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관련

[스크랩] 가림토문자 소개

낙엽군자 2011. 6. 29. 12:39

 

▶가림토문자 소개

 

1.가림토문자란?

2.가림토문자의 역사적 근거

3.가림토문자 풀이

4.가림토문자의 역사적 의의

 
 
1.가림토문자란?
1) BC 3898 ~2333년 사이에 한반도에는 배달국이 있었는
배달국 에서는 사슴의 발자국을 본떠서 만든 녹도문자가 있었다.
이 녹도문자는 음문자이며 만물을 형상화한 뜻글자로서
완전한 문자체계가 이루지 못하여 불편한 점이 많았다.
 

신지녹도문자 천부경 진본

 

고조선이 개국되기 훨씬 전인 신시배달 건국 때부터 우리 민족은
이미 문자생활을 영위하였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배달국 환웅천황은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 神誌文字)을 창제하였다. BCE 39-38세기경에
창제된 이 녹도문은 이집트 상형문자(BCE 3000년경),
수메르 설형문자(楔形文字: cuneiform script, BCE 3000년경)보다
몇 세기 앞서는 세계최초의 문자다.
환단고기「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기록에 보면 환웅천황께서
신지(神誌: 벼슬이름)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의 글로써
천부경을 기록케 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녹도(사슴 발자국 모양)란 문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BC 2333년 단군조선이 건국되었고 BC 2181년 3대 갸단군에 이르러
녹도문자의 불편한 점을 개선코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38자의 문자를 만드니 이것이 바로 가림토문자이다.
가림토문자를 만들면서 갸륵단군께서 하신 말씀은
"아직 풍속은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하여도
열 집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3) 가림다는 우리말소리가 가진 뜻에 관리 통제하여 일치시킨
소리글(표음문자)이면서 동시에 뜻글(표상문자=표의문자)이다.
가림다의 글씨(글자 하나하나) 디자인은 사물의 구체적 형상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고, 사물간의 관계법칙을 내포하는 개념을
상징하는 기하학적 형상이다.

4) 훈민정음은 이 음성기호적 기능을 살리고 28자로 축약한뒤
모아쓰기형태의 용음합자방식으로 바꾸어 세종대왕에 의해
재 창제된 것이다.가림다는 38자이 풀어쓰기 방식이다.
 
▶융음합자방식이란:
 
소리가 나는 대로 문자를 합자하여 조합형의 글자를
만드는 방식을 뜻함. 한문은 표의문자로 구분되며,
한글과 영어는 표음문자 즉 소리글자이다.
합자방식을 사용한 문자는 한글과 한문이 대표적이다.
가림토문자와 영어는 풀어쓰기방식으로 사용하며
영어는 현재도 풀어쓰기 형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기>ㅁ ㅣ ㄴ ㅈ ㅗ ㄱ ㅁ ㅜ ㄴ ㅎ ㅏ ㄱ
 
5) 해외에 남아있는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은 일본의 신대문자,
고의 "파스파 문자, 인도의 산스크리스토 알파벳 과
구라자트 문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가림토문자가 특이한 것은 전세계 어느 나라 문자와도 다른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문자가 대단히 반듯하다는 것이다. 갑골문의 유적에서
볼 수 있는 원시 한자의 모양도 구불구불 하였던 것이 단군 3세때 처음 만들어진
우리민족(쥬신족)의 가림토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편 시베리아에 거주하던 쥬신족의 일부가 베링해를 거쳐 아메리카로
진출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기원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적 중에서 가림토 문자 'ㄷ' 'ㅁ' 'ㅐ'등이 새겨진 것이
발견되었고 아메리카 대륙 뿐 아니라 사대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인도대륙의
한 고장에서도 가림토 문자가 사용되고 있다고 함.
 
2.가림토문자의 역사적 근거
 
가) 세종 23년에 발표한 세종실록 103권에는 "非新字也"라고 나와있음.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
 
나) 세종실록 25년 ;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첫 발표문에는
-이 달에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한 것이다.

