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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삼매] 관왕 혁명도수의 본무대를 향하여

낙엽군자 2015. 6. 25. 01:01

[월인삼매] 관왕 혁명도수의 본무대를 향하여

 

 글쓴이 : 칠현금
 

'물은 밤낮없이 흐르지만 한 번도 저 강이 가버린 적이 없고 달은 찼다가 기울지만 조금도 없어지거나 자란 적이 없다'는 것은 소동파의 적벽부요, ‘달아달아 밝은달아 이태백이 노던 달아’라는 달노래의 이태백은 ‘아미산에 걸린 달은 반만 둥그런 가을 달인데(峨眉山月半輪秋) 그림자는 평강강 흐르는 물길에 드리우고(影入平羌江水流) 밤에 청계를 떠나 삼협을 향하니(夜發淸溪向三峽) 기룬 님 보지 못하고 유주로 내려간다(思君不見下渝州)’고 하였다. 하늘에 달은 하나인데 천개의 강에 비추니 인간 세상에 월인(月印)이 찍힌 영혼도 일천개나 된다.
 
건존 증산 상제님께서 세차(歲次) 신미(辛未, 1871년) 음력 9월(戊戌) 19일(丙午) 무자(戊子) 시(時)에 탄강하시니 포태하신 것은 경오년 병술(구월) 신축일 무자시로 추산된다. 단주수명서에서 ‘병오에 미륵불의 상이 나타난다(南則午 丙則南 丙午現佛象)’고 한 것은 병오(丙午) 일진과 연관되어 있다. 단주수명서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 중원갑이므로 중원갑에 천하사의 주역들이 태어나고 하원갑에 말수도수가 전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신미생신축년 도통(辛未生辛丑年道通) 임술생임인년상봉(壬戌生壬寅年相逢)’은 중원갑에서 1961년이 신축년인데, 1962년 임인년은 임술생 추수사명 도수를 맡은 대인이 천하사의 막둥이를 만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임술생 대인의 50년 도수의 시발점이 1962년 임인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축년에 도통하고, 임인년에 너와 상봉하고 계묘년(癸卯年)에 동곡에 들었노라’는 말씀의 연장선상에서 천하사 혁명도수의 시발점이 임진(壬辰) 계사(癸巳)라는 것이며 ‘진사성인출(辰巳聖人出)’하는 하원갑의 진사(辰巳)가 임진 계사년임을 의미하고 또 관왕(冠旺)의 도가 출현하여 판밖성도가 이루어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을미년 하지(夏至)는 음력 5월(壬午) 7일(己巳)이다. 5월이 임오(壬午)이니 4월은 신사(辛巳)인데, 29일이 임술(壬戌) 일진이다. 5월 임오월은 계해(1) 갑자(2) 을축(3) 병인(4) 정묘(5) 무진(6) 기사(7) 경오(8) 신미(9) 임신(10) 계유(11) 갑술(12) 을해(13) 병자(14) 정축(15)일진으로 하지인 기사의 익일인 경오 일진을 기준으로 앞의 삼일인 정묘에서 뒤의 삼일인 계유까지 7일이 갑오 동지에 등장한 마패와 관련하여 새로운 전기점이 되는 시기이다.
 
또한 “이 천지대사(天地大事)가 유월(六月) 칠월(七月) 팔월(八月)”이라 했으므로 계미(6월), 갑신(7월), 을유(8월)에 천지대사의 중요한 일이 있음직하다. 물론 그 일은 “나는 바닥에 일(一) 붙은 줄 알고 빼느니라”는 임(壬)과 필수불가결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구월이 병술월이니 을미년 구월병술월은 마패도수에 붙은 진시황 해원도수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 이는 북학주 공사와 차월곡에게 붙인 어사도수를 연관시켜 보면 판안과 판밖의 일들이 매우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직감하게 한다.
 
