어 보아라. 해당화 그늘 속에 비 맞은 제비같이 일 흔들 저리 흔들 흔들흔들 넘논다. 이리 보아도 일색이요 저리 보아도 절색이라."

"얘 잘 논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구광선이요."

또 한 년 나오더니

"갈까 보다 갈까 보다 잦힌 밥을 못 다 먹고 임을 따라 갈까 보다. 경방산성(傾方山城) 빗근길로 알배기 처자 앙금 살살 게게 돌아간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일점홍이오."

또 한 년이 나오면서

"오독도기 춘향 춘향월에 달은 밝고 명랑한데 여기다 저기다 얹어 버리고 말이 못 된 경(景)이로다. 만첩 청산에 쑥쑥 들어가서 휘어진 버드나무  손으로 주르륵 훑어다가 물에다 두둥두둥 실실실 여기다 저기다 얹어 버리고 말이 못 된 경이로다."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설중매요."

또 한 년 나오며 방아타령을 하여

"사신 행차 바쁜 길에 마중참이 중화(中和)로다. 산도 첩첩 물도 중중 기자(箕子)왕성이 평양이라. 청천에 뜬 까마귀 울고 가니 곽산(郭山) 모닥불에 묻은 콩이 튀어 나니 태천(泰川)이라. 찼던 칼 빼어 놓으니 하릴 없는 용천검(龍泉劍) 청총마를 칩떠(들입다) 타고 돌아오니 의주(義州)로다."

"잘 논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월하선이요."

또 한 년 나오면서 잦은 방아타령을 하여

"유각골 처자는 쌈지 장수 처녀 왕십리 처자는 미나리 장수 처녀 순담양(淳潭陽) 처자는 바구니 장수 처녀 영암 강진 처자들은 참빗 장수 처녀 에라뒤야 방아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하옥이요."

한참 서로 농탕치니 놀보 댁이 강짜가 났구나. 사양머리 동강치마 속곳 가래 풀어놓고 버선발 평나막신 왈칵 뛰어 냅다 서서 놀보 앞에 앉으면서

"나는 누구만 못하기에 사당보고 미치느냐."

놀보가 전 같으면 볼에 금이 곧 날 터나 사당에게 우세될까 미운 말로 별시(別視)하여

"차린 의복 생긴 맵시 정녕한 사당들이 예쁘기도 하거니와 강남 황제가 보냈으니 홀대할 수 있겄느냐."

매명에 일백 냥씩 후히 주어 보낸 후에 설소리꾼에게다 분을 모두 풀어

"방정스런 저 자식이 톱질 사설 잘못 메겨 떼 방정이 나왔으니 물러가라 내 메길게."

놀보가 분을 내어 통사설로 메기겄다.

"헌원씨(軒轅氏) 작주거(作舟車)에 타고 나니 이제불통(以濟不通) 공부자 교불권(敎不倦)에 칠십 제자가 육예(六藝) 신통(身通)."

"어기여라 톱질이야."

"한나라 숙손통(叔孫通) 당나라 굴똘통 옛 글에 있는 통 모두 다 좋은 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어찌하다 이내 박통 모두 다 몹쓸 통. 첫 번 통 상전 통, 둘째 통 걸인 통, 셋째 통 사당 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세간을 다 빼앗기니 온 집안이 아주 허통 우세를 하도하니 처자들이 모두 애통 생각하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절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어서 썰세 넷째 통, 이는 분명 세간 통, 그렇지 않으면 미인 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내 신수가 아주 대통 어찌 그리 신통 뺏뜨려라. 이내 죽 통 흥보 보면 크게 호통 "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근슬근 거의 타니 열대여섯 살 된 아이가 노랑 머리 갈매 창옷 박통 밖에 썩 나서니 놀보가 장히 반겨

"애겨 이것 선동이지."

"삼십 넘은 노총각이 그 뒤 따라 또 나오니 놀보가 더 반겨

"동자가 한 쌍이지."

"그 뒤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나오는디 앞에 선 두 아이는 검무(劍舞)쟁이 북 잡아라 풍각쟁이 각설이패 방정스런 외초라니 등물이 짓끌어(지껄이며) 나오더니 놀보의 안마당을 장판으로 알았던지 휠씬 넓게 자리잡고 각 차비(差備)가 늘어서서 가얏고 "둥덩둥덩." 통소 소리 "띠루띠루." 해적(奚笛)소리 "고깨고깨." 북 장단에 검무 추며 번개 소고 벼락 소고 "동골동골."