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최만리등이
반대하는 글을 올리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 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음과 합자
전혀 옛 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用音合字盡反於古實無所據)
 
전조선때부터 전해오는 언문 을 빌려 쓰신 것이긴 하지만, 금은
자를 써야 할 때인데 어찌 지나간 것을 따르려 하시오니까?
(借使諺文自前朝有之以今日文明之治變魯至道之意尙肯因循而襲之乎)
 
언문은 한자와는 서로 아무런 상관됨이 없는 시골 것들이
는 말일뿐이옵니다.
(諺文與文字誓不干涉專用委巷俚語者乎)
 
당시 세종대왕은 한글을 [훈민정음] 이라고 발표했지
[언문] 이라고 한 적이 없다.

최만리등의 말에서 보듯이 [훈민정음창제] 이전에 이미 예부터
전해오는 [언문]이라는 것이 있었고 백성들이 그 [언문]을 쓰고
있었으며 [훈민정음]은 그 언문의 모양을 본 따서 만들어진 것이다.
라) 조선 세조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28자의 근본이『징심록』의 가람토문 에서
해졌다”고 말하였다는 기록이 있음.
 
마) 압록강 위쪽 고구려의 옛 수도 집안근처에서 발견되는 토기 중에
가림토문자, 녹도문자, 한문이 동시에 쓰여 져 있는 것이 발견다고 함.
바) 가림토 문자는 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이암(李巖)이 저술한
 
'단군세기'에 제3세 단군 가륵이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었다고 기술되어있음.
 
사) 조선중종떄 학자 이맥(李陌)의 『태백일사』「소도경전 본훈」에는
“한문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가림토(加臨土)라는 옛 글자가
있어 모두 이 문자로 기록을 했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음.
 
아)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명마산 중턱에 있는
바위(가로1.8m,세로3.4m)에서 가림토로 추정 되는 문자 다수가
새겨진 것이 발견 되었다.
 
이 바위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이나,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이 각인 되어 있으며 재야 사학자인 예대원 씨는
'훈민정음 창제의 모태이자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가림토 문자가
확실하다'고 주장함.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명마산 중턱에 발견된 바위 가림토문자 추정되는 문자가 있음
 
자) 삼천포 남쪽에 있는 남해섬에는 우리 나라의 고대 문자로 추정되는
'남해각서’가 있는데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탁본을 하여서 바위가
새까맣게 먹물에 젖어 있음. 위당 정인보는 “우리 나라의 문자는
옛날부터 있었다. 지금 남해현 낭하리의 암벽에 신시(神市)의
고각(古刻)이 있다.”고 기술함. 단군 연구에 최고 권위자인
한국정신문화원 박성수(역사학) 명예교수는 남해각서를 보고
'바위에 암각된 문자가 가림토와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연구검토를 거쳐 가림토 여부를 판명해야 할 것'이라고
피력함.


▶한국정신문화원 박성수 명예교수의 강의록:
 
우리 나라에는 ‘묘향산의 비기(秘記)가 지리산에서 나왔다’ 하는 식으로
이 비기라는 것이 많은데 그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신지가 지은
『신지비사(神誌秘詞)』입니다. 이 책을 남긴 신지(神誌)라는 분은
단군시대 역사가이면서 요즘으로 말하면 나라의 모든 행정을 맡았던 분입니다.
 
 이런 비기들이 후대에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런 비밀스러운 기록들이 발견되면
유학자들이 다 찢어버렸어요. 5백년전 조선 왕조가 시작될 무렵에 이성계가
정권을 잡으면서, 유학자들이 주자학이 아닌 다른 문서는 전부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일제가 쳐들어와서는 단군에 대한 얘기가 쓰여진 책을 전부 몰수해서,
서울 남산 뒤에 있는 총독부 뒷마당에서 태웠습니다. 제가 일본에 갔을 때
당시 담당자를 만났는데, 들어보면 일주일 내내 태웠다고 합니다.
 