북학주 공사는 김갑칠과 관련이 있다. ‘큰아들을 누구로 정하시렵니까?’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잠시 머뭇거리시면서 ‘김형렬이니라’ 하시고, ‘그럼 막내아들은 누구로 정하시렵니까?’ 하고 여쭈니까 ‘갑칠이가 갑오갑자꼬리니라’고 하셨다.(김천수씨 증언) 신사(辛巳 : 1881)년 2월 7일 청도리에서 태어난 김갑칠(金甲七) 성도는 족보상의 관명(冠名)은 용회(龍會), 도명(道名)은 갑칠(甲七)인데 본래 이름은 판식(判植)으로 김형렬과는 사촌간으로 김준상과 형제간인데 임오년(1942) 10월 15일 청도리에서 62세로 작고하였다. 태운장 김형렬의 인도로 22세되던 임인년(1902) 4월 청도리에서 입도하였고 천지공사 과정에서 상제님을 수행하였으며 어천 이후 교단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상제님께서 무신년에 구릿골 약방 뒤에 친히 대나무를 심으시고 이듬해에 그 대나무를 하나 잘라 오게 하시어 도운을 전하는 공사를 보셨는데 그 때 대나무를 잘라 온 주인공이 바로 김갑칠이다. ‘갑오갑자꼬리’의 의미로 김갑칠(金甲七)이라는 이름에는 4金과 3甲에 7火(병오)라는 이치가 담겨있는데, 수리적으로는 [4+3 x 7]로 4와 21이니 천하사 성공의 25수와 오로봉전이십일의 21이란 의미의 숫자가 담겨있다. 또한 12(4 x 3), 28(4 x 7)과 4진주에 해당하는 11에서 7을 제한 4로서 4金이란 상징성이 매우 의미있게 보인다. 이는 임진 계사 갑오 을미 병신년간에 해당하는 시간적 의미의 수이기도 하다.
 
을미년은 을(8)과 미(10)가 18과 80의 수리를 나타내는데 병자개로의 해인 1936년에서 80년은 김일성이 죽은 1994년으로부터 11년을 경한 시간의 접점에 해당하기도 한다.
 
김갑칠이 전주 서천교(西川橋) 다릿목을 지나면서 보니 한 옥골선풍 청년이 죽어 있는지라
 
김형렬과 김갑칠(金甲七)에게 “49(四十九)일간 종이등(燈) 한 개씩을 만들고 각기 짚신 한 켤레씩을 삼아 두라 그 신으로 천하 사람을 신게 할 것이요, 그 등으로 천하 사람의 어두운 길을 밝히리라”
49라는 시간의 천하사 준비의 종이등과 짚신의 의미와 백남신과 김갑칠이 등장하는 북학주 공사의 전주남문과 서천교의 의미는 임진년(2012)년으로부터 7년간에 해당하는 그 중간인 을미년(2015)이 청룡황도대개년의 정점에 해당하는 중심시간대이므로 7화(七火) 병오(丙午)의 미륵불의 상이 드러나는 원년이 됨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원갑 병술 구월이 들어있는 을미년의 구월이 판밖성도의 관왕(冠旺)의 도가 본격적으로 포태하는 것이니 시월 정해(丁亥)로부터 13월을 경하면서 병신년 10월까지 판밖의 일이 본궤도에 올라 세상에 진면목을 보일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이는 을미년 구월이 임술삭이고 시월이 임진삭이며 또 익년인 병신년 사월이 계사월로 기축삭이니 삼월 그믐이 무자(戊子)이고 시월이 기해월로 병술삭이란 점에서 갑오갑자꼬리 김갑칠 막내도수의 이름에 담긴 시간의 비밀이 월인(月印)으로 찍혀서 밝혀지는 것이니 을미년 정해(丁亥) 시월은 현무경 해부(亥符)의 심령신대(心靈神臺) 안내성 사명기의 실체가 인사로 이화되어 발현되는 때가 되는 것이다.
 