한 편에서는 각설이패가 덤벙이는데 배코(머리털을 밀어버린 자리) 밑 훨씬 돌려 숭늉 쪽박 엎어 논 듯 가로 약간 남은 머리 개미 상투 얹듯 하여 이마에 딱 붙이고 전라도 장타령을 시작하여

"뚤울울 돌아왔소. 각설이라 멱서리라 동서리를 짊어지고 뚤뚤 몰아 장타령. 흰 오얏꽃 옥과장 노란 버들 김제장, 부창부수(夫唱婦隨) 화순장 시화연풍 낙안장, 쑥 솟았다 고산장 철철 흘러 장수장, 삼도 도회 금산장 일색 춘향 남원장, 십리 오리 장성장 애고애고 곡성장, 누릇누릇 황육전(黃肉廛) 펄펄 뛰는 생선전, 울긋불긋 황화전(荒貨廛) 파싹파싹 담배전, 얼걱덜걱 옹기전 딸각딸각 나막신전."

한 놈은 옆에 서서 두 다리를 벗디디고 허릿짓 고갯짓 살만 남은 헌 부채로 뒤꼭지를 탁탁 치며

"잘 한다 잘 한다 초당 짓고 한 공부가 실수 없이 잘한다. 동삼(童參) 먹고 한 공부가 진기(津氣)있게 잘도 한다. 기름 되나 먹었느냐 미끈미끈 잘 나온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훤하게도 잘 한다. 뱃가죽도 두껍다 일망무제(一望無際)로 나온다. 내가 저리 잘할 적에 네 선생이 오죽하랴. 네 선생이 나로구나. 잘 한다 잘 한다. 목 쉴라 목 쉴라 대목장에 목 쉴라. 가만가만 섬겨라(종알거려라). 너 못하면 내가 하마."

한참 이리 덤벙일 제 한 편에서는 고사(告祀) 초라니가 덤벙이는데 구슬 상모(象毛) 담벙거지 되게 맨 통 장고를 턱밑에다 되게 매고

"꽁그락공 꽁그락꽁."

"예 돌아왔소 구름 같은 댁에 신선 같은 나그네 왔소. 옥같은 입에 구슬 같은 말이 쏙쏙 나오."

"꽁그락 꽁."

"예 오노라 가노라 하니 우리 집 마누라가 아주머님 전에 문안 아홉 꼬장이 평안 아홉 꼬장이 이구 십팔 열여덟 꼬장이 낱낱이 전하라 하옵디다."

"꽁그락 꽁."

"허페."

"통영 칠한 도리반에 쌀이나 담아 놓고 귀 가진 저고리 단 가진 치마 명실 명전 가진 꽃반 고사나 하여 보오."

"꽁구락 꽁꽁."

"허페페."

"정월 이월에 드는 액은 삼월 삼일에 막아내고 사월 오월에 드는 액은 유월 유두에 막아내고 칠월 팔월에 드는 액은 구월 구일에 막아내고 시월 동지 드는 액은 납월(臘月) 납일에 막아내고 매월 매일에 드는 액은 초라니 장구로 막아내세."

"꽁그락 꽁 허페."

놀보가 보다 하는 말이

"저런 되방정들 집구석에 두었다는 싸라기도 안 남겄다."

돈 관씩 후히 주어서 치송하였구나.

잡색꾼들 보낸 후에 남은 통을 켜자 해도 이 여러 박통 속이 탈수록 잡것이라 놀보 댁은 옆에 앉아

"아이고 아이고"

통곡하고 삯 받은 역군들은 무색하여 만집(挽執)한다.

"그만 타소 그만 타소 이 박통 그만 타소 삼도 유명 자네 성세를 일조탕진(一朝蕩盡)하였으니 만일 이 통 또 타다가 무슨 재변 또 나오면 무엇으로 방천(防川)할까 필경 망신 될 것이니 제발 덕분 그만 타소."

고집 많은 놀보놈이 가세는 틀리어도 성정은 안 풀리어

"너의 말이 녹록(碌碌)하다 천금산진 환부래(千金散盡還復來)가 옛 문장의 말씀이요 빼던 칼 도로 꽂기 장부의 할 일인가. 무엇이 나오든지 기어이 타볼 테네."

톱소리를 아주 억지쓰기로 메겨  

"어기여라 톱질이야."

"초패왕이 장감(章邯) 칠 제 삼일량(三日糧)만 가졌으며 한신이 진여(陳餘) 칠 제 배수진이 영웅이라."