차)언어학자 박대종씨가 동방문자(漢子)의 기원인 갑골(甲骨)문으로 쓰여진
우리 선조의 유집 "농은유집(農隱遺集)" 천부경(天符經)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갑골문의 뿌리가 단군조선 이전인 환웅 (桓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밝힘.
 
카)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을 가능케 한 고대 이집트 비석
로제타석(BC 205~180) 에는 맨 위에 이집트 상형문자,
중간에 이집트 민용문자, 맨 아래에 그리스 문자가 쓰여져 있고,
고구려 옛수도 집안근처에서 발견되는 토기중에는 가림토문자, 녹도문자,
한문이 동시에 쓰여진 것이 발견 되는데. 이는 로제타석 보다 훨씬 오래 된 것으로 추정함.
 
타)중국의 주된 종족인 지나족이 북아프리카에서 중국 북부지역로 이주하여
BC 1800년경 처음으로 세운 나라가 은나라인데 유물로서 한문의 전신으로
평가되는 은나라갑골문자((BC1300-BC1000)가 있다.
우리 선조인 동이족이 은나라 건국과 갑골문자에 많은 영향을 끼침.
(중국 수상 주은래가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말함)
최근에는 은나라 갑골문자 보다 더 오래된 만주 갑골문자가 발견됨.
 

3.가림토문자 풀이
 
지구상의 어떤 문자이든 어느 한사람이 일시에 만든 경우는 없으며
그 시대,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사용되어진
문자를 체계화하여 집권자가 지정하고 국민들이 쉽게 사용하면
문자로서의 생명력을 부여받게된다. BC 770년에 시작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각제후국들과 고조선 사이에 교역이 증가하면서
한자를 국가 주요문서의 문자로서 사용하게되자 가람토문자의
사용빈도가 낮아지게 되었다.
 
가림다 38자 중에 근간이 되는 중심 글자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여
해석을 달지 못한 자음과 모음에 대한 해석은 계속 연구 되어야한다.
 
 


A.한겨레의 전통사상인 삼태극/삼일사상에 의한 가설


※ 삼태극 해설

태극기는 고종때 최초로 국기를 만들었졌는데
최초 국기가 삼태극 문양이다. 이 문양은 고대부터 사용되어져
왔으며 이를 근거로 유추한 사상을 삼태극 사상이라고 한다.
 
▶삼태극에서는 신기한 힘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적·청·황색의 삼태극이 상징하는 하늘·땅·사람은 각각이면서
하나이고, 삼태극은 천지인 (하늘·땅·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하늘과 땅이 아직 나누어지기 전에 태극에서 음양(陰陽)이 생겼다.
음양의 조화에서 오행(五行)이 생겼다.

▶적·청·황색의 삼태극이 상징하는 하늘·땅·사람은 각각이면서
하나이고, 그 가치 또한 동등하고. 태극의 음(陰)과 양(陽)이
화합하여 완전한 원형을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땅·사람이
모여 우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극과 삼태극은 모두 우주를
상징한다.

▶천지인 3재의 조화사상은 삼태극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상층의 효는 하늘, 중층의 효는 사람,
하층의 효는 땅을 상징하면서 천지인 3효가 하나의 괘를 이루고
있다. 물론 효 역시 음과 양으로 괘 역시 음과 양으로 나누어진다.
음양의 태극은 빨간색이 양을 나타내고 파란색이 음을 나타낸다.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 겸 수신사(修信使)인
박영효(朴泳孝) 등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배를 타고 도일할 때,
그 동안 구상되고 논의되어 어느 정도 찬성을 본 국기의 도안
내용을 다소 수정한 태극사괘(太極四卦)의 도안이 그려진 기를
국기로 게양할 것에 의견을 모으고
일본 선박 메이지마루[明治丸]에서 이것을 만들었다.