월곡(月谷) 차경석에게 어사도수를 붙였는데 순창농바우의 기운을 붙였다. 이는 회문산 산군도수의 주인공이 차월곡 어사도수의 주인공으로 인사의 기틀이 드러날 때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을미년 하지가 임오월 기사(己巳) 일진인데 갑오마패의 출현에 이어서 곧바로 을미년 하지가 기사일이란 점은, 경석에게 “나의 조정(朝廷)에 설 사람은 서전서문(書傳序文)을 많이 읽어야 하느니라. 너는 만 번을 읽어라. 대운(大運)이 그에 있느니라”라고 하신 서전서문 도수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서전서문에 “嘉靖己巳三月旣望에 武夷蔡沈은 序하노라”라고 하였는데 “우리 일은 무이구곡 같다”고 하였으므로 가정(남송 寧宗 15년) 기사년(1209년) 삼월 기망에 무이 채침이 서전서문을 쓴 기사년의 ‘기사(己巳)’라는 것이 무이(武夷) 구곡의 한구비가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므로 을미년 삼월 경진월로부터 또 신사(辛巳) 임오(壬午)로 세 번째 달이니 세차력법의 시간과는 별도로 인사법도에서 그 주체적 인물들에 얽힌 비밀이 60갑자 경진(庚辰)을 기점으로 절묘하게 짜인 천지도수인 것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천하대사의 법도인 것이다. 이는 갑오 동지에 시발한 마패도수가 을미 삼월 경진을 기점으로 하여 세 번째 달인 임오월(5월), 네 번째 달인 계미월 8일이 4월 초파일의 개념적 의미로서 경자(庚子) 일진인 것과 아울러 여섯 번째 달인 팔월 을유월 보름이 병오(丙午) 일진이고 일곱 번째인 9월(병술) 9일이 또 경오(庚午) 일진이고 여덜번째 달인 시월(정해) 3일이 갑오(甲午) 일진이며 아홉 번째 달인 동짓달이 무자(戊子) 월인데 무자기축으로 또 새로운 기운이 열리는 시발점이니 갑오진주치기 놀음에서 어떤 갑오가 진짜 갑오인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인 것이다. 쇠북쥐의 갑오패에 무술 황중월(皇中月)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하는 문제와 하원갑 경오년(1990), 신미(1991)에서 28수의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곧 밝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聖人之心이 見於書는 猶化工之妙가 著於物이니
非精深이면 不能識也라.
성인의 마음이 서경에 드러남은
조화옹의 묘한 재주가 만물에 드러나는 것과 같으니
깊이 궁구하지 않으면 능히 알 수 없느니라.
 
그러면 임술생 김형렬과 임인년 상봉의 일인인 김갑칠을 통하여 임술생 대인과 막내도수가 시발하는 역경만첩의 천지도수를 되짚어 보기로 한다.
 
상제님께서 어느 날 저녁에 갑칠을 불러 갱생주를 읽어 주시며 “용화동에 가서 사람을 만나거든 읽어주고 오라” 하시니 갑칠이 명을 받고 용화동에 갔으나 어찌된 일인지 밤 늦도록 아무도 만나지 못하거늘 하는 수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갱생주를 읽으니라. 갑칠이 돌아와서 상제님께 사실대로 아뢰니 “잘 하였다” 하시며 칭찬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머무르며 갑칠에게 명하시어 “남원 김병선에게 가서 돈 사백냥을 가져오라” 하시니라. 2월에 대공사를 행하시려고 서울로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전함을 순창으로 돌려대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켜 모든 일에 소홀히 임하지 말라” 하시니라.
 
병오년 천자부해상공사는 자오회합(子午會合)으로 ‘중앙의 천상과 지방과의 연결공사’(손병욱 저, 현무경과 병, 285p)인데 ‘40년도 10년이지만 넘지는 아니하리라’고 하여 병오(1906)년으로부터 39년을 경하여 을유년(1945)에 임술생 대인이 출세하는 공사였는데, 을유년 7월 갑인(7.6) 을묘(7.7) 병진(7.8)에 응하는 1974년(갑인) 1975년(을묘) 1976년(병진)에 제3변 추수도운이 기두하여 다시 40년이 넘지 아니하는 임진 계사 갑오 을미년으로 천하사 혁명도수가 기두한 것이다. 김갑칠이 용화동으로 간 까닭도 동일한 의미로 해석되는데, ‘구복대적(口復大賊) 김형렬’이라 한 것처럼 임술생 대인에 대한 비평이 극에 달한 때에 김갑칠의 ‘갱생주’의 의미는 미륵용화세계로 새롭게 태어나는 천하사 혁명의 서막이 마지막 장을 넘기는 해가 을미년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임술생 김형렬의 인도로 임인년에 입도한 청도리 사람 김갑칠에게 붙인 막내도수는 을미년 시월(丁亥)을 지나면서 안내성 사명기 도수인 현무경 해부의 심령신대를 통찰하는 관왕(冠旺)의 도로써 판밖성도 치천하 혁명대업의 본격적인 깃발을 올리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비로소 사명기 도수가 발동하는 치천하의 혁명대업을 앞두고 각기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천개의 강에서 천지무가객이 되어 고독하고도 구성지게 부르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노래는 하늘의 달이 원래 하나이듯이 큰 바다에서 하나로 합쳐져서 해인삼매(海印三昧)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