"어기여라 톱질이야."

"미불유초(靡不有初) 선극유종(鮮克有終) 성인이 하신 경계 자넨 어찌 모르는가. 나는 기어이 타볼 테세."

"어기여라 톱질이야."

"정녕한 좋은 보패 이 두 통에 있을 테니 일락 서산 덜 저물어 한 힘 써서 당기어라."

슬근슬근 거의 타니 큼직한 쌍교 대체 거금도(居金島) 가시목(加時木)을 네모 접어 곱게 깎아 생가죽으로 단단히 감아 철정을 걸었는데 박통 밖에 뾰조록 놀보가 대희하여

"아무렴 그렇지. 아무리 박통 속이 내와하기 좋다 한들 천하백 그 얼굴이 걸어올 리가 있나. 정녕한 쌍교 속에 서시가 앉았으니 쌍교째 모셔다가 안채 대청에 놓을 테니 휘장 칠 것 다시 없다."

장담하여 기다릴 제 쌍교는 무슨 쌍교 송장 실은 상여인데 강남서 나오다가 박통 가에 당도하여 세상에 나올 테니 상여를 정상(停喪)하여 마목(馬木)틀 되어 놓고 어동육서(魚東肉西) 좌포유혜(左脯右醯) 제를 진설하느라고 그새 종용하였구나.

불시에 나는 소리

"영이기가(靈이 旣駕) 왕즉유택(往卽幽宅) 재진견례(載陳遣禮) 영걸종천(永訣終天)." 대고

"워허너허 워허너허."

"명정(銘旌) 공포(功布) 앞을 세고 행자 곡비(哭婢) 곡을 하소."

"워허너허 워허너허."

"행진강남 수천리(行盡江南數千里)에 고생도 하였더니 박통문이 열렸으니 안장처가 어디신고."

"워허너허 워허너허."

"금강 구월 지리 향산 산운불합(山雲不合) 갈 수 없다."

"훠허너허."

"일침운중(日沈雲中) 우세 있다. 앙장(仰帳) 떼고 우비 껴라 가다가 저물세라 어서 가자 놀보 집에."

"워허너허 워허너허."

그 뒤에 상인들이 각청으로 울고 올 제 낳은 아들 하나요 삯 상인이 여섯이니 메기고 날 댓돈에 목청 좋은 놈만 얻었구나.

한 놈은 시조청으로 울고 한 놈은 산타령으로 울고 한 놈은 방아타령으로 울고 한 놈은 하 울어서 목이 조금 쉬었기로 목은 아예 아니 쓰고 잦은모리 아니리로 남을 일쑤 웃기겄다.

"애고애고 막동아 기운 없어 못 살겄다. 놀보 집에 급히 가서 개 잡혀서 잘 고아라. 애고애고 오늘 저녁 정상(停喪)을 얻다 할꼬. 놀보의 안방 치고 포진(鋪陳)을 잘 하여라. 애고애고 좆 꼴리어 암만해도 못 참겄다. 놀보 계집 뒷물시켜 수청으로 대령하라. 애고애고 이 행차가 초라하여 못 하겄다. 놀보 아들은 행자 세우고 놀보 딸은 곡비 세워라. 애고애고 철야할 제 심심하여 어찌할꼬. 글씨 잘 쓴 경(磬)쇠 한 목 쇠 좋은 놈 얻어 오라. 애고 애고 설운지고 가난이 원수로다. 삯 한 돈에 몸 팔리어 헛울음에 목 쉬었다. 애고애고."

"훠허너허."

땡그랑 요란하게 나오더니 놀보의 안방에 정구(停柩)하고 허저(許楮) 같은 상여꾼들 벽력같이 외는 소리

"주인 놀보 어디 갔나. 대병(大屛)치고 제상 놓고 촉대에 밀초 켜고 향로에 향 피워라. 제물 먼저 올린 후에 상식상(上食床) 곧 차려라. 방 더울라 불 때지 말고, 괴(고양이) 들어갈라 구들을 막아라."

이런 야단이 없구나. 놀보가 넋을 잃어 처자를 데리고서 대강 거행한 연후에 상제에 문안하고 공순히 묻자오되

"어떠하신 상 행차인지 내력이나 아사이다."

상제가 대답하되

"오 네가 박놀본가."

"예."