▶1883년 1월(음) 고종은 왕명으로 태극도형과 4괘가 그려진
국기를 공식으로 제정·반포하였다.
▶1883년(고종 20) 조선의 국기로 채택되고,
1948년부터 대한민국 국기로 사용된 것이다.
 
1.닿소리글자 (자음)
 
○;없음(0)을 상징한다. 없음은 있음이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 (1)이고, 있음과 하나(1)이다. 따라서 있음도 하나(1)이다.
이 하나인 없음에서 모든 것 있음 나온다.
 
하늘(선천>짐천>후천)에서 나온 개념이다. 없음에서 처음 나오는
흐름이 0.ㄹ(=ㅇ.ㄹ=얼/알의 가림다 표현)이며, 후천에서
하늘은 0.ㄹ과 하나이니 보이지 않는 0.ㄹ 을 상징하기도 한다.

ㆆ(=ㅎ);빛 있음=밝음과 따뜻함을 상징한다. 선천의 불(火)과 같은
해(日)에서 나온 개념이다. 선천이라 함은 지구생성 전의 우주의
시공간를 말하며, 짐천은 지구생성 과정의 시공간이고, 후천은
지구생성 후 지구 대기권/ 대기막 내의 하늘이다.
 
□;○에 상대적인 개념으로 물질(ㅇ.ㄹ_ㅁ) 있음을 상징한다.
닫혀있음, 뭉쳐있음, 나뉘어짐 등의 뜻/성질을 가진다.
ㄴ;□의 처음끝(있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ㄱ;□의 마지막끝(있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ㄹ;ㄴ에서 로 이어짐(있음).이음, 흐름 등의 뜻/성질을 가진다.
工;가림다에서 으로 있음이 없음을 두름(있음)의뜻/성질을 가진다.
∪;
가림다에서 ㅂ으로 가운데 선이 없는 모양, 즉 ㄷ이 선 형태
비어있는 기학학적 형상. ㄴ이 ㄱ으로 닫히고 막히어 채워진 ㅁ이 되기 전의
빔(있음). 빔에서 채움, 즉 받음 등의 뜻/성질을 가진다.

ㅋ;끝이 새로이 생겨 커짐(있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과□이 서로 소통되는 생명(ㅇ.ㄹㅣㄹ.ㅇ) 있음을 상징한다.
생명은 없음에서 있음으로 있음에서 없음으로 되는 것인데,
생명은 있음과 없음이 하나로 있음을 상징한다.
 
ㅅ;생명이 섬. 서있음. 솟음, 세움, 섬 등의 뜻/성질을 가진다.
ㅈ;솟음을 누름. 죽음, 죽임, 지움 등의 뜻/성질을 가진다.
ㅊ;지움을 뚫고 치솟음. 치솟음, 침 등의 뜻/성질을 가진다.

2.홀소리글자 (모음)
 
. ; 없음에서 있음으로 있음에서 없음으로 되는 점(있음/없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_ ; 솟지 못한 물질 있음/ 생명 없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ㅣ; 있음(1). 솟은 생명 있음(1). 나눌 수 없는 하나(1)의 있음
뜻/성질을 가진다.
 
B.환단고기를 위서로 단정하는 집단의 주장.
 
-일본 대마도의 아히루 문자가 훈민정음의 근본이라고
주장하다가 여러가지의 역사적 증빙근거로 일본이
철회하였으며, 이제는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강도가 미약해졌으나 만든 과정을 저급하게 추정함.
"가림토문자는 자연, 만물의 기본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표시한 것에 불과하다"이 말은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저급한 수준을 의미.
 
▶환단고기에 대하여

ㄱ.환단고기나 규원사화 등은 흔히 고기류(古記類)에 속하는 야사.
규원사화가 17세기 조선 숙종대를 전후하여 쓰여진 야사임에
반해 환단고기는 19세기 이후 쇄국과 개항에 따른 국난시기에
쓰여진 야사로 사료됨.

ㄴ.환단고기는 삼성기(상,하)와 단군세기, 그리고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묶어서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든 책으로
1911년 운초 계연수가 적고 해학 이기가 감수함.
1979년 이유립이 공개하면서 국수적 개작의 의혹을
받고 있음.1911년 계연수가 처음 필사한 원본은 사라짐.
 
ㄷ.1979년 일본인 가지마 노보루가 한국에서 환단고기 영인본을
발견하여 1982년 일본에서 일본번역본을 발간하면서 역시
개작을 하여 일본의 신도가 본류이고 단군은 지류로 해석함.
 
ㄹ.환단고기에는 가림토문자가 이미4000년전에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있음.
 
C.훈민정음에 관하여
 
**훈민정음은 언해본 , 해례본 , 예의본 으로 나뉘어짐.
 
ㄱ.언해본 ( 言解本 ) 이란 , " 말을 번역하다" 란 뜻으로 훈민정음을
처음 만들때는 한자로 된 책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다음에
그 책을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로 번역하였음.
그렇게 번역한 책을 바로 언해본이라함.
 
ㄴ.해례본 이란 훈민정음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각 음운들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적은 책. "ㄱ" 이 어떤 소리로 발음되는지
"ㄴ , ㄷ ~ ~" 의 글자가 어떤 입모양에서 어떤 발음으로 소리가
나는지를 적은 책.
 
ㄷ.예의본 이란 훈민정음을 만들때에 무슨 까닭으로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세종대왕이 직접 적은 책.
 
세종대왕은 인체 발음기관을 참조하여 38자 가림토문자의
음배열을 재정비하여 28자로 줄인 뒤 훈민정음으로 명명하여
발표함. 그후 주시경 선생님이 28자를 24자로 줄임.
1927년 국어연구학회가 기관지인 "한글"을 펴내면서
우리글을 한글로 부르기 시작함.
 
1940년 경북 안동군 와룡면 주하동의 이한걸 집에서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가 상세히 기록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었다.
:이 해례본은 그의 선조 이천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대왕으로부터 직접 하사받은 것인데 앞 부분 두 장이
소실되어 있었음. 그 이유는 연산군이 악정을 베풀자
언문으로 된 상소와 벽보가 수 없이 나붙었고 이에
화가 난 연산군이 언문으로 된 책은 모조리 불살랐으며
또 언문으로 된 책을 가지고 있는자가 있으면 엄하게
처벌했으므로 이 책의 앞 부분 두 장을 일부러 뜯어버렸다고함.
 
식민지시절 일본은 창호설을 주장함.

4.가림토문자의 역사적 의의

1.
한글, 훈민정음의 기원인 가림토문자는 BC 2181년에 만들어짐.

ㄱ.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로 구분.
석가모니(BC 600년대), 공자(BC 500년대), 소크라테스(BC 400년대),
클레오파트라(BC 100년대), 이슬람교(AD 700년대).
 
ㄴ. 단군기원과 서력기원:고려말기 문신 백문보가 공민왕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단군기원(BC 2333 년)이 언급되어 있고 1948년 정부 최초
헌법에는 단군기원을 기준하였으나 5.16군사정권이 서력기원을 기준함.
 
ㄷ. 라틴어를 기반으로 한 영어는 BC 1000년 전후로 만들어졌음.
 
ㄹ.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1호인 BC 431년경 건축된 파르테논 신전 보다
약 2~3000년이 앞선 이집트의 스핑크스, 피라미드, 룩소신전 등이
후 순위에 매겨져 있음. (문화를 지키는 것은 힘의 논리에 좌우)

 
2. 슈메르왕국, 배달국, 단군조선, 이집트
 
BC3500년경 지금의 이라크지역에는 슈메르왕국이 있었고
이집트문명은 BC3000년경에 형성되었다.
한반도에서는 기록이 미흡한 환국은 제외하여도 BC 3898년경
홍익사상을 건국이념으로 삼고 녹도문자를 사용한 배달국과
BC 2333년 단군조선의 기록이 있음.
 