"우리 댁 노 생원님이 너를 찾아보시려고 첫 박통에 행차하셔 너를 속량해 주고 환행차 하신 후에 네 정성이 극진하여 자식보다 낫더라고 매일 자랑하시더니 노인의 병환이라 병환 나신 하루내에 별세를 하시는데 박놀보의 안채 정간(井間) 장히 좋은 명당이라 내 말 하고 찾아가면 반겨 허락할 것이니 갈 길이 멀다 말고 부디 게 가 장사하되 만일 의심하거들랑 이것을 보이면 신적(信迹)이 되리라고 재삼 유언하시기로 상행차 모시고서 불원천리 찾아왔다."

소매에서 능천낭을 슬그미 내놓거든  놀보가 이것 보니 송장보다 더 밉구나. 꿇엎디어 섧게 빌어

"상제님 상제님 소인 살려 주옵소서 노 생원님 하신 유언 임종시에 하셨으니 정신이 혼미하여 난명(亂命)의 말씀이니 위과(魏顆)의 하신 일을 상제님이 모르시오. 산리(山理)로 할지라도 이 집터가 명당이면 일조 패가 하오리까. 운진(運盡)한 땅이오니 상행(喪行) 부비(浮費) 산지가(山地價)를 대전으로 바치올 제 환향 안장하옵소서."

전답 문서 전당하고 돈 삼만 냥 빚을 얻어 상행 치송한 연후에 남아 있는 여섯째 통 타려고 달려드니 제 계집이 옆에 앉아 통곡하며 만류한다.

"맙쇼 맙쇼 타지 맙쇼. 그 박씨에 쓰인 글자 갚을 보자 원수 구자 원수 갚자 한 말이라 탈수록 망할 테니 간신히 모은 세간 편한 꼴도 못 보고서 잡것들게 다 뜯기니 이럴 줄 알았더면  시아재 굶을 적에 구완 아니하였을까. 만일 잡것 또 나오면 적수공권(赤手空拳) 이 신세에 무엇으로 감당할까. 가련한 우리 부부 목숨까지 없앨 터니 기어이 타려거든 내 허리와 함께 켜소."

박통 위에 걸터 엎어져 경상도 메나리조로 한참을 울어 내니 놀보가 하릴없어 저도 그만 파의(罷意)하여

"이 내 신세 된 조격이 계집까지 덧내서는 정녕 아사할 터이니, 여보소 톱질꾼들 양줄 풀어 톱 지우고 저 박통 들어다가 대문 밖에 내버리소."

한참 소쇄하는 참에 천만 의외 박통 속에

"대포수(大砲手)."

"예"

"개문포(開門砲) 삼방(三放)하라."

"예."

"뗑뗑뗑."

박통이 한가운데 딱 벌어지며 행군 호령을 똑 병학지남조(兵學指南調)로 하겄다.

"행영시(行營時)에 여전면(如前面)에 조수목(阻樹木)이거든 개청기(開靑旗)하고 조수택(阻水澤)이거든 개혹기(開黑旗)하고, 조병마(阻兵馬)거든 개백기(開白旗)하고 조산험(阻山險)이거든 개황기 하고, 조연화(阻煙火) 이거든 개홍기(開紅旗)하고 과소견지물(過所見之物)이거든 즉권(卽捲)하라. 여도가일로행(如道可一路行)이거든 입고초일면(立高招一面)하고, 이로평행이거든 입이면(立二面)하고, 삼로평행이거든 입삼면하고, 사로평행커든 입사면하고, 대영행(擡營行) 이어든 입오면하되 후대체상구전(後隊遞相口傳)하여 전로에 수모색기기고초(樹某色旗畿高招)라 하여든 중군이 즉거변영호포(卽擧變營號砲) 급(及) 제비( 備) 호령하라."

"정수(鉦手)."

"예."

"명금이하인(鳴金二下引) 행취타(行吹打)하라."

"예."

"쨍 나니나노 퉁 쾡."

천병만마 물 끓듯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나오는 장수 신장은 팔 척이요 얼굴은 먹빛 같고 표범 머리 고래 눈과 제비 턱 범의 수염 형세는 닫는 말 황금 투구 쇄자(鎖子) 갑옷 심오마(深烏馬) 높이 타고 장팔사모(丈八蛇矛) 비껴 들고 거뢰(巨雷) 같은 큰 목소리

"이놈 놀보야."