3.녹도문자 ( BC 3898~2333년), 가림토문자 ( BC 2181년),
 
슈메르문자( BC3500년~약 BC2000년)는
비슷한 시기에 사용되어졌는데, 이것은 이집트 상형문자 보다
몇 백년에서 약1000년이 앞서며 그 중에 한글과 모양이 같은
가림토 문자가 가장 과학적인 인류 최초의 소리 문자이다.

중국에는 고구려 옛수도 집안지역을 중심으로 약 1만2000여개의 피라미드가 있는데
고구려시대에 만들어진 무덤일뿐이라고 주장하며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음.
 
슈메르문명에 대하여
BC 3500년경 지금의 이라크지역에 검은 머리를 가진 사람(Sumerian)들이
모여들어 나라를 세웠다고 함. 이 사실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평야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창세기 11장 2절)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이들이 메소포타미아에 처음 정착 때부터 문자, 학교제도,
법제도, 직조염색기술, 2층건축술 등 고급문화를 어디에서 가지고 이주해 온
것으로 밝혀졌는데 어디서 가지고 왔느냐 것이 인류사에 있어
최대의 의문점으로 남아있다.(Sumer Problem)
 
1830년대 이라크에서 출토된 점토판에 쓰여있는 설형문자인 슈메르 문자를
번역해보니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홍수 설화의 원형이 기록되어있었다.
슈메르문명은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보다 1000년이 앞선 문명이며
BC 2000년경 슈메르 우르 남무 왕국이 멸망하면서 슈메르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과 히브리의 감성적 신앙이라는 두 물줄기로 갈라진다.
 
히브리인들은의 정신적 유산을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전은 슈메르의 딜문 동산을
답습하였다. 최근에 북한 학자들은 대동강유역에서 검은머루 유적지 발견 이후
이를 '대동강문명'이라고 하며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더 오래 된 문명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주장함.
 
슈메르어와 한국어의 공통점
 
ㄱ.언어의 특징에 있어 슈메르어는 한국어 같은 교착언어로서 우리말처럼
주어나 목적어 다음에 '은, 는, 이, 가' 등이 붙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공통된 현상이다
 
ㄴ.문법 구조에 있어서 슈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 혹은 중국어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ㄷ.유사한 언어가 많고 특히 수사(數詞)가 같다.
 
예) 슈메르어는 처음 1을 '아스 as'라고 하는 데
이는 <삼국유사> 고(古)한국어의 그것과 일치한다.
처음 빨래를 '아시 빨래'라고 하며 아침은 '아사'라고 하는 것이며
해 뜨는 아침을 의미하는 Asis가 여기서 유래한다.
 
4.결어:
 
▶선조의 역사를 바르게 지키고 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여
후세에 물려주는 것은 현대인의 책무이다.
 
수메르 문명과 녹도,가림토 문자의 존재는 세계사를 다시
쓰야할 만큼 중요한 것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인정되는
수메르문화보다 한민족문화가 더욱 이른 시기에 발현되었으며
인류문명의 필수요소인 문자 발명에 관한 한 우리 한민족이
종주국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유럽문화의 큰형님이라 불리는
그리이스 문화 보다 2000~1500년이앞서고 이집트 문화 보다
수백 년이 앞서는 동이족의 문화는 외침으로 인해 스스로를
보존, 계승되지 못하여 현재 한민족문화의 계승과 발전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오늘날 한국 고대문명이 진위여부를 두고
논란을 야기하는 것은 각시대에 권리를 행사한 식자층의
아집과 역사의식결여에 책임이 있을 것이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선대서민문화의 강인성에 감사하며
하루 바삐 남북통일을 이룩하여 북한에 많이 산재되어 있는
한국민의 고대유적 발굴, 연구 및 규명를 통하여
한민족의 문화정체성을 공고히 하여야 한다.
출처 : 맹꽁이의 찬양
글쓴이 : 오소운 맹꽁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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