박 타던 삯꾼들 이 소리에 깜짝 놀라 창자가 터져 죽은 놈이 여러 명이 되는구나. 놀보놈은 정신 잃고 박통 가에 뒤쳤으니(기절하여 넘어짐) 저 장수 거동 보소. 놀보의 안채 대청이 쓸 만한 장대(將臺)인 줄로 하마포(下馬砲)에 말을 내려 승장포(升帳砲) 삼방하고 오색 기치 방위 차려 청동백서(靑東白西) 세워 놓고 각영 장졸 벌여 서서 명금 대취타에 좌기(坐起) 취한 연후에 대상에서 나는 호령

"놀보놈 나입(拿入)하라."

비호 같은 군사들이 놀보의 고추상투 덤뻑 끌어 나입하니 대장이 분부하되

"네놈 수죄할 양이면 네가 놀라 죽겄기에 조용히 분부하니 자세히 들어 보라. 한나라가 말세 되어 천하가 분분할 제 유(劉) 관(關) 장(張) 세 영웅이 도원(桃園)에서 결의하고 한실(漢室)을 흥복하자 천하에 횡행하던 삼 형제 중 말째 되고 오호대장 둘째 되는 탁군서 살던 성은 장이요 이름은 비요 자는 익덕(益德)이라 하는 용맹을 들었느냐. 내가 그 장장군이로다. 천지에 중한 의가 형제밖에 또 있느냐. 한날 한시에 못 낳았어도 한날 한시에 죽는 것이 당연한 도리엔데 네놈은 어이하여 동기 박대 그리 하며 비금(飛禽)중에 사람 따르고 해 없는 게 제비로다. 내가 근본 생긴 모양 제비 턱을 가졌기로 제비를 사랑터니 제비 말을 들어 본즉 생다리를 꺾었다니 그러한 몹쓸 놈이 어디가 있겄느냐. 내 평생 가진 성기(性氣) 내게 이해 불고(不顧)하고 몹쓸 놈 곧 얼른하면 장팔사모 쑥 빼내어  푹 찌르는 성정인 고로 안득쾌인 여익덕(安得快人如翼德) 진주세상 부심인(盡誅世上負心人)을 너도 혹 들었는가. 네놈의 흉녕(凶獰) 극악 동생을 쫓아내고 제비 절각시킨 죄를 꼭 죽이려 나왔더니 도리어 생각하니 사자는 불가부생(不可復生) 형자(刑者)는 불가부속(不可復屬) 네 아무리 회과(悔過)하여 형제 우애하자 한들 목숨이 죽어지면 어쩔 수가 없겄기에 네 목숨을 빌려 주니 이번은 개과하여 형제 우애하겄는가."

놀보 엎어져 생각하니 불의로 모은 재물 허망히 다 나가니 징계도 쾌히 되고 장 장군의 그 성정이 독우(督郵)도 편타(鞭打)하니 저 같은 천한 목숨 파리만도 못하구나. 악한 놈에 어진 마음 무서워야 나는구나. 복복사죄(伏伏謝罪) 울며 빈다.

"장군 분부 듣사오니 소인의 전후 죄상 굼수만도 못하오니 목숨 살려 주옵시면 전허물을 다 고치고 군자의 본을 받아 형제간에 우애하고 인리에 화목하여 사람 노릇 하올 테니 제발 덕분 살려 주오."

장군이 분부하되

"네 말이 그러하니 알기 쉬운 수가 있다. 남원이나 고금도(古今島)나 우리 중형(仲兄) 계신 곳에 내가 가서 모셔 있어 네 소문을 탐지하여 개과를 하였으면 재물을 다시 주어 부자가 되게 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바로 와서 죽일 테니  군사나 호궤( 饋)하라. 이제 곧 떠나겄다."

놀보가 감화하여 양식 있는 대로 밥을 짓고 소와 닭 개 많이 잡아 군사를 먹이면서 좋은 술을 연해 부어 장군전에 올리오니 제 계집이 말려

"애겨 그만 합쇼. 그 장군님 술 취하면 아무 죄 없는 놈도 편타를 하신답네."

놀보가 웃으며

"자네가 어찌 알아. 그 장군님 장한 의기 의석(義釋) 엄안(嚴顔) 하셨나니."

장군이 회군하신 후에 가산을 돌아보니 일패도지(一敗塗地) 하였구나. 방성통곡(放聲痛哭) 하고 흥보 집 찾아 나니 흥보가 대경하여 극진히 위로하고 제 세간 반분하여 형우제공(兄友弟恭) 지내는 양 누가 아니 칭찬하리.

도원에 남은 의기 천고에 유전하여 이러한 하우불이(下愚不移) 감동하게 하시오니 염완입나(廉頑入懦)하는 백이지풍(佰夷之風) 같